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hort Memory of Vietnam
베트남에 대한 몇 가지 단상

아오자이를 입은 아름다운 여인이 살포시 걸어가고, 그 뒤로 낭만을 실은 시클로가 거리를 누비는, 쌀국수의 독특한 맛에 빠져들고 진한 커피맛에 또 한 번 매료되는 곳. 베트남에 대한 환상 혹은 단상.

베트남 국기
베트남 곳곳에서는 빨간 바탕에 노란색 별이 새겨진 베트남 국기가 펄럭이는 모습을 쉽게 볼 수 있다. ‘금성홍기(金星紅旗)’라고도 불리는 이 국기는 1976년 베트남 통일 때 통일국가의 국기로 정하였다고 하는데, 빨강은 혁명의 피와 조국의 정신을, 황색별 5개의 빛은 노동자, 농민, 지식인, 청년, 군인의 단결을 뜻한다고 한다. 늘 느끼는 거지만 사회주의 국가는 국기에서도 그 분위기가 물씬 풍긴다. 그리고 강렬한 색깔은 뇌리에 강하기 남는다.

호치민 동상
호치민 독립 기념궁 앞의 호치민 동상. 베트남의 혁명영웅 호치민은 사람들의 정신적 지주로, 오늘날까지 여전히 사랑과 존경을 받고 있는 인물이다. ‘호 아저씨’라는 뜻의 ‘박 호(Bac Ho)’라는 애칭으로 불리는데, 그래서인지 어느 주말 정부에 불만을 품은 농민(피켓에 쓴 말은 무슨 뜻인지 모르겠지만 그들의 차림을 보니 그렇게 보였다)들은 호 아저씨 동상 앞에 몰려와 시위를 했다. ‘사회주의 국가에서도 시위를 하는구나.’라는 생각을 하자마자 경찰이 왔고 경찰은 시위대를 호 아저씨에게서 떨어뜨려 놓았다.

논
원뿔 모형의 베트남 전통모자 논. 베트남에 가면 누구나 논을 쓴다. 햇빛을 가리려는 베트남 사람들도, 이곳을 찾은 관광객들도. 물론 기자도 예외일 순 없었다. 예쁜 모양의 논을 사기 위해 기념품 가게 이곳저곳을 기웃거리다가 거리에서 먹거리를 팔고 있는 아주머니들을 발견했다. 아니, 그들이 쓰고 있는 논을 발견했다는 말이 더 맞을 것이다. 넓은 챙의 멋들어진, 견고해 보이기까지 하는 그것이 마음에 쏙 들었는데, 어디에서도 그것과 똑같은 논을 발견할 순 없었다. 아쉬운 대로 기념품용 논을 사서 쓰고 다녔다. 그리고 가방에도 들어가지 않아 손으로 들고오는 수고를 감수하고 집까지 데려왔다. 베트남에서의 추억을 가득 담아서.

베트남 쌀국수
아, 또다시 군침이 돈다. 진한 고깃국물에 쌀로 만든 국수를 넣고 얇게 썬 안심고기와 숙주나물, 라임 등을 섞어 후루룩~! 베트남의 쌀국수는 우리나라에서 먹는 그것보다 더 진하고 깊은맛이 우러났고, 난 그 독특한 향과 맛에 매료되고 말았다. 그래서 처음에는 이틀에 한 번, 그리고 하루에 한 번, 나중에는 하루에 두 끼를 쌀국수로 때웠으니, ‘Pho24’라 쓰인 쌀국수 체인점 간판만 보면 침부터 꼴깍!

시클로
시클로는 아오자이 여인 만큼이나 베트남의 낭만이다. 그리고 사라진 아오자이 여인만큼이나 상업화된 시클로는 적잖은 실망을 안겨주었다. 앞바퀴를 떼어내고 의자를 달아 개조한 시클로. 사람을 싣고, 낭만을 싣고 거리를 미끄러져 가는 지극히 베트남스러운 시클로의 풍경을 기대했던 내게 베트남은 시클로 대신 오토바이가 반겼다. 그리고 한쪽에서 지나가는 관광객에게 시클로 관광을 흥정하는 아저씨들은 터무니없는 가격을 부르며 집요하게 따라왔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여전히 '베트남'하면 난 시클로의 풍경이 떠오른다. 한 국가가 가지고 있는 이미지란 이토록 강력하다.

아오자이
아오자이를 입은 아리따운 여성은 외국인들에게 베트남의 로망이다. 몸에 착 달라붙는 순백의 아오자이를 입은 여성들이 뿜어내는 신비한 매력이란! 베트남 여행을 함께 한 일행, 그중에서도 특히 남성들은 눈에 불(?)을 켜고 아오자이 여성을 찾아 헤맸다. 하지만, 이미 서구화된 문화 탓인지, 베트남에 가기만 하면 아오자이를 입은 여성이 거리에 가득할 것이라는 예상과 달리 아오자이를 입은 여성은 더 이상 그곳에 없었다. 교복으로 아오자이를 입은 몇몇 학생들을 만날 수 있었을 뿐. 남성들의 눈에는 실망의 기력이 가득했다.

베트남에서 길 건너는 법
자, 베트남으로 여행을 계획 중이시라면 잘 들으세요. 베트남에서 길 건너는 법을 터득하셔야 순조로운 여행을 할 수 있답니다. 오토바이와 자전거, 그리고 자동차가 뒤섞인 베트남 거리를 보고 있노라면 혼이 쏙 빠질 지경이죠. 게다가 건널목은 아주 드물게 있을 뿐 그 복잡한 거리에서 무단횡단을 감행해야 하는데요. 처음에는 길에 발을 내딛기가 여간 무서운 게 아니랍니다. 하지만 그렇게 머뭇거리다가는 온종일 그 자리에 서 있어야 할지도 몰라요. 조심히 건너가시라고 먼저 양보하는 일은 일어나지 않거든요. 베트남에서 길 건너는 노하우! 일단 눈 질끈 감고 도로에 내려섭니다. 그리고 과감히 앞으로 나아갑니다. 무조건 과감해야 합니다. 뚜벅뚜벅 걸어가면 쌩하고 달리던 오토바이들이 슬금슬금 속력을 줄이고 알아서 피해가거든요. 도로 위에서 머뭇거리더나 오토바이를 피하려 들면 오히려 사고가 납니다. 그냥 가려는 방향으로 쭉 걸어가세요. 참 쉽죠~잉!

헬멧 패션
패션은 본능임이 분명하다. 오토바이를 타고 쌩~ 하고 달리는 와중에도 헬멧을 통해 패션을 뽐내니 말이다. 색깔이며 모양이 어찌나 다양하던지 헬멧 구경만 해도 시간가는 줄 모를 정도다. 그리고 배 아프게도 그중에는 커플 헬멧을 쓴 연인이 꼭 있다.

호치민 전쟁 기념관
1964년 통킹만 사건을 구실로 미국이 북 베트남에 폭격하면서 시작된 베트남 전쟁. 그 전쟁의 잔혹감이 고스란히 전시된 호치민 전쟁 기념관에는 전쟁 당시 쓰였던 비행기와 탱크를 비롯해 당시의 모습을 보여주는 사진이 전시되어 있다. 차마 눈 뜨고 볼 수 없을 만큼 잔인하고 끔찍한 사진 속 전쟁의 풍경. 내가 같은 사람인 것이 부끄러워서, 그 모습이 너무나 처참해서, 눈물이 맺혔고, 한동안 공포와 우울감이 이어졌다. 솔직히 다시는 가고 싶지 않은 곳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