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urnululu National Park & Bungle Bungle Range
때 묻지 않은 순수 자연 속으로

수억 년 동안 베일에 싸여 있다가 1980년대에 이르러서야 세상에 모습을 드러낸 벙글벙글. 21세기에 이르기까지 자신만의 성역을 알리지 않은 채 꽁꽁 움츠리고 있던 이 미지의 땅에서 현재를 살아가고 있는 우리가, 과거를 거스르는 여행을 할 수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무한한 행운이 깃든 일임에 틀림없다. 
글, 사진 김은지 기자 | 취재협찬 서호주정부관광청 02-6351-5156 www.kr.westernaustralia.com

소중한 것일수록 갖기 힘들다고 누군가 그랬던가. 정말 그랬다. 벙글벙글로 가는 길은 같은 대륙에 살고 있는 호주인들에게 조차 ‘생각난 김에 한번 가볼까’라는 말을 입에서 쉽게 떨어지게 할 만큼 호락호락한 곳이 아니었다. 이른 새벽, 퍼스에서 카나나라(Kununurra) 공항까지 국내선을 타고 이동해, 다시 덜컹거리는 경비행기로 인해 혼미해진 정신을 바로 잡을 수 있을 즈음에야 우리는 푸눌루루 국립공원에 도착할 수 있었으니까. 다시 한번 호주 대륙에서 서호주가 차지하는 면적이 어마어마하다는 사실을 몸소 깨닫는 순간이었다.
서호주 북서부 끝에 위치한 킴벌리(Kimberley) 지역은 끝없는 서호주 아웃백을 대표하는 곳이자, 드넓은 대지의 아름다움과 다양한 기후를 지닌, 세계 최대의 환경 보호 지역이다. 42만 평방킬로미터에 이르는 이 지역에는 고작 3만여 명의 인구만 거주하는데 이는 지구상에서 가장 적은 인구 밀도를 나타내는 것이란다.
그리고 이건 여담이지만, 퍼스에서 카나나라까지 오는 도중에 국내선 비행기가 아가일(Argyle)이란 곳을 경유하는데, 이곳에는 핑크를 비롯 유니크한 컬러로 세계적으로 인정받는 최대 규모의 다이아몬드 광산이 있어 도굴 방지를 위해 국가에서 정식으로 허가 받은 광부들만이 공항에 발을 내딛을 수 있다고 한다. 그렇기에 이곳에 출입하는 사람을 제외한다면 킴벌리 지역의 인구 밀도는 훨씬 더 낮아질 것이라고 한다.
브룸 또는 공항 근처 현지 항공사에서 제공하는 다양한 관광 전용 항공(Scenic Flight) 프로그램을 이용하면 넘치는 스릴과 함께 아름답고도 신비한 경관을 한 눈에 둘러볼 수 있는데, 카나나라에서 벙글벙글까지 가는 그 한 시간 동안 경비행기의 창밖에서는 진정한 아웃백, 서호주의 모습이 펼쳐진다. 국립공원을 가로지르는 4WD 주행과 하이킹, 지역 곳곳을 흐르는 내륙 수로를 이용한 보트 투어를 선택할 수도 있다. 이 프로그램들은 잊지 못할 경험이 될 것이라는 것은 확실하지만 시간의 여유가 허락되는 사람들에게만 추천한다. 푸눌루루 국립공원의 크기가 무려 24만 헥타르에 이른다는 사실을 명심하자. 이곳을 지나가는 동안 기자는 끝도 없이 펼쳐진 붉은 토양, 오래된 고대 협곡들, 불가사의한 형태의 거친 바위산, 아가일 호수 위에 떠있는 수많은 섬을 보면서 뒤늦게라도 이곳이 발견되었다는 사실에 다시 한번 고마움을 느끼기도 했다.

