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afe
그곳에선 진한 커피 향이 난다

예쁜 카페와 레스토랑이 늘어선 번화가든, 서민들의 삶이 숨 쉬는 시장 골목 한구석이든, 호치민에서는 발길 닿는 곳마다 진한 커피 향이 코끝을 자극한다. 그린 파파야의 향기 내지는 달콤한 열대 과일 향이나 더운 열기와 높은 습도로 인한 텁텁한 냄새에 반응할 준비를 하고 있던 내 후각은 예상치 못한 호강을 누리고 있었다.

활기찬 하루를 여는 커피 한 잔 프랑스의 영향을 받아 ‘티타임’이 발달했다는 사실은 알고 있었지만 이 정도일 줄은 몰랐다. 뜨거운 태양 탓에 아무리 이른 새벽부터 하루를 시작한다 해도, 또 오늘이 일요일이라는 사실을 감안한다 해도, 오전 9시도 안 된 시각에 빈자리 하나 없이 카페를 가득 메운 사람들이라니! 그 구성원 또한 다채롭다. 엄마를 따라온 서너 살도 안돼 보이는 꼬마부터 중학생 정도로 보이는 학생, 중학생 정도의 손자가 있을 법한 노인까지 말 그대로 남녀노소 할 것 없이 다양한 사람들이 친구와 함께, 연인과 함께, 가족과 함께 테이블 위에 커피 한 잔을 올려둔 채 도란도란 이야기꽃을 피우고 있었다. 재미있게도 우리나라 카페에서는 보기 어려운 광경인 건장한 남자들이 카페에 모여 앉은 모습도 이곳에서는 흔한 일.
베트남 사람들이 아침에 일어나서 가장 먼저 하는 일이 바로 커피를 마시는 일이다. 이른 새벽, 거리에 나가보면 길거리 노점에서 커피를 마시며 활기찬 하루를 시작하는 이들을 쉽게 만날 수 있다. 시내의 카페들도 오전 6시면 문을 연다고 하니, 일요일 오전 9시에 카페가 사람들로 가득 찬 건 이곳에선 그리 놀랄 일이 아닌 것이다.
프랑스 작가 탈레랑이 말했던가. 커피의 본능은 유혹이라고. 이 명언은 기자에게 역시 그대로 적용돼 카페를 가득 메운 커피 향의 유혹을 지나치지 못하고 자리를 잡았다. 커피를 주문하자 종업원은 즉석에서 원두를 갈아 커피를 내린 뒤 달달한 연유와 함께 내어주는데, 한 모금 마시자 ‘과연 한 잔을 다 마실 수 있을까?’ 하는 의문이 들 만큼 평소 마시던 커피보다 서너 배는 진하고 강한 맛이 입 안에 퍼진다. 그리고 고백하건대(스스로 던졌던 질문이 무색하게도), 그날 이후 호치민에서의 아침은 늘 커피와 함께 시작됐다.

세계 제2의 커피 대국 베트남이 세계 2위의 커피 수출국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는지? 어지간한 커피 애호가들도 베트남이 매년 70만 ~80만 톤의 커피를 생산하는 국가이며 그중에서도 인스턴트 커피로 주로 쓰이는 로부스타(Robusta) 커피 원두의 세계 최대 생산국이라는 사실을 전하면 전혀 의외라는 반응을 보인다. 브라질 다음에는 으레 콜롬비아겠거니 하는 것이다. 하지만 세계 11위의 커피 소비국인 우리나라에서 가장 많은 양의 커피를 수입하는 나라 역시 베트남으로, 총 커피 수입액의 40퍼센트를 차지한다고 하니 국내의 웬만한 인스턴트용 커피는 대부분 베트남 산이 되는 것이다.
이처럼 커피 문화가 발달한 베트남의 커피 생산 역사는 프랑스 식민 시대로 거슬러 올라간다. 베트남에서 처음 커피가 재배된 것은 19세기 중반으로 당시 베트남을 지배했던 프랑스는 베트남 중남부 지방에 대규모의 커피농장을 세우고 재배를 장려했다. 자 라이(Gia Lai), 다크 락(Dak Lak) 같은 베트남 중부고원지대는 커피 생산에 적합한 기후와 토양 등의 조건을 갖추었기에 농민들의 노동력 착취를 통한 대량 커피 생산 장려는 수탈의 목적과 더불어 커피 향이 그리웠을 그들에게 더할 나위 없이 좋은 정책이었으리라.
이렇게 시작된 베트남 커피는 베트남 전쟁 후에 외화벌이를 위한 정부의 강제 이주정책으로 소수민족들에 의해 계속 재배되었고, 저품종인 로부스타 커피뿐 아니라 고품종인 아라비카(Arabica), 세계에서 가장 비싼 커피 중 하나로 구분되는 위즐(Weasel, 다람쥐 배설물에서 추출한 커피) 등 다양한 커피 품종 개발과 블랜딩 기술의 발전에 힘입어 오늘날 커피 수출량 세계 2위라는 타이틀을 거머쥐게 되었다.

