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막을 달리며, 우리가 잠시 잊고 있던 것

미 서부여행 이틀째 되던 날. 관광객이 탄 전세버스는 가도 가도 누렇게 변한 갈대만 이어지는 모하비사막을 지나는 중이었다. 모두들 무료함에 젖어있을 무렵 31살의 가이드가 다시 마이크를 잡았다. “다들 심심하실 텐데 제 이야기 좀 해드릴까요? 저는 압구정동의 오렌지족이었습니다.” 경쾌한 목소리에 얼핏 잠에서 깼다. 그는 계속 말을 이어나갔다. “할아버지는 고위공무원이셨고, 아버지는 건설회사 사장이셨죠. 전 둘째 아들로 하루저녁 술값과 팁으로 기천만 원을 지불해가며 강남의 밤거리를 휩쓸고 다녔습니다. 그러다 IMF 이후 가세가 기울기 시작했고, 급기야 집안의 가구까지 차압당하게 되었습니다. 그 충격으로 아버지와 할아버지가 돌아가셨고, 주위 사람들도 등을 돌렸습니다. 저는 어머니와 단 둘이 로스앤젤레스로 이민을 오게 됐고, 대학 졸업 후에도 언어가 통하지 않아 1년여를 무위도식하다시피 살다가 어느 날, 뭐라도 해야겠다는 결심을 하고 관광 가이드 일을 시작했습니다. 올해 초, 어머니는 지금까지 어머니를 짝사랑해 오신 친구 분과 재혼하셨고 저는 두 분의 사랑을 받으며, 열심히 일하고 있습니다.” 그는 마지막 말을 마치면서 재미있었느냐고 물었다. 아무도 대답하지 않았지만, 한 무리의 관광객들을 싣고 바싹 마른 사막을 지나던 전세버스에선 젊고 철없던 한 청년의 새 삶을 축하하는 박수소리가 오래도록 이어졌다.
이선기 서울 구로구 오류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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