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rench Town in Canada
캐나다 속 작은 프랑스

‘캐나다 속의 작은 프랑스’로 불리며 퀘벡커 만의 정체성을 찾으려는 사람들의 열정이 온전하게 살아 있는 퀘벡이 벌써 400주년을 맞았다. 비가 주룩주룩 내리던 지난여름 어느 날, 스티븐 하퍼 캐나다 수상이 다녀간 후 하루 종일 도시 곳곳에서 크고 작은 축하공연과 이벤트가 끊이질 않았던 퀘벡. 그들이 고수하려는 정체성은 무엇이었을까. 

북아메리카 대륙의 유일한 성곽도시인 퀘벡은 지금으로부터 정확하게 400년 전인 1608년에 도시가 시작되어 캐나다에서 가장 오랜 역사를 자랑하면서도 퀘벡커들은 여전히 캐나다인이기를 거부한다. 실제로 캐나다의 유명 마트나 약국, 레스토랑 체인도 퀘벡에서는 찾기가 쉽지 않다. 여행자들이 세계 물가를 측정하는 가장 쉽고도 간단한 지표가 된다는 미국 브랜드의 햄버거 레스토랑은 있지만 미국의 스타벅스 만큼 캐네디언들의 압도적인 사랑을 받는 커피와 도넛 체인 ‘팀 호튼(Tim Hortons)’이나  커피숍 체인 ‘세컨드 컵(Second Cup)’, 캐주얼한 다이닝 레스토랑 ‘레드 로빈(Red Robin)’ 역시 퀘벡에는 없다(도시를 이 잡듯 뒤지면 어느 모퉁이에서 발견될 지도 모르지만 퀘벡 번화가와 그 일대를 맴돌았던 1주일간 끝내 찾아내지 못했다).

캐나다 아닌 캐나다
익히 알려졌다시피 캐나다라는 한 카테고리에 묶여 있지만, 퀘벡 주와 퀘벡이 아닌 다른 주들과의 차이는 크다. 프랑스풍의 건물이 늘어선 거리에는 온통 프랑스어 간판 일색에 길 안내 표지판이 서 있고, 퀘벡커들이 주로 사용하는 언어 역시 프랑스어다. 캐나다 내에서도 이질적인  퀘벡의 존재로 인해 학교에서는 프랑스어 수업이 필수 과정으로 개설되어 있고, 캐나다 전역에서 생산되는 모든 공산품에 영어와 프랑스어가 이중으로 표기되며, TV 프로그램 역시 두 언어 중 하나를 골라보면 되도록 퀘벡이 아닌 지역에서도 프랑스어 방송을 내보내고 있기는 하지만 퀘벡커들의 정체성을 고수하려는 일편단심은 뜨겁다. 물론 여행자가 접하게 되는 호텔을 비롯한 숙박시설과 레스토랑 등에서는 당연히 영어가 통용되지만, 퀘벡에서 살아가는 순수 시민들의 일상에 영어가 끼어들 틈은 그리 넓지 않다.
몇 년 전, 앨버타 주 에드먼튼의 랭귀지 스쿨에서 공부할 때 우리 반에는 퀘벡에서 유학 온 친구가 한명 있었다. 퀘벡에서 나고 자라 대학까지 졸업한 순수 캐네디언이지만 집과 학교에서 프랑스어만을 사용하다보니 영어로는 언어소통이 어려워 캐나다의 다른 도시로 어학연수를 온 셈이었다. 이탈리아 이민자 출신인 남자친구와 그 가족으로부터 오히려 영어를 배운다는 그녀의 이야기는 재미있었지만, 퀘벡과 비(非) 퀘벡 간의 또렷한 경계가 아주 선명하게 들여다보이는 케이스이기도 했다.
대서양을 사이에 두고 유럽과 떨어진 아메리카 대륙에 살고 있지만, 캐네디언이기보다는 프랑스인의 후손이기를, 아니 오롯이 퀘벡인으로 인정받고 싶어 하는 이들의 열망은 오랜 세월동안 지속되어 왔다. 몇 차례나 캐나다 정부로부터 독립하려는 움직임을 보여 왔고, 다분히 프랑스적인 삶을 살아가는 이들의 모습은 세월이 차곡차곡 쌓이는 동안 끊임없이 변해온 역사의 흔적을 반영한다.

