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학창시절을 생각하면 잊지 못할 추억으로 꼽을 수 있는 몇 가지 사건들이 있다. 입시에 시달렸지만 즐거웠던 야간 자율학습과 보충수업 그리고, 일생에 단 한 번뿐인 수학여행. 그때는 뭐가 그리도 재미있었는지 가랑잎만 굴러도 꺄르르 웃음을 터뜨렸다. 경주로 수학여행을 떠나기 전날 밤 설렘에 잠도 이루지 못했다. 세월이 흘러 제각기 다른 모습으로 살아가고 있지만 다시 떠나는 수학여행이 잊고 있었던 여고시절의 감성을 일깨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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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추억의 발자취를 따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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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주에 도착하자마자 무조건 첨성대를 향해 달렸다. 아랫도리가 통통한 것이 어찌나 귀엽던지, 예쁜 몸매를 잘 유지하고 있는지 가장 먼저 확인하고 싶었다. "하, 다행이다." 첨성대가 어디 가는 것도 아닌데 그 자리에 잘 있어줘서 그냥 고마웠다. 자꾸 귀엽고 예쁘다는 표현하지만 첨성대는 우주를 담고 있다. 현존하는 천문대 중 가장 오래된 첨성대는 30센티미터 높이의 돌 362개로 27단을 쌓아 만들었다. 중간의 네모난 창까지 12단은 1년 12달을 의미하고, 위의 12단을 포함하면 24절기가 된다. 우물 정모양의 정상부를 합치면 별의 기본인 28수와 같은 수가 되고, 총 362개의 돌은 1년의 음력 날수인 362일을 의미한다. 우주의 원리를 담은 첨성대에서 천체를 관측했다니 그 치밀함에 감탄할 수밖에 없었다. |
| 첨성대를 한참 동안이나 바라보고 나서야 시선을 옆으로 돌렸다. 주변에서는 크고 작은 동산을 볼 수 있다. 그것이 동산이 아니라 무덤이라는 사실로 깜짝 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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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라게 했던 고분들은 특히 경주 시내 황남동 일대에 분포하고 있다. 대부분이 신라 초기의 무덤들로 일부가 대릉원 구역 안에 있다. 미추왕릉이라고 전해지는 왕릉을 비롯해 '고분계'의 인기 스타 황남대총과 천마총이 자리하고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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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리고 발걸음을 옮겨 연꽃이 무성하게 핀 연꽃 단지를 지나 직선과 곡선을 절묘하게 조화시킨 임해전지로 향했다. 통일신라시대의 별궁으로 알려진 임해전지에서는 안압지의 수면에 신라의 풍경이 비친다. 궁터로 알려진 것과 같이 경주의 다른 유적지와는 달리 살아 있는 사람이 실제 생활에서 사용했던 물건들이 많이 나왔다. 그중 재미있는 것이 14면체 주사위인 주령구다. 6면의 정사각형과 그 주위를 감싼 삼각형 8면으로 만들어진 주령구는 세련미와 우아함을 동시에 지닌 외형도 좋지만 그 안에 새겨진 내용이 더 재미있다. 일반적인 주사위처럼 숫자를 표시하는 것이 아니라 반주 없이 춤추기, 석잔 술 한번에 마시기, 시 한 수 읊기, 간지러움 태워도 참기 등 오늘날 술자리에서도 적용할만한 벌칙 내용이 적혀 있다. 연못 위에 배를 띄우기도 하고 주변의 동산에서 주사위를 던지며 즐거운 시간을 보냈던 신라의 흥취가 눈에 선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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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침묵 속에서도 전해지는 아우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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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이 종교에 의지하는 것은 훗날 죽어서도 안락하게 보내고 싶은 욕심에 기인한다. 어느 종교를 막론하고 심신의 괴로움 없이 즐겁고 행복하기를 바라는 마음이 천국과 극락을 만들어냈다. 