Vienna Winter Street

Walk Through the Winter street
걷다, 비엔나의 겨울 거리

물론 걷기에 겨울은 너무나 춥다. 냉장고 속에 들어가 있는 듯한 냉기가 거리 위를 채우고 때로 광풍과도 같은 강풍이 찾아온다. 그러나 겨울 거리는 화려한 건축 기술로 한껏 치장된 건물들 앞을 또 한 번 멋지게 치장하는 크리스마스 장식들로 가득하다. 활기찬 식료품 시장과 웅장한 궁전들은 걸어서 힘겹게 당도한 자에게 특별한 경험을 선물한다. 유럽에서 가장 럭셔리한 사람들의 문화를 향유하는 경험을.

"비엔나에서 차를 타는 건 바보 짓이에요. 수많은 차드리 다니지만 그건 다른 지방에서 오는 사람들이라고 생각해요. 진짜 비엔니즈는 걷거나 자전거를 타죠. 왜냐고요? 도시 전체가 하나의 갤러리잖아요. 누가 갤러리에서 차를 타나요?" 이 자부심 강한 투어 가이드 가브리엘라의 말로 인해 마음 속으로 품었던 투어 계획은 전면 수정되었다. 춥다고, 다리 아프다고, 병 나겠다고 몇 번 유치한 투정도 부렸다(취재에는 체력 비축만이 살 길이다). 가뜩이나 도로가 좁은데다 수많은 주정차로 도로 절반이 사라지는 것을 보지 못한 것은 아니다. 그러나 대중 교통(택시)이용이 몸에 밴 서울 시민으로서 온 종일 걷는 것은 익숙치 않았다고 하면 변명일까. 심플하면서 품위가 느껴지는 옷을 즐겨 입는 비엔나 사람들에게 뒤쳐지지 않기 위해 힐 부츠와 원피스를 선택했을 때 머릿속으로 정한 오늘의 이동 수단은 트램이나 택시였다. 그러나 그녀가 '걷기가 바로 진짜 비엔나를 만나는 길'이라 단언했다.

비엔나를 만나는 가장 좋은 방법 가브리엘라의 걷기 예찬은 외국에서 온 손님에게 다소 무리가 따르는 '고집'에 가까웠지만 투어가 모두 끝난 후 그녀의 골자는 옳았던 것으로 판명되었다. 비엔나를 구성하는 23개 구역은 '올드 타운' 또는 '이너 시티'라 불리는 1번 구역을 시작으로 시계 반대 방향의 나선형으로 형성되어 있다. 면적은 서울의 2/3크기인 400평방킬로미터 정도다. 이 중 올드 타운을 비롯해 5개 정도의 구역이 비엔나의 핵심 볼거리를 간직하고 있다. 관광객에게 사랑 받는 동시에 볼거리가 밀집된 지역들은 서로 가까이에 있어 도시 곳곳을 잇는 트램이나 지하철로 금방 이동할 수 있다. 먼 구역으로 넘어가는 일을 제외하면 대부분 걸어서 이동해야 한다. 이유는 올드 타운의 유적들은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될 정도로 역사가 깊고 아름다운데, 워킹투어를 통해서만 각각의 옆면과 뒷면등을 다각도로 만나볼 수 있기 때문이다. 다음의 이유는 비엔나 사람들이 꽤 보수적인 사교 성향을 가지고 있다는 데 있다. 그들은 먼저 와서 손 내미는 사람들이 아니므로 도보여행자가 행인들 사이를 움직이며 분위기를 만끽해야 하는 것이다. 그러다 보면 비엔나 사람들이 테라스에 나와 무엇을 하는지, 성당 주변에 무얼 하러 가는지, 뭘 먹는지, 어디서 쇼핑하는지 경험으로 알게 된다. 이 원칙은 갤러리에서 그림 보는 것과 같다. 정해진 선 밖에서 그림을 보면 한없이 아름답다. 적절한 선을 유지해 가장 무난한 감상평을 얻는 것이다. 그러나 조금 가까이 다가가 바라보면 전에 없던 감동이 불쑥 튀어나온다. 더 가까이 다가가 그림 속 인물에 투여한 화가의 감정까지 확인하고 나면 감동은 배가 된다. 비엔나의 풍경과 비엔니즈도 그렇게 만나면 보다 깊은 감상평을 얻게 된다.
그래서 이국의 방문자들은 비엔나를 걷는다. 중세의 웅장한 건물이 가까이에서 보면 세월의 흐름을 담아 더욱 멋지고, 문 밖에서는 도도하던 비엔니즈들이 한 걸음 앞의 사람에게는 한없이 친절을 베풀어 준다는 걸 아니까. 방문자들이 많이 찾는, 그리고 워킹과 가장 어울리는 지역은 시청부터 시장까지 색색의 볼거리가 모여 있는 이너 시티다.

