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t's the Brijuni National Park
아드리아 해의 한 점 휴식

아드리아 해를 따라 길게 뻗은 해안지대를 가진 덕에 주변 내륙 국가들의 무한 질시와 부러움을 한 번에 받는 크로아티아는 고단하고 슬픈 역사를 가졌을지언정 지리적 위치에서만큼은 단연 축복받은 나라임이 틀림없다.

슬로베니아와 인접한 크로아티아 북서쪽의 풀라(Pula)에서도 작고 조용한 마을 파자나(Fazana)의 선착장 앞 노천카페에 앉아 페리를 기다리고 있으려니 하나 둘 사람들이 모여들기 시작한다. 몇 되지 않는 테이블에 앉아 붉은 타일의 벽에 등을 기대고 있으면 바다 저 건너편으로 보이는 브리유니 섬(Brijuni Island)이 원근감을 느낄 수 없을 만큼 가깝게 보인다.
북아드리아 해 연안에는 크로아티아령의 섬이 12개 있는데, 그중 지중해 털가시나무와 오크가 숲을 이루는 브리유니 섬은 크로아티아의 8개 국립공원 중 한 곳으로, 뱃길로 3킬로미터 남짓 떨어진 파자나 항구와 브리유니 섬 사이를 1시간 간격으로 오가는 페리에 오르면 15분 만에 섬에 닿는다. 여느 골프 클럽에서만큼 새파란 잔디는 기대할 수 없지만 유럽에서 가장 오래 되었다는 골프코스와 호텔, 싱싱한 시푸드를 제공하는 레스토랑, 흔적만 남은 로마의 유적 등이 736 헥타르의 섬 곳곳에 흩어져 있고, 섬 안팎을 도는 1시간 짜리 트레인을 타면 그다지 크지 않은 브리유니를 거의 돌아볼 수 있는 정도이지만 페리가 쉬지 않고 운항하며 사람들을 섬으로 데려오는 건 그만큼 섬을 찾는 사람들이 많다는 얘기다. 물론 그들 대다수가 인근 유럽 국가의 관광객들이지만.
수도 자그레브나 유명 관광도시인 두브로브니크에서 그리 가깝지 않고, 그렇다고 아주 럭셔리하다거나 뭔가 특별한 이벤트나 볼거리가 있지도 않은 이 섬에 관광객들의 발걸음이 끊이지 않는 데는 크로아티아의 지난한 역사와 관련이 있다. 고대 로마인들이 살다가 떠난 후, 중세에는 베니스 지역에 속했다가 1800년대 초반에는 오스트리아 왕조의 지배를 받았는데, 섬의 채석장에서 돌을 실어다 비엔나와 베를린으로 날랐고, 섬에 군항이 건설되며 오스트리아의 굳건한 요새로 변신하기도 한다.
돌부리에 차이듯 주위 강대국의 세력권에서 오가던 섬이 변신을 시작한 것은 1893년에 들어서다. 빈의 부유한 철강제조업자였던 파울 쿠펠뷔저가 섬을 사들였던 당시, 섬 안팎에서 말라리아가 창궐했고 그 주위의 바다까지도 오염된 브리유니는 황폐할 대로 황폐한 상태였다. 이에 쿠펠뷔저는 노벨 과학상 수상자였던 로베르트 코흐를 섬으로 초대했고, 병의 원인이었던 학질모기를 찾아내자 섬 곳곳에 나무를 심고 호텔과 레스토랑, 비치 리조트, 카지노 그리고 요트가 정박할 수 있는 항구를 지으며 섬을 재단장했으며, 연달아 골프장을 만들고 요트 레이스와 음악 콘서트, 문학회 등을 개최해 브리유니에는 오스트리아 왕족을 비롯한 귀족과 비엔나 상류층의 방문이 이어졌다.

버려진 섬에서 아드리아 해의 말끔한 해변 휴양지로 변신은 했지만, 브리유니의 번성은 오래가지 못 했다. 제1차 세계대전이 일어나며 섬은 이탈리아령으로 넘어갔고, 제2차 세계대전 후에는 유고슬라비아 연방의 일부가 되었다. 요시프 브로즈 티토 유고슬라비아 대통령의 사유지가 된 브리유니의 호텔과 레스토랑, 골프장이 재정비되었고, 이국적인 동물을 좋아하던 대통령의 취향에 따라 얼룩말이며 코끼리를 들여와 섬 한 편에는 미니 사파리까지 들어선다. 거의 100여명에 달하는 외국 지도자들과 엘리자베스 테일러와 리처드 버튼, 소피아 로렌과 카를로 폰티 등 스타들이 섬을 방문한 것도 이 무렵이다. 그러다 크로아티아가 독립하며 쿠펠뷔저가 개최했던 국제 폴로 토너먼트를 재개하고, 요트 관련 시설을 다듬으며 지금에 이르렀다.
한편, 조금은 새로운 목적으로 브리유니를 찾는 사람들이 또 있다. 크로아티아와 인근 국가의 골퍼들이 그 주인공으로, 섬에 요트 정박항이 있으니 직접 자신의 요트를 몰고 와 라운드를 하는 경우가 많지만 가끔은 파자나 항에서 클럽을 맨 채 페리를 이용하기도 한다. 사실 ‘골프 코스’로 보자면 섬에 물이 부족해서 잔디를 조성할 만한 여건이 못 되니 그린이 흙 반, 잔디 반으로 브리유니는 추천할만한 곳이 못 된다. 그럼에도 카트를 몰고 골프 코스 사이로 난 오솔길을 따라가다 보면 라운드에 열중하고 있는 골퍼들의 모습이 종종 보이는데, 만약 브리유니에서 골프를 치다 어디선가 사슴이 불쑥 나타나도 놀라지 마시길. 국립공원이니만큼 자연이 그대로 보존되는 섬 곳곳에 사슴무리가 살고 있어서 골프 코스고 어디고 가릴 것 없이 불쑥 나타났다 사라지곤 하니 말이다. 저러다 공에라도 맞으면 어쩌나 싶지만, 사람들과 살아가는 방법을 터득한 사슴은 언제나 적절한 거리를 유지한다.
사슴이 뛰어다니는 골프장과 로만 유적, 코끼리와 얼룩말의 사파리까지 선뜻 매치하기 힘든 풍경이 펼쳐지는 브리유니 섬은 그 엉뚱한 조합만으로도 충분히 아름다운 곳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