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키타 료칸의 세계로 Relaxation in Nature

서늘한 바람이 불어올 때면 따끈한 아랫목이 생각나는 것은 만고불변의 진리. 산 좋고 물 맑은 자연 속에서 즐기는 온천의 맛은 천국과 견줄만하다. 삼나무 숲 속에 숨겨진 비밀 온천에서 즐기는 프라이빗한 시간은 아키타가 주는 선물이다. 풍부한 자연과 일본 전통문화를 즐길 수 있는 아키타 료칸에서 특별한 천국을 만났다.
글 한미영 기자 사진 박진희 기자 취재협찬 아키타현 한국 코디네이터사무소 02-3473-5822

일본 북도호쿠에 위치한 아키타현은 국제선이라고는 인천-아키타 항공편 하나뿐이 없는 시골이다. 이렇게 깊은 시골까지 찾아가는 것이라면 그들만이 가진 특별한 매력이 있어야 할 것이다. 이 시점에서 ‘하필이면 왜 아키타’냐고 묻는다면, 료칸이 있기 때문이라도 대답한다. 쭉쭉 뻗은 삼나무 숲 속에서 푸른 자연의 향기를 느끼며 온천을 즐기는 동안 각박해진 마음을 정화시켜주는 듯하다. 아마도 아무도 없는 자연에 꼭꼭 숨는 숨바꼭질의 재미라고 해두자. 아무튼 온종일 샘솟는 따끈한 온천에 몸을 담그고 사람의 손이 닿지 않은 순수한 자연과 호흡하는 행복이 이곳에 있다.

자연 은둔형 문인의 세상, 이나즈미
‘산의 차분함이 무한하고 물의 맑음 또한 무한하니’. 이나즈미를 사랑했던 문인 무샤노코지 사네아츠가 남긴 말이다. 이나즈미 료칸에 은둔하며 ‘이나즈미 일기’를 기록했던 사네아츠 외에도 일본의 전 수상 사토 에이사쿠 등의 이름이 방명록에 올라가 있다. 문인들이 사랑했다는 말을 듣고부터 나름의 상상을 시작했다. 그 운치와 분위기에 대한 환상 같은 것을 만들며 아키타 최남단에 위치한 료칸을 향해 달렸다.
100년이 넘는 세월 동안 깊은 산중을 지킨 이나즈미는 의외로 세련된 모습이었다. 신발을 가지런히 벗어놓고 료칸 안으로 들어서자 명성대로 유서 깊은 회화와 조각, 서적들을 만날 수 있었다. 3만 5천 평방미터 규모의 료칸은 있는 그대로의 자연과 사람이 꾸며놓은 정원이 오묘한 조화를 이루고 있다. 꽃 나무와 흐르는 강물을 바라보며 온천을 즐기고 유가타 차림으로 정원을 산책한다면 그 자체만으로도 소설 속 주인공이 될 수 있을 듯하다. 정원 방향으로 난 문을 이용해 연못가 테라스에 앉아 차 한잔을 즐기며 영화 한편 정도 찍어보는 것도 잊지 못할 추억이 될 것이다.
사네아츠에게 감동을 주었던 아름다움은 지금도 변하지 않고 남아있다. 지붕의 모양을 그대로 느낄 수 있는 낮은 천장과 운치 있는 정원, 옛날식 다다미 방까지. 30년 전에 다녀갔던 신혼부부가 이제는 노부부가 되어 돌아와도 변치 않은 감동을 선사한다. 운치 있는 정원에서 다도 모임인 오차카이를 즐기기 위해 찾는 이들도 꽤 많다. 전통과 운치를 동시에 즐길 수 있는 공간이기에 더욱 사랑스럽게 느껴지는지도 모르겠다. 계곡을 향해 트여있는 온천에 가만히 몸을 담그고 있으면 귓가에는 자연의 소리만이 맴돈다. 산줄기를 따라 내려오는 계곡의 물소리, 나뭇가지를 흔드는 바람 소리 그리고 예쁘게 우는 새소리. 자연과 온천이 상쾌함과 편안함으로 안내한다. 일상을 떠나 찾아오는 이들의 비밀 별장 같은 공간이 되어서 말이다.

자연과 함께하는 별장, 다에노유 
다에노유에 도착했을 때의 느낌은 약간 독특하다. 산길을 따라 내려오는 도중, 길 옆에 덩그러니 놓여져 있었기 때문이다. 솔직히 안에 들어가보기 전까지는 료칸이라기 보다는 숲 속 분위기에 충실한 레스토랑 정도로 생각했었다. 그런데 입구에 들어선 순간 지금까지의 상상은 잘못된 공상이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온천으로 향하는 방향이 계단을 이용해 자꾸만 위로 올라간다 싶었더니 자그마한 온천탕이 나온다. 뉴토 온천향에 자리잡은 수많은 료칸 중 다에노유는 두 개의 원천을 끌어오는데 철분 성분이 많은 붉은 탕과 알칼리 천을 끌어들인 맑은 탕으로 구분되어 있다. 철분을 함유한 온천수는 시간이 지날수록 불고 불투명한 색으로 변한다. 실내 온천에서도 주변의 산세를 감상할 수 있어 자연과 함께 온천을 즐기는 아키타의 맛을 제대로 느낄 수 있다.
실내 온천도 좋지만 계단을 한번 더 오르면 놀라움으로 입을 다물지 못할 정도의 노천온천을 만나게 된다. 역시 두 개의 탕으로 이루어진 노천 온천에서 삼단으로 떨어져 내리는 계곡을 바라보며 온천을 즐길 수 있다. 따끈한 온천수에 몸을 담그고 있으면 아름다운 조명을 받은 계곡물이 시원스럽게 떨어져 내린다. 뭉게뭉게 피어 오르는 물안개는 한마디로 장관이다. 남녀혼탕이라 온천으로 나오기가 꺼려진다면 수건으로 온몸을 단단히 둘러싸고 나오면 된다. 여간 익숙하지 않은 분위기이긴 하지만 놓치지 아까운 절경이다.

