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ake a Trip Down Memory Lane
일본의 전통과 조우하다

현대적인 건물이 늘어선 도시의 세련됨도, 한 번쯤 들어봤음 직한 유명한 볼거리도 없다. 그저 화산이 만들어낸 대자연 속에 옛 정취를 고스란히 간직한 오랜 역사와 전통이 고요히 흐르고 있을 뿐이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그 소박한 풍경이 자꾸 그리워진다.

얼이 쏙 빠질 만큼 복잡한 도쿄 역을 빠져나온지 1시간 20분 남짓, 어느새 열차의 창밖에는 한적하고 여유로운 마을의 모습이 펼쳐지고 있었다. 혼슈의 동북지방에 자리한 후쿠시마 현(福島縣)은 도쿄에서 그리 멀리 떨어져 있지 않음에도 그곳과는 180도 다른 분위기를 선사한다.
지극히 개인적인 생각이지만 후쿠시마를 여행하면서, 이곳은 최소한 일본을 2번 이상 여행한 사람이 가는 것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일본을 처음 가보는 사람이라면 대도시의 화려함을 동경해 이나와시로 호수(猪苗代湖)와 반다이산(磐梯山), 고시키누마(五色沼)로 이어지는 화산이 형성한 이곳 자연의 아름다움을 놓칠지도 모르니 말이다. 혹시라도 이엉으로 지붕을 이은, 오랜 역사를 지닌 숙박시설과 술과 된장을 보관하던 창고가 늘어선 마을의 고즈넉함을 그저 지루한 시골풍경쯤으로 치부해 버리면 어쩌나 걱정이 되는 것도 사실이다. 화려하진 않지만 일상의 스트레스를 씻어주는 자연이 숨 쉬는 곳, 그리고 그 속에 흐르는, 일본에서조차 사라지고 있는 일본의 역사와 전통, 이것이 바로 후쿠시마의 진가다.

에도시대 남자들의 꿈을 만나다
후쿠시마는 크게 아이즈, 나카도오리(中通り), 하마도오리(浜通り) 등 3개 지역으로 나뉜다. 지형, 기후, 문화적인 차이에 따라 이들 세 지역은 각기 다른 특색으로 후쿠시마를 찾는 사람들에게 다양한 모습을 선사하는데, 그중에서도 서쪽의 아이즈 지방은 후쿠시마의 상징이라고 할 수 있는 반다이산과 이나와시로 호수를 중심으로 자연과 역사, 전통이 숨 쉬는 후쿠시마의 대표적인 관광지라고 할 수 있다.
아이즈 지방에서 가장 먼저 찾은 곳은 후쿠시마 현 북서부에 위치한 기타카타 시(喜多方市)다. 지난달 뚜르드몽드를 본 사람이라면, 그렇지 않더라도 일본 라멘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일본 3대 라멘 중 하나인 쇼유 라멘의 탄생지인 이곳이 낯설지 않을 터. 하지만 단순히 라멘의 고장으로 기타가타를 말하기에는 부족하다. 예로부터 술과 된장 등의 양조업이 번창해 눈이 많이 내리는 겨울철에 이를 보존을 위해 지어진 ‘구라’라고 불리는 창고가 오늘날까지 자리를 지키고 있어 ‘창고의 고장’으로도 유명한 곳이 바로 기타카타이기 때문이다. 에도시대에 이곳에는 ‘남자가 40세가 되어서도 구라 하나 짓지 못하면 남자가 아니다.’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창고를 짓는 것은 이곳 사람들의 꿈이자 자랑이었다고 한다. 그래서 기타카타 시내에는 1백~2백여 년의 역사를 지닌 2천6백여 동의 창고가 오늘날까지 남아 즐비하게 서 있는데, 창고가 모여있는 구라노마치나 미나미마치 창고거리를 걷다 보면 한 눈에 보기에도 오랜 세월을 머금은 까만 지붕에 흰 벽을 한 창고가 그윽한 운치를 풍긴다.

