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드먼튼에서 만나는 아트 스트리트 What Happend at 124th Street

5층도 넘는 건물이건, 책상 구석에서 보얗게 먼지를 쓴 검정 펜이건 관심을 기울이지 않으면 있는 듯 없는 듯 예사로 보고 흘리기가 일쑤다. 필요하면 눈에 불을 켜고 찾게 되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라면 자연스레 관심 밖 영역으로 넘어갈 수밖에. 한 집 건너 갤러리가 들어섰던 에드먼튼에서의 124번가 역시 그와 비슷했다. 엄연히 그곳에 있었지만 있는 듯 없는 듯 예사로 지나쳤던 그곳이 갤러리 거리란 것을 알게 된다면, 그 후 124번가를 향한 눈빛은 달라질까?

  124번가에서의 갤러리 워크

취재 당일, 124번가에 도착하고서야 그 이유를 알았다. 에드먼튼에 머무는 동안 100번도 넘게 그 길을 지나다녔으면서도, 갤러리가 모여 있는 거리란 것을 왜 모르고 있었던 건지. 우리나라의 갤러리들처럼 한 벽면 전체를 통유리로 장식해 내부가 훤히 들여다보이는 구조라던가, 멀리서도 눈에 띌 만큼 큰 간판을 달든가 하는 것과는 거리가 멀다. 그저 외부 인테리어에 정성을 기울인 가정집 같거나, 이런저런 소품을 파는 숍처럼 평범한 외관을 하고 있었으니 유심히 살피지 않았다면 알아차리기 어려운 것이 당연했겠다.
에드먼튼에는 60개 이상의 갤러리가 있다. 앨버타 주의회 건물과 역사박물관, 쇼핑센터인 웨스트 에드먼튼 몰 등이 도시의 랜드마크 임을 생각하면 많은 수치다. 도시 곳곳에 갤러리가 흩어져 있고 그중 많은 수가 에드먼튼을 남북으로 가로지르는 124번가에 모여 있는데, 그중에서도 7개의 갤러리가 에드먼튼과 앨버타 지역에 기반을 둔 로컬 아티스트와 현지의 예술을 육성하려는데 의견을 모으고 갤러리 산책 코스를 만든 것이다.
아그네스 부게라 갤러리(Agnes Bugera Gallery), 베어클로 갤러리(Bearclaw Gallery), 더글라스 우델 갤러리(Douglas Udell Gallery), 일렉트럼 디자인 스튜디오(Electrum Design Studio), 스콧 갤러리(Scott Gallery), 웨스트 엔드 갤러리(West End Gallery), 투 갤러리(Tu Gallery)가 그 멤버로, 저마다의 성격도 다르다. 어떤 곳은 공예가와 접촉하며 그들이 만든 공예품을 전시하거나 팔고, 다른 곳은 에드먼튼 출신 아티스트의 그림만 모아둔 곳도 있다. 에드먼튼과 앨버타에 기반을 둔 아티스트의 그림을 전시하고 포스트 카드로 만들어 판매하거나, 거기에서 범위를 넓혀 캐나다 전역으로 범위를 넓혀 다양한 지역 출신의 캐네디언 아티스트의 작품을 소장하고 있는 갤러리도 있다.
반나절 동안 시간을 분배하고 7군데의 갤러리를 돌아보며 가장 특징적이었던 점은 백인 문화 위주인 캐나다 사회에서 이제는 원래 캐나다의 주인이었던 제1세대, 인디언들에게도 따뜻한 관심을 넓혀가고 있다는 것이다. 북아메리카 대륙에 미국과 캐나다라는 두 강대국이 터를 잡으면서 원래 그 땅을 살아가던 인디언들은 자연스레 생활 반경이 좁아지며 그들만의 자치구 내지는 공동체를 기반으로 어렵게 생활했고, 정부의 지원 정도로 도움을 받기는 했지만, 사회에 참여할 수 있는 길이 좁았던 것이 사실이다. 그러면서 그들에 대해 관심을 두지고 인디언과 백인이 함께 어울려 사는 삶을 강조하는 목소리가 서서히 일기 시작했는데, 예술에서도 이제 그런 시선이 반영되고 있는 것이다. 어느 갤러리를 막론하고 1세대와 그들의 삶을 배경으로 한 작품을 소장하거나, 특별 전시코너가 마련되어 있고 1세대 출신으로 작품 활동을 하고 있는 아티스트의 작품을 전담하여 소개하는 갤러리도 있다.

