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awn of Happiness 
역사가 숨 쉬는 행복의 새벽

지붕이 무너져 내리고 불상의 형태가 훼손되었다고 해서 감동까지 반감되는 것은 아니다. 폐허가 된 모습만 봐도 그 옛날 수코타이의 찬란했던 역사를 쉽게 짐작할 수  있으니 말이다. 지금으로부터 700여 년 전, 당시 이곳을 지배하던 크메르 민족의 앙코르 왕조를 물리치고 태국 최초로 통일 왕국을 설립한 수코타이 왕국의 수도 수코타이. 그곳에서 번성했던 타이족의 과거를 만났다.

수코타이(Sukhotai)에 간다고 하자 태국 사람들은 이내 얼굴에 화색을 띠며 반가워한다. 오랜 역사를 지닌 유적이 남아 있는 태국 최초 도시라는 등, 그곳에서 태국 문자가 시작됐다는 등 누구 하나 그냥 지나치는 법이 없다. 새벽 4시 30분에 방콕의 호텔을 나와 핏사눌록(Phitsnulok) 행 비행기를 타고 1시간, 그리고 그곳에서 또다시 1시간가량 차를 타고 가는 만만치 않은 여정임에도 피곤한 줄 몰랐던 건 방콕에서 만난 이들이 수코타이에 대해 이야기를 하며 보였던 자부심 가득한 표정 때문이리라. 그리고 분주한 도심의 모습 그대로인 방콕과는 전혀 다른 분위기를 자아내는, 오랜 역사를 지닌 사원과 불상이 가득한 고도(古都)의 풍경 또한 새벽같이 일어나 달려온 수고로움을 보상하기에 충분했다.

태국 최초의 왕국이 열린 곳
수코타이는 방콕에서 북쪽으로 약 420킬로미터, 차오프라야 강의 한 지류인 욤(Yom) 강이 바라보이는 곳에 위치한다. ‘행복의 새벽’이라는 뜻을 지닌 수코타이는 수코타이 왕국의 수도였던 곳으로 타이족 최초의 독립국이기도 하다. 9세기경, 중국 윈난성에서 남하한 타이족은 12세기경에 현재 태국의 중북부에 정착하게 되었는데, 당시 동남아에 거대한 제국을 형성하고 있던 앙코르 세력이 약화되자 1238년 타이족 수장이 이곳에 태국 최초의 왕국 수코타이를 세우게 되었다. 수코타이 왕국은 아유타야(Ayutthaya) 왕국이 들어서기까지 1세기 반 동안 이어졌는데, 결코 길지 않은 시간이지만 태국의 종교인 불교를 국교로 삼고, 태국의 법률과 문자를 완성하였으며 북쪽으로는 지금의 라오스, 서쪽으로는 안다만 해, 남쪽으로는 말레이 반도까지 영역을 넓히는 등 수코타이는 태국의 문화적, 사회적 기틀을 마련하고 태평성대를 누린 시기로 기록되고 있다.
그리고 이 같은 수코타이 왕조의 중요 유적은 구시가지에 있는 수코타이 역사공원(Sukhothai Historical Park)에서 만날 수 있다.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된 역사공원은 동서 1.3킬로미터, 남북 1.8킬로미터에 걸쳐 세 겹의 성벽으로 둘러싸여 있으며 성문으로 난 도로를 따라 사방으로 유적지가 이어져 있는데 성벽 내부는 충분히 걸어서 볼 수 있지만 성벽 밖에 자리한 유적까지 둘러보려면, 공원 내에서 자전거를 대여하거나 오토바이 택시 또는 자동차를 이용하는 것이 좋다.

