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엔나, 환상 교향곡
Viennese Symphony

아무리 새롭게 조명해보려 해도 음악을 빼고는 비엔나를 설명하기는 힘들다. 비엔나의 시작과 끝이고 부분이자 전부인, 세계적인 음악가들. 올해로 탄생 150주년을 맞은 말러를 필두로 비엔나라는 오선지에 새겨진 음악가들의 이야기를 두드려 본다.

18세기였다. 합스부르크 왕가의 확실한 재정적 지원 아래 세계의 예술가들이 비엔나에 몰려들었다. 마리아 테레지아는 비엔나를 음악의 도시로 만들기 위해 여러 도시의 훌륭한 예술가들이 ‘프리’로 활동할 수 있도록 생계를 장려했다. 이후 세기말, 왕가의 몰락이 진행되는 순간까지도 음악가들의 비엔나에 대한 사랑은 식지 않았다. 비엔나 태생이 아니지만 모차르트와 베토벤도 거기 있었다. 그 두 이름만으로 비엔나는 ‘음악의 도시’라는 타이틀을 결코 놓치지 않을 진대, 여기에 하이든과 슈베르트, 요한 스트라우스가 가세하니 비엔나가 가진 음악적 자원과 비엔나가 세운 예술적 기여는 타 도시가 따라갈 수 없는 경지에 올라 있다. 

천재 음악가와 고독한 인간을 만나는 시간
비엔나 땅을 밟기 전, 위인전에서나 만나곤 했던 그 음악가들은 범접할 수 없는 생의 영역에 있었다. 천재였고 위대했고 유명했다. 그러나 비엔나 곳곳에서 그들의 흔적을 만나보면 천재이지만 어쩔 수 없는, 우리와 같은 인간이라는 친근감을 느끼게 된다. 고독감과 외로움과 열등감에 휩싸여 자신과 끊임 없이 싸워야 했던 사람이 보인다. 그 마음으로 음악을 다시 들으면 전에는 느끼지 못했던 한 인간의 애환과 고통이 고스란히 전달된다. 그래서 클래식 입문자의 비엔나행은 탁월한 선택이라 할 수 있겠다.
청각을 잃으며 더욱 신경질적으로 변해 가던 베토벤은 엄청난 명성으로도 위로 받지 못했다. 공연에서 기립 박수를 받아도 박수 소리를 듣지 못했으니, 그의 영광은 점차 잿빛으로 변해간 것이다. 비엔나에서 거주하는 10년 동안 70여 번이나 이사를 했고 악보를 대신 읽어줄 학생이 필요하면서도 늘 사람들을 거칠게 대해 누구도 그의 곁에 있기를 괴로워했다는 후일담이 있다. 게다가 망상이 심해서 거짓말을 자주 하곤 했는데, 주위 사람들의 관계에 대해 특히 그랬다고 한다. 무너져 가는 자신과 바로 서고 싶은 자신이 늘 대립하여 고통에서 헤어나오질 못했기 때문이다. 아름답다고 말하면 가벼워질 것 같은, 아름답다는 표현만으로는 설명이 되지 않는 그의 음악들에는 한 편으로 못나고 한 편으로 연약한 인간 베토벤이 담겨 있다. 비엔나에서 그의 산책로를 따라 걸어 보면 더욱 그 사실이 선명해질 것이다. 
이런 베토벤이 가장 인정한 사람이 모차르트다. 그는 모차르트를 가리켜 ‘천재인 유일한 음악가’라는 평을 하곤 했다. 10대 초반, 성당에서 110분짜리 합창곡이 연주되는 것을 두 번 듣고 악보로 완벽하게 적어냈다는 신의 경지에 이른 작곡가(현대 심리학자들이 모차르트의 지능 지수를 계산해 보니 250이 나왔다고 한다). 그러나 ‘머릿속에서 시작부터 끝까지 한 곡의 교향곡이 완성되어 왔다’는 사실과 달리 그는 노력파였고 번뇌와 유혹을 견디지 못하는 인물이었다. 모차르트는 엄청난 수입을 술과 노름으로 탕진하곤 했다. 주위사람들에게 ‘빚쟁이’라 불렸다. 권력에 아부하는 것이 싫어 대주교와 한바탕 싸우기도 했는데, 이 때문에 ‘철 없는 사고뭉치’라는 별명도 추가되었다. 첫사랑에 실패하고 파리에서 비참하게 생활하다 어머니를 잃고 이탈리아의 작곡가 살리에르의 추종자들에게 쉼 없이 방해 공작을 받으며 살아 오며 빛을 잃은 날도 허다했다. 그래서 모차르트의 음악에는 빛과 어두움이 극명하게 들어 있고, 인간의 가장 순수한 감정들이 초연하게 묘사돼 있다. 조금 과장해서 정류장마다 모차르트 초콜릿을 파는 가게를 만나게 되는 비엔나. 비엔나에는 그의 모든 애환이 서려 있다.

