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pain
바스크 지방의 작은 마을
문다카와 사라우스  

적어도 스페인에서만큼은, 스페인을 파에야, 시에스타, 투우, 플라멩코의 나라로 정의하기 어렵다. 파에야는 발렌시아 음식, 플라멩코는 안달루시아의 음악과 춤이고 투우의 잔인함에 반대하는 단체들의 존재와 더불어 시에스타가 어느 시대 얘기냐는 답변이 ‘반드시’ 돌아온다.

스페인의 바스크(Basque) 지역은 스페인 사람들조차 신기하게 볼만큼 독자적인 문화가 발달한 곳으로, 바스크를 여행하다 보면 자연과 문화 곳곳에서 반(反) 스페인적인 것들을 경험하게 된다. 바스크 사람들은 스스로를 스페인 사람이라고 생각하지 않거나 소수 민족이라고 여기기도 한다. 인종적으로도 조금 다르다는 게 ‘주장’만은 아닌 것이, 유럽 대륙을 통틀어 그 어느 곳보다도 Rh- 혈액형의 비율이 확연히 높다고 한다. 어디를 가도 흰색 바탕에 빨강과 초록의 줄이 그어진 바스크 지방의 국기 이쿠리나(Ikurrina)가 걸려 있고, ETA 조직원으로 테러 활동을 하다가 체포된 ‘독립주의자’들의 귀환을 기원하는 글귀가 씌어 있는가하면, 자기 지방을 우스칼 에리아(Euskal Herria) 혹은 우스카디(Euskadi)로 부르며 자부심을 나타낸다.
바스크 지방의 전통 언어 우스케라(Euskara)는 스페인에서 공식적으로 사용되는 4개 언어중 하나임에도 다른 지역 사람들은 전혀 감을 잡지 못할 만큼 다르다. 인도·유럽 어족이 생성되기 이전부터 지금까지 이어져 내려오고 있기 때문이다. 아직까지도 언어학자들 사이에서 의견이 분분할 만큼 그 어원도 불분명하지만, 현재도 바스크 지방의 모든 공립교육기관에서는 우스케라로 수업을 하고 있다. 바스크 지방의 이질감은 자연에서도 잘 나타난다. 고속도로를 타고 달리다보면 온통 초록 잔디로 뒤덮인 크고 높은 언덕에 자리 잡은 전형적인 바스크 지방 가옥과 양떼가 보이고, 바다는 대서양을 향하고 있어, 지중해보다 바닷물의 온도가 훨씬 낮다.
인구 1,500명의 작은 마을 문다카(Mundaka). 서퍼들이 선정한 ‘세계 10대 아름다운 파도’가 이는 곳으로 꼽혔지만, 여름 한 철만 제외하면 1년 내내 아주 조용하다. 손님이 알아듣든 말든, 아무렇지도 않게 우스케라로 인사를 하고 주문을 받는 카페의 나이든 주인을 보면서 친구와 함께 “역시 바스크 사람이야.” 하고 웃었다. 가구당 한 대씩 갖고 있지 않을까 생각될 만큼 많은 배들이 정박된 작은 선착장은 아이들의 놀이터이기도 하다. 마을의 작은 골목을 마주하고 있는 집들은 수리나 페인트칠을 했어야 할 시기가 지나도 한참이나 지난 듯 보이기도 했다. 그래도 매일 아침, 낡은 골목길을 지나 바닷가로 나가는 길 앞에 쨍하게 내리쬐던 밝은 햇빛은 마음에 오래 남을 것 같다.
17세기까지는 고래잡이 마을이었던 사라우스(Zarautz). 지금은 인구 2만 명의 마을로, 서퍼들의 천국으로 불린다. 파도와 구름의 크기도 스케일이 다르다. 카탈루냐 지방 코스타브라바(Costa Brava)의 지중해 바다에서 이따금 찰랑거리며 밀려오는 작은 파도에 익숙했는데 사라우스에는 파도 하나의 길이가 15~20미터에 달한다. 하지만 밀물과 썰물이 교차하는 해변이라 깊지가 않아서 20미터 쯤 앞에 보이는 사람도 고작 무릎 정도까지 물이 차 있을 정도다. 하지만 긴 파도가 한번 밀려오면, 끝없이 밀려와서 단숨에 물이 코 높이까지 차오르기도 한다. 대신 서핑을 하기에는 최적의 조건이어서, 사라우스 해변에서는 매년 세계 서핑 챔피언십 대회가 열린다.
19세기 중반, 이사벨 여왕 2세가 사라우스에 여름 별장을 지으면서 이 지역은 당시 고급 여름 휴양지로 이름을 떨치게 되는데, 그때 지어진 집과 건물도 곳곳에 잘 남아 있다. 작은 마을 치고는 박물관과 미술관도 많아서 걷다가 미술관에 들어가 커피를 마시고, 다시 바닷가를 따라 걷는 한적한 일상이 반복되었다. 1주일 내내 바스크 지방의 전형적이라는 우중충한 날씨가 떠나는 날까지 계속되는 바람에 휴가 같은 기분은 전혀 들지 않았지만 파도 소리만 들으며 바라봤던 바다도 나쁘지는 않았다.
맛있는 음식으로도 유명한 바스크 지방의 핀초(Pintxo)는 바스크 지방을 여행하는 동안 놓치지 말아야 할 음식이다. 놓칠 수 없다는 말이 더 맞겠다. 어느 레스토랑이나 바에 들어가도 쉽게 찾을 수 있는 핀초는 작게 자른 빵 위에 햄, 하몬, 생선 등을 올린 요리인데, 빵으로 만든 스시라고 하면 설명이 쉽다. 핀초마다 꼬치를 꽂아서 다 먹은 후에는 꼬치 수를 세서 계산을 한다. 바스크 지방의 전통 와인 차콜리(Txakoli)와 함께 먹은 핀초는 ‘좋은 음식은 꼭꼭 씹어 먹으면서 생각할 시간이 필요하다’는 생각까지 들게 했다.
흔히 ‘바스크 사람’은 고집스럽고, 우직하고, 힘세고, 닫혀 있는 사람들이라고 표현한다. 실제로 사라우스는 그리 작은 마을도 아닌데, 어찌나 외지인들과 안 섞였는지, 모두가 한 가족으로 보일만큼 서로 닮은 얼굴을 가지고 있어 깜짝 놀랐다. 하지만 1주일동안 바스크 지방을 여행하면서 그들의 그런 모습은 거대한 파도, 강한 바람 같은 바스크지방의 자연과 많이 닮아있는 듯 느껴졌다. 그들의 고집이 고유의 문화와 8천 년이 훌쩍 넘은 언어도 지금까지 지켜나가도록 하는 게 아닐까. 세계 모든 나라의 문화가 하나의 주류로 흘러가는 듯 보이는 요즘, 그들이 가진 그 고집이 자부심이라면 우리도 가져야 할 미덕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