무사 시대로의 시간 여행
가쿠노다테는 무사 마을로 유명하다. 이 마을에 들어서면 다른 지역에서는 느끼지 못했던 특유의 분위기가 있다. 벚꽃 축제로 더욱 유명한 이곳은 다른 것보다도 마을 자체의 분위기를 느끼는 것이 중요하다. 전통 무사 가옥이 잘 보존된 이곳에서는 현대적인 건축이 오히려 어색하게 느껴질 정도다. 마을 가운데 위치한 다마치부케야시키 호텔은 무사가옥 스타일의 호텔이다. 온천을 갖추고 있지는 않지만 전통 료칸과 다름 없는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전통식인 다다미 방과 현대 호텔식인 침대방이 각각 마련되어 있어 기호에 맞게 선택할 수 있다. 창문을 열면 옹기종기 모여있는 검정색 지붕과 좁다란 골목이 400년 전으로 시간을 훌쩍 넘어간 것 같다.
이 호텔에서는 료칸의 개성을 뚜렷하게 표현하는 가이세키를 제공하는데 식전주부터 전채, 생선회, 찜 요리를 포함해 디저트까지 10가지가 넘는 요리가 차례차례 나오는 동안 행복한 단꿈에 빠지게 한다. 대부분의 가이세키는 지역의 특산물을 이용해 지역의 맛과 향을 잘 표현한다. 이곳은 이탈리안 스타일로 재해석된 가이세키를 맛볼 수 있다. 커다란 접시에 담겨 차례차례 나오는 요리들은 완벽한 일본식 미각과 세련된 세팅이 돋보인다. 신선한 해산물과 가쿠노다테의 명물 두부가 들어간 메뉴에 아키타산 사케를 한잔 곁들인다면 아키타의 밤은 더욱 아름다워질 것이다.

료칸, 바다를 만나다 
푸른 바다를 붉게 물들이는 노을만큼 세상을 아름답게 만드는 빛이 또 있을까. 붉게 타오른 태양에 그을린 것처럼 까맣게 타버린 화산암이 해안 절벽의 절경을 만들어내고, 푸른 산 아래로 길게 놓여진 해안도로를 따라 달리면 바다를 품에 안은 료칸 테이스이가 자리잡고 있다. 울창한 숲과 정원이 잘 꾸며진 다른 료칸들과 다른 시원스런 전망에 모든 객실에서 몽환적인 석양을 내려다 볼 수 있는 매력을 가지고 있다. 객실의 바다 쪽 벽면은 통유리로 설치되어 있어, 눈 앞에 노을 지는 바다를 내려다보며 오붓한 시간을 즐길 수 있다. 계절에 따라 해가 떨어지는 위치가 조금씩 바뀌기는 하지만 짙은 안개가 아니라면 일년 내내 아름다운 석양과 함께 할 수 있다.
해안 료칸이라는 특별함은 객실뿐 아니라 노천탕에 앉아서도 느낄 수 있다. 서늘한 바닷바람을 맞으며 짭조름한 맛의 알칼리 온천을 동시에 즐길 수 있으니, 이보다 특별한 바다의 선물이 또 있을까. 덕분에 바다를 바라보며 온천을 즐긴 후 오가 반도의 해산물 요리를 즐기는 일일 패키지도 마련되어 있다.
해안가인 오가 지역은 화산암이 많고 바다에서 신선한 해산물이 많이 나는데, 이 두 가지 특산물을 이용한 특별 요리가 있다. 어부들이 즐기던 이시야키가 그것. 물이 담긴 삼나무 통에 도미나 도루묵을 비롯한 싱싱한 흰살 생선과 각종 해산물을 넣고 섭씨 800~1,000도씨까지 뜨겁게 달군 돌을 조심스럽게 집어넣는다. 순식간에 끓어오르는 열기에 맛있는 육즙이 배어나오면 갖은 양념을 풀어 간을 맞춰 먹으면 된다. 특별한 맛과 아름다운 전경 덕분에 이곳을 찾는 발길이 많다. 외진 바닷가 료칸 테이스이의 파도가 지친 나그네의 마음을 쓰다듬어주고, 온천이 아픈 마음을 감싸주며, 허전한 마음은 미각이 채워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