700년의 세월을 거슬러 올라가고
역사공원 내에 들어서자 해자 건너편으로 펼쳐진 왓 마하탓(Wat Mahathat)의 모습이 제일 먼저 눈에 들어온다. 우뚝 솟은 기둥 사이에 거대한 불상이 자리하고, 그 뒤로 연꽃 봉우리를 형상화한 수코타이의 독자적인 형식인 연꽃 체디(Chedi)와 이를 에워싸듯 서 있는 다양한 양식의 불탑, 그리고 주변의 수많은 불상과 사원이 들어선 왓 마하탓은 보는 이를 압도하리만치 장엄함을 풍기며 과거의 영광을 고스란히 뿜어낸다. 왓 마하탓은 수코타이를 건립한 이트라딧(Intradit) 왕 때 짓기 시작해 1345년 리타이(Li Thai) 왕 때에 완성된 수코타이 왕국의 왕실 전용 사원. 근처에는 왕궁터의 흔적이 남아 있고 주변은 물이 가득한 사각형의 해자가 둘러싸고 있는데, 안으로 들어가 중앙에 있는 기둥 사이를 따라 8미터 높이의 불상 앞에 서자, 가부좌를 튼 불상의 온화한 미소가 아늑함을 안겨준다. 경내에는 200기에 달하는 탑과 18채의 예불당이 퍼져 있지만 온전한 형태를 찾기란 거의 불가능하다. 지붕은 온데간데없이 기둥과 내부에 있었을 불상의 모습이 남아 있는 것은 그나마 보존상태가 좋은 것으로, 대부분 기둥도 없이 모두 무너져 내려 기단만 남아 있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하지만 붉은 벽돌의 폐허일지라도 그 풍광은 이곳을 찾은 이들을 순식간에 700년 전으로 데려가 과거의 모습을 떠올리게 한다.
왓 마하탓의 남서쪽, 옥수수 모양의 세 개의 탑이 서 있는 왓 시 사와이(Wat Si Sawai)는 원래 힌두교 사원이었던 것을 수코타이 왕조가 들어서면서 불교 사원으로 개조한 것이다. 가운데 20미터 높이의 프랑을 포함해 3개의 크메르 양식 탑당인 프랑이 서 있는데 불탑에 남아있는 정교한 조각 장식이 볼거리다. 연못 위에 자리한 왓 트라팡곤(Wat Traphang Ngoen)과 왓 트라팡통(Wat Traphang Thong) 등을 지나면 역사공원 북쪽에서 의연하게 앉아 있는 인물의 동상을 볼 수 있는데 이는 수코타이의 3대 왕인 람캄행(Ramkhamhaeng, 1279∼1300년) 왕. 람캄행은 태국 문자를 만든 왕으로 수코타이 시대의 최고 전성기를 이룬 이상적인 군주로 오늘날까지 칭송받고 있어 참배를 하려는 태국인들을 심심찮게 볼 수 있다. 왕의 동상 옆에는 그의 생애와 수코타이 시대의 문화, 예술 등에 관해 적어 놓은 태국 문자로 쓰인 최초의 비문이 세워져 있는데 비문에는 당시 수코타이를 일컬어 ‘밭에는 쌀이, 물에는 고기가 있다.’라는 글귀로 영화로운 모습을 표현해 놓았다고 한다. 이곳에 있는 것은 복제품이며 왕궁터에서 발견된 원본은 현재 방콕 국립 박물관에 보관되어 있다.

평화로운 수코타이의 저녁
자전거를 너무 오래 세워둔 듯싶어 이번에는 조금 떨어진 성벽 외부로 가보기로 했다. 성벽의 북문에서 2킬로미터 거리에 자리한 왓 시춤(Wat Si Chum)은 수코타이에서 가장 큰 부처가 모셔져 있는 곳으로 위압적인 자세로 앉아 있는 거대한 불상의 모습이 인상적인 곳이다. 왓 시춤 앞에 다다르자 ‘몬돕(Mondop)’이라 불리는 돌로 쌓은 사각 불당 안에 들어 있는 부처의 모습이 눈에 들어온다. 몬돕은 너비 32미터, 높이 15미터, 벽의 두께가 3미터로, 과거에는 벽면 왼쪽의 작은 문에 난 계단을 통해 불상의 머리 부분에 해당하는 곳까지 올라갈 수 있어 역대 왕들이 이곳에서 마치 불상이 이야기하듯 계시를 내렸다고 한다. 불상은 멀리서 보면 그 크기를 짐작할 수 없지만 가까이 다가갈수록 엄청난 크기에 경이로움이 느껴진다. 그리고 본당 내부를 들어설 때면 불상에서 느껴지는 포스에 걸음걸이마저 조심스러워질 정도. 몬돕 안에 홀로 앉아 있는 너비 11미터, 높이 15미터의 이 좌불상은 한 손은 다리에 올려져 있고, 다른 한 손을 손가락을 무릎 밑으로 내리고 있는데 여기에는 악마의 군대가 쳐들어오자 땅의 여신을 부르기 위해 한 손을 아래로 내린 것이라는 전설이 전해져 온다.
어느덧 하루해가 저물 때가 되자 역사공원을 안내하던 가이드는 우리 일행을 재촉한다. 연못 중앙의 작은 섬에 위치한 왓 사시(Wat Sa Si) 너머로 지는 아름다운 석양을 보기 위해서다. 역사공원 내부 왓 마하탓 북서부에 있는 왓 사시는 스리랑카 양식의 불탑을 중심으로 크고 작은 아홉 개의 불탑이 서 있는 사원으로 호수에 둘러싸여 있어 운치를 더한다. 특히 사원 안의 걷는 부처(Walking Buddha)는 수코타이 미술품의 최고라 일컬어지는데 여성스러운 자태를 뽐내며 걷는 모습이 우아함을 전한다. 현재 이곳에 있는 것은 복제품이며 진품은 역사공원 입구에 있는 람캄행 국립박물관(The Ramkhamhaeng National Museum)에 있다. 박물관에는 이 외에도 수코타이와 그 주변 지역에서 발굴된 불상과 조각상, 도자기 등이 전시되어 있다.
사원 너머로 지는 해를 감상하려면 왓 사시가 있는 연못 건너편에서 바라봐야 한다. 붉은색으로 변한 태양이 불탑마저 붉게 물들이며 산 너머로 지는 광경은 형언할 수 없는 감동을 가져다주며, 해가 지고 난 뒤 예쁘게 물든 하늘 아래 반짝이는 연못에 비친 사원의 실루엣은 태국의 따뜻한 날씨만큼이나 마음속 깊은 곳까지 포근함을 전해준다.