 그림 속으로

인디언 아티스트 중 가장 주목받고 있는 맥신 노엘(Maxine Noel)은 작품의 소재도 인디언과 그들의 삶을 다룬다. 물 흐르듯 유연한 선이 그림의 실루엣을 이루고, 독특한 색채감으로 인디언들의 신비스러운 삶을 표현한 그림은 베어클로 갤러리에서 가장 많이 팔리는 시리즈 아이템 중 하나라고. 에드먼튼 출신의 아티스트인 애론 파퀘트(Aaron Paquette)의 선이 굵고 진한 색감의 작품에 발길이 멈춘 건 순전히 개인적인 취향이 발동해서였다. 고대 신화의 한 장면이거나 낡은 성당의 스테인드 글라스를 표현한 판화같기도 한 그림에서 강렬한 포스가 분출되기도 했지만, 포스트 카드 뒷면에 프린트된 그의 핸섬함이 시너지 효과를 일으켰는지도 모르겠다. 아티스트의 얼굴이 궁금하건, 작품을 보고 싶건 베어클로 갤러리의 웹 사이트(www.bearclawgallery.com)에 접속하면 정보를 찾아보고 구매도 가능하다.
일곱 갤러리 중 더글라스 우델 갤러리(Douglas Udell Gallery)는 유일하게 한 아티스트의 작품만, 그것도 그림만 전시하고 있다. 인테리어 포인트가 화이트인 예쁜 가정집 같은, 외관상으로는 전혀 갤러리 같지 않은 곳이다. 지금은 전시 콘셉트가 바뀌어 있겠지만, 취재차 에드먼튼을 방문했던 당시에는 캐나다와 일본 출신의 부모를 둔 재패니즈 캐네디언인 팀 오카무라(Tim Okamura)의 특별 전시회가 진행중이었다. 전시회를 통틀어 그의 작품에는 남성의 모습이 전혀 없다. 그리고 그 자신이 혼혈이었던 만큼 백인 사회에서 성장했지만 온전히 어느 한 쪽에도 끼지 못한 그의 정체성이 반영되어서인지 작품 속 모델은 거의가 흑인이다. 간혹 동양인이나 스패니시, 또는 혼혈 여인의 모습도 보이기는 하지만 그들의 공통점은 하나같이 표정이 그리 밝지 않다는 것. 도심의 뒷골목이 배경인 듯한 그림 속 여인들은 무표정하거나 우울하다. 하지만 화이트가 메인 컬러여서인지 밝은 배경에 어두운 표정의 여인들의 모습이 묘한 조화를 이루며 그의 작품을 찾는 마니아층이 넓은 편이다. 개인적으로 지갑을 열고 싶은 충동이 가장 강렬했던 것도 그의 작품이었다. 뉴욕에서 종종 그의 전시회가 열린다니 굳이 에드먼튼에 가지 않아도 그의 작품을 만날 수 있는 길은 열려 있다. 그리고 갤러리의 웹 사이트(www.douglasudellgallery.com)에서 그의 작품을 확인할 수 있다.

 앨버타 미술관

1세대인 인디언들에 대한 관심은 다운타운의 앨버타 미술관(Art Gallery of Alberta)에서 역시 발견된다. 1924년에 에드먼튼 미술관(The Edmonton Museum of Arts)으로 문을 연 이후, 점점 규모가 넓어지고 소장품이 많아지며 여러 차례 이름이 변경되는 과정을 거쳐 지난 2005년, 로스앤젤레스 출신의 건축가 랜달 스타우트(Randall Stout)가 디자인한 지금의 건물로 옮겨오며 명칭 역시 변경되었다. 총 3개의 전시관에서 각기 다른 전시회가 열리는데, 지금은 인디언들이 모델인 전시회가 메인이다. 9월 말까지 계속될 전시는 그들 삶의 다양한 모습을 그림과 사진, 생활 용품의 전시 등을 통해 보여준다. 2관에서는 칼 빔(Carl Beam), 잭슨 베어디(Jackson Beardy) 등 총 19명의 인디언 작가들의 전시회가 열리고 있고, 3관의 인디언 가족들의 모습과 그들의 섹슈얼 라이프를 소재로 한 전시 역시 인상적이다.
1년 내내 콘셉트를 달리 하며 다양한 전시회가 기획되고 있고, 고전과 현대 미술품을 5천 점 이상 소지하고 있으니 미술관을 방문하면 조용하고 평화롭기만 한 도시 에드먼튼에서의 반나절은 금방 지나간다. 그리고 다른 곳에서는 기대할 수 없었던, 에드먼튼 만의 색채가 가득한 당신만의 명작이 기다리고 있을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