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ne Day Travel in Taipei
하루 동안 즐기는 타이베이 여행

“얼마나 있을거에요?” 여행을 다니면서 만나는 현지인들에게 “어디서 왔어요?” 다음으로 많이 듣는 말인 것 같다. 가장 아쉬운 때는 “얼마 못 있어요”라는 대답을 해야 할 때였던 것 같다. 타이베이에서의 여정이 꼭 그랬다. 도착, 출발 일을 제외하니 온전히 남았던 시간은 오직 하루 뿐. 그렇게 타이베이의 하루가 시작되었다. 

여행을 하다보면, 특히 해외여행을 떠나면 원하는 시간만큼 한곳에 머무르지 못하는 일이 생기곤 한다. 짧은 여행을 뒤로 하고 떠날 때의 발걸음은 언제나 아쉽다. 다른 나라나 도시로의 다음 여행이 기다리고 있다고 해도 설렘보다 아쉬운 마음이 더 큰 것은 어쩔 수가 없다. 이럴 때 아쉬움을 극복하는 방법으로 두 가지를 제안한다. 첫 번째는 ‘최대한 많은 곳을 둘러보자’고, 두 번째는 ‘그래도, 한 장소를 음미할 수 있는 최소한의 시간은 설정하자’는 것이다. 타이베이에서 주어진 하루 동안의 여행 그림은 이 원칙에 맞춰 그려졌다. 조금이라도 아쉬운 마음을 덜어보겠다는 생각을 가득 담아서.

아침 10시. 작가 ‘자연’의 예술작품 예류지질공원
가장 먼저 찾은 곳은 자연이 만든 독특한 작품들로 즐비한 타이베이 북부의 예류지질공원이다. 파도와 바다의 침식작용으로 형성된 해안공원인 예류에 도착하니 무의식중에 터져 나오는 감탄사를 막을 방도가 없다.
우선 눈길을 끄는 것은 쉰좡옌이라 불리는 버섯바위다. 바위 하나하나가 하늘을 향하는 큰 버섯처럼 보인다고 해서 버섯바위라는 이름이 붙었는데 각양각색의 자태를 뽐내는 180여 개의 바위들이 공원 전체에 늘어서 있다. 그 중에서도 공원의 상징은 뉘왕토우(클레오파트라 머리)라고 불리는 여왕 머리 바위다. 왼쪽 편에서 보면 고고한 자태를 뽐내는 클레오파트라 여왕을 꼭 닮은 이 바위 앞에는 기념사진을 찍으려는 사람들로 장사진을 이룬다. 최소 20여 분 정도는 기다려야 몇 초간 사진을 찍을 수 있을 정도다. 서로 맞닿아 있던 견고한 사암층이 해수의 끊임없는 침식 작용을 받아 형성되었다고 하는데, 지금도 끊임없는 침식작용이 일어나 목 부분이 점점 가늘어지고 있다. 현재 뉘왕토우의 목 지름은 50센티미터정도 밖에 되지 않아 10년 뒤에는 태풍 때문에 목이 부러지는 아찔한 모습이 펼쳐질지도 모른다고. 그래서 바위에 가까이 다가가거나 만지는 일은 절대 금물이다. 버섯바위와 함께 공원의 또 다른 상징이 된 것은 주타이스라고 불리는 촛대 바위다. 바닷가 바로 옆에 위치한 바위가 해수의 침식작용으로 점점 깎여왔는데, 암석 중앙의 비교적 견고한 석회질만이 남아 마치 심지가 있는 초와 같은 모양으로 남게 되었다. 파도가 부딪히는 순간에는 마치 초에서 촛농이 흘러내리는 것 같은 모습이 연출된다. 크고 작은 구멍들로 가득 차 있는 펑워옌(벌집바위)과 절리 현상으로 갈라진 바위도 빼놓을 수 없는 볼거리다. 공원 곳곳 바닥에 얼굴을 빠끔히 내밀고 있는 화석들을 찾아보는 재미도 쏠쏠하다.

