여행의 새로운 발견 - 뚜르드몽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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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년 12월호] 대륙분류 : [유럽] 국가분류 : [핀란드] 도시분류 : [헬싱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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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VERSTORY] 전세계를 누비는 메이드인 핀란드

“몇 시간을 봐도 질리지 않아. 모닥불은 아마도 가장 오래된 텔레비전이 아닐까?”
파지직. 마른 자작나무 위로 자욱하게 피어오른 연기가 안개 사이로 스미고, 그 속에 나란히 앉은 사람들 틈으로 고요가 파고든다. 머릿속을 맴도는 상념마저 커다랗게 메아리칠 것 같은 아침이다.

우꼬콜리에서 아침을

이른 아침 호텔을 나선다. 호텔 유리 문 너머엔 여전히 안개가 짙게 깔려있다. 지난밤 서서히 드리워지기 시작한 안개의 커튼은 쉽게 가실 기세가 아니다. 요엔수 북부의 국립공원 콜리에서 안개는 해가 뜨고 지는 것만큼이나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콜리라는 지명은 어떻게 생긴 걸까? 유력한 가설은 희생의 계곡에서 사람들이 동전을 던지면 이와 비슷한 ‘콜리, 콜리, 콜리’란 소리를 내며 떨어지기 때문이라는 것. 우리말로 치면 ‘땡그랑’ 정도 될까? 땡그랑 국립공원. (좀 빈티나긴 하지만) 경쾌한 이름이다. 아침 일찍 시작한 하루만큼이나.

아침 일찍 우꼬 산에 오를 계획이었지만, 안개 때문에 본격적인 하이킹에 앞서 아침식사를 하기로 했다. 산중턱에 오르자 캠핑장이 보인다. 가이드가 둘둘 만 까만 양가죽을 툭툭 털어 펼치더니 아침 안개에 젖어 있는 나무 의자 위에 얹어 폭신하고 아늑한 자리를 마련

해 주고, 마른 장작을 모아 모닥불을 지핀다. 진한 커피를 끓이고, 넙적한 쇠판에 머핀을 데우는 솜씨가 날렵하다. 무려 7년간 콜리 국립공원의 안내를 해왔다니 숙련되었을 만도 하다. 그는 ‘숲 사람들(Forest Folks)’이라는 비영리 단체에 소속되어 있는데, 공원을 찾은 사람들에게 길을 안내하고, 시간이 날 때면 들로 숲으로 하이킹을 갈 수 있는 이 일이 더없이 즐겁다고 했다. 잠시 후 뜨겁게 데워진 커피를 쿡사(나무의 단단한 부분으로 만든 나무 컵)에 따라 부드럽고 달콤한 블루베리 머핀과 함께 건넸다. 채 걷히지 않은 안개 속에서 파닥이는 불꽃을 바라보고 있으려니 핀란드 인이 고독을 껴안게 된 것은-달리말해 핀란드에서 내면으로 파고드는 기질이 보편화된 것은- 필연인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한국의 한 배 반 크기지만, 핀란드의 인구는 겨우 500만 밖에 안 된다. “왜 이렇게 사람이 적어?” 물으니 가이드는 “핀란드는 살기 힘든 나라니까. 겨울이면 온도가 50도 아래로 내려가.”라고 대답한다. 영하 10도만 되도 집밖으로 나가지 못하는 평범한 한국인은 입을 쩍 벌리고 눈을 몇 번 껌뻑일 뿐이다. “그래서들 조용한 걸까? 에너지를 아끼려고.” 혼잣말이었는데 가이드는 그 말이 마음에 걸렸는지 한참 후에 한 마디 건넨다. “말은 없지만 가슴은 따뜻해.”

자연이 들려주는 한 편의 시

핀란드 동부. 카렐리아 지역에 위치한 콜리 국립공원은 세 개의 산으로 이뤄져 있다. 우꼬콜리(Ukko Koli), 아까콜리(Akka Koli), 피하콜리(Piha Koli)라 불리는 이 산들은 한 가족이다. 곰 세 마리 노래에 나오는 아빠 곰, 엄마 곰, 아이 곰처럼. 가장 높은 우꼬콜리는 347미터, 두 번 째인 아까콜리는 339미터로 다른 나라에선 명함도 못 내밀 높이지만 평야가 많은 핀란드에서 이곳은 신성한 곳으로 여겨져 왔다. 기독교가 전해지기 전, 자연은 숲의 정령 ‘타피아’가 지배하는 신비의 영역이었다. 사람들은 샘 앞에 서서 기도를 했고, 오래된 나무를 향해 머리를 조아렸으며, 소중하게 여기는 물건을 협곡 사이로 던져 넣으며 소원을 이뤄 달라 속삭이기도 했다. 오랫동안 경외의 대상이었던 숲은 지금도 여전히 그 태고의 신비를 간직하고 있다. 나뭇가지에 걸린 초록빛 ‘나하바(Nahava)’는 숲의 사리(舍利)다. 이 하늘하늘하고 투명한 생명체는