역사를 간직한 창고 이야기
창고의 외관은 모두 비슷하지만, 안을 들여다보면 오랜 과거부터 지금까지 여전히 술과 된장을 만드는 양조장부터 지금은 사용하지 않는 창고를 개조해 박물관이나 기념품 판매점, 커피숍, 미술관 등 다양한 용도로 사용하는 창고의 모습을 볼 수 있다.
그중에서 가볼만한 곳은 사케 양조장인 오하라 주조장(小原酒造)으로, 1717년에 창업해 약 3백 년의 역사를 이어오는 곳이다. 기타카타에는 몇 개의 술을 담그는 주조장이 남아 있지만 이곳이 특별한 이유는 바로 독특한 주조법 때문. 쌀을 발효하는 과정에서 30일간 저장고에 클래식 음악을 틀어놓는데, 정말 음악의 효과 때문인지 그 맛이 깔끔하고 부드러워 일본 전역에서 인기가 있는 것은 물론 우리나라에까지 수출되고 있다. 음악은 주로 모차르트의 음악을 들려준다고. 가게 뒤편의 사케 공장에서는 주인의 설명을 들으며 사케제조과정을 사진과 함께 살펴볼 수 있으며 투어가 끝나면 이곳에서 직접 만든 사케도 맛볼 수 있다.
가이혼케 구라야시키(甲斐本家藏座敷)는 대대로 된장을 만들던 가이 집안의 창고를 그대로 박물관 형태로 만들어 개방한 곳이다. 이곳은 1920년대에 술 주조장으로 시작해 4대째부터 된장을 만들기 시작했으며, 7대째인 지금도 기타카타 시내의 다른 곳에 창고를 짓고 된장 만드는 일을 계속하고 있다. 가이혼케 구라야시키 내부는 크게 된장을 만들던 창고와 다다미를 깔아 만든 손님을 접대하던 공간, 된장을 판매하던 장소의 3곳으로 나뉘는데, 그 규모는 물론, 깔끔한 정원부터 서양식으로 꾸며진 응접실, 샤워 시설 등의 내부시설과 소품, 흑색으로 칠한 외벽에서 풍기는 중후함 등이 과거 부유층의 모습을 느끼게 한다.
이 외에도 에도시대 후반에 지어진 기타카타 최초의 벽돌 창고인 와카키쇼텐(若喜商店)에서는 대대로 된장과 간장을 양조하는 과정을 자료실을 통해 살펴볼 수 있으며, 2백 년 이상의 역사를 지닌 야마토가와주점풍토관(大和川酒?風土館)에서는 술창고 견학과 술을 테스팅 할 수 있다. 시내가 그리 크지 않고 관광명소가 집중되어 있어서 산책하는 기분으로 걸어서 돌아봐도 되며, 창고 거리를 둘러보는 관광마차를 이용해 여유 있게 둘러보는 것도 좋다.

아이즈 지방의 전통을 찾아서
아이즈 지방의 역사를 살펴보고자 한다면 우선 아이즈 와카마쓰 시(會津若松市)에 있는 츠루가죠(鶴ヶ城)로 가보자. 봄이면 벚꽃 명소로 손꼽히는 이곳은 일본 근대화의 결정적 계기가 된 무진(戊辰) 전쟁(1868년부터 1869년 사이에 일어난 내란)의 무대였던 곳으로, 츠루가죠 안에는 오랜 세월을 머금은 돌담과 벚나무가 늘어서 있어 산 속을 산책하는 기분을 만끽하게 한다. 성 내부에서 단연 눈에 띄는 것은 바로 돌담 위에 우아한 자태를 뽐내고 있는 5층 건물의 덴슈가쿠(天守閣)다. 마치 학이 날개를 편 모습과 같다 하여 츠루가 성이라는 이름이 붙었을 만큼 우아함을 풍기는 덴슈가쿠는 14세기 에도시대에 지어졌는데, 이후 무진전쟁 때 전소되었다가 1965년에 복원되었다. 내부에는 향토문화재 전시장이 있어 마지막 영주의 유물과 당시의 생활품 등 1백여 점의 문화재를 통해 에도시대 삶의 모습을 엿볼 수 있으며 5층 꼭대기의 전망대에서는 성 내부뿐 아니라 아이즈 와카마츠 시내를 한눈에 내려다볼 수 있다.
츠루가죠에서 역사를 살펴봤다면 시내에서는 아이즈 지방에 전해내려오는 전통과 장인정신을 체험할 차례. 옛 가옥이 고스란히 자리하고 있어 고풍스러운 느낌을 주는 아이즈 와카마츠 시내에서는 오랜 시간에 걸쳐 지켜져 내려온 아이즈 전통 특산품을 만나볼 수 있는데, 특히 어린이의 수호신으로 행운을 운반하는 뜻을 지닌 빨간소 ‘아카베코’는 고개를 까딱이는 귀여운 모습이 웃음을 머금게 한다. 시내에는 체험장이 마련되어 있어 직접 아카베코 표정을 그려넣어 자신만의 아카베코를 만들 수 있다. 아카베코와 함께 또 하나의 후쿠시마 마스코트로 사랑받는 것이 ‘오키아가리 코보시’다. 우리의 오뚝이처럼 넘어져도 금방 다시 일어나는 귀여운 인형은 가족을 불운으로부터 지켜주는 수호신의 역할을 한다고 한다.
그림 양초 역시 빠뜨릴 수 없는 아이즈 지방의 공예품이다. 7대에 걸쳐 그림양초를 만드는 오자와 양초점(小澤蠟燭店)에서는 화려한 꽃문양이 그려진 양초를 볼 수 있는데, 250여 년 전 일본 양초의 3분의 2는 아이즈에서 가져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이곳은 일찍부터 양초를 만드는 기술을 발달했다고 한다. 눈이 많이 오는 날씨 탓에 추운 겨울 신사에 바칠 꽃이 없어 양초에 그림을 그려넣기 시작해 발달한 화려한 꽃문양이 그려진 그림 양초는 오늘날까지도 과거와 같은 방식으로, 온전히 수작업으로 만들고 있어 결혼식이나 신사 봉납 등 특별한 경우에만 사용하는 고급품으로 귀하여 여겨진다. 오자와 양초점에는 미리 예약을 통해 그림 양초 만들기 체험을 할 수 있다.