한낮의 1시. 지우펀에서 따뜻한 차 한 잔의 여유를
예류 지질공원을 뒤로 하고 찾아간 곳은 타이베이 시내에서 차로 40분가량을 달리면 도착할 수 있는 ‘지우펀’이다. 지우펀은 1930년대에 금광이 발굴되면서 성장했는데 이후 채굴산업이 쇠퇴하면서 ‘귀신도시’라는 별명이 붙을 정도의 몰락을 경험했다. 이 마을이 다시 활기를 찾은 것은 이곳에서 촬영된 영화 ‘비정성시’가 1989년 베니스 영화제에서 황금사자상을 수상하면서다. 배우 량차오웨이(양조위)에 열광하던 일본인들이 그가 차를 마시고, 걷고, 사랑을 했을 그 거리를 찾아오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기자가 지우펀을 찾았을 때도 어디서나 일본어를 들을 수 있을 만큼 많은 일본인 관광객들로 북적였다. 최근에는 지우펀을 찾는 한국인들의 발걸음도 무척 많아졌는데, 얼마 전 인기를 끌었던 드라마 ‘온에어’를 통해 안방극장에 소개된 덕택이다.
지우펀은 각종 먹거리와 기념품 가게들이 즐비한 지산제와 붉은 홍등을 밝힌 찻집들이 들어서 있는 수취루가 열십자(十) 모양으로 얽혀 있는 거리다. 지산제에 들어서면 가장 먼저 여행객을 반기는-사람에 따라서는, 특히 기자와 같이 역한 냄새를 잘 참지 못하는 사람에게는 반기는 것이 아닐 가능성도 크겠다-것은 거리 전체에 퍼져 있는 ‘쳐우토푸(취두부)’ 냄새다. 대만 어느 시장을 가나 맡을 수 있는 냄새지만 좁은 골목과 상점의 차양들 덕분에 환기가 잘 되지 않기 때문에 지우펀에서는 특히나 냄새가 심하다. 하지만 우리는 ‘청국장 냄새를 사랑하는 한국인’이 아니던가. 자신도 모르는 사이 쳐우토푸 냄새에 익숙해질 수 있으니 너무 겁은 먹지 말자. 이 냄새에 익숙해지니 어느새 다른 먹거리들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한다. 꼬치, 떡, 새우 등 무수히 많은 먹거리 중 꼭 맛봐야 하는 것은 단연 펑리수(파인애플 만주)다. 대만의 대표 간식거리인 만큼 어딜 가나 살 수 있지만 지우펀의 펑리수는 맛도 좋고 가격도 싸기로 유명하니 놓치지 말아야 한다.
지산제의 중심부와 이어져 있는 수취루는 마치 대만의 옛 거리에 온 것과 같은 착각을 불러  일으킨다. 수취루에는 붉은 간판과 홍등으로 장식하고 그윽한 향기를 풍기는 찻집들이 들어서 있는데 100년 전통을 자랑하는 오래된 찻집부터 온에어 등장했던 찻집까지, 어디를 가든 대만의 전통 다도법으로 내려주는 향기 좋은 차를 마실 수 있다. 여러 가지 대만 음식을 함께 맛볼 수 있는 것은 물론, 전망 좋은 곳에 자리 잡으면 탁 트인 북쪽 해안을 한 눈에 내려다보면서 여유로운 휴식을 즐기는 호사를 누릴 수도 있다.

늦은 4시. 가족과 연인들의 휴식처 단수이
다음으로 찾은 곳은 타이베이 북서쪽에 위치한 단수이다. 단수이는 바다와 단수이강이 만나는 곳에 위치한 항구도시다. 예전에는 상해와 홍콩, 싱가포르 사이에 항로가 개설되면서 번성했다고 하는데 하구가 흙모래로 파묻히면서 항구로서의 기능을 잃고 말았다. 하지만 타이페이에서 가까운 이점을 살려 해변 휴양지로 탈바꿈한 덕택에 많은 사람들이 북적이는 활기찬 도시로 변모했다. 지금은 주말에는 휴양지 구경이 아니라 사람 구경을 하러 간다는 말이 있을 정도로 북적이는 곳이다.
단수이강 옆으로는 풍성한 잎으로 나무 그늘을 제공하는 나무들과 조각품, 벤치들이 깔끔하게 정돈되어 있는 산책로가 이어져 있어 애완견을 데리고 산책 나온 사람들, 아이들과 함께 놀러 나온 가족들이 많이 볼 수 있다. 바다 내음이 물씬 나는 것은 물론 무척이나 아름다운 일몰을 볼 수 있어 젊은 연인들이 사랑을 속삭이기에도 최적의 장소다. 산책보다는 조금 더 활동적인 놀이를 원하는 사람들은 배를 타고 강 건너편에 위치한 ‘빠리’로 향한다고 하는데 놀이기구가 갖춰져 있는 유원지가 있기 때문이라고. 여정을 함께 했던 가이드는 홍합을 캐기 위해 빠리를 찾는 사람들도 많다고 귀띔했는데, 그래서인지 홍합요리를 파는 음식점들도 많다.
어느 곳에 여행을 가나 그곳에서만 먹을 수 있는 음식을 맛보는 것은 가장 중요한 일정-취재를 핑계로 맛있는 음식을 먹어보겠다는 기자의 사심은 조금도 담겨 있지 않다고 피력하고 싶다-중의 하나다. 단수이에서 가장 유명한 것은 단연 ‘아케’다. 가이드가 무조건 먹어봐야 한다며 ‘강추’하기도 했던 아케는 유부와 비슷한 두부 껍질 안에 국수를 넣어 먹는 음식으로 단수이 어디에서나 아케를 먹고 있는 대만 사람들을 만날 수 있다. 해변과 가까운 곳에 위치해 있기 때문에 오징어 구이 등 각종 해산물 요리도 유명한데 그 중 가장 유명한 것은 빠리에서 파는 ‘대왕 오징어 튀김’이다. 이곳에 오는 사람들은 꼭 한 번씩 먹어볼 정도로 그 맛이 탁월하다고. 그 맛에 대한 설명은 오로지 이 오징어 튀김을 다시 먹기 위해 단수이를 다시 찾는 사람들도 무척 많다는 정도로 대신해도 되겠다.

