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newed Memory about Normandie
노르망디를 새롭게 기억하다.
 
프랑스 파리 북서쪽에 위치한 노르망디 지방은 많은 이들에게 연합군 상륙작전이 행해진 곳으로 기억된다. 하지만 이제는 전쟁의 한 부분으로 채워진 기억을 조금 비워내고 아름다운 자연과 멋진 건축물이 어우러져 만들어내는 한 폭의 그림 같은 풍광을 담을 차례다. 노르망디를 머릿속에 그리면 느릿느릿, 평온한 미소가 지어질 수 있도록. 

엽서에 단골로 등장하는 아름다운 몽셍미셀(Mont Saint Michel)을 거쳐 고성, 계곡, 강, 포도밭으로 유명한 루아르 계곡(Loire Valley)을 본 후 잔 다르크(Jeanne d'Arc)의 도시인 루앙(Rouen)을 거쳐 돌아오는 장장 2천km의 여정을 위해 영국에서 밤 12시에 출발, 프랑스 노르망디(Normandie)에 새벽 5시에 도착했다. 영국의 차를 페리에 싣고 해협을 건너는 길. 비싼 뱃삯과 허비하는 시간을 아끼려 배에서 잠을 청하니 4박 5일의 일정이 2박 5일이 되어버렸다.

라 캄브 독일군묘지와 쉘부르를 지나  해도 미쳐 뜨지 않은 텅 빈 고속도로를 따라 몽셍미셀을 향해 달리던 중 우연히 라 캄브(La Cambe) 독일군묘지를 발견했다. 이곳이 2차 대전의 승패를 가른 그 유명한 노르망디 상륙작전의 격전지 중의 하나 임을 알려주는 증거로 이 묘지는 전쟁 중 여기저기에 급하게 만들어진 무덤의 유해를 한 곳으로 모으는 과정에서 만들어진 많은 묘지 중 하나다. 자국민에게 갖은 피해를 입힌 침입군들을 자신들의 땅에 묻는 것을 허락하고 보살피다니. 프랑스인의 똘레랑스(tol?rance 프랑스어로 관용의 뜻이다)가 가히 놀랍고 존경스러웠다. 당시 한국이 서해의 천안함 사태가 한창이었던 터라 우리나라의 현실에 대해 참 많은 생각이 들었다. 우리 땅 여기저기에 흩어져 있는 북한 청년들의 유해와 북한 땅 어딘가에 묻혀있을 우리 청년들의 유해는 어떤 대우를 받고 있을까. 묘지 안내판에 적혀있던 노벨평화상 수상자 슈바이처 박사의 말을 그대로 옮겨본다. “병사들의 무덤 보다 평화에 대한 더 좋은 설교는 없다.”
묘지를 지나 다시 길을 떠나는데 익숙한 단어가 적힌 표지판이 눈에 들어왔다. 뮤지컬 영화 <쉘부르의 우산>의 그 ‘쉘부르(Cherbourg)’였다. 비련의 여주인공인 쥬느비에브가 떠올라 차를 돌려 1시간 반을 달려 계획에 없던 쉘브르에 도착했다. 시내중심에 위치한 광장에서는 시장이 열리고 있었는데 작은 항구도시이기에 볼 것이 그리 많지는 않았다. 나를 울렸던 영화 속 슬픈 사랑이야기의 흔적도 전혀 찾아볼 수가 없었다. 일본관광객을 상대로 한 ‘쉘부르의 우산’이라는 가게를 하나 찾아냈지만 도시로고가 들어간 200달러짜리 값비싼 우산을 판매할 뿐. 해변 쪽으로 차를 돌려 모래언덕과 바다가 보이는 시골길을 천천히 돌아온 것으로 아쉬운 마음을 위로할 수밖에 없었다. 

 성 미카엘의 산, 몽셍미셀 비가 부슬부슬 내리고 안개가 적지 않게 끼여 시계가 좋지 않은 시골 길을 달리다 일행의 비명 소리에 놀라 옆으로 고개를 돌렸다. 저 멀리 몽셍미셀이 마치 신기루처럼, 안개 속에 몽환의 그림처럼 어렴풋이 떠있었다. 몽셍미셀은 ‘성 미카엘의 산’이라는 뜻으로 바위산 전체가 베네딕트 수도원이다. 지금도 베네딕트 수사와 수녀들의 공동체가 관리를 하고 있는데 우리가 갔을 때 마침 부활절이라 미사 준비가 한창이었다. 몽셍미셀은 원래 밀물 때는 육지와 분리되는 섬이었기 때문에 한 때 감옥으로도 사용되었다고 한다. 유명한 수인으로는 레미제라블과 노트르담의 꼽추의 작가 빅토르 유고(Victor Hugo)가 있다. 뻘로 가득 찬 바다 중간에 우뚝 솟은 언덕 위에 자리한 성은 무질서 하고 시기가 다르게 증축이 된 것 같지만 전체적으로 잘 어우러져 매우 아름답다. 특히 매우 견고하여 영국과의 백 년 전쟁 중 침공을 부단히 받고도 함락되지 않았다고 한다. 1979년 유네스코 세계문화 유산으로 지정되었으며 세계 각지에서 많은 관광객이 찾는다.

