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선함, 불을 만나다 Take it, Fire!

9월까지 극성을 부리던 더위가 드디어 가시고, 아침저녁으로 부는 선선한 바람에 가을이 실려 있다. 극성스러운 무더위로 잃었던 입맛이 돌아오는 걸 보니 역시 가을은 식욕의 계절인 듯하다. 하늘은 높고, 말은 살찌고, 나 역시 배고픈 가을을 맞아 '불 맛'을 찾아가보기로 마음먹었다.

일본요리의 특징 중 하나는 신선한 재료의 맛을 고스란히 살리는 것이다. 대표적인 예로 우리에게는 친숙한 스시나 사시미를 들 수 있고, 그보다는 조금 덜 유명한 데판야끼도 있다. 데판야키는 철판 위에 신선한 재료를 얹어 셰프가 눈앞에서 조리해주주는 음식으로, 철판 위에서 화려한 불 쇼를 볼 수 있다. 영화나 드라마에도 데판야키 레스토랑이 종종 등장하는데, 눈으로도 그 맛을 즐길 수 있기 때문이리라.
 방배동 서래마을에도 데판야키를 맛볼 수 있는 공간이 생겼다. 최고급 고기와 신선한 식재료를 셰프가 눈앞에서 조리하여 서브해주는 더 컷이다. 마켓오, 느리게 걷기, 그릴 H등의 레스토랑에서 건강한 음식을 선보인 푸드컨설턴트 노희영의 새로운 프로젝트인 더 컷은 재료 그대로의 맛과 영양, 식감을 살리기 위해 노력했다. 가장 중점을 둔 것은 재료의 신선함으로, 모두 신선한 유기농 제품과 산지에서 직송한 재료들을 채택했다. 특히 특별 계약을 하여 공급받는 이곳의 쇠고기는 발효 매실을 먹고 자라 지방이 적고 육질이 연한데, 매실 속 효소가 한우의 면역성을 증강시켜 담백하고 맛이 좋은 A++등급 고기다. 이 고기와 몸에 좋은 유기농 올리브유로 조리하는 데판야키와 이곳의 자랑인 꽃등심이 맛있을 수밖에 없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또한, 고기를 싸먹기 위해 함께 나오는 명이나물(산마늘 잎)은 울릉도 특산물로, 콜레스테롤을 감소시켜주는 효과가 있다.
 쾌적하게 즐길 수 있도록 세심하게 배려한 공간 사용도 마음에 든다. 한국식 구이문화와 일본식 데판야키 문화가 잘 조화된 이곳은 외국인들의 왕래가 많은 서래마을의 특성에 맞추어 현대적인 감각을 살렸다. 파크, 쁘띠 시즌스, 호면당 등 유명 레스토랑을 디자인한 것으로도 유명한 인테리어 디자이너 민경식의 모던하면서도 따뜻한 느낌이 드는 오렌지색의 인테리어에 아티스트 이다가 맡은 사군자 테마의 벽이 전통적인 감각을 가미하여 더욱 편안한 느낌을 준다. 게다가 이곳의 테이블은 개당 500만원 가량의 주문 제품으로, 테이블에서 고기를 구워먹어도 냄새나 연기가 테이블 안으로 빨려 들어가도록 설계되어 옷에 냄새가 배거나 먹기도 전에 물리지 않도록 배려했다. 혹시 좀 더 개인적으로 아늑한 시간을 보낼 사람들을 위해서는 데판야키용 철판 3개, 일반 테이블 7개의 별실이 마련되어 있으니 그곳을 이용하는 것도 좋을 듯 하다.
 셰프가 바로 앞에서 재료를 구워주는 데판야키는 각종 야채와 고기, 해물까지 내가 원하는 것을 골라서 즐길 수 있다. 현란한 셰프의 손놀림을 바라보고 있는데 어느새 엄청난 크기의 불이 눈앞에서 너울거린다. 불을 붙이는 것은 화려한 눈요기의 의미도 있지만 해물이나 고기의 잡냄새를 잡아주는 효과도 있다고 한다. 갓 구워낸 따뜻한 재료를 소스 없이 입 안에 넣고 음미한다. 여러 가지 소스가 있고, 조리 방식도 다양하지만 아무 가미없는 맛이 진짜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실제로 이곳의 음식이나 밑반찬은 조금 심심하게 느껴질 수도 있는데, 화학 조미료를 전혀 사용하지 않아서다. 그러나 심심한 느낌도 잠시, 먹다보면 더욱 깊은 맛을 느낄 수 있으며 끝맛도 깔끔하다.
 이 맛있는 식사가 마무리로 특별히 주문해서 공수한 팔라조(pallazo, Gelato Di Riso)를 추천한다. 쌀이 든 이탈리아식의 아이스크림으로, 위에 미숫가루를 얹어 더욱 고소하다. 달지 않고 쌀이 씹히는 식감이 좋아 단 음식은 딱 질색인 사람도 맛있게 먹을 수 있을 것 같다.
 가정집에 초대받은 듯, 정성이 깃든 맛있는 음식을 먹고 나니 몸이 한결 건강해지는 기분이다. 음식을 만드는 사람의 정성과 신선한 재료, 불이 어우러진 하모니 덕분에 다가올 겨울 역시 든든하게 보낼 수 있을 것 같은 예감이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