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Journey to Feel Autumn 가을이 손짓하는 그곳으로

여행은 늘 즐겁다. 좋은 사람과 함께라면 더욱 그렇다. 여기에 높고 푸른 하늘과 살랑이는 바람, 웅장한 산을 알록달록 물들인 단풍이 손짓하는 가을날의 여행길은 다른 때보다 두 배쯤 더 설렌다. 하늘을 빨갛게 물들이는 낙조, 제철을 맞은 해산물이 풍성한 충남 보령으로 가을을 찾아 떠났다.

 성주산의 비경 아래 자리한 옛 절터

서해안 고속도로에서 대천 IC를 빠져나와 보령시로 향한다. 보령 여행의 첫 번째 코스는 성주리 성주산에 있는 통일신라시대의 절터인 성주사지(聖住寺址)다. 성주터널을 지나 성주천을 따라 조금 올라가면 잔디로 뒤덮인 드넓은 공터를 만날 수 있는데 얼핏 보면 볼품없는 빈터라고 여길지 모르나 천천히 둘러보면 산수가 아름답기로 이름난 명산 성주산에 둘러싸인 채 앞으로는 물줄기가 흐르고 있어 옛 가람의 고즈넉함을 느낄 수 있는 곳이다.
성주사지는 통일신라 말기 구산선문의 하나인 성주산문의 중심 사찰이었던 성주사(聖住寺)가 있던 곳이다. 원래 이곳에는 백제 법왕 때 전쟁에서 죽은 영혼을 달래기 위해 지은 ‘오합사(烏合寺)’라는 절이 있었는데 통일신라 문성왕 때 당나라에서 돌아온 명승 낭혜화상(무염국사)이 이곳을 크게 중창하면서 ‘성인이 거하는 절’이라는 뜻의 성주사로 불리게 되었다고 한다. 낭혜화상이 이곳의 주지로 있을 당시 성주사는 불전 80칸, 수각 7칸, 고사 50여 칸 등 천여 칸에, 거주하는 스님만 2천여 명에 달할 만큼 큰 규모였다고. 지금은 4기의 석탑과 석등, 석계단, 비각 속의 탑비만이 성주사의 유일한 흔적이지만 이 모든 것이 보물과 문화재로 지정되어 있을 뿐 아니라 30만 제곱미터에 달하는 거대한 절터와 두 차례의 발굴조사로 드러난 금당지, 회랑지, 중문지 등의 건물터를 나타내는 주춧돌이 과거 번창했던 사찰의 규모를 짐작게 한다.
폐사지에 들어서면 제일 먼저 유형문화재 33호인 석등과 9세기 후반에 만들어진 것으로 추정되는 보물 19호 5층석탑이 눈에 들어온다. 그 뒤로는 금당인 대웅전에 오르는 석계단(문화재자료 140호)이 있고 석계단을 오르면 뒤쪽으로 3기의 석탑이 나란히 서 있는 모습이 시선을 끈다. 서3층석탑(보물 47호), 중앙3층석탑(보물 20호), 동3층석탑(충청남도 유형문화재 26호)이 그것으로, 오늘날까지도 석탑 몸돌에 새겨진 그림이 선명하게 남아 있는 것을 볼 수 있는데 동3층석탑은 다른 탑과 달리 흩어져 있던 조각들을 모아 복원한 것이어서 보물로 지정받지 못했다. 석탑 오른쪽에는 심하게 훼손된 귀와 코를 시멘트로 때운 석불입상이 서 있다. 전해지는 이야기에 따르면 이 석불입상은 무당이 보관을 하고 있었는데 한쪽 귀는 발굴 당시에, 코는 긁어먹으면 아들을 낳는다는 미신 때문에 심하게 마모되어 사람들이 시멘트로 때웠다고 한다. 시멘트로 때우지만 않았어도 보물로 지정받을만한 온화한 미소를 지닌 유적이라는 문화유적해설사의 설명에 안타까움이 더해진다.
성주사지의 하이라이트는 무염국사를 기리기 위해 세워진 국보 8호 낭혜화상백월보광탑비(大郎慧和尙白月寶光塔碑)다. 지금은 전각 안에 보관되어 있지만 천 년이 넘는 세월 동안 아무런 보호 없이 비바람 속에 서 있었음에도 몸돌을 받치고 있는 지대석 일부가 손상된 것을 제외하고는 4.55미터의 거대한 흑대리석 비신과 머릿돌, 비신에 새겨진 5천여 개의 글자까지도 판독이 가능할 정도로 보존상태가 양호하다. 비문에는 무염국사의 생애와 성주사 개창 내력, 신라의 사상과 각종 제도 등에 관한 내용이 적혀 있는데 신라의 대문장가 고운 최치원 선생이 글을 짓고 그의 조카 최 인연이 글씨를 썼다고 한다.
성주사지에 갔다면 이곳을 둘러싼 성주산 자연휴양림에 들러보자. 보령을 상징하는 명산으로 알려진 성주산은 하늘이 안보일 정도로 숲이 울창한 곳으로 풍부한 피톤치드와 맑은 공기가 도심에서 찌든 몸을 한결 상쾌하게 한다. 화장골 계곡과 심연동 계곡의 두 코스가 있는데 양쪽 모두 산림욕장과 정상으로 오르는 등산코스가 마련되어 있으며 잔디광장, 체력단련장, 야영장과 통나무 방갈로도 마련되어 있다. 여유가 있다면 천천히 산책하는 기분으로 등산로를 따라 올라보자. 정상에서 내려다보이는 보령시의 풍광도 그렇지만 정상까지 가는 동안 푸릇한 숲이 전해주는 상쾌함과 나무 사이로 불어오는 바람, 곳곳에서 들려오는 새소리 등 대자연의 정취에 일상의 스트레스가 씻은 듯이 사라진다.