불협화음의 시작
퀘벡커들이 그토록 자신의 정체성을 고수하려 애쓰는 이유는 지금껏 퀘벡이 지나온 시간의 궤적을 통해 짐작할 수 있다.
어느덧 400주년을 맞이한 퀘벡의 시작을 연 사람은 프랑스인 탐험가 사무엘 드 샹플랭(Samuel de Champlain)이다. 물론 그 전에 유럽인으로서는 처음으로 프랑스인 자크 카르티에(Jacques Cartier)가 아메리카 원주민이 살아가던 퀘벡을 발견하고 뉴프랑스(New France)라는 이름도 붙였지만, 1608년 샹플랭이 프랑스인들을 데리고 와 지금의 샤토 프랑트낙 호텔이 있는 캅 디아망 절벽 인근에 정착한 것이다. 대서양을 향해 흐르는 세인트로렌스 강이 마을 앞으로 흐르는 것을 보고 ‘강이 좁아지는 곳’이라는 뜻의 ‘퀘벡(Quebec)’이라 이름붙인 것도 그였다. 하지만, 퀘벡의 앞날은 그리 순탄하지 않았다. 캐나다 영토를 차지하기 위해 다투던 영국과 프랑스 군인이 아메리카의 프랑스로 발전하는 듯싶던 퀘벡까지 공격해 전투를 벌였고, 수적으로 우세하던 영국군이 승리하면서 프랑스인이 살아가던 마을은 한순간에 영국의 차지가 되었다. 이후에도 두 나라는 서로 약속이라도 한 듯 번갈아가며 이기다 지기를 반복하는 싸움을 계속했고, 1759년 마침내 영국의 울프 장군(General Wolfe)이 승리하며 퀘벡은 영국의 차지가 되었다. 퀘벡커와 캐나다 정부와의 불협화음이 시작된 것은 아마도 이 이후부터였을 것이다. 이미 지극히 프랑스적인 도시의 기반을 다져놓은 프랑스의 후예들과 영국의 정통성을 잇는 정부가 손잡고 함께 갈 수는 없었을 터.
그러나 영국과 프랑스가 엎치락뒤치락하며 뺏고 뺏기기를 반복하던 과정을 거치는 동안, 두 문화가 교차되는 역사가 퇴적층처럼 쌓여 온 퀘벡에는 싫든 좋든 영국의 흔적이 남아 있다. 캐나다 속의 프랑스라고 알려져 있지만, 도시 곳곳에서 발견되는 영국의 문화나 전통도 심심치 않게 찾을 수 있다는 것이 퀘벡의 또다른 매력이다.

