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은 넓고 파리는 좁다

지난여름, 보름 동안의 유럽여행 도중 여러 가지 에피소드가 많았지만, 그중 으뜸은 프랑스 파리의 몽소 공원에서 일어났다. 지상낙원이 따로 없다. 싶을 만큼 예쁜 공원에 앉아 잠시 쉬고 있는데 저쪽 벤치에서 한 동양여자가 짐꾸러미 몇 개를 끼고 앉아 게걸스레 바게트를 먹고 있는 모습이 보였다. 한눈에 노숙자 같았는데, 그 여자의 유난히 네모난 얼굴이 굉장히 낯익었다. ‘누구더라?’ 옆에 있던 언니에게 물어보니, 자기는 전혀 모르는 사람이긴 하지만, 한국인인 건 분명하다고 했다. 궁금증은 더욱 증폭되어 어느새 나의 발걸음은 그 여자에게로 향했다. “실례지만, 한국분이세요?” “예.” 그 여자가 고개를 들며 대답하는 순간, 흐릿하던 기억이 확실히 살아났다. 7년 전 수영장을 드나들며 알고 지냈던 여자, 뿐만 아니라 내 돈 8만원을 떼어먹고 사라졌던 여자, 라는 생각이 뇌리를 스치는 순간, 그 여자도 나와 같은 생각이 들었는지 서둘러 짐을 챙겨 그곳을 떠나려했다. “저기, 나 기억해?” 내가 다시 말을 건네자, 아무 말 없이 고개를 숙이고 있던 그녀가 갑자기 대성통곡을 하기 시작했다. “미안해! 돈도 못 갚고 갑자기 사라져버려서. 흑흑!” 첫마디가 ‘돈떼먹은 이야기’라니! 괜히 아는 체 했나? 후회와 혼란이 밀려왔고, 미안하기까지 했다. 낯익은 사람이라 반가움에 아는 체한 것뿐이었는데, 난 그녀와 나란히 벤치에 앉아 지난 이야기를 주고받았다. 그녀는 몇 해 전 프랑스인과 국제결혼을 해 그동안 프랑스에서 살았는데, 얼마 전 심하게 부부싸움을 한 후 가출을 했다고 설명했다. 가진 돈이 없어 공원을 전전하며 노숙하고 있다는 이야기를 듣자 한숨이 절로 나왔다. 결국 우리가 묵고 있던 호텔로 그녀를 데려와 함께 식사를 하고, 다음 날 프랑스를 떠나면서가지고 있던 약간의 유로를 그녀에게 쥐어주었다. 그녀는 다시 통곡을 했다. 가끔 그녀가 잘 지내고 있는지 궁금하다. 다시 만나면 환환 웃음을 짓는 모습을 보고 싶다.

(김옥희 대전시 중구 태평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