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 순간을 담아내다

S가 사진을 찍기 시작한 것을 열다섯 번째 생일, 아버지께서 애지중지 아끼시던 라이카 M6 클래식 카메라를 선물로 받으면서부터. 투박하 라이카를 들고 온 동네를 쏘다니면서 시작된 S의 사진사랑은 오늘날가지 지속되었다. 모처럼의 휴일, 오래된 라이카와 최신형 DSLR을 들고 나선 S의 하루를 따라간다.

10:00 세기카메라
S가 처음 들린 곳은 세기카메라 충무로 지점. 1999년 생긴 이곳은 2008년 11월 구조 변경을 거쳐, 카메라부터 필름, 렌즈, 조명, 액세서리 등 다양한 품목을 원스톱으로 쇼핑할 수 있게 꾸며져 있다. 특히 일본의 시그마(Sigma), 트라이포드 등 촬영 보조 장비와 액세서리로 유명한 이탈리아의 맨프로토(Manfrotto), 짓조(Gitzo) 영국의 빌링햄(Billingham) 등을 전문적으로 취급한다. 필름 카메라와 필름, 아날로그 장비를 주로 판매하는 1층으로 들어선 S. 우선 라이카 카메라에 사용할 필름을 고른 후, 여자친구에게 선물할 폴라로이드 카메라를 고른다. 한 달 전 만나기 시작한 여자친구는 사진에 문외한이지만, 작동이 손쉬운 폴라로이드 카메라라면 그녀도 좋아할 것이다. 2층에서는 시그마 카메라와 렌즈, 가방 등을 직접 체험해 볼 수 있다. 2층을 둘러보던 S의 발을 붙든 것은 세기카메라에서 카메라를 직접 찍어 볼 수 있게 카메라와 조명 등을 세팅해 놓은 촬영 공간. 조명 아래에서 원하는 카메라와 렌즈로 테스트가 가능한 것이 특징이다. 직접 사진을 몇 장 찍어본 S는 마음 속의 위시리스트에 최근 출시된 줌렌즈 '10-20mm F3.5 EX DC HSM'를 추가한다.
이외에도 3층에서 카메라와 부속 기기의 A/S를 받을 수 있으며, 4층에서는 포토스쿨을 진행하는 공간이 마련되어 있다. S는 매달 진행하는 'DSLR 초보자를 위한 사진 강좌'를 보고 여자친구를 생각한다. 언젠가 여자친구가 사진에 관심을 갖게 되면 이 강좌를 소개해 주는 것도 좋을 듯싶다. 자신이 직접 가르쳐 주는 것도 좋겠지만, 원래 운전과 사진은 가까운 사람에게 배우는게 아니라고들 하지 않던가? S 생각에도 성미가 급한 자신이 기계치인 여자친구에게 사진을 가르치다보면 싸움이 날 게 분명할 듯하다.

TIP
위치_창덕궁 버스정류장 앞에서 우회전, 50미터 지점
시간_AM 9:00 ~ PM 8:00
토요일 AM 9:00 ~ PM 5:00, 일요일 휴무
문의_02-2279-0867 saeki.co.kr

11:30 김영갑 사진전
세기카메라를 나선 S는 요즘 김영갑 사진전이 열리는 충무아트홀로 향한다. '제주도 사진가' 김영갑의 사후, 처음으로 서울에서 열리는 사진전을 보기 위해서다. 김영갑은 1985년부터 2005년 루게릭병으로 사망할 때까지 제주도의 풍경을 사진으로 담았다. 사진을 전공하지는 않았지만 얼마나 사진 찍는 것을 좋아했는지, 필름과 카마라에 돈을 모두 스고 끼니 때울 돈이 모자라 들판의 당근과 고구마로 허기를 달랬다는 일화도 있다. 카메라와 렌즈 욕심에 고교시절 급식비를 삥땅친 것부터 시작해, 온갖 아르바이트를 거쳤던 S는 그의 일화를 들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전시된 김영갑의 사진은 제주도 해발 200~500미터 중간산 지대의 아름다움을 파노라마로 담은 미발표작이다. 사진 앞에 선 S의 가슴이 먹먹해진다. 제주도의 중간산지대는 매 계절마다 다른 모습을 보여준다. 봄이면 지천으로 널린 유채꽃이 눈이 아리도록 샛노랗게 빛나고, 여름에는 삼나무의 잎이 짓무를 만큼 선명한 초록색을 띈다. 가을이면 바람에 흔들리는 억새가 솜털을 드러내고, 겨울이면 소복한 흰 눈이 아름답다. S는 이토록 아름다운 순간 순간을 잡아내기 위해 발이 부르트도록 돌아다녔을 사진가를 떠올린다. 잘 모르는 사람들은 풍경사진을 두고, 그저 경치가 좋은 곳에서 셔터만 누르면 된다고 생각하지만, 카메라를 들고 여기저기 돌아다닌 사람이라면 알 것이다. 자연은 통제할 수 없다. 이 나무가 구석으로 가면 구도가 좋을 것 같다고 치울 수 있는 게 아니며, 조명처럼 햇빛의 위치나 밝기를 마음대로 조절할 수도 없다. 그저 이리저리 돌아다니며, 자연이 가장 아름다운 순간을 내주는 곳과 타이밍을 고심하고 기다려야 할뿐. 사진을 찍는 것은 ㅕㅊ 초의 순가이지만 그 몇 초를 위해 지난한 기다림과 끊임없는 생각이 필요하다. S는 잠깐, 풍경사진을 찍는 것이 인생과 닮았다는 생각을 한다.

