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덕 위 또 하나의 도시 Back to the Acropolis

지금으로부터 2,500년 이전의 고대로, 그리고 다시 고대에서 현대로 시간을 거스를 수 있는 신기한 도시.
아크로폴리스를 방문하는 것은 아테네뿐만 아니라 그리스를 이해하는 일이다. 위풍당당한 고대 국가의 변모를 유감없이 보여주는 인류 문화의 소중한 유산을 만나러 가는 길이기도 하다.
글, 사진 김은지 기자｜취재협조 그리스관광청 +81-03-3505-5917 www.visitgreece.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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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인생그리스와의 첫 만남은 다름 아닌 호텔 객실 창문을 통해서 이루어졌다. 늦은 밤, 아테네에 도착한 기자는 아직 시차 적응을 하지 못한 탓에 일찍 일어나 커튼을 걷었다. 그런데 신화 속에서나 등장하던 제우스 신전이 바로 눈앞으로 다가올 줄이야. 그때 난 아직 꿈속을 헤매는 기분을 느꼈더랬다. 아테네는 내가 좋아하기에 충분한 조건들을 완벽하게 구비하고 있는 도시였기에. 역사와 건축은 말할 것도 없고, 끝없이 상상력을 자극하는 그들의 신화까지 말이다.
나는 이곳에 잠시나마 머무는 동안 어렸을 적 한창 빠져있었던 그리스 신화 속 이야기를 다시 한 번 더듬고자 부단히 노력했다. 외세에 오랫동안 침략을 당해도, 삶이 아무리 척박해도 낙천적이고(극단적으로), 남에게 베풀기를 좋아하는 그리스인들의 저력은 친절한 겉만 보고 절대 무시할 수 없다. 국토 전역이 찬란한 문화유산으로 가득한 그리스의 헬레니즘 문명은 오늘날 서양정신을 대변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니까.

그리스는 우리의 영원한 고전이다
다른 섬으로 향하는 배 시간에 쫓기던 우리 일행은 아쉽지만 버스 창 너머로 보는 시내 풍경에 만족해야 했다. 관광의 중심지 역할을 하는 신타그마 광장과 오모니아 광장을 통과하고, 우리는 점차 아크로폴리스로 향했다. ‘높은 언덕 위의 도시’라는 뜻을 가지고 있는 아크로폴리스, 이곳은 바로 아테네를 가장 잘 설명해 줄 수 있는 곳이 아닐까.
아크로폴리스에 올라 처음 발길을 멈춘 곳은 이로드 아티코스 음악당(Odeon of Herodes Atticus). 지금도 매년 여름에 열리는 ‘아테네 페스티벌’ 기간에는 각종 연극, 콘서트, 오페라 등의 다양한 공연이 열리는 무대지만, 나에게 이곳은 그저 15년 전 ‘뉴에이지계의 베토벤’이라 불리는 야니가 전 세계 2억 5천만 명의 시청자가 지켜보는 가운데 웅장한 연주를 했던 곳으로 기억될 뿐이다. 당시 어린 마음에도 자신감 있는 눈빛으로 떠는 기색 없이 공연을 진행해내던 그가 어찌나 대단해보였었는지. 다음날 바로 그의 테이프(당시에는 CD보다는 테이프와 악보를 사던 시절이었다)를 샀었던 걸로 기억된다. 그리고 야니는 그 여세를 몰아 인도의 타지마할, 중국 자금성에서도 비슷한 콘셉트의 공연을 열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몇천 년 역사를 자랑하는 국보급 관광지에서의 콘서트가 우리나라에선 상상이나 할 수 있는 일이었나 싶다. 하긴 세상이 좋아져 이제는 경희궁에서도 고궁 뮤지컬을 볼 수 있게 되긴 했지만. 옛것을 꽁꽁 끌어안고 보존하기 보다는 현재와 어우러져 더 큰 감동을 주기를 원했던 개방적인 그리스 사람들에게 박수를 보내주고 싶다.

지혜의 땅, 아테네
잠시 신화 속 이야기를 빌리자면, 제우스의 딸이자 ‘지혜의 여신’이라 불리는 아테네와 ‘바다의 신’ 포세이돈은 지금의 이 땅을 자신의 도시로 만들고자 많이 다투었다고 한다. 신탁을 하니 아테네 시민들에게 가장 중요한 것을 선사하는 신이 도시를 차지하게 될 것은 당연지사지만 그들은 쉽게 결정을 내릴 수 없었다. 궁리 끝에 아테네 여신은 시민들에게 올리브를 주겠다고 했고, 포세이돈은 물이 부족하므로 시내에 언제나 풍부하게 쓸 수 있는 물을 주겠다고 제안했다. 그리나 고심 끝에 시민들은 아테네 여신의 올리브를 선택했단다. 그래서 아직까지도 올리브 나무는 그리스에서 ‘지혜의 상징’이라 불리고 있다. 
그 찬란한 신화 속 역사는 뒤로 한 채 아크로폴리스는 수세기에 걸친 재난을 겪어야 했다. 터키 점령 기간 동안의 파괴, 고고학자들의 몰상식한 절도행위, 독립에 따른 부적절한 보수, 방문객들의 낙서, 지진까지. 터키로부터 그리스의 독립 이후 아크로폴리스 복원이 신생 그리스 정부의 첫 번째 과제로 시작되었으며, 오늘날까지도 복원작업은 계속되고 있다.
그럼에도 도리아 양식 건축물의 최고로 꼽히는 파르테논 신전(Parthenon)은 고대 유적지로서의 감동을 주는 데는 충분하다. 아테네 전반을 두루 돌아볼 수 있는 놀라운 전망을 간직한 이곳에서 2,500여 년의 역사가 고스란히 배어나는 듯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