불교가 번성했던 신라시대에는 부처가 있는 국토로 가고자 하는 불국토 사상이 지배적이었다. 불국사를 세운 것도 현생에 존재하는 극락 즉, 부처의 세계를 만든 것이다. 토함산 산길을 따라 불국사로 가는 길, 벚꽃 터널을 통과하는 동안 푸른 자연과 나무 사이로 비치는 햇살이 마음을 편안하게 해주었다. 그리고 도착한 불국사 입구. 일주문을 통과했는데도 아직은 고요한 산사에 들어섰다는 생각이 들지 않는다. 호젓한 산사의 분위기를 느끼기 위해서는 경내로 조금 더 들어가야 한다. 아치형 다리와 주변에 어우러진 나무가 하루하루 다른 분위기를 연출하는 해탈교 앞에 서서 연못 위에 그려진 예쁜 그림을 보고 멍하니 서 있다 정신을 차려보니 어느새 다른 세상에 올라선 기분이 든다. 속세의 때를 벗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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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는다는 상징적 의미의 연못을 건너는 동안 우리는 부처를 만나러 가는 과정 즉, 중생과 불도의 세계를 연결하는 다리를 상징하는 세 개의 무지개를 건너게 된다. 아직 불국사의 입구에 머물고 있는데도 감탄사가 연발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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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감정을 추스르고 청운교, 백운교를 지나-물론 절대로 밟을 수 없으므로 반드시 돌아서 가야한다. 대웅전 앞 마당으로 가니 석가탑과 다보탑도 그 모습 그대로 잘 있다. 마주보고 있는 두 개의 탑에 안부 인사를 하고 불국사의 새로운 인기 스타로 떠오르고 있는 극락전 현판 뒤에 숨어 있는 복돼지를 확인했다. 석굴암으로 올라가는 길을 가볍게 걷는 동안 고요한 분위기에 들뜬 마음을 잠시 안정시키고 석실 안으로 들어서는 순간 신비로운 분위기에 매료되고 말았다. 유리로 막혀 있었지만 거대한 본존불의 아우라는 그대로 느낄 수 있었다. 석굴암에 들어섰을 때 숨소리를 내는 것조차 불경스럽게 느껴질 정도로 적막한 신비로 가득 차 있다. 여기에 예불을 드리기 위해 올라온 스님 한 분이 본존불 앞에 가만히 앉아 예불도 드리지 않고 침묵을 지키고 있어 더욱 그런 느낌을 받았던 것 같다. 가만히 앉아서 하염없이 본존불만 바라보고 있던 그 스님은 무슨 기도를 했을까. 탄성도 거부하고 침묵으로 마음을 전하는 석굴암 본존불은 가만히 내려다볼 뿐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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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바다의 용이 되어 나라를 지키리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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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주를 찾으면서 설레었던 건 수많은 유적과의 만남도 있었지만 바다를 즐길 수 있다는 기쁨도 한몫했다. 구불구불한 산길을 넘어서자 수없이 부서지는 바다 위의 햇살이 눈부시게 반짝거렸다. 해안을 끼고 달리다 보면 세계 유일의 해중릉이 눈에 들어온다. 대왕암이라고도 불리는 문무대왕릉은 백제와 고구려를 평정하고 삼국통일을 이룬 문무왕의 유언에 따라 만들어진 것이다. |
| "내가 죽은 뒤에 호국룡이 되어 불법을 만들고 나라를 수호하겠다." 이 얼마나 감동적인 유언인가. 천하를 호령했던 왕이 왕릉의 덧없음을 논했고, 동해에 묻혀 상상의 동물인 용이 되겠다고 했기에 더욱 신비롭게 느껴진다. |
| 바다의 용이 되어 나라를 지키겠다던 문무왕의 뜻을 받든 신문왕은 아버지의 은혜에 감사한다는 의미로 절로 세우고 감은사라 명명했건만, 지금은 절터와 두 개의 석탑만이 쓸쓸히 자리를 지키고 있다. 불국사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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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 보았던 석가탑과 우아하면서도 기품 있는 감은사지 3층 석탑에 시선을 빼앗겨 한참 동안이나 멍하니 탑을 바라보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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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붕 없는 박물관의 새 가족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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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붕 없는 박물관' 이라 불리는 경주에 새로운 랜드마크가 탄생했다. 