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y Sweet Home in Nature
강산에 살어리랏다

소파와 한 몸을 이룬 채 리모컨 든 손만 까딱이며 하루를 보내야 ‘알찬’ 주말을 보냈노라며 뿌듯해하는 기자가, 주말에 여행을, 그것도 일 때문에 떠나는 여행에 신바람이 났다. 이유는 두 가지다. 하나는 흙냄새 나는 자연에 묻혀 밥 짓고 잠자는 캠핑의 묘미, 다른 하나는 별빛 쏟아지는 하늘 아래, 우리의 완벽한 스위트 홈이 되어 줄 캠핑카다.

오래전부터 캠핑카에 대한 로망이 있었다. 10년 전쯤 캐나다로 떠난 배낭여행에서 자전거를 매단 채 달리는 캠핑카족이 그렇게 자유로워 보일 수 없었기 때문이다. 그들은 커다란 배낭을 쌌다 풀렀다하는 번거로움을 반복할 필요도, 숙소 걱정에 발을 동동 구르며 조바심을 낼 필요도 없었다. 산이든 바다든, 그저 발길 닿는 대로 달리다가 마음에 드는 곳에 차를 세우면 그곳이 집이요, 온 세상이 정원이었다.
직업상 여행을 자주 다니다 보니 주변 사람들의 부러운 시선을 자주 받는다. 그러나 사실 기사를 위한 아이템에 신경을 쓰며 빠듯한 일정에 쫓기다 보면 ‘여행의 자유’나 ‘여유’ 따위는 먼 나라 이야기가 되어 버린다. 하지만, 이번만큼은 욕심을 내기로 했다. 그저 ‘일’만 하기에는 캠핑카에 대한 사심이 너무 컸기 때문이다. 그런데 실수한 게 아닌가 싶다. 아무래도 머지않아 소파에 드러누운 채 보내는 나의 알찬(?) 주말에 이별을 고해야 할 것 같으니 말이다.

나는야 달팽이, 집을 갖고 떠난다
들뜬 마음만큼이나 걱정도 많았다. 캠핑의 ‘캠’자도 모르는 생초보 둘이서 덜컥 캠핑카부터 빌렸으니, 어디로 가야 할지, 캠핑카에 갖추진 것 외에 또 어떤 캠핌용품이 필요한지 도통 알 수가 없었다. 그나저나, 덩치 큰 캠핑카를 제대로 운전이나 할 수 있을까? 다행히도 걱정은 기우에 지나지 않았다. 2종 보통 면허만 있으면 운전이 가능한 캠핑카는 차가 꽤 높다는 것만 잊지 않으면 운전에 큰 무리가 없었고, 마침 다음 카페에서 활동 중인 ‘팬오스’의 정기캠핑이라기에 캠핑 고수들에게 ‘한 수’ 배울 겸 정기캠핑에 동참하기로 했기 때문이다.
일주일 내내 하늘을 뒤덮고 있던 먹구름이 가시고 구름 한 점 없이 맑은 날씨가 기분마저 설레게 한다. 캠핑 마니아들은 타프에 ‘똑똑’ 떨어지는 빗소리에 취하고, 지천을 하얗게 뒤덮은 눈의 낭만에 반해 비나 눈이 오는 날을 더 반긴다지만, 그래도 새내기 캠퍼에게는 해가 쨍한 날씨가 필요한 터였다. 오늘의 캠핑장소는 충북 청원군 미원면의 대덕숲 야영장. 옆으로는 조그마한 개천이 흐르고, 아이들 물놀이 장소와 족구장, 몇 개의 정자 등을 갖춘 아담한 유원지다. 청원군에 들어섰음을 알리는 내비게이션의 안내가 나오고 잠시 후, 짙푸른 물색을 자아내는 대청호반이 눈앞에 펼쳐진다. 금강의 한가운데 댐을 막아 만든 거대한 호수인 대청호는 우리나라 중부내륙의 중요한 수원지로, 끝없이 이어지는 맑은 호수와 주변으로 드러워진 푸릇한 녹음이 더할 나위 없이 평화로운 경관을 선사한다. 화창한 날씨와 창 밖의 아름다운 풍경, 조금 전 마트에서 장을 본 한 보따리의 먹을거리, 그리고 마치 달팽이처럼 내 집을 갖고 떠나듯, 접이식 침대와 가스레인지, 냉장고, TV까지 갖춘 운전석 뒤쪽의 안락한 공간이 마음 가득 뿌듯함을 전해준다.

