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urkey story is still not over
이스탄불 곳곳에, 이야기가 있었다
이 페이지는 A컷이 아니라서, 이야깃거리가 없어서, 스팟에 대한 정보가 부족해서 등등의 이유로 사라지는 사진들을 구해내는 페이지입니다. 지금 저는 폐기 위기에 처한 소중한 터키 이야기들을 시작합니다. 인쇄용이 되지 못함에도 불구하고 버리지 못한 것은 당시의 순간을 잊을 수 없기 때문입니다. 다녀온 관광지마다 미처 하지 못한 한두 개의 말들이 남아 있기 때문이고요.

톱카프
어른들은 말을 잘 듣는다. 톱카프 궁전의 가이드가 표를 끊으러 간 사이, 유럽에서 온 장년층 관광객들은 나란히 앉아 말도 없이 기다린다. 어른들은 언제나 가이드의 말에 귀를 기울이고 유적을 세심히 들여다 보며 기념 사진도 열심히 찍는다. 그들 말처럼 ‘생애 마지막’이라 생각하면 우리들의 여행도 더 진하게 남을 거라는 명백한 진리를 몸소 보여주는 듯한 앉음새들.

돌마바흐체
대학생 무리가 놀러 와 멋진 사진 찍기를 시작한다. 유일한 커플인 두 사람에게 다정한 포즈를 제안했다. 남자는 서슴없이 여자를 끌어안았고 둘은 다정하게 입을 맞추었다. 친구들은 환호했다. 젊다는 건, 사랑한다는 건, 시간과 장소를 막론하고 주위를 환하게 만들어 버린다.

아야소피아 성당
사람의 등이 좋아서 그 온기에 잠시 서 있다가, 쭈글쭈글한 손으로 경배심을 담는 할아버지의 모습이 또 좋아져서 조금 더 서 있었다. 아무리 애를 써도 흔들리지 않는 사진을 건질 수 없음에 할아버지는 낙심하지 않았다. 눈에 보일 정도로 팔이 떨렸지만 그렇게 찍고 또 찍을 수 있음에 감사하는 것도 같았다. 열정에서 나는 자주 진다.

갈라타 타워
‘적당히 틈을 두고 탐색전을 벌이다가도 물리적 거리를 참지 못하고 순식간에 가깝고 뜨거워진다. 그리고 열기가 사라지고 온기마저 증발하면 다시금 쓸쓸해진다. 모두 저 멀리 보스포러스 해협을 보고 있지만, 아마도 각기 다른 바다를 담을 것이다. 사랑의 바다와 설렘의 바다 또는 맥없이 흘러가는 야속한 바다를.’
갈라타 타워의 위태위태한 전망대는 동그랗고 좁아서 앞에 있는 사람들이 난간을 붙잡고 있으면 영락 없이 뒤에서 지켜보아야 한다. 어차피 쓰지 못할 사진이라는 걸 알면서도 열심히 찍고 적은 이유는 그 좁은 탑 위에도 온갖 인간 관계들이 섞여 있기 때문이었다.

탁심
신시가지 최고의 번화가 탁심은 명동과 비슷한 분위기다. 자라 매장에 사람이 바글바글하다는 것 역시 명동과 똑같다. 히잡을 쓰고 자라의 신상품을 사는 여자들의 차림 어디에도 자라 옷이 자리할 틈이 없는데, 그녀들은 한참 구경하고 한껏 사서 나갔다. 언제나 신비롭기만 한 그녀들이다.

예니 자미
나름의 욕심이라는 것이 있어서 어떤 풍경 앞에 서면 사람들이 어떻게 지나가면 좋겠다는 바람이 생긴다. 베이지와 브라운이라는 비슷한 톤의 옷을 입은 아저씨 둘, 눈에 띄었다. 한 사람은 배를 보이고 한 사람은 등을 보이고 뒤에는 회색 빛 모스크가 웅장하게 서 있는 생동감 있는 사진을 생각했다. 그렇다고 뜻대로 될 리 있나. 안돼, 움직이지 마세요, 가지 마세요, 아아, 안돼. 결국 사람들이 너무나 밀려 들어오는 통에 작은 소망은 헝클어졌다. 그래도 고생한 흔적 때문에 버리지 못한다. 이 사진.

아타투르크 다리
달리는 차 안에서 뻔히 쓰지 못할 사진을 찍는다는 건, 흔들릴 것을 알면서도 셔터를 누르는 것은 사실은 풍경이 아니라 풍경이 치환시켜줄 그 때의 마음을 담아두고 싶기 때문이다. 일정을 마치고 숙소로 돌아가는 차 안에서, 낯섦은 그대로인 채 피곤하고 배가 고팠다. 이토록 이국적인 도시를 밟았다는 것이 영광스러우면서도 제쳐 두고 온 많은 것들이 신경 쓰여 여기에 있지도, 저기에 가지도 못하는 마음의 방랑을 느꼈다. 그리고 방랑도 이 땅의 일부라는 것을 알았다.

그랜드 바자
예쁜 꼬마가 온갖 교태를 부리며 초콜릿과 껌을 판다. 멋을 어찌나 부렸는지 화장도 하고 치렁치렁한 목걸이도 걸쳤다. 아직 네 살. 앞니가 빠져 발음도 새는 주제에 현란한 상술을 펼친다. 신발은 거의 신지 않고 있었고 이따금 주위 상인들이 소리 내어 쫓아냈다. 물건을 사고 안 사고는 관광객의 선택이다. 아이를 불쌍히 여기고 말고 역시 개인의 자유다. 중요한 것은 꼬마는 자기 삶의 방식대로 오늘 하루도 열심히 살았다는 사실이다. 아이보다 게으른 주제라서 주머니에 손을 넣어 집히는 동전을 전부 주었다.

미니아투르크
뭐, 포토그래퍼는 아니지만 여행 기자 밥을 몇 년 먹고 나면 알게 되는 사실이 하나 있는데, 뭐, 중요한 건 아니지만 살짝 귀띔을 하자면 원고를 얹힐 수 있도록 여백을 좀 살려서 사진 찍을 필요도 있다는 것. 누구나 다 알고 있겠지만, 뭐, 그렇다는 이야기다. 그래서 찍은 이 사진은 눈으로 볼 때는 기가 막히게 아름다운 하늘이었는데 책에 쓰려니 심심해서 사장되고 말았다. 심심한 풍경을 심심하다고 말하는 건 여행 잡지의 미덕이 되지 못할 때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