경주세계문화 엑스포공원에 위치한 경주타워가 그것. 신라 왕실의 권위와 호국을 상징하는 세 가지 보물 즉, 신라 삼보 중 하나인 황룡사 9층 목탑을 음각한 철골 구조의 유리 타워다. 황룡사 9층 목탑의 높이가 225척이라고 전하는데 이를 현대적으로 환산해 82미터 높이의 실제 크기로 음각했다. 밤이 되면 웅장한 경주타워에 레이저, 조명 및 특수 음향이 어우러진 문라이트 레이저 쇼가 펼쳐진다 '신라의 달밤'을 수놓는다. 경주에서 제일 높은 건물인 경주타워의 전망대에 오르면 신라를 한눈에 내려다 볼 수 있다. 엑스포공원 내에 조성된 왕경 숲에 안압지와 포석정, 대릉원 등이 들어와 있으니 말이다. 실제와 똑같은 모양의 축소판 안압지와 포석정 모양의 춤추는 분수가 신라왕국의 여행객에게 휴식을 제공한다. |
| 엑스포공원에서 길 하나만 건너면 신라시대로 시간을 껑충 뛰어 넘은 것 같은 신라밀레니엄 파크가 나온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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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 이곳은 다양한 공연과 신라의 문화를 동시에 체험할 수 있는 역사 테마 파크로 각종 공연만 보고 있어도 시간 가는 줄 모른다. 특히 신라시대에 무와 도를 연마하던 화랑도의 무예를 연출하는 '화랑의 도' 공연이 시선을 끈다. 꽃 같은 청년들의 집단이었던 화랑들이 기품 있게 등장해 말 위에서 자세를 바꿔가며 무예를 선보이면 관중석에서는 박수와 탄성이 쏟아져 나온다. 말을 타면서 던지는 검과 창 그리고, 과녁을 향해 날아가는 활은 백발백중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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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경주로 리마인딩 수학여행을 떠나기로 했을 때 오랜만에 떠나는 여행에 마냥 신나기만 했다. 그런데 경주가 준 감동 덕분인지 지금 내게 다시 가고 싶은 여행지가 어디냐 묻는다면 거침없이 경주를 꼽을 것이다. 하나하나의 유적을 바라보며 숨이 멎을 정도로 감격했고, 돌아와서는 그 감동의 여운이 가슴을 두근거리게 한다. 아마도 오늘 밤에는 꿈에서 경주를 만나지 않을까 싶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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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ravel Inf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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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가는 길 _경주는 경부고속도로 선상에 위치하고 있지만 서울에서 이동할 경우 고속도로를 갈아타는 것이 조금 더 빠르다. 경부고속도로에서 출발했다면 신갈IC, 중부고속도로에서 시작했다면 호법IC에서 영동고속도로로 올라가 여주IC에서 중부내륙고속도로로 갈아 탄다. 중부내륙고속도로와 경부고속도로가 만나는 김천JCT에서 경부고속도로 대구, 구미 방향으로 진입해 경주IC로 나오면 바로 경주에 도착한다. |
| 먹을 곳 _경주를 대표하는 먹거리로는 한정식, 순두부, 쌈밥 등이 있는데, 대릉원 근처에 특히 식당이 밀집해 있다. 첨성대 맞은편의 전주청국장비빔밥(054-744-0036)에서는 전주에서 공수한 청국장과 불고기를 곁들이는 푸짐한 쌈밥을 즐길 수 있다. 한정식은 경주 최부자집으로 알려진 요석궁(054-741-3348)이 일품이다. 이곳 음식의 비밀은 12대 400년 동안 내려온 최부자 집 장맛에 있다. 짜지 않으면서도 깔끔한 맛이 정갈한 반찬 맛의 비밀이다. 300년 된 전통 한옥에서 궁중식으로 나오는 한정식을 즐기고 싶다면 반드시 예약을 해야 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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