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와 콜라

2년 전 동유럽을 여행하던 중 K와 나는 프라하에서 짤쯔부르크로 가는 저녁 기차를 타게 되었다. 호스텔에서 조금 일찍 출발해 프라하의 여운을 즐기며 역까지 천천히 걸었다. 역 앞 가판대에서 케밥으로 이른 저녁 식사를 한 후, 조금 낡긴 했지만 운치있는 기차에 올랐다. 기차 안이 한산해 우리는 컴파트먼트 하나를 통째로 차지할 수 있었다. 달리는 기차의 창밖으로 체코의 푸른 평야와 어슴푸레 빛나는 초승달이 스쳐갔다.
그렇게 1시간쯤 지났을까? 슬슬 배가 고파지기 시작했다. 수중엔 생수 한 병 없었기에 남은 5시간을 어떻게 보낼 지 막막하기만 했다. 마침 기차가 정차했고, 우리는 그 사이 역 안 매점으로 달려가 먹을거리를 사오기로 했다. 어차피 체코 동전이 많이 남아서 이렇게라도 다 써버리지 않으면 다량의 기념품만 남겨가게 될 상황이었다. 소심함이 넘치는 K는 “그러다 기차 놓치면 어떻게 하냐.”며 염려했다. 그러나 평소 모험을 즐기는 난 걱정 말라고, 전광판에 기차출발시간이 뜨니까 그 시간에 맞춰서 오면 된다고 큰 소리쳤다. 출발시간까지는 10여 분 정도가 남아있었다. 친구가 기차에 남아 짐을 지키는 동안 나는 재빨리 역 안으로 뛰어 들어갔다. 예상 외로 역이 제법 커서 중심부까지 가는 통로가 꽤 길었다. 땀을 삐질삐질 흘리며 뛰어갔는데, 매점은 이미 문을 닫은 상태였다. 아쉬운 대로 자판기를 찾았다. 체코 동전을 가능한 많이 쓰기 위해 작은 동전부터 자판기에 투입하기 시작했다. 돈을 넣는 데만 시간이 꽤 걸렸다. K에게 큰소리는 쳤지만 불안하기는 나도 마찬가지였다. 그 와중에 한번은 버튼을 잘못 눌러서 동전이 다 쏟아져 나오기까지 했다. 그렇게 1리터짜리 콜라 한 병을 어렵사리 뽑아 다시 기차를 향해 달렸다. 평소 운동부족인 난 심장이 쿵쾅거릴 정도로 열심히 뛰어 새가슴이 된 K가 기다리는 기차로 돌아왔다. 미션 성공! 나는 벌컥벌컥 콜라를 들이키며 뒤늦게 스릴을 만끽했다. 다시 기차가 출발했고, 우리는 컴파트먼트 의자에 누워 깜빡 잠이 들었다. 그렇게 얼마를 달렸을까. 어느 순간 발을 의자 아래로 내려놓았는데 발밑이 끈적끈적했다. K가 뚜껑을 제대로 안 잠가서 소중한 콜라가 3분의 2나 쏟아져있었던 것이다! 10분여를 헉헉대며 달린 나의 땀과 노력도 함께 날아가 버렸다. 여행 내내, 나는 그 사건을 빌미로 K를 부려(?) 먹었다. 그때는 정말 어이없고 아찔했지만, ‘콜라사건’은 지금까지 생각해도 웃음이 나는 정겨운 추억이 되었다.
김성실 서울시 관악구 신림본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