자연의 장대한 대서사시
2003년 유네스코에 의해 세계 유산 지역으로 선정된 푸눌루루 국립공원(Purnululu National Park)은 2천만 년에 걸쳐 이루어진 자연의 장대한 대서사시로, 오랜 세월동안 기후 변화 작용으로 형성된 거대한 벌집 모양의 줄무늬 암석, 거친 언덕과 협곡으로 호주 최고의 아름다움을 자랑하는 곳이다. 사람의 손길이 닿지 않은 채 오랜 세월을 견뎌낸 세계의 보석, 푸눌루루의 벙글벙글 레인지(Bungle Bungle Range)는 1982년 우연찮게 이곳의 항공사진이 공개되면서, 숨 막히는 경관과 다른 곳과 비교할 수 없는 자연적 가치 및 지질학적 중요성으로 인해 전 세계에 널리 알려지게 되었다.
무려 2억 5천만 년 전에 형성된 것으로 알려진 벙글벙글은 원래 바다 속이었는데, 해수면이 점차 낮아지면서 지금의 모습으로 남겨지게 되었다고 한다. 평원 지대 위에 250미터 높이로 솟아 있는 독특한 구조로 유명한 벙글벙글 레인지는 수천 년에 걸친 기후 변화로 인해 탑 부분은 침식되었으며, 산맥을 넘어가면 협곡과 물웅덩이들이 있고, 종려나무가 아슬아슬하게 바위 절벽 틈에서 자라고 있는 광경이 서서히 모습을 드러낸다. 황토색 바탕에 검은 수평 띠를 두르고 있는 듯 독특한 고분의 형태는 이끼와 규소의 침전으로 인해 생긴 것. 이처럼 어디에서도 볼 수 없는 거대한 벌집과도 같은 지형으로 인해 발견 이후 호기심 많은 여행가들의 발길이 꾸준히 늘어나고 있다.
우리나라 사람들에게는 왠지 친숙한 이름, 그래서 더욱 영어 같지 않은 지명은 이곳에 살았던 키자(Kidja) 원주민들에 의해 지어졌다고 하는데 푸눌루루라는 이름은 샌드스톤, 즉 ‘사암’을 지칭하며 벙글벙글은 ‘번들번들(Bundle Bundle)’이라는 지역 목초의 철자를 잘못 표기하면서 유래된 것이라고 추측하고 있다. 이름에 얽힌 연유를 들었음에도, 나는 비행기에서 내려다보이는 수많은 봉우리가 무질서하게 봉긋 솟아올라 있는 걸 보고 ‘동글동글’이란 우리말이 연상이 돼 혼자 웃음을 짓고 말았다.

자연의 힘은 위대했다
자, 이제 세계에서 가장 때 묻지 않는 순수한 과거로의 탐험을 시작해 보자. 투어가 가능한 곳은 이치드나 협곡(Echidna Chasm), 캐테드럴 협곡(Cathedral Gorge) 또는 걸어서 10시간이 걸리는 장대한 피카니니 협곡(Piccaniny Gorge) 등. 오후에 도착한 우리에게 허락된 시간은 불과 해지기 전까지의 몇 시간뿐이었다. 도시에서는 주변에서 들리는 무수한 소음도 듣지 못할 정도로 정신없이 살아왔지만 이곳에서는 왠지 발걸음 소리조차 내는 것이 미안할 정도로 주변이 조용하다. 소음이라 할 수 없는 소음이라고는 바싹 마른 바위 틈에서도 끈질긴 생명력을 자랑이나 하듯 듬성듬성 솟아 있는 억센 풀이 바람에 부딪히는 소리와 새소리 뿐. 태고의 호주는 마치 2억여 년 전부터 시간이 멈춰버린 듯 고요했다. 산책로를 걸으면 걸을 수록 자연의 신비함에 놀라움을 금할 수가 없었다. 우선 변변한 먹을거리 하나 없어 보이는 이 주변에 130종 이상의 수많은 새들과 600여 종의 희귀 동식물이 어우러져 살아가는 천연 서식지가 될 수 있다는 사실이 마냥 신기했고, 캐테드럴 협곡에서는 피할 데 하나 없는 그 뜨거운 태양 아래 어떻게 물이 마르지 않고 푸르게 고여 있을까 하는 의문도 들었다. 게다가 곳곳에서는 아보리진(Aborigine) 원주민의 벽화들이 발견되어 자연 갤러리를 방불케 한단다.
푸눌루루 국립공원은 4월부터 12월까지만 개방된다. 당연히 공원 안에서의 취사는 엄격히 금지되며 지정된 캠핑 사이트에서만 머물 수 있다. 이스트 킴벌리 투어(East Kimberley Tours)를 이용하면 식사는 물론 샤워 시설까지 제공되는 사파리 텐트 캠핑을 예약할 수 있다. TV와 인터넷이 없고, 핸드폰조차 이용할 수 없는 오지 속에서의 고요한 침묵이 오히려 그간 갑갑했던 숨통을 트이게 하는 것 같다. 시골 할아버지 댁에서도 볼 수 없었던 주먹만한 별빛 샤워는 이곳을 찾는 이들에게만 허용되는 특권이다.

Tip 벙글벙글 자세히 둘러보기 
쪾 슬링에어 헬리워크 WA(Slingair Heliwork WA) - 킴벌리 지역의 관광용 전세기, 사파리, 관광용 헬기 및 지상 관광 투어를 제공한다. 벙글벙글과 아가일 호수 전세기 관광은 AUD 365부터. www.slingair.com.au
쪾 이스트 킴벌리 투어(East Kimberley Tours) - 시간에 구애 받지 않도록 손수 운전을 하는 항공편과 버스 투어 등을 제공하며, 국립공원 내 캠핑 투어도 이스트 킴벌리에서 제공한다. 2명이 숙박 가능한 텐트 캐빈은 AUD270부터. www.eastkimberley tours.com.au, www.pinnacletours.com.au
쪾 엘리게이터 에어웨이즈(Alligator Airways) - 킴벌리 전 지역의 항공 관광 투어를 제공한다. 1인당 135분 투어는 AUD230부터. www.alligatorairways.com.au