 이제는 사라진 석탄산업의 모든 것

겨울바람에 꽁꽁 언 몸을 연탄불 땐 아랫목에서 녹이던 가족들, 석탄 난로 위에 도시락을 데워 먹으며 이야기꽃을 피운 아이들, 다 타고난 연탄을 눈밭에 굴려 눈사람 만들던 동네 꼬마들. 아득한 옛 이야기 같지만 불과 얼마 전까지만 해도 겨울이면 쉽게 볼 수 있는 풍경이었다. 우리네 서민들의 생활을 따뜻하게 해주던 석탄, 그 아련한 추억을 떠올릴 수 있는 곳이 있으니 바로 우리나라 최초의 석탄박물관인 보령 석탄박물관이다.
보통 탄광 하면 강원도를 떠올리지만 보령은 1930년대부터 개발되기 시작해 1949년 문을 연 영보탄광을 시작으로 전성기인 1980년대에는 총 83개의 탄광이 있을 만큼 서해안 최대 탄광지로 손꼽히던 곳이다. 차령산맥의 산세를 따라 성주산을 중심으로 곳곳에서 채탄작업이 이루어져 일대 강물이 온통 검은빛으로 변할 만큼 성황이 이루었으나 석탄산업이 사양화되면서 1989년부터 폐광이 시작됐고 1994년 심원탄광을 마지막으로 보령의 탄광은 완전히 폐광되었다. 보령 석탄박물관은 이런 석탄산업의 모든 것을 일목요연하게 전시해 둔 곳이다.
석탄박물관은 내부전시관과 야외전시장으로 구분되어 있다. 내부전시관 1층에는 석탄의 기원과 생성과정, 석탄 산업사, 보령 탄광의 현황, 연탄 만드는 과정, 당시 석탄 채굴에 사용했던 공구, 갱도 모형 등이 차례로 전시되어 있고 2층의 탄광생활관에서는 광산사택 모형과 사진, 자료화면을 통해 탄광촌의 독특한 생활상과 광부들의 삶을 보여준다. 박물관을 모두 둘러보고 나면 이제 갱도 체험을 할 차례다. 생활관 앞의 엘리베이터를 타면 되는데 이 엘리베이터는 수갱효과를 나타내는 것으로 스위치를 누르면 불이 꺼지고 엘리베이터의 숫자가 1부터 400까지 빠르게 바뀌면서 1분간 지하 400미터의 채굴지로 내려가는 듯한 기분을 느끼게 한다. 이렇게 갱도 안으로 들어가면 망치로 정을 때려서 구멍을 뚫고 그 속에 폭약을 넣어 발파하는 인력천공, 굴진막장에서 착암기로 구멍을 뚫은 기계천공, 인력운반, 구조대원 등 갱도 내의 모습을 실물크기의 모형과 특수 음향효과로 표현해 놓고 있어 어두운 그곳에서 온종일 위험과 마주하고 일했을 그들의 고단한 삶을 떠올리게 한다. 다시 엘리베이터를 타고 야외 전시장으로 석탄 운반과 관련된 인차와 광차, 압축기 등 탄광에서 이용했던 대형장비를 살펴볼 수 있다.