우리의 전통이 녹아 있는 곳
캠핑장에 가기 전, 굽이굽이 이어지는 대청호반을 따라 드라이브를 즐기다가 차를 멈춘 곳은 문의면의 문의문화재단지다. 이곳은 우리 고유의 전통문화를 재현하고자 조성된 역사교육장으로, 약 10만 제곱미터 규모의 단지 안에는 문인 가호리 고인돌을 비롯한 선사유적과 옛 문의현의 객사인 문산관(충북유형문화재 제49호), 전통가옥, 양반가옥, 주막집, 문화유물전시관 등이 자리하고 있다. 옛 생활터전이 고스란히 마련되어 있어 전통문화의 향기와 선조들의 지혜를 배울 수 있는데, 그중에서도 특히 인상적인 건 여막(부모님이 돌아가셨을 때 시묘살이를 하던 곳)의 모습. 한양조씨 문중의 조육형과 그의 부친 조병천이 시묘하던 곳을 재현해 놓은 곳으로, 당시 시묘의 모습과 상주가 사용하던 물품을 볼 수 있는데, 조상들의 부모를 기리는 마음과 효(孝)에 관해 다시 한번 돌아보게 한다. 예스러운 풍경 속을 천천히 거니는 것만으로도 한적하고 평화로운 운치가 느껴지지만, 한눈에 바라보이는 대청호의 풍광도 놓칠 수 없다. 언덕을 따라 조성되어 있어 단지 내 어디서나 대청호를 볼 수 있는데, 특히 문산관이 있는 가장 높은 곳에서 탁 트인 시야로 보이는 풍경은 햇살에 반사되는 잔잔한 호수의 물결만큼이나 반짝인다.
문의문화재단지 안에 팔작지붕의 한옥이 올라선 형태로 자리 잡은 대청호미술관도 들러보자. 충북지역 최초의 공립미술관으로 내부에서는 다양하고 수준 높은 전시를 선보이며 미술관 앞에는 의암 손병희, 단재 신채호 등 애국지사 일곱분의 조각상을 비롯해 현대 조각가들의 다채롭고 개성 넘치는 작품이 전시되어 있어 휴식과 문화 사색의 시간을 선사한다.

캠핑, 아빠의 재발견
해가 뉘엿뉘엿 질 무렵 대덕숲 야영장에 들어섰다. 이제 막 도착한 캠퍼들은 텐트를 치느라 분주하고, 이미 텐트 치기를 마친 이들은 저녁밥 짓기에 한창이다. 우리도 좋은 자리를 놓칠세라, 맑은 물이 졸졸 흐르는 냇가 근처에 잎이 무성한 나무 아래 차를 세우고 캠핑카 앞에 테이블을 마련했다.
점심을 휴게소에서 대강 때운데다가, 여기저기서 솔솔 피어오르는 맛있는 냄새에 허기가 밀려온다. 어설픈 초보캠퍼 둘이서 준비한 오늘의 저녁 메뉴는 삼겹살. 요리에 재주도 없고, 음식을 만드는데 필요한 양념도 없는지라, 테이블 위에는 밥과 김치, 삼겹살이 전부였지만 별빛 반짝이는 밤하늘 아래에서 랜턴을 밝히고 지글지글 구워먹는 삼겹살의 맛은 대패로 얇게 밀어내고, 와인으로 숙성시키고, 녹차를 먹였다는 삼겹살보다 훨씬 환상적인 맛을 낸다. 덕분에 밥을 두 그릇이나 먹었으니, 캠핑 일주일만 다니면 살이 통통하게 오를 것이라는 어느 캠퍼의 말이 틀린 말은 아닌듯싶다. 부른 배를 두드리며 소화도 시킬 겸 설거지 거리를 들고 수돗가로 향했다. 언제부턴가 팬션이나 콘도에 너무 익숙해진 탓에 야외의 수돗가에서 설거지를 해 본 게 도대체 몇 년 만인지…. 불빛이 없어 휴대용 플래시로 불을 밝히고 설거지를 해야 하지만, 불편함 보다는 되려 완벽한 자연 속에 있는 자유와 낭만이 느껴진다.
선선한 밤 바람을 맞으며 맥주를 마실까, 조용한 음악을 들을까 고민하던 차에 한쪽에서 도란도란 둘러앉아 이야기를 나누던 팬오스 회원들이 손짓한다. 올해로 5년째를 맞이한 팬오스는 그저 캠핑이 좋아서 모인 이들의 모임으로, 전국에 흩어져 사는 회원들은 한 달에 한 번씩 이렇게 한 자리에 모여 캠핑을 즐긴다. 이들이 캠핑을 좋아하는 이유는 간단하다. 넉넉한 자연 속에서 가족과 함께 하는 오붓한 시간을 만끽할 수 있기 때문. 한 회원은 ‘아빠의 재발견’이라고 캠핑을 정의한다. 늘 지친 모습의 아빠를 어려워했던 아이들이 캠핑장에서 앞치마를 두른 채 요리하는 아빠를 본 이후 아빠를 대하는 태도가 달라졌다고. 아이들 자신도 야외에서 뛰어놀면서 한층 밝아져, 처음에는 시큰둥해하던 아이들이 이제는 먼저 캠핑을 가자고 조른다고 한다.
캠핑에 관한 이런저런 이야기를 듣다 보니 어느새 꽤 늦은 시각이 되었다. 캠핑카로 돌아와 테이블과 의자가 놓인 안락한 거실을 포근한 침실로 바꾸고 잠을 청했다. 첫 캠핑이라 피곤했던 건지 아니면 자연이 건네주는 편안함 때문인지 금세 깊은 잠에 빠져들었던 것 같다.

