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의 향기를 따라서 GYUNGGI

가을날, 황금 물결치는 들녘을 바라보면, 그 풍성함에 대비되는 내면의 공허함이 느껴진다. 이 텅 빈 마음을 무언가로 채우고 싶다면……. 먹을 것으로 채우느냐, 지적 감성으로 채우느냐. 그것이 문제다.

무라카미 하루키의 소설 ‘양을 쫓는 모험’을 보면 낯선 시골이 등장한다. 이국적으로 묘사되는 초원 속에 덩그러니 놓인 집 한 채가 바로 그 낯설음의 원인이다. 파주 북 시티의 첫인상도 이와 다르지 않다. 48만 평의 넓은 교하 부지에 언뜻 창고 같은 건물들이 줄지어 들어서 있는 것을 보면 낯설음을 넘어선 공허함마저 느껴진다. 그래서일까. 많은 사람이 계획이나 정보 없이 파주 출판도시를 찾았다가 별로 볼 것도 없네……. 하며 주변 헤이리나 영어마을로 발길을 돌리곤 한다. 하지만, 무라카미 소설 속 건물의 상징과 내부의 디테일을 읽고 난 후 새롭게 고개를 끄덕이는 것과 마찬가지로 북 시티의 내부를 자세히 들여다보면 그 다양한 즐길 거리에 놀라게 될 것이다. 파주 북 시티는 출판인들이 마흔 명의 유명 건축가와 함께 계획적으로 설계한 도시다. 우리나라 어느 곳에서나 목격되는 불균형한 도로 체계, 너저분한 간판, 제 각각인 건물들을 보면서 개인적인 욕구의 충족이 이 같은 현상의 원인이라고 판단하여, 공동성을 실현하고자 북 시티를 건설하게 되었다고 한다. 이렇게 세워진 유명 건축가들의 작품들은 주로 출판사나 인쇄소의 용도로 쓰이고 있다.
파주에 들어서면 우선 아시아 출판문화 정보 센터에 들러야 한다. 이곳은 레스토랑, 게스트하우스, 헌 책방, 카페, 갤러리 등이 모여 있는 쉼터로, 1층에 비치되어있는 안내책자를 통해 도시에 대한 전반적인 정보를 얻을 수 있다. 찾아갈 곳들은 많지만 특히 보물섬이라는 책방을 추천한다. 이곳은 아름다운 가게에서 운영하는 곳으로 기증받은 중고 서적만을 전문적으로 취급하고 있다. 예전부터 읽고 싶었던 책이나 관심 있는 분야에 대한 고서적을 발견했을 때의 심정은 마치 구제 숍에서 나에게 딱 맞는 빈티지 신발을 발견했을 때와 같은 기쁨일 것이다. 싼 값에 많은 책을 살 수 있는 것도 매력적이지만 어렸을 때 읽었던 책이나 집 한구석에 쌓아둔 읽지 않는 책을 기증하면 포인트로 전환해 다음번 책을 구입할 때 요긴하게 사용할 수도 있다. 하나 더. 만약 구입하고 싶은 책의 출판사가 북 시티 내에 있다면 사전 문의를 통해 5~35퍼센트 정도 할인된 가격으로 구입할 수도 있다.
이렇게 소기의 목적(?)을 달성했다면 근처에 있는 습지대나 심학산 산책로의 벤치에 앉아 책을 읽으며 가을을 마음껏 느껴보자. 혹은 한적한 북 시티의 거리를 산책하거나 드라이브하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가끔 광고나 드라마의 촬영 현장과 마주칠 수도 있는데, 이 역시  색다른 즐거움이 될 것이다. 그밖에도 즐길 거리는 다양하다. 근처에 있는 아울렛에서 쇼핑을 할 수도 있고, 스파를 즐기거나 한적한 영화관에서 느긋하게 영화를 볼 수도 있다. 선택은 자유다.

How to get there
대중교통 합정역 2번 출구에서 200, 2200번 버스 이용 파주출판단지 하차
승용차 자유로 타고 파주, 문산 방면 이 산포 IC기점 지나(약 7킬로미터) 우측 파주출판단지로 진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