수코타이의 문화가 있는 곳, 시 사차날라이
수코타이까지 갔다면 수코타이에서 북쪽으로 50킬로미터 거리에 있는 시 사차날라이(Si Satcha nalai)에도 들러보자. 시 사차날라이는 수코타이 시대 제2의 도시로 이곳 역시 140여 개의 유적을 보유한 역사공원이 있어 수코타이 왕국을 이해하는데 도움을 준다. 스리랑카 양식으로 지어진 왓 창롬(Wat Chang Lom)은 성벽 내의 중심사원으로, ‘코끼리가 에워싼다’는 뜻처럼 39개의 코끼리 조각상이 대형 불탑 아래 장식되어 있으며 20개의 부처상이 불탑 주변으로 모셔져 있다. 왓 체디체트태오(Wat Chedi Chet Thaeo)는 7개의 대형 불탑과 26개의 소형불탑으로 이루어진 사원. 가운데에 높이 서 있는 불탑은 연꽃 모양의 수코타이 양식이며 주변으로는 미얀마, 크메르 등 다양한 양식의 사원이 함께 자리한다. 왓 낭 파야(Wat Nang Phaya)에서는 수코타이 시대의 패턴이 남아 있는 벽면을 볼 수 있다. 유일하게 남아 있는 이 벽에는 중국 명나라 때의 꽃 문양과 치앙마이 란나 왕조 시대의 문양 등 다양한 문화가 복합된 수코타이의 전형적인 문양이 조각되어 있는데 오늘날 수코타이를 연구하는 중요한 자료가 되고 있다.
역사 유적 외에도 시 사차날라이에는 수코타이의 전통 의상과 장신구 등을 전시한 박물관이 있어 또 다른 수코타이의 옛 문화를 엿볼 수 있다. 신시가지 근처에 자리한 사톤 직물 박물관(Sathorn Gold Texitles Museum)은 100년 전 수코타이의 전통 의상을 전시해 디자인이나 스타일의 변화를 한 눈에 살펴 볼 수 있으며, 1920년에 문을 연 솜사마이 골드(Somsamai Gold)는 금속공예품을 만드는 곳이다. 수코타이 왕조의 장신구와 사원에 있는 문양을 따서 팔찌나 목걸이, 귀걸이 같은 악세서리의 문양을 만드는데, 금가루를 하나하나 손으로 붙여 만들기 때문에 어떤 것은 하나 만드는데 석 달씩 걸릴 정도로 고난도의 작업을 요한다. 수코타이의 독특한 스타일이 담긴 이 장신구는 섬세함이 요구되는 만큼 가격이 만만지 않지만 수코타이 지역 뿐 아니라 태국 전역으로 판매된다고 한다.