시청에서 시장까지, 이너 시티 워킹 투어 어느새 필자는 가브리엘라처럼 비엔나 걷기 여행을 예찬하고 있다. 힘은 둘었지만 시간 대비 가장 효과적인 투어였다는 만족감 때문이다. 그럼, 어떻게 걸어야 할 지 루트를 만들어 볼까? 우리들은 풍경과는 너무나 달라 완벽한 낯섦을 선사하는 이너 시티 투어는 이렇게 시작된다.

Part 1. Walking with Story 오전의 추위를 피할 가장 좋은 장소이자 투어의 출발점은 역시 왕궁이다. 비엔나에 온 이상 합스부르크 왕가로부트 자유로울 수는 없을 것이다. 오스트리아를 손에 쥐고 있던 독일인 제후들은 가장 영향력이 없다고 판단되는 스위스의 백작 루돌프 합스부르크를 신성로마제국의 황제로 만들었다. 그 순간의 선택이 합스부르크 가의 600년 역사를 탄생시켰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14세기 초부터 시작된 합스부르크 가의 치국은 오스트리아를 부유하게 만들었고, 15세기부터 본격적으로 선택한 평화적 영토확장 전략인 국가간 결혼은 유럽 내에 오스트리아의 입지를 굳건하게 만드는 계기가 되었다. 이들의 전략은 대성공했다. 이를 두고 다음과 같은 말이 탄생했다. '힘 센자들은 전쟁하라. 행복한 나라 오스트리아는 결혼할지니'. 벌써부터 로맨틱해지지 않는가.
이너 시티에서 합스부르크의 전통을 가장 잘 간직하고 있는 곳은 왕궁, 즉 호프부르크(Hofburg)다. 호프부르크 안에는 황제 프란츠 요제프가 사용했던 아파트먼트와 그의 아내 엘리자베스의 박물관, 왕실 보물관과 민족학 박물관, 스페인 승마학교 등이 있다. 1220년 즈음에 세워진 이후 650여 년 동안 합스부르크의 역사와 함께 조금씩 증축되어 온 것이 현재의 크기에 이르렀다. 시대별 건축 기법을 둘러볼 수 있는 것도 큰 매력. 천천히 돌아보면 하루가 금세 지나고 마는 엄청난 규모다. 그 웅장함을 가장 먼저 보고 나면 다른 건축물ㄷ이 눈에 들어오지 않을 지도 모른다. 그러나 걱정 말자. 왕궁을 비롯해 화려한 건축 기술을 뽐내는 성당과 박물관은 비엔나 전역에 넉넉하게 널려 있고, 다음으로 만나볼 곳들은 각각의 매력을 섭섭하지 않게 가지고 있으니까.
맞은 편으로 10분 정도 걸으면 슈테판 대성당(Stephansdom)을 만난다. 이 성당의 별칭은 '비엔나의 얼굴' 이다. 12세기 중반에 로마네스크 양식으로 지어진 것이 슈테판의 첫 역사다. 이후 합스부르크의 루돌프 4세의 명령으로 고딕 양식을 갖춘 40여 미터 높이의 성당으로 재탄생했다. 길이는 100미터가 넘는 크기라 가까이서 보면 무서울 정도로 웅장하다. 북쪽 탑에는 큰 종이 있는데, 오스만 투르크군이 남긴 180개의 대포를 녹여 만들었다고 한다. 새해를 비엔나에서 보낸다면 이 종의 깊은 울림을 확인할 수 있을 것이다. 슈테판 성당에는 비엔나 소년 소녀 합창단의 음악회라든가 전통 방식을 고수한 결혼식(모차르트도 이곳에서 결혼했다)등 여러 볼거리와 이야깃거리들이 가득하다. 비엔나에서 의미 있는 이벤트를 만들고 싶은 이들은 이 슈테판 성당을 가장 먼저 찾는다는 말이 있을 정도다. 그러니 연말연시를 위한 이벤트는 필수적으로 진행된다. 겨울에는 11월부터 크리스마스와 새해를 축하하기 위한 마켓이 이곳 앞마당을 메운다. 밤이 되면 더욱 시커멓게 위용을 드러내는 슈테판이지만 이 시기만큼음 대중들로부터 경외감 대신 친밀감을 불러 일으킨다.