호치민에는 스타벅스가 있다? 없다! 이처럼 그들의 삶 깊숙이 자리 잡은 베트남의 커피 문화를 고스란히 누리려면, 아니 프랑스 문화가 배어든 제대로 된 베트남을 만나려면 카페 투어는 필수코스다. 호치민에는 프랑스의 영향을 보여주듯 세련된 인테리어와 이국적인 정취를 풍기는 다양한 카페가 즐비해 커피 애호가뿐 아니라 뜨거운 태양을 피해 느긋한 휴식을 취하고자 하는 여행객들의 발길을 이끄는데, 여기서 재미있는 것은 세계 어딜 가나 눈에 띄는 스타벅스를 찾을 수 없다는 사실. 사회주의 국가인 베트남이 미국 자본주의를 상징하는 스타벅스의 진출을 허용하지 않는 것도 이유지만, 그보다는 베트남의 독특한 커피 문화가 깊게 뿌리 내리고 있기 때문이다.
스타벅스는 없지만 베트남에는 베트남의 스타벅스라 불리는 쭝 응우옌 커피(Ca Phe Trung Nguyen)가 있다. 호치민 거리 곳곳에서 쉽게 매장을 볼 수 있는 쭝 응우옌 커피는 베트남 최대의 토종 커피 체인점으로, 달랏 지방의 부온 마 투엇(Buon Ma Thuot)에서 생산되는 커피 원두를 즉석에서 갈아 커피를 제공하는 덕에 매장 안은 늘 향긋한 커피 향으로 가득하다. 1998년 네 명의 친구가 모여 호치민에 1호점을 오픈한 이후 현재는 베트남 전역은 물론 싱가포르와 중국, 일본 등 전 세계 40여개 국에 1천여 개 이상의 프랜차이즈를 운영하고 있으며 2003년부터는 ‘G7’이라는 프리미엄 인스턴트 커피를 출시, 미국, 영국, 프랑스 등 세계 16개 국으로 수출할 정도로 높은 평가를 받고 있다.
쭝 응우옌이 편안하면서 서민적인 분위기를 풍긴다면 하이랜드 커피(Highlands Coffee)는 세련된 인테리어를 갖추고 있어 젊은 층이 즐겨 찾는 곳이다. 2002년 호치민에 첫 매장을 오픈, 현재 호치민에 40개, 베트남 전역에 60개의 매장을 가지고 있는 하이랜드 커피는 쭝 응우옌과 쌍벽을 이루고 있는 베트남 대표 커피 브랜드로, 야외 테라스 석이 마련된 고급스러운 분위기 속에서 여유로운 티타임을 즐기기에 좋다.
두 개의 유명 브랜드 커피를 맛보았다면 이번에는 전혀 색다른 분위기의 카페를 찾아갈 차례. 노트르담 성당 근처 알렉산드르 드 로드(Alexandre De Rhodes) 거리에 자리한 윈도우즈 카페(Window’s Caf?는 오토바이가 빼곡히 주차되어 있는 입구에서부터 꿍꽝거리는 음악이 들려온다. 분명히 아직 점심시간도 되지 않은 오전이건만, 사람들로 가득한 어두운 카페 내부에는 DJ까지 있어 마치 나이트클럽을 연상케 한다. 호치민 3구역에 있는 사오 카페(SAO Caf? 역시 비슷한 분위기로, 귀를 울리는 록 음악과 대형 TV화면을 갖춘 카페는 베트남 젊은이들에게 최고 인기라고. 클럽이나 호프집이 아닌 카페에서 아침부터 들려오는 강렬한 록 음악이 다소 어색하면서도 색다른 분위기에 흥이 난다.
이왕 카페투어를 시작했다면 커피뿐 아니라 독특한 모양의 달콤한 아이스크림도 함께 맛보는 건 어떨까? 호치민을 소개하는 가이드북에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카페 패니(Fanny)는 노란색 벽의 프랑스식 건물이 화사한 분위기를 안겨주는 곳이다. 카페의 세련된 인테리어와 분위기도 그렇지만 이곳이 특히 인기있는 건 재미난 모양의 아이스크림 때문. 시클로를 비롯한 트라이시클, 논(Non, 베트남 전통모자)을 쓴 아오자이 여성 등 베트남의 특성을 고스란히 드러내는 아이스크림을 맛보기 위한 외국인들로 늘 붐빈다. 속을 파낸 코코넛 안에 코코넛밀크 아이스크림과 과일을 한가득 담아낸 깸 즈악(Kem Dua)은 식후 간식으로 알맞은 베트남의 대표적인 디저트인데, 이 깸 즈악을 맛보려면 레 러이(Le  Loi) 거리와 파스퇴르(Pasteur) 거리의 교차점에 자리한 깸 박 당(Kem Bach Dang)을 추천한다. 호치민에서 가장 유명한 아이스크림 가게로, 처음 시작했던 곳의 맞은편에 건물 한 채를 올렸을 만큼 인기있는 곳이다.
호치민의 길 카페도 놓칠 수 없다. 호치민 시내의 카페 수만큼이나 골목마다 의자 두어 개를 가져다 놓고 자리를 펼친 수많은 길거리 카페를 볼 수 있는데, 비록 그들의 대화를 알아들을 순 없지만 표정과 분위기만으로도 커피 한 잔을 사이에 두고 정겨운 대화를 나누는 서민들의 소박하고 훈훈한 정을 느끼기에 충분하다.