신선놀음의 세상, 자연을 누려라
짜증스럽게 울리는 시계의 알람 소리 대신 지저귀는 새소리와 아이들의 재잘거림이 기분 좋게 잠을 깨운다. 낯선 공간임에도 무척 편안했던가 보다. 시계를 보니 오전 9시가 가까워져오고 있었다. 부스스한 머리를 대충 손으로 만지고 밖으로 나섰다.
지난밤이 화롯대 위에 피운 모닥불에 둘러앉은 가족들로 단란한 풍경이었다면 오전의 캠핑장은 활기가 넘친다. 아빠는 일일 요리사가 되어 아침식사 준비에 한창이고, 엄마는 나무 그늘에 앉아 독서삼매경에 빠졌다. 그리고 무엇이 그리 신나는지 아이들은 연방 ‘까르르’하는 웃음을 터뜨린다. 자연 속에서 놀거리를 찾아내는 아이들의 기발함이 궁금하다면 캠핑을 떠나보라. 자전거, 그네 타기 같은 흔한 놀이부터 냇가에서 물놀이 즐기기, 저녁에 쓸 땔감을 모아 톱질하기, 자갈을 이용한 공기놀이까지, 아이들의 놀이개발에는 끝이 없다.
체크아웃 시간이 따로 없으니, 머물고 싶을 만큼 머물다가 떠나고 싶을 때 떠나는 것도 캠핑의 매력. 그래서 마냥 게을러지기도 하지만, 졸졸 흐르는 냇가에 발을 담근 채 향긋한 커피를 마시고, 휴대용 라디오로 음악을 들으며 나무에 걸어둔 해먹에 누워 낮잠을 청하는 신선놀음 앞에서 그 누가 나의 게으름을 탓할쏘냐? 1박2일이라는 짧은 시간, 단 한 번의 얕은 경험이지만 캠핑, 그곳에는 자연의 쉼터가 주는 가족의 행복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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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덕숲 유원지
중부고속도로 증평 I.C.로 빠져 초정광천수 방향으로 20분 거리에 위치한다. 텐트를 칠 수 있는 자갈밭과 몇 개의 정자, 어린이 전용 수영장, 개수대, 화장실 등이 갖춰져 있으며 쓰레기 처리 수수료(어른 8백 원, 어린이 5백 원)을 받는다. 여름 성수기에는 차량진입이 통제된다.
주소 충북 청원군 미원면 대덕리 266-1
문의 043-225-9510

문의문화재단지
청주에서 대청댐 방면으로 약 15킬로미터 거리에 위치한다. 경부고속도로 청원 I.C를 빠져 대청댐 방면으로 가거나, 경부고속도로 남이분기점에서 당진상주고속도로를 타고 문의 I.C를 이용하면 된다.
주소 청원군 문의면 문산리 산 6-1번지
개관시간 문의문화재단지 AM 9:00~PM 8:00(10월~4월에는 PM 6:00까지)
          대청호미술관 AM 9:00~PM 5:30(11월~4월에는 PM 4:30까지)
입장료 어른 1천 원, 청소년 8백 원, 어린이 5백 원
문의 043-251-3545 cultural.puru.net

제일모빌
1997년 스타캠프의 제작을 시작으로 국내 캠핑카 업계의 선두를 달리고 있는 제일모빌은 감각적인 디자인과 실용적인 구조로 많은 캠퍼들의 사랑을 받고 있는 캠핑카 전문제작 업체다. 2009년 1월부터는 ㈜에드윈알브이와 함께 캠핑카 렌트서비스를 실시하고 있다. 캠핑카는 2종 보통면허 자격증만 있으면 운전이 가능하다.
구입문의 1566-1772 www.cheilmobile.com
렌트문의 1566-1713 www.edwinrv.com

팬오스
2004년 시작된 다음 카페의 캠핑 동호회다. 팬오스(cafe.daum.net/snowpeak)가 추구하는 캠핑은 자연과 가족을 위한 캠핑으로, 밤늦도록 가장들끼리 모여 음주로 시간을 보내는 것을 지양하고 가족 간의 화합을 중시하는 것이 특징. 매월 둘째 주 주말에 정기캠핑을 실시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