고성들이 그려낸 한 폭의 그림 다음 행선지는 루아르 계곡이다. 계곡은 이름대로 루아르 강을 따라가는 길로 계곡이라는 말이 무색하게 주의의 산은 야산 정도에 불과하다. 하지만 산을 따라 군데군데 포도밭이 눈에 띄는데 유유히 흐르는 강물과 그 주위에 늘어선 나무들이 함께 만드는 풍경은 마치 한 폭의 그림 같다. 특히 프랑스어로 샤또(Chateau)라고 불리는 왕과 귀족들의 고성이 산자락 구석구석에 즐비한데 안내 책자에 소개된 큰 성들만 해도 200km거리 안에 25개나 있고 지도에 표시된 것들을 대충 세어 봐도 50개가 넘는다. 파리에서 그리 멀지 않은 거리라 왕과 귀족들이 파리의 혼잡함을 피해 사냥도 하고 포도주를 즐기기가 좋아 자주 내려와 묵었다고 한다.
아주 조그만 해변가 도시에서 프렌치 스타일의 점심을 느긋하게 즐기고 레오나르도 다빈치(Leonardo da Vinci)의 무덤이 있는 앙브와즈 성(Chateau d'Amboise)으로 향했다. 앙브와즈 성은 레오나르도 다빈치를 비롯한 많은 예술가들을 보살펴 프랑스 르네상스의 선구자로 불리는 프랑소와 1세(Fran?ois I) 왕이 자라고 거처하던 곳이다. 다빈치가 프랑소와 1세의 초청을 받아 이탈리아에서 올 때 모나리자를 가지고 와 4천 에쿠스를 받고 판 곳도 역시 이 곳이다. 다빈치는 왕의 후원으로 지금은 다빈치 박물관인 이 성 근처 클로루세 성(Chateau du Clos Luce)에서 죽을 때까지 활동했는데 죽어서는 유언에 따라 성 구석에 지어진 작은 교회에 혼자 묻히는 영광을 받았다.
샹보르 성(Chateau de Chambord)은 루아르 계곡에서 가장 아름답다는 성이다. 프랑소와 1세가 20살 때 건축을 시작했고 후에 베르사이유 궁전을 지은 태양왕 루이 14세(Louis le Grand Monarque)가 현재의 상태로 화려하게 중건했다. 하지만 태양왕은 이 성에 겨우 9번 밖에 묵지 않았다는 이야기가 전해진다. 이 성의 일부는 레오나르도 다빈치가 설계했는데 그런 인연 때문인지 2차 대전 중 루브르 박물관에 있던 그의 작품 ‘모나리자’가 한 때 이곳으로 피난을 와서 머무르기도 했다. 마침 큰 모나리자 그림 사진과 피난 사진전이 열리고 있어 그 때의 모습을 자세히 볼 수 있었다. 샹보르 성의 정원은 상상을 초월하는 크기다. 프랑스 정원답게 기하학적인 미를 자랑하지만 아무리 왕권신수설을 자랑한 왕이라지만 이러한 사치를 누려도 되는가라는 생각이 들만큼 웅장하다.
루아르 계곡을 여행하는 동안 미리 호텔을 정하지 않아 광장 안내판에 나와 있는 그럴듯한 호텔들을 찾아갔다. 그러나 유럽의 가장 큰 휴일인 부활절인 탓에 호텔은 이미 만원이었다. 날은 어두워지고 막막한 찰나 길가에서 표지판을 보고 우연히 찾아 들어간 고성호텔이 실로 대단했다. 유럽인들이라면 누구나 한번은 자고 싶어 하는 샤또호텔은 고성을 수리해 고급 호텔로 사용하는 것으로 응접실과 복도는 물론 말할 것도 없이 식당의 실내장식까지 감동적이다. 배에서 객실을 얻지 않고 의자 위에서 쪼그리고 자며 아낀 경비가 하루 밤에 다 들어가도 아깝지 않을 만큼이었다. 유럽 고성의 멋을 제대로 느끼고 싶다면 샤또호텔에 한번 묵어야 한다는 게 진리인 셈이다.

 잔 다르크의 도시, 루앙 마지막 일정은 잔 다르크의 도시인 노르망디의 주도 루앙이다. 잔 다르크는 동족인 부르고뉴 (Bourgogne) 사람들에게 잡혀 영국군에게 팔려갔다. 찰스 7세는 프랑스와 자신을 구한 ‘오르레앙의 성녀’를 외면했고 결국 그녀는 시의 중앙광장에서 ‘마녀’로 몰려 화형 당했다. 지금도 그곳에 가면 프랑스 깃발을 든 잔 다르크의 동상을 볼 수 있다. 루앙에는 하루 종일 변하는 햇살에 따라 시시각각 변하는 모습을 담은 모네의 작품으로 유명한 루앙대성당(Cath?drale Rouen)이 있다. 프랑스 고딕건축의 전형적인 예로 실제로 보면 그 높이는 정말 어마어마하다. 반갑게도 성당내부에서 김은영 신부의 작품 전시회가 열리고 있었는데 프랑스의 햇빛만큼이나 밝고 대담한 화풍이 눈길을 끌었다. 
어두워지는 저녁 햇살에 빛나는 루앙대성당을 뒤로하고 다시 영국으로 돌아갈 새벽 배를 타기 위해 프랑스 서해의 최대 항구도시인 르아브르(Le havre)를 향해 길을 나섰다. 노르망디에서의 마지막 저녁식사와 새로운 기억의 마침표는 르아브르에서 찍기로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