제대로 된 베트남 커피를 즐기려면? 자, 호치민의 가볼 만한 카페를 접수했다면 이제 커피 마시는 방법을 배워보자. 분명히 커피를 주문했는데 테이블 위에 빈 잔과 어디에 쓰는 물건인지 모를 물품(?)만 가져다주는 카페 종업원을 보고 당황하지 않으려면 베트남식 커피를 마시는 노하우를 알아둘 필요가 있다.
베트남의 카페에서 커피를 시키면 동그란 알루미늄 통에 갈아 낸 커피 원두를 넣고 뜨거운 물을 부어서 커피 잔과 함께 가져다준다. 이 알루미늄 통이 바로 카페 핀(Ca Phe Phin)이라고 부르는 베트남 스타일의 드리퍼로 조금 기다리면 커피가 천천히 잔에 내려진다. 여기에 취향에 따라 설탕이나 연유, 얼음 등을 섞어서 마시면 되는데, 이때 커피 잔에 미리 연유를 넣어두면 베트남 스타일의 달콤하면서 진한 밀크 커피인 카페스어농(Ca Phe Sua Nong)이 완성되며, 여기에 얼음을 타면 시원한 아이스 밀크 커피인 카페스어다(Ca Phe Sua Da)를 맛볼 수 있다.
얼음이 상당히 많이 들어가 있어 녹는데 다소 시간이 걸리지만 이왕 베트남 커피와 카페 문화를 체험하고자 마음먹었다면 서두르지 말자. 얼음이 어느 정도 녹아야 진정한 베트남식 커피 맛을 느낄 수 있을 뿐 아니라 카페가 단순히 커피를 마시는 곳이 아닌 커피 한 잔 시켜 놓고 신문을 보거나 카드 게임을 하며 온종일 시간을 보내는 시민들의 휴식처로 자리 잡은 베트남의 카페 문화를 제대로 만날 수 있을 테니 말이다.

---

호치민의 카페
쭝 응우옌 커피 Ca phe Trung Nguyen
주소 07 Nguyen Van Chiem, dist.1
문의 +84-8-825-8531
        www.trungnguyen.com.vn
영업시간 AM 6:00~PM 11:00
가격 커피 2만 4천~3만 5천 동
       식사 4만~6만 동

하이랜드 커피 Highlands Coffee
주소 (시민극장 점) 7 Conv Tau Suobin, dist.1
문의 www.highlandscoffee.com.vn
영업시간 AM 7:00~PM 12:00
가격 커피 2만 2천~3만 5천 동
       식사 5만~6만 동

윈도우즈 카페 Window’s Cafe
주소 12 Alexandre De Rhodes, dist.1
문의 +84-3-823-8408
가격 커피 3만 5천 동 정도

사오 카페 Sao Cafe
주소 05 Phan Ngoc Thach - P.6 - dist. 3
문의 +84-3-822-9228
영업시간 AM 6:00~PM 11:00
가격 2만 8천~5만 동 정도

패니 Fanny
주소 29-31 Ton That Thiep dist.1
문의 +84-8-3821-1633
영업시간 AM 8:00~PM 11:00
가격 커피 1만 5천~5만 8천 동,
        아이스크림 3만 5천~6만 5천 동

깸박당 Kem Bach Dang
주소 26-28 Le Loi, dist.1
전화 +84-3-829-2707
영업시간 AM 9:00~PM 12:00
가격 코코넛 아이스크림이 5만 5천 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