오염되지 않은 깨끗한 숲에서만 발견되기 때문에 청정도를 재는 척도가 되기도 한다. 높게 자란 나무는 겨울이면 2천 킬로그램에 이르는 눈의 무게를 견디기 위해 가지를 아래로 드리운다. 섭리를 거스르지 않으면서 저마다 살아남을 방법을 찾아내는 것이다. 숲과 호수 사이. 아름답지만 척박한 자연에서 사람들은 다양한 방법으로 생계를 꾸린다. 5월경에는 약 두 주간 자작나무에서 자일리톨을 추출하거나 네모지게 자른 목재를 호수와 강을 통해 운반하고, 여름은 라깔라(Lakkala) 농장에서 소와 양을 치며 보낸다. 콜리 지역은 ‘화전(火田)’으로도 유명하다. 6월 경. 건조한 날씨가 4~5일간 계속되면 숲에 불을 놓는데, 요즘에는 이색적인 볼거리를 찾아 이 기간동안 일부러 이곳을 찾아오는 사람들도 많단다.

산을 둘러싼 것은 수십 개의 크고 작은 호수들이다. 이 지방 사람들은 겨울이면 꽁꽁 얼어붙는 호수 위를 차로 건넌다. 비에르넨 호수에는 1,259여개의 작은 섬들이 있다. 서서히 안개가 물러나자 호수 위로 크고 작은 섬들이 하나 둘씩 제 모습을 드러낸다. “마술 같죠? 제가 제일 좋아하는 순간이에요.” 수십 번도 더 봤을 풍경일 텐데도 콜리 국립공원의 가이드는 눈을 빛내며 또 다시 감탄을 터뜨렸다.

칸텔레의 울음

콜리 국립공원 내의 소코 호텔에서 아마추어 칸텔레 연주자 라우안까르바 라까하니(Rauankarva Rakkahani) 씨를 만났다. 어둠이 잉크처럼 번져 높이 자란 나무들의 윤곽마저 어렴풋해지던 때, 그녀는 모닥불 앞에 앉아 핀란드의 옛 노래를 연주해주었다. 여리고 구슬픈 선율이었다.

“마텔리(Mateli Kuivalatar, 핀란드의 구전민요를 전승한 대표적인 가수)는 힘든 일생을 보냈어요. 마치 흑인들이 그들의 애환을 구성진 재즈선율에 담아냈던 것처럼, 그녀도 생의 고단함을 칸텔레 선율에 녹여냈죠. 저는 11살 때부터 동네 친구들과 함께 칸텔레 연주를 하기 시작했어요. 누가 시켜서 하거나 특별히 누군가에게 배운 것도 아니었어요. 마텔리의 곡을 연주하는 걸 좋아하는데, 그건 누구를 위해서도 아니에요. 내 자신이 즐겁기 때문이죠.”

다시, 그녀가 연주를 시작했다. 칸텔레의 음색은 더없

이 맑았고 그녀의 목소리는 계곡의 바람처럼 청아했지만, 음악을 듣고 있자니 믿을 수 없을 정도로 서글퍼졌다. 600년간 다른 나라의 지배를 받았던 핀란드 사람들의 지난한 삶이 살과 뼈를 관통해가던, 서늘한 밤이었다.

Tip 라우안까르바 씨가 추천한 칸텔레 음반

Timo Vaananen 'Voyage' Arja Kaustinen

칸텔레

핀란드의 전통 악기인 칸텔레는 원래 5현 악기지만, 더욱 다양한 소리를 내는 40현 칸텔레도 개발되었으며 최근에는 전자 칸텔레도 등장했다. 핀란드 민족 서사시 칼레발라의 주인공인 베이네 뫼이넨이 처음 만들었다고 전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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