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레이시아에서 어학연수를 하던 중 기분 전환 차 친구 제니와 함께 베트남 여행을 갔다. 짧은 일정 탓에 우리는 바로 하롱베이 크루즈 여행을 떠나기로 했다. 그곳에서 나는 150센티미터도 되지 않는 작은 체구로 20명이 넘는 여행객을 2박 3일 동안 인솔하던 현지가이드 레이첼을 만났다. 나는 크루즈 여행 마지막 날 그녀에게 하노이 시내관광 가이드를 부탁했고 마침 휴일이던 그녀는 기분 좋게 제안에 응해주었다. 비가 부슬부슬 내리던 이른 아침, 우린 미리 대기 중이던 택시를 타고 첫 번째 목적지에 도착해 이런 저런 담소를 나누며 투어를 즐겼다.
 사건은 그때 일어났다. 당연히 처음이용했던 그 택시로 이동할 거라 생각하고 카메라와 여권을 뺀 귀중품가방을 택시에 놓고 내렸던 것. 레이첼은 정확히 설명하지 못한 자신의 잘못이라며 백방으로 뛰었지만, 헛수고였다. 그녀는 내내 미안한 표정을 거두지 못했고, 결국 도저히 안 되겠다며 지갑에서 선불
로 받은 가이드비를 돌려주었다. "레이첼, 걱정 말아요. 내 잘못이 더 커요. 아까 잃어 버린 것들을 다시 사면 되요. 나는 즐겁게 오늘 하루를 보냈으면 좋겠어요." 평소 소지품을 잃어 버리는 일이 드물기 때문에, 처음엔 당혹스러운 표정을 감출 수가 없었으나 레이첼의 따뜻한 마음에 감동해 나는 금세 평정을 되찾을 수 있었다. 그렇게 하노이 시내투어를 무사히 마쳤고, 나는 종일 마음고생 했을 그녀를 위해 하노이에서 유명한 씨푸드레스토랑에서 멋진 저녁식사를 대접했고, 우리는 베트남전쟁, 그녀의 가족, 한국드라마 등을 주제로 즐거운 대화를 나누며 멋진 추억을 만들었다. 레이첼 덕분에 나에게 베트남은 오래오래 멋진 여행지로 남아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