TIP
전시기간_2009년 5월 14일부터 7월 19일까지
위치_지하철 2, 6호선 신당역 9번 출구로 나와서 동대문 운동장 방향으로 50미터
문의_02-2230-6678 www.cmah.or.kr
관람료_2천원

13:00 프라다 트랜스포머
갤러리를 나선 S는 서둘러 경희궁의 '프라다 트랜스포머(Prada Tranceformer)'전시관으로 향한다. 2단계로 접어들며 달라진 트랜스포머의 건물을 사진으로 남기기 위해서다. 6월 27일 부터 2주 동안 진행되는 2단계 프로그램에서는 영화 '21그램'으로 유명한 세계적인 감독 알레한드로 곤잘레스 이냐리투 감독이 선별한 14편의 영화를 매일 한 편씩 세 번에 걸쳐 보여준다. S역시 아르타바즈드 펠레시안의 1975년작 '사계(Seasons of the Year)'를 여자친구와 보기 위해 예약을 해 둔 상태지만, 여자친구와 오붓하게 데이트를 하는 날에는 혼자 사진을 찍지 않기로 약속했기 때문에 미리 사진을 찍어둔다.
프라다 트랜스포머는 유명 건축가 렘 쿨하스가 설계한 새하얀 멤브레인과 PVC 소재의 다면체 건물로 6개월에 걸쳐 진행되는 스커트 전시회와 영화제, 예술전, 스페셜 이벤트를 위해 특별히 설게되었다. 이 4면체 건축물은 하나의 행사가 종료될 때마다 새로운 프로그램을 위해 모습을 바꾸는데, 앞 단계에서 바닥으로 사용된 면이 다음 행사의 벽이 되는 재미있는 구조다. 1단계 행사인 '웨이스트 다운-미우치아 프라다 스커트(Waist Down Miuccida Prada)' 전시의 건물 사진을 찍었던 S는 달라진 2단계 건물을 바라보며 감탄사를 내뱉는다. 오랜 시간 동안 같은 자리를 지킨 경희궁과 빠른 시간 동안 모양을 바꾸는 트랜스포머 건물에서 빠름과 느림의 조화를 강렬하게 느낄 수 있는 까닭이다. S는 3단계와 4단계 프로젝트로 바뀔 때도 달라진 트랜스포머의 모습을 기록으로 남기겠다고 다짐하며 경희궁을 나선다.

TIP
위치_경희궁 내부
문의_02-737-4772 prada-transformer.com
입장료_무료. 홈페이지에 사전 예약 필수

15:00 문래동 철재 상가
S는 가난한 예술가들이 상가의 셔터에 그려놓은 독특한 벽화를 찍기 위해 문래동 철재 상가를 방문한다. 평일에는 철을 자르는 시끄러운 소음으로 가득하지만, 일을 하지 않는 주말에는 완전히 다른 세상처럼 고요하다. S는 벽화와 자신뿐인 길 위에서 여자친구와 함께 오지 못했음을 아쉬워한다. 그녀의 취향과 거리가 있어 보여 말을 꺼내지 않았지만, 다음에는 꼭 함께 와야겟다고 다짐하며.
문래동은 1980년대까지 800여 개 철재 상가와 철공소 등으로 문전성시를 이루었다. 하지만 1990년 무렵, 문래동의 철재 상가들은 대부분 수도권으로 이전하거나 근처의 아파트형 공장으로 자리를 옮겼다. 덕분에 상가의 대부분이 이전하고 나간 공장의 임대료는 3.3평방미터에 만 원 남짓 싼 가격. 이후 돈없는 예술가가 하나둘씩 알음알음으로 이곳에 모여, 지금은 100여 명의 예술가들의 작업실이 있다. 가격 외의 또 다른 장점은 철제 상가 지역이라는 특수성 덕분에 작업 중 생기는 소음을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는 것이다.
이들의 작품을 가장 손쉽게 만날 수 있는 방법은 S처럼 주말 낮에 거리를 걸으며, 철재 상가 셔터에 그려놓은 다양한 그림을 감상하는 것이다. 예술가 쪽에서 양해를 얻어 그린 경우도 있지만, 그려진 그림을 보고 철재 상가 측에서 활동하는 사람부터 나비를 그린, 경원대 학생들의 작품부터 전업 예술가의 작품까지 다양하다. 낡은 건물의 분위기와 독특한 벽화가 자아내는 분위기 덕분에 S처럼 사진을 찍는 이들에게 인기가 좋다.

TIP
위치_지하철 2호선 문래역 7번 출구로 나와 150미터 가량 걸으면 광명수산 간판이 보인다. 광명수산을 끼고 왼쪽의 골목길을 따라 걷다보면 철재상가 셔터에 그려진 그림을 만날 수 있다.

