앙코르와트에서 산 10점의 그림

감명 깊게 보았던 영화 ‘화양연화’에서 양조위가 비밀을 고백하곤 봉해버린 구멍을 직접 확인해보고자, 지난해 여름, 큰맘 먹고 캄보디아 앙코르와트에 다녀왔다. 수많은 유적지를 돌아보다가 마침내 양조위의 숨결이 느껴지는 사원구멍을 발견했고, 영화 속에서 그가 했던 것과 똑같은 포즈로 사진도 찍었다. 앙코르와트 여행을 마치는 날, 이젤을 세워두고 그림을 그리던 길거리 화가들 중 한 소년이 내 시선을 잡아 끌었다. 소년이 그린 그림은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오묘하고 신비로운 느낌을 주었다. 꼭 소유하고 싶은 강렬한 충동에 이끌려 그 소년에게 그림값을 물어보았다. 그림 1점당 10달러라기에 그 소년과 나는 서툰 영어뿐만 아니라 손짓, 발짓까지 동원해 흥정에 들어갔다. 내가 그림 1점당 5달러씩 10점을 사겠다고 했더니, 그 소년은 팔을 휘두르며 절대 안 된다고 했다. 할 수 없이 가지고 있던 돈을 죄다 털어 1점당 10달러씩 5점을 사기로 했다. 내심 ‘앙코르와트의 인심은 매우 야박하군’이라 생각하며. 비행기 출발시간에 늦어 마음이 급했는데, 소년은 시간을 들여 정성스레 그림을 포장했다. 계속 시계만 바라보다가 포장을 마친 그림들을 뺏다시피 하며 허둥지둥 그곳을 떠나왔다. 무사히 집으로 돌아와 짐을 풀며 제일 먼저 그 그림들을 펼쳐보았는데 웬일인지그 안엔 10점의 그림이 담겨 있었다. 나는 분명 5점의 그림을 사고 50달러를 지불했는데 어찌된 일일까! 지금도 가끔 궁금하다.
김순 대전시 중구 태평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