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ind Rome
in Tunisia
튀니지에서 로마문명을 만나다

기원전 264년부터 기원전 133년 사이. 로마인에게 이 시대는 한참 세를 확장해 나가던 대외 전쟁의 시대였다. 독자적인 문화를
일궈나가던 튀니지 역시 이 전쟁의 소용돌이에 휘말렸다. 역사의 수레바퀴가 무심히 굴러간 흔적을 좇아, 튀니지를 여행해 보는 건 어떨까?

기원전 133년. 아프리카 북단에서 독자적인 문명을 일구며 번영하던 도시국가 카르타고는 로마에 지중해 지역의 주도권을 넘겨준다. 이후, 카르타고와 바톤 터치를 한 로마는 지중해 전역으로 세를 확장해 나갔고, 그 찬란했던 로마문명의 흔적은 수십 세기가 지난 지금까지도 튀니지 전역에 또렷하게 남아 있다.

모자이크의 집결지, 바르도박물관
튀니스 시내에서 13킬로미터 정도 떨어진 곳에 자리한 바르도 박물관(Bardo Museum)은 튀니지 전역에서 발견된 모자이크들의 집결지다. 카르타고와 로마, 초기 기독교와 이슬람 시기까지 시대별로 구분되어 있는데, 그중 기원전 2세기부터 기원후 7세기까지 만들어진 로마시대의 모자이크들이 가장 볼만하다. 바르도 박물관에는 그리스로마 신화에서 모티브를 얻어 제작한 모자이크가 특히 많다. 바다의 신 넵튠의 승리와 항해 도중 사이렌의 유혹을 받는 율리시즈 일행을 묘사한 모자이크, 바다괴물에게 잡혀 있는 안드로메다 공주를 구하는 페르세우스의 용맹한 모습이 담긴 모자이크가 대표적이다.

영웅 한니발의 도시, 카르타고
카르타고에 도시를 세운 최초의 민족은 페니키아인들이라고 한다. 기원전 814년경, 지중해의 패권을 장악하고 있던 페니키아인들은 북아프리카 점령지를 관리하기 위해 삼면에 바다를 낀 좁고 험준한 벼랑 꼭대기에 카르타고를 건설한다. 
해상권을 장악해 막대한 부를 거둬들이던 고대도시 카르타고를 역사 저편으로 몰아낸 것은 바다 건너에서 한참 위세를 떨치며 승승장구하던 로마였다. 세 차례에 걸쳐 치러진, 두 국가 간의 전투는 보통 ‘포에니(Poeni) 전쟁’이라 불리는데, 카르타고 군을 이끈 영웅 한니발의 이름을 따 ‘한니발 전쟁’이라 부르기도 한다. 지금까지도 인구에 회자되는 ‘칸나이(Cannae) 전투’를 포함해, 카르타고는 로마와 치른 두 차례의 전쟁에서 만만치 않은 저력을 과시했지만, 결국 세 번째 전쟁에서 로마군에게 함락되고 만다.
포에니 전쟁에서는 승리를 거뒀지만, 로마라고 해서 돌고 도는 역사의 수레바퀴를 벗어날 수는 없었다. 425년, 이 지역을 점령한 반달족은 로마인들이 소중해마지 않던 신상의 머리를 죄다 쳐냈다. 비르사 언덕 한가운데, 재판이 이뤄졌던 바실리카 광장에 장식된 동상 가운데에는 이때 파손된 것들이 꽤 많다.
언덕 끝에 자리한 비르사(Byrsa) 유적터에는 수십 세기 전에 지어진 집터와 기둥이 남아 있다. 이곳은 페니키아 시대 중산층 시민의 거주지로, 찬찬히 뜯어보면 거실과 부엌, 작은 방이 그려진다. 집터 안팎에는 커다란 대포알들이 놓여 있어, 전쟁의 흔적을 더듬어 보게 한다.
카르타고 국립고고학박물관(Musee de Carthage)에는 핵심 사료와 유적들이 집성되어 있다. 이 가운데 토핏은 첫 아들을 희생해 풍요를 비는 제의를 돌 위에 기록한 것으로, 이 악습은 기원전 146년에야 비로소 사라졌다고 한다. 비둘기 모양으로 빚은 어린이용 우유병이나 스핑크스를 흉내 내어 만든 주전자 등 익살스런 토기들도 박물관을 둘러보는 재미를 더한다.
박물관에서 15분 정도 걸으면 고대 원형극장에 닿는다. 미하엘 엔데의 동화 ‘모모’에 등장할 법한 고적한 유적지다. 지은 지 1,800년 가까이 된 이 원형극장은 원래 1만여 명을 수용할 수 있는 규모였는데 건물 한쪽이 완전히 무너진 지금은 그 절반 정도밖에 수용할 수 없다고 한다. 평상시엔 찾는 이가 별로 없어 쓸쓸하게 느껴지는 곳이지만, 매년 7~8월 경이면 영화와 연극, 음악을 아우르는 다채로운 문화 축제가 열려 카르타고의 여름밤을 흥겹게 달군다.

글래디에이터의 촬영지, 엘젬
수도인 튀니스에서 남쪽으로 3시간여 내려가면 또 다른 로마유적과 마주하게 된다. 수스와 스펙스 사이에 자리한 엘젬(El Djem)의 원형경기장은 튀니지 곳곳에서 만나게 되는 로마시대 유적들 중에서도 규모나 보존상태가 월등히 뛰어나다. 때문에 검투사를 주인공으로 한 영화 ‘글래디에이터’를 비롯해 몇몇 할리우드 영화들의 로케이션지로 선택되어 이곳에서 중요한 장면들이 촬영되었다고 한다.
원형경기장 한가운데의 광장은 오래 전 글래디에이터들과 맹수들이 긴장 속에서 시합을 기다리던 대기 장소로, 관람석은 왕과 귀족, 평민과 노예 계급 등 신분에 따라 3개 좌석으로 나뉘어 있다. 가장 전망이 좋은 첫 번째 열은 왕과 귀족이, 두 번째 열은 일반 시민들이 각기 차지했다. 경기를 관람하기에는 적합하지 않았을 지도 모르지만, 지금은 신분이 낮은 사람들이 주로 이용했던 세 번째 열에서 바라보는 경기장 안팎의 풍경이 가장 인상적이다.

작지만 의미 있는 도시, 가프사
가프사(Gafsa)는 토쥐르로 가는 길에 있는 작은 마을로, 로마 시대에 만들어진 수영장이 남아 있어 주목을 받는다. 수영장은 하비브 부르기바(H abib Bourgiba) 거리 남쪽 끝에 지어졌는데 왼쪽의 작은 수영장은 어린이용, 오른쪽은 어른 전용 수영장이다. 처음 지어졌을 당시, 밤에는 여성의 출입만 가능했다고 한다.
가프사를 주목하는 또 다른 이유는 8,000년 전 동쪽에서 옮겨와 튀니지로 흘러 들어온 최초의 정착민인 캅사(Capsa)의 존재다. 이들은 기원전 4500년까지 튀니지 남부에 살았는데, 그 당시의 돌조각과 두개골 일부가 이곳에서 발견되며 인류학과 고고학계의 관심을 동시에 받고 있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