2010, 말러의 해
그러나 올해의 화두는 더 이상 앞의 두 사람이 아니다. 새해가 밝자마자 비엔나 전역은 죽음과 절망을 엮은 작곡가 말러를 새로운 히어로로 선정했다. 2010년은 말러 탄생 150주년이고, 2011년은 그의 서거 100주년이기 때문이다(지난 2009년 비엔나의 주인공은 서거 200주년을 맞은 하이든이었다).
클래식을 좋아하는 사람들 사이에서 말러는 스타다. ‘말러리안’이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그의 음악 세계에 한 번 빠지면 말러가 작곡한 모든 교향곡을 섭렵한 뒤에야 비로소 그 세계에서 벗어날 수 있다고도 한다. 보헤미아 태생의 작곡가 겸 지휘자인 말러는 오스트리아 전역에서 가장 위대한 지휘자 중 한 명으로 알려졌다. 그의 첫 명성은 칼 마리아 폰 베버의 오페라 ‘세 사람의 핀토’의 연주용 판을 만든 것에서 비롯되었다. 음반의 성공으로 그는 돈과 명예를 모두 얻기 시작했다. 이후 1897년, 말러는 비엔나 오페라 감독직을 제안 받는다. 당시 법에 따르면 유대인이 맡을 수 없는 자리였기에 유대인이었던 말러는 로마 가톨릭 교회로 종교를 바꾼다. 이 감독직으로 인해 그는 황실 귀족과 같은 신분을 보장 받게 되고, 여름을 제외한 모든 계절을 지휘에 전념했다. 그리고 여름마다 자신의 작은 오두막에서 교향곡을 작곡했다. 
5년 뒤인 1902년, 알마 쉰들러와 결혼하고 두 딸을 두었으나 첫째 딸이 다섯 살에 성홍열로 죽게 되는 비극을 맞는다. 그리고 같은 해 그는 심장병을 앓게 된다. 예술에 대한 병적인 치밀함이 결국 그를 진짜 병으로 인도한 것이다. 더불어 이 당시 언론은 유대교를 버리고 가톨릭을 택한 그의 반유대주의에 맹공을 퍼부었다. 이런 그의 삶은 그를 드디어 ‘염세적 작곡가’로 만들었다. 그의 교황곡은 언제나, 삶을 부정했다가 찬양했다가 불안에 떨었다가 그리워했다가를 반복하는 신경질적이고도 솔직하기 그지 없는 음악으로 평가되곤 했다. ‘낭만파의 마지막 인물’이라는 수식어처럼 그의 음악에는 세기말에 대한 불안도 한 몫 했다. 결국 1911년 5월, 말러는 연쇄상구균 감염을 이기지 못하고 별세한다. 뉴욕 필하모닉 지휘자를 맡은 지 얼마 되지 않은 때, 그는 죽음을 감지하고 비엔나로 돌아온다. 현재 비엔나 외곽에는 일찍 죽은 그의 딸과 말러의 묘지가 나란히 뉘어 있다.

세상에 울려 퍼지는 대지의 노래
그에 대한 일화 중 ‘그나마’ 재미 있는 것은 작곡가들에게 징크스가 있다는 9번 교향곡을 작곡할 때의 일이다. 그의 작품 중 가장 유명한 ‘대지의 노래’는 말러가 아홉 번째로 작곡한 교향곡이지만 숫자를 배제하고 이름만 붙여 세상에 내놓았다. 수많은 작곡가들이 9번 교향곡을 완성하기 전에 어떤 이유로든 불행을 맞거나 완성한다 해도 유작이 되어 버리는 ‘9번 교향곡 징크스’를 두려워했기 때문이다. 중국 당나라 때 유행했던 한시를 모은 책 ‘중국의 피리’를 읽고 말러는 특유의 우주관을 확고히 하게 된다. 인생의 깊은 고뇌와 내세에 대한 집착 등이 중국의 사상으로 말미암아 더욱 견고해진 것이다. 그 이해를 토대로 대지의 노래는 작곡되었다. 모두 6개의 악장으로 되어 있는데, 이태백의 ‘술의 노래’, ‘청춘에 대하여’ 등이 제목으로 쓰였다. 여기서 ‘대지’란 드넓은 땅이라기보다는 죽음의 세계와 반대되는 현실의 세계를 뜻한다. 언제나 끝없는 절망과 고독, 죽음을 끔찍하게 두려워했던 말러는 그 두려움 속에서 히스테릭한 음들을 창작했고, 그 덕분에 자신만의 세계를 구축할 수 있었다. ‘영원히, 영원히’로 끝나는 그의 악장은 말러의 예술혼 역시 영원할 것임을 말해주는 듯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