순박한 미소는 이곳을 더욱 아름답게 한다
다시 방콕으로 돌아가기 위해 핏사눌록으로 향했다. 핏사눌록에는 꼭 들러야 할 곳이 하나 있는데 바로 태국에서 가장 아름답다는 부처상이 있는 왓 프라시 라타나 마하탓(Wat Phra Si Rattana Mahathat). 핏사눌록 역에서 도보로 10분 거리에 자리한 이곳은 금으로 장식된 부처가 사람들의 소원을 이뤄준다는 이유 때문인지 참배를 올리는 태국인과 관광객으로 가득하다. 안에서는 불상 앞에 무릎을 꿇고 앉아 28개의 막대가 든 통을 흔들어서 떨어지는 한 개의 막대로 미래를 점치는 사람들을 볼 수 있는데, 호기심에 기자 역시 조심스레 통을 흔들어 본다. 당첨번호 13번. 숫자 별로 미래를 예언한 글귀가 적힌 종이에 따르면 남자친구가 생기고 하는 일마다 행운이 따른다니, 믿거나 말거나 이지만 마음만은 부자가 된 듯한 기분이다.
날이 어두워지면 곳곳에서 트라이시클이 등장한다. 1인당 150바트를 내면 시내 중심의 톱랜드 호텔(Topland Hotel)에서 출발, 트라이시클을 타고 야시장을 한 바퀴 둘러볼 수 있는데 마주 오는 트라이시클을 탄 관광객과 손을 흔들며 누비는 밤거리는 또 다른 재미를 선사한다. 야시장에서는 난(Nan) 강의 동쪽, 포장마차 거리에 있는 ‘날으는 채소볶음(Flying Vegetable)’을 놓치지 말 것. 센 불에 볶은 채소를 반대편 계단 위에 올라선 사람에게 ‘휙’ 던지면 한 치의 실수도 없이 접시에 받아내는데 그 신통한 광경에 절로 환호와 박수가 터져 나온다. 원하면 직접 계단 위에 올라서서 날아오는 채소를 받을 수 있으므로(물론 손님에게는 받기 편하게 큰 쟁반을 준다) 도전해보는 것도 좋을 듯.
늦은 밤, 방콕으로 돌아오는 비행기 안에서 1박2일 동안 만난 수코타이를 떠올려 본다. 어쩌면 그곳은 태국인들에게 단순한 역사 도시 이상의 소중한 곳이리라. 그들의 역사가 시작된 곳이고 그들의 문자가 탄생한 시기이며 태국인들의 마음속 깊이 자리한 불교가 정착한 때이기 때문이다. 수코타이에 외국인 못지않게 많은 태국인들이 있었던 것은 아마 이런 이유 때문이 아닐까? 사진을 찍기 위해 장사하는 아주머니를 꽤 오랜 시간 붙잡았는데도 아무런 대가도 바라지 않고 그저 코코넛 하나 사라며 겸연쩍은 미소를 보내는 순박한 수코타이 사람들. 대도시에서는 보기 어려운, 때묻지 않은 그들의 포근한 미소는 태평성대를 누렸다는 수코타이의 찬란했던 옛 모습과 맞물리며 그들의 과거를 더욱 따뜻하게 기억하게 한다.

Tip. Hotels in Sukhothai  
타라부리 리조트_Tharaburi Resort
2005년에 문을 연 타라부리 리조트는 수코타이 역사공원의 동쪽 문으로 나와 5분 거리에 자리한다. 20개의 객실을 갖춘 고급스럽고 아늑한 분위기의 리조트로 저마다 다른 객실의 인테리어가 특징. 3개의 디럭스룸은 각각 중국, 모로코, 일본 스타일로 꾸며져 있으며, 패밀리 스위트룸은 발리와 태국의 혼합 스타일로, 태국 스타일의 객실 내부에 중국 가구를 배치한 그랜드 디럭스룸은 8개의 객실마다 각각의 색깔을 정해 서로 다른 분위기를 자아낸다. 수영장과 태국 음식을 맛볼 수 있는 레스토랑을 갖추고 있다.
주소 321/3 M. 3, Oldcity, Muang, Sukhothai
문의 +66-55-697-132, www.tharaburiresort.com          
  
레전드 수코타이_The Legendha Sukhothai
수코타이 역사공원 근처에 자리한다. 작년 4월에 오픈한 이곳은 객실이 독립된 방갈로 형태로 지어진 태국 스타일의 리조트로, 리조트에 조성된 정원과 나무로 지어진 객실은 자연의 정취를 만끽하기에 좋다. 객실은 총 64개로 슈피리어 룸과 디럭스 룸, 그리고 빌라로 구분되며 수영장과 레스토랑이 갖춰져 있다.
주소 214 Moo 3 Muangko, Muang, Sukhothai
문의 +66-55-697-249, www.legendhasukhothai.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