퀘벡 그대로의 퀘벡
일찍이 사무엘 드 샹플랭이 캡 디아망의 절벽에 정착지를 마련한 이후, 그 인근은 지금까지도 퀘벡의 중심지로 남아 있다. 퀘벡이 거론될 때 매번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샤토 프롱트낙 호텔(Ch?eau Frontenac Hotel)이 있는 그 곳이다. 강에 인접한 절벽으로 인하여 퀘벡은 지리적으로 자연스레 어퍼 타운(Upper Town)과 로어 타운(Lower Town)으로 나뉘게 되는데, 샤토 프롱트낙 호텔과 그 앞의 다름 광장(Place d'Armes)을 중심으로 둘러싸듯 시가가 형성된 구시가 일대는 어퍼 타운의 중심가로 퀘벡의 볼거리와 먹을거리 등이 몰려 있는 번화가이다. ‘북아메리카 대륙의 유일한 성곽도시’라는 타이틀에 걸맞게 4개의 웅장한 성문과 굳센 성벽으로 둘러싸인 구시가는 그 전체가 유네스코에 의해 세계 보존 지구로 지정될 만큼 아기자기한 시가 풍경이 사랑스러운 곳이다. 유럽풍의 건축물이 시가를 메우고, 그 사이로 난 좁은 2차선 도로는 퀘벡커보다도 마차를 타거나 천천히 걸으며 시가를 둘러보는 여행자들로 항상 붐빈다.
구시가를 감싸듯 그 외곽으로 서 있는 성벽으로 오르려면 우선 성문 근처로 가야한다. 다름 광장에서부터 뻗어 있는 생 장(Saint. Jean) 거리나 생 루이(Saint. Louis) 거리는 구시가에서 가장 번화한 거리로 그 끝이 각각 성문과 닿아 있다. 구시가로 나고 드는 통로이자, 성문 옆으로 난 돌계단을 통해 성벽으로 올라서면 구시가 일대를 둘러싼 성벽 전체를 한바퀴 둘러볼 수 있다. 동화 속에나 나올 법한 구시가와 절벽 아래의 레스토랑과 카페가 모인 로어 타운을 한눈에 조망할 수 있는 성벽으로 오르는 입장료는 무료.
어퍼 타운의 성문 밖에서부터 아래로 향하는 완만한 경사의 도로를 따라 로어 타운으로 향해 걸으면 구시가와는 또 다른 현대적인 퀘벡의 모습을 볼 수 있다. 우리나라의 50배나 달하는 캐나다의 광대한 영토에 비해 퀘벡의 중심가는 그리 넓지 않아서 걸어가도 충분하지만, 워낙 겨울이 길고 눈이 많은 퀘벡인지라 겨울에는 언덕과 계단을 피할 수 있는 다른 방법을 권한다. 샤토 프롱트낙 호텔이 있는 다름 광장 한편에 어퍼 타운과 로어 타운을 잇는 퓌니퀼레르(Funiculaire) 케이블카를 타면 절벽 아래로 흐르는 세인트로렌스 강이 눈앞으로 성큼 다가오는 듯싶다가 불과 1~2분 만에 로어 타운에 닿는다. 그리고 로어 타운과 어퍼 타운을 막론하고 샤토 프롱트낙 호텔과 더불어 퀘벡을 상징하는 프티 샹플랭(Du Petit Champlain) 거리의 중심으로 곧바로 연결된다는 장점이 있다.
로컬 아티스트의 미술작품을 비롯해 나무, 유리 등의 재료로 만든 수공예품, 각종 기념품과 천연 재료로 만든 비누 등을 파는 숍이 밀집한 프티 샹플랭 거리에서는 중국산 물건이 넘나드는 다른 관광지에 비해 80퍼센트의 물건이 퀘벡에서 제작된 것이라 순수한 퀘벡의 멋을 풍기는 소품을 손에 넣을 수 있다. 강에서 그리 멀지 않은 지라 강변을 따라 둥글게 조성된 유럽풍의 카페 거리와 레스토랑에서도 가깝고, 거리 곳곳에 그려진 대규모 벽화를 보며 이들의 예술적인 감각이라든지 퀘벡의 역사를 어렴풋이 느낄 수도 있다. 퀘벡을 일구어냈다고 할 수 있는 샹플랭이라든지 영국군과 맞서 싸운 프롱트낙 백작이 벽화 속에 버젓이 서 있는가 하면 퀘벡으로 이주해 온 아이리쉬들의 삶의 모습을 묘사해 놓은 그림과 퀘벡이 캐나다에 흡수되기 전, 영국의 마지막 관료였던 이의 모습도 그 속에 담겨 있다.
그토록 퀘벡의 홀로서기를 염원하지만, 그들의 삶에 부분적으로 스며든 영국의 전통이나 문화를 배제하고서는 지금의 퀘벡이 있을 수 없었기에 그마저도 그들 삶의 테두리 안으로 끌어들이는 퀘벡커의 사람냄새 나는 모습을 볼 수 있는 곳이 이 로어 타운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