 활기 넘치는 항구의 풍경

저녁 시간이 되려면 조금 남았지만 부실하게 먹은 점심 탓인지 배가 출출해져 온다. 한여름에 북적이던 사람들이 빠져나간 해수욕장은 어쩐지 쓸쓸해 보이기에 배고픔도 달랠 겸 대천해수욕장을 지나 대천항으로 발길을 돌렸다. 부두를 가득 메운 어선과 어부들, 어판장에서 손님을 부르는 상인들 사이로 커다란 카메라를 들고 들어서니 “어디서 온겨?”, “우리 생선도 사진 좀 찍어줘”하면서 여기저기서 큼지막한 게와 생선을 들어 올리며 호탕하게 웃는다. 또 한쪽에서는 싱싱한 해산물을 값싸게 사려는 관광객과 흥정하는 상인들의 정겨운 충청도 사투리가 들려오고 또 다른 쪽에서는 횟감을 떠서 부두에 앉아 소주 한잔과 함께 맛보기에 한창이다. 항구 옆에 어시장 건물이 들어서서 재래시장의 규모가 많이 줄어들긴 했지만 떠들썩한 소리가 삶의 활기를 전해주는 항구의 풍경만큼은 여전하다. 부두에서 방파제로 향하는 길에 몰려 있는 횟집을 지나면 방파제 끝 빨간 등대가 눈에 띈다. 등대까지 가는 길에 공원을 조성해 놓아 바닷바람을 맞으며 거닐기에 좋은데 고기잡이 한창인 낚시꾼을 지나 등대 앞에 서면 바다 위로 물살을 가르며 어디론가 오가는 고기잡이 배와 주변 섬으로 떠나는 여행객을 태운 유람선, 사람들로 북적이는 항구의 전경이 한눈에 들어온다.
가을엔 역시 전어다. 어시장에서는 양념값만 내면 회를 떠주는데 바다 앞에 설치된 천막에서 바다를 바라보며 맛보는 운치도 물론이지만 제철을 맞은 가을 전어의 고소함에 젓가락을 든 손이 멈출 줄을 모른다. 매운탕에 밥 한 공기까지 뚝딱 해치운 후 남포방조제를 따라 차를 달린다. 대천해수욕장에서 시작해 남포방조제를 따라 무창포해수욕장까지 가는 길은 보령에서 손꼽히는 드라이브 코스. 시원한 바닷바람을 맞으며 달리다 보니 어느새 하루해도 저물어 가고 있었다. 구름이 많아 온 하늘을 물들이는 노을은 아니지만 구름 사이로 잠깐씩 나타났다 사라지는 붉은 태양은 서해의 낭만을, 가을 여행길의 추억을 가슴속에 아로새겨 주고 있었다.

 TRAVEL INFO
축제 보령시는 다양한 축제로 유명하다. 가장 잘 알려진 것은 문화관광부 지정 최우수 축제로 선정된 ‘보령머드축제’. 피부미용에 좋다는 개펄흙에서 뒹굴며 더위를 잊을 수 있는 자리로 매년 7월에 대천 해수욕장에서 열린다. 축제 기간이 아니더라도 머드체험관에서 사우나와 마사지로 보령 머드를 즐길 수 있다. 사계절 먹거리 축제 또한 빠트릴 수 없다. 3월에는 무창포 쭈꾸미 축제, 4월에는 오천항 키조개 축제, 9월에는 무창포 대하·전어 축제, 12월에는 천북면굴축제가 열려 제철에 맞는 별미를 맛볼 수 있다. 올해 무창포 대하·전어 축제는 10월 5일까지 열린다.
문의 보령시청 문화관광과 041-930-3541~2

먹을 곳 대천항 어시장이나 무창포 등에는 횟집이 즐비하다. 무창포 해수욕장 내에 있는 ‘처음처럼 아구랑 꽃게랑’은 무창포 대형 수산업소인 길은수산 직영 회센터로 제철에 맞는 싱싱한 해산물을 맛볼 수 있다. 꽃게무침과 꽃게정식은 1인분에 2만 원, 전어구이와 전어회는 1킬로그램에 3만 원이며 우럭과 광어 등 각종 활어회는 6~7만 원 선이다.
문의 041-935-0023 www.kileun.com

잠잘 곳 무창포 해수욕장 바로 앞에 자리한 비체팰리스는 용평리조트에서 7월 오픈한 리조트로 아름다운 무창포의 풍경에 용평리조트의 경험과 노하우가 더해져 편안한 휴식을 취할 수 있는 곳이다. 건물은 지하 1층, 지상 13층의 규모로 총 236개의 객실이 마련되어 있는데 건물이 Y자 형태의 구조로 지어져 전 객실 어디에서나 바다를 한눈에 조망할 수 있다. 또한 7백 명을 수용할 수 있는 대연회장과 소연회장, 다양한 규모의 세미나실과 레스토랑을 비롯해 스파테라피를 갖춘 워터파크, 바닷바람을 맞으며 즐기는 옥외 이벤트 풀, 모래찜질, 일광코스 등 다양한 부대시설이 있어 휴양객은 물론 비즈니스 관광객까지 편리하게 이용할 수 있다. 이곳의 가장 큰 매력은 무창포 해수욕장 바로 앞에 자리하고 있어 현관을 나서면 바로 백사장과 연결된다는 점. 무창포는 매월 음력 보름날과 그믐날을 전후해 해변에서부터 석대도까지 1.5킬로미터에 이르는 바닷길이 열리는 한국판 ‘모세의 기적’으로 유명한 곳으로 신비한 바닷길 체험과 함께 조게, 소라, 게 등을 건져 올리는 개펄체험을 할 수 있다.
주소 충청남도 보령시 웅천읍 독산리 784-1번지
문의 041-939-5757, 02-3272-3399(서울 예약사무실) www.beachepalace.co.k