해가 진 8시, 야시장의 진수 스린야시장
대만은 더운 곳인데다 밤새 술 마시는 문화가 없어 밤에 간식을 먹거나 거리에서 노는 문화가 발달했다. 그래서 찾아간 곳은, 타이베이에서 가장 큰 규모를 자랑하는 스린야시장이다. 스린야시장은 의류, 신발, 가방, 보석 등을 주로 취급하는 시장으로 우리나라에 있는 남대문 시장과 분위기가 비슷하다. 수많은 상점들은 저마다의 특색 있는 물품으로 행인들을 유혹하며, 좌판을 벌이고 물건을 파는 사람들도 많다. 여기저기서 물건 값을 흥정하거나 큰 소리로 호객 행위를 하는 모습, 단속이 나오자 부랴부랴 좌판을 철수하는 모습들은 어느 시장에서나 볼 수 있는 친숙한 모습이다.
스린야시장이 유명해진 이유는 규모 때문이기도 하지만 독특하면서도 다양한 전통 먹거리가 많기 때문이다. 스린야시장 한 편에는 큰 건물이 자리 잡고 있는데 이 건물이 바로 먹자골목이다. 먹자골목 안으로 들어서니 아니나 다를까, 쳐우토푸 냄새가 진동한다. 하지만 두 번째 맡는 냄새는 이미 어느 정도 익숙하다. 스린야시장에서는 사천식, 광동식 등 중국 각 지방의 음식이 다양하게 손님들을 맞이하고 있는데 대만이 중국의 각 지역 사람들이 건너와 형성된 나라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유명한 것은 역시 그곳에서만 볼 수 있는 음식일 터. 가장 많은 사람들의 사랑을 받는 것은 찹쌀을 더해 쫄깃하게 만든 굴전이다. 얼굴만큼 크게 부친 후 독특한 주황색 소스를 얹어 내주는 굴전은 이곳을 찾는 사람들이 꼭 거쳐 가야 할 필수코스. 줄을 서지 않으면 먹지 못할 정도인 핫스타 지파이 치킨집의 거대한 닭튀김도 스린야시장만의 명물이다. 또 하나 추천할 만한 것은 더운 나라답게 발달한 눈꽃 빙수다. 얼린 연유를 갈아 만든 후 많은 양의 과일 등을 올려 내는 눈꽃 빙수는 남녀노소 가릴 것 없이 사랑받는 음식이라고. 시장 부근에 학교가 많이 학생들이 많이 찾기 때문에 가격이 무척이나 저렴하다는 것도 특징이다.
하지만 보통 밤 12시가 되면 문을 닫기 시작하니 너무 늦게 가면 허탕을 칠 가능성이 크다. 또 하나, 타이베이의 지하철인 MRT를 이용하는 사람이라면 ‘스린역’이 아니라 ‘지옌탄역’에서 내려야 한다는 사실을 잊지 말자.

쳐우토푸란?
두부로 만들어지는 가공 식품으로 중국, 대만, 홍콩 등 중화권 국가에서는 어디서나 먹을 수 있으며, 가벼운 식사대용이기 때문에 주로 포장마차 등에서 판매한다. 야채를 썩힌 물과 석회 등을 혼합해서 발효시킨 국물에 두부를 하룻밤 정도 담가 두어 만들며 두부 자체는 거의 발효되지 않지만 두부 표면의 식물성 단백질이 썩힌 국물과 만나 독특한 풍미와 강렬한 냄새를 풍긴다. 지역에 따라 사용하는 국물의 제작 방법이 다르고 형태나 먹는 방법도 다르다. 대만과 중국 남부에서는 기름에 튀겨 두반장 소스를 찍어 먹고, 호남성 근방에서는 두부를 튀겨 매운 소스를 뿌려 먹거나 꼬치구이로 먹는다. 북경이나 동북지방에서는 염분이 높은 국물에 장기간 담근 쳐우토푸를 반찬으로 먹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