시간이 멈춘 듯, 정겨움을 선사하는 곳
아이즈 지방에서 만나는 일본 역사 여행의 마지막 코스는 시모고마치(福島縣下鄕)의 오우치주쿠(大內宿)다. 아이즈 서쪽 가도의 고개가 계속되는 험준한 곳에 위치한 이곳은 에도시대 숙박업소가 밀집해 있던 곳으로, 과거 영주나 사무라이들이 에도(지금의 도쿄)로 가는 길에 이곳에 들러 쉬었다 가곤 했다고 한다.
거리에 들어서면 3백 미터 남짓한 거리 양쪽으로 초가와 목조로 된 전통가옥이 옛 모습을 고스란히 간직한 채 자리해 있어 시간을 거슬러 올라간 듯한 기분 좋은 착각을 불러 일으킨다. 숙박시설을 운영하는 곳도 있지만 지금은 대부분 관광객을 상대로 기념품이나 먹을거리를 파는 음식점으로 바뀌었는데, 그래서 이곳에는 관광객들이 만들어내는 활기와 마을의 정취가 풍기는 호젓함이 묘하게 어우러지며 이곳을 찾는 이들을 들뜨게 한다. 도랑을 따라 흐르는 냇물 소리와 여기저기서 피어오르는 고소한 음식 냄새에 몇 발자국 못 가 자꾸 발걸음을 멈추게 되지만, 거리 끝에 있는 계단으로 올라가는 건 잊지 말자. 이엉으로 이은 지붕과 하얀 외벽, 나무 기둥의 가옥이 옹기종이 모여 있는 마을의 풍경을 한눈에 내려다볼 수 있는데, 아늑한 우리네 시골풍경과도 비슷해 따스함을 느끼게 한다.
후쿠시마를 여행하다가 하루해가 저물면 료칸에서 온천욕으로 마무리하는 건 어떨까? 후쿠시마에는 140여 개의 온천이 자리한 온천의 천국으로, 밤하늘의 반짝이는 별빛을 바라보며 노천 온천을 즐기고 난 후 방으로 돌아오면 깔끔하게 펼쳐진 다다미방의 이부자리가 일본 전통을 찾아 떠난 여행을 완벽하게 마무리해준다.

---

GENERAL
언어 일본어를 사용한다. 영어가 잘 통하지 않으므로 간단한 회화 정도는 미리 알고 가는 것이 좋다.
시차 한국시각과 같다.
전압 110V 전압을 쓰므로 우리나라 전자제품을 사용하려면 플러그 어댑터를 준비해야 한다.
화폐 화폐단위는 엔(Yen, JPY)이다. 2009년 7월 현재 1백 엔은 1,297원.
전화 일본 국가번호는 81.
비자 관광으로 방문하거나 90일 미만의 체류에 대해서는 비자가 면제된다.

SHIGHTSEEING
오자와 양초점(小澤蠟燭店)
주소 福島縣會津若松市西日町6-27
문의 +81-242-27-0652
가격 1인당 850엔

RESTAURANT
시부카와 돈야(澁川問屋)
아이즈와카마츠 역에서 도보 20분 거리에 자리한 아이즈 지방의 향토요리점으로 명성이 나 있는 곳. 바다에서 먼 아이즈 지방은 예로부터 생선회보다는 구이나 조림 같은 저장방법을 사용한 음식이 발달했는데, 이곳에서는 연어 초밥, 대구구이, 장어구이 등 예로부터 내려오는 서민요리를 맛볼 수 있다. 또한 이곳은 과거 아이즈 제일의 해산물 도매상의 점포와 저택이 있었던 곳으로 숙박시설도 함께 운영하고 있어 메이지다이쇼 시대로 거슬러 올라간 듯한 느낌을 준다.
주소 福島縣會津若松市七日町３－２８
문의 +81-242-28-4000

INFORMATION
일본정부관광국(JNTO) 서울서무소
문의 02-777-8601 www.welcometojapan.or.kr
재단법인 후쿠시마현 관광물산 교류협회
문의 +81-24-525-4023 www.tif.ne.jp
후쿠시마현청 관광교류과
문의 +81-24-521-7287 www.pref.fukushima.j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