Part 2. Walking with color 크리스마스 마켓의 핵심은 시청 앞에서 이루어진다. 낮에 봐도, 밤에 봐도 눈물 나게 아름답다는 비엔나의 시청은 크리스마스 시즌이 되면 관광객들로부터 더 큰 탄성을 뽑아낸다. 매년 11월 중순부터 12월 24일까지 이어지는 크리스트킨들 마크트(Christkind Markt)는 모든 사람들에게 크리스마스 무드를 선물하기 위한 자리다. 유럽을 비롯해 세계 각국에서 온 관광객들은 잊지 못할 크리스마스를 만들기 위해 이 시즌, 특히 모든 불빛들이 켜지는 어스름한 저녁 시간에 비엔나를 찾는다. 이곳 말고도 장신구와 쿠키 등을 판매하는 조그만 부스들이 도시 곳곳에 형성되는데, 그 중 시청 앞이 가장 크고 화려하다. 무엇보다 시청의 환상적인 야경은 당신 일생에 짜릿한 크리스마스 베스트 5자리 정도는 넘볼 만하다. 크리스마스 마켓은 매서운 추위에도 불구하고 겨울에 비엔나를 찾아야 하는 이유마저 마련해준다. 약 7세기 전으로 거슬러 올라가는 그 시초는 이렇다. 1296년 황제는 시민들이 식료품 등 필요한 물품을 거래하는 장을 마련하고자 디젬베르 마크트(Dezember Markt, 영어로는 December market)를 만들었다. 이후 북부 독일의 전통 방식이 유입되어 크리스마스 나무를 꾸미기 위한 액세서리가 거래되었고, 1800년대에 이르러 크리스마스를 위한 물품들이 대거 전시되었다. 현재 시청 앞에는 140여 개의 상점이 열린다. 대부분이 이곳에서만 살 수 있는 독특한 물품들로, 핸드메이드가 많아 품질은 보장된다. 산타를 믿지 않는 사람도 아이처럼 가슴 떨리게 만드는 수많은 물건들이 추위마저 잊게 한다. 그래서 겨우 마켓 하나를 보기 위해 연간 300만 명이 넘는 방문자가 찾아오는게 아닐까?
크리스마스 시즌을 놓쳤다고 해서 마켓에 대한 기대감을 접을 필요는 없다. 계절과 관계 없이 아침 6시부터 오후 6시까지 열리는 또 다른 마켓이 이너 시티에 바로 인접해 있다. 나슈 마크트(Nasch Markt)가 그것이다. 터키 이민자들의 수요로 탄생한 나슈 시장은 향신료와 과일 등을 판매하는 활기 넘치는 곳이다. 현재는 이민자와 비엔니즈가 섞여 있는데, 100여 개의 상점과 함께 음식점도 여럿 있다. 신기한 것은 재래시장과 비슷한 분위기의 이 시장 안에 아주 트렌디한 레스토랑들이 늘어서 있다는 것. 그래서 나슈 시장은 이너 시티에서 끌어 모았던 도시답게 아랍계 향신료와 식재료들이 나름의 이국적인 모습으로 진열돼 있다. 그 영향으로 비엔니즈는 향신료를 사랑하는 유럽인 중 한 부류가 되었다. 도시의 웅장함에 주눅이 들었다면 나슈 마크트에서 사람 냄새가 주는 편안함을 만날 수 있을 것이다. 신선한 원색의 과일과 채소들은 추위에 떠는 모든 이들에게 활력을 준다. 단, 비엔나의 수많은 상점들과 같이 일요일에는 쉬므로 주의할 것.
나슈 마크트까지 보고 나면 하루 해가 완전히 저물었을 것이다. 오후 6시에 어두워지기 시작한다면 비엔나의 해가 당신을 많이 기다려준 것이다(흐린 겨울날에는 4시부터 어두워지기도 한다). 비록 간소화된 워팅 투어였지만 당신은 해냈다. 모차르트나 요한 스트라우스처럼 비엔나의 구시가지를 걸어서 거쳐간 또 한 사람이 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