17:30 캐논 플렉스
마지막으로 S는 신사동 캐논 플렉스(Canon Plex)앞에서 여자친구를 만났다. 이곳은 올해 3월에 문을 연 지하 1층, 지상 5층 규모의 세계 최초의 캐논 플래그십 스토어다. 사진에 별 관심 없었던 여자친구도, 딸기우유색 동글동글한 솜사탕 같은 '파워샷 E1'을 보고 탄성을 지른다. S는 무조건 성능이 우선인 자신과 달리, 여자친구에게 카메라는 아무래도 액세서리의 일부가 아닐까 궁금해진다. 캐논 제품의 A/S를 담당하는 3층에서 DSLR 카메라 내부의 청소를 맡긴 S는 여자친구와 함께 지하 1층으로 내려간다. 지하 1층 갤러리에서 7월 10일까지 열리는 '아시아 여성의 눈' 이라는 사진전을 보기 위해서다. 세계 보도 사진계에서 주목을 모으고 있는 정은진과 후카다 시호의 2인전으로, 아프가니스탄 분쟁과 중국 재난 현장 등을 담았다. S를 멈추어 서게 만든 사진은 비상하는 듯한 소년을 찍은, 정은진의 작품이었다. 한 소년이 구소련 점령 당시, 공산당 정부가 카불의 와지르 악바르칸에 만든 공중수영장에서 다이빙하는 모습을 담은 것이다. 탈레반 시절에는 공공장소에서 속살을 내보이는 것이 금지되었기 대문에, 사진은 단순한 다이빙이라기보다 자유롭게 비상하는 사람의 모습을 담아낸 것처럼 보인다.
S는 경치 좋은 장소에서 여자친구의 모습을 찍은 후 포토샵으로 보정했던 자신과, 그 사진을 싸이월드에 올렸던 여자친구에 대해 잠깐 생각해 본다. 사진을 좋아하고 멋진 풍경을 담기 위해 열심히 돌아다녔지만, 지금껏 자신이 찍은 사진에 어떤 이야기가 담겨 있었다고 말하기는 힘들 것 같다. 조금은 복잡해진 머리로, S는 캐논 플렉스의 문을 나선다.

TIP
위치_키네마 클럽 맞은 편, 압구정 로데오 거리 디젤 매장 옆
영업시간_AM 11:00 ~ PM 8:00(서비스 센터는 평일 AM 8:30 ~ PM 7:30, 토요일 AM 9:00 ~ PM 12:00)
문의_1588-8133 www.cannon-ci.co.kr

김영갑 갤러리 두모악
서울에서 진행되는 전시회는 7월이면 끝나지만, 김영갑의 더 많은 작품과 그가 호흡한 제주도를 만날 수 있는 기명갑 갤러리 두모악은 계속 그 자리를 지키고 있다. 매주 수요일은 정기 휴관일이지만 휴가철인 7~8월에는 휴관일이 없다. 입장료는 3천 원이며 관람시간은 오전 9시 30분부터 오후 6시까지(3~6월과 9~10월), 7~8월에는 오후 7시, 11~2월은 오후 5시까지 문을 연다. 김영갑의 사진에 큰 감명을 받은 S는 올해 여름휴가 때 여자친구와 함께 두모악을 방문할 예정이다.
위치_제주시외버스터미널에서 표선행 버스를 타고 표선 정류장에서 하차 성산행 버스로 갈아탄 후 타고 삼달리에서 하차후, 도보 10 ~ 15분
문의_064-784-9907 www.dumoak.co.kr

Flesh, Mind and Soul
6월 26일부터 7월 12일까지 프라다 트랜스포머에서 'Flesh, Mind and Soul' 영화제가 진행된다. 21그램에 이어 영화 바벨로 아카데미 감독상을 수상한 바 있는 멕시코의 이냐리투 감독이 '우리가 영화를 보고 느낄 때, 서로 다른 부분에 대해 집중하고 반응하고 소통하는 육체, 지성, 영적인 관점을 다루는 영화'에 초점을 맞추어 선정한 작품이다. S는 칼 드레이어 감독의 1955년작 '오데트(Ordet)'와 아르타바즈드 펠레시안 감독의 1975년작 '사계(Seasons of the Year)'를 찍어두었다.

Squartist International
프로젝트스페이스 LAB39 등의 예술가들이 만든 페이지. 스쾃(Squat)은 호주 목동들이 자신의 소유가 아닌 목초지에 양떼를 몰고 가는 행위에서 기인한 말로, 어떤 허가도 권리도 없는 점유라는 의미다. 최근에는 사용되지 않는 장소를 예술로 생기있게 만들며, 시민들이 생생하게 접할 수 있는 노력과 방치된 공간을 예술가의 작업실이자 복합문화공간으로 바꾸려는 노력을 칭하기도 한다. 스쾃 아티스트들은 세계적으로 그 수가 점점 늘어나고 있다. 국내의 스쾃 아티스트는 www.squartist.org에서 만날 수 있으며, 문래동의 예술가들이 지금까지 해 온 프로젝트와 작품 역시 볼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