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판 비포선라이즈

2년 전 여름, 유레일 티켓 한 장 들고 유럽으로 배낭여행을 떠났을 때 일이다. 혼자만의 여행이 처음이라 설렘 반, 두려움 반으로 잔뜩 긴장한 채 도시 곳곳을 누비고 다녔는데, 다행히도 길 한번 헤매는 일 없이 여행은 순조롭게 이어져 갔다. 그러다가 귀국 3일 전 쯤, (누가 타고난 '길치' 아니랄까봐) 열차를 잘못 타는 실수를 저지르고 말았다. 다른 때 같으면 금방 내려서 갈아탔을 텐데, 인연을 만나려고 그랬던 걸까? 이날은 '에라 모르겠다.' 하는 심정으로 그냥 열차에 모을 맡기고 앉아 있었고, 그때 한 동양인 여자가 가까이 오더니 옆 자리에 앉아도 되겠느냐며 영어로 말을 걸었다. 나는 그러라고 했고, 잠시 영어로 대화를 주고받다 보니 그녀 역시 한국인이었던 것. 둘 다 여행 막바지를 향하고 있었고, 지친 상태에서 한국인을 만난 게 무척 반가운 나머지 우리는 각자의 여행담을 늘어놓으면서 수다를 떨었다 한참 후 그녀가 내리고 이후로는 또 혼자가 되어 창 밖 풍경을 보며 달린지 한 시간, 갑자기 열차가 연착되어 건너편 승강장으로 갈아타러 가는데, 반대편에서 아까 내린 그 한국인 여성이 걸어오는 게 아닌가?! 우리 마치 오랜 친구를 마난 것처럼 반가운 기색을 감추지 못했고, 각자 가려고 해썬 목적지는 내일로 미루고 우리가 다시 만난도시인 뷔른츠부르크를 구경하기로 했다.
계획에 없던 생소한 곳이었지만 유럽은 어딜 가나 엽서처럼 아름다웠다. 더구나 우연히 두 번씩 만난 동행과 함께 하니 더욱 즐거웠다. 혼자여서 늘 셀카만 찍었는데 우리는 이곳저곳을 관광하며 서로 사진을 찍어주며 추억을 쌓았다. 저녁에는 시내 바에 앉아 그동안 혼자 마시려니 어쩌지 어색했던 맥주도 나눠 마셨다. 한참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막차시간이 되었고, 헤어짐이 아쉬운 우리는 결국 둘 다 숙소가 잇는 프랑크푸르트로 자리를 옮겨서 못다한 이야기꽃을 피우기에 이르렀다.
그녀와 지금은? 현재 우리는 베스트 프렌드가 되어 2년째 좋은 만남을 이어오고 있다. 영화 '비포 선라이즈'처럼 연인 사이로 발전한 건 아니지만 마음 맞는 이성친구가 있다는 건 행복한 일 아닐까? 차가운 유럽의 밤공기 속에서 밤새도록 낯선 이와 술잔을 기울이던 2년 전 그날은 나에게 유럽 여행 중의 잊지 못할 추억과 좋은 인연을 남겨 주었다.
정상구 경기도 안양시 만안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