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Different Colors of Central Vietnam
베트남 중부의 이색(二色); 호이안과 나짱

단숨에 홀릴 만한 외모나 매력이 없어도 보면 볼수록 끌리는 사람이 있다. 호이안과 나짱이 사람이라면 아마 그런류의 사람이리라. 기자가 만난 베트남 중부의 두 도시는 저마다의 빛깔로 매력을 뽐냈다. 호이안은 오랜 세월동안 강렬한 햇살에 빛바랜 노란색, 나짱은 파란 물에 초록 물감 한 방울을 떨어뜨린 것 같은 싱싱한 청록색. 그렇다면 둘 중 누가 더 매력적일까? 내기 좋아하는 베트남 사람처럼 내기를 걸어도 좋다. 호이안과 나짱의 매력대결은 그만큼 박빙이니 말이다.

솔직히 말하면, 기자가 간직한 베트남에 대한 기억은 어린 시절 텔레비전에서 보았던 <머나먼 쏭바강>에서 멈췄다. 드라마의 배경은 월남전이 일어났던 1960년대, 무려 50년 전의 베트남을 마음에 담아두었으니 제일 처음 도착한 호치민에서 충격을 받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빽빽이 들어선 고층빌딩, 어디선가 끊임없이 쏟아져 나오는 차와 오토바이, 아오자이 대신 청바지와 하이힐로 멋지게 차려입은 여자들까지. 복잡하고 정신없는 상업도시 호치민은 지금껏 상상했던 고즈넉하고 정겨운 베트남의 모습과는 영 딴판이었다. 하지만, 어리둥절한 기분을 추스를 새도 없이 이번 여행의 목적지인 베트남 중부로 가기 위해 다시 국내선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다낭국제공항으로 향하는 40분 동안 머릿속에서는 이상 속의 베트남과 현실 속의 베트남이 충돌했다. 그동안 무지했던 스스로를 탓하며 현실을 받아들이려는 찰나, 비행기는 베트남 중부에 이르렀고 기자는 쾌재를 불렀다. 과거에서 멈춘, 꿈에 그리던 베트남을 만났기 때문이다.

호이안 Hoi An
300년 전, 호이안에는 어떤 일이
호이안의 구시가지에 들어서자 푹하고 가라앉은 묵직한 과거의 기운이 엄습해왔다. 한낮의 따뜻한 기운과 오래된 냄새가 포근하게 어깨를 감쌌고, 마치 누군가 등을 토닥토닥 두드리며 “여기서는 마음껏 천천히 걸어도 좋아”하며 말을 건넨 것처럼 발걸음의 속도는 스르르 늦춰졌다. 300여 년 전 모습 그대로를 품어온 호이안. 여전히 오래전 그날에 머문 호이안의 거리를 걷는다는 건 포근한 옛 시간의 품에 안기어 과거의 베트남을 추억하고, 또 여전히 그 모습 그대로 작금을 살고 있는 현재의 베트남을 만끽할 수 있는 행복이었다.
호이안은 16~17세기 무렵 국제무역의 요충지로 중국, 일본, 러시아, 네덜란드, 포르투갈, 인도 등지로부터 많은 상인이 무역풍을 타고 찾아와 체류하면서 발달한 도시다. 마치 우리나라 옛 ‘신라방’처럼 말이다. 덕분에 호이안의 건물들은 베트남 전통과 함께 다양한 나라의 양식이 혼합되어 지어졌고, 낡고 빛바랜 세월의 흔적까지 더해져 독특한 분위기를 자아내고 있다. 이러한 역사와 문화가 담긴 아름다움으로 호이안 구시가지 전체가 1999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되기도 했다. 호이안의 옛 거리는 호아이(Son Hoai)강과 짠 푸(Tran Phu) 거리 주변의 좁은 골목으로 이어진다. 길 양쪽에는 오랜 세월의 흐름에 낡고 얼룩진, 강렬한 태양에 부서지고 빛바랜 건물들이 늘어서 있고 여전히 과거의 그날처럼 살아가는 베트남 사람들이 있다. 호이안의 명물인 각양각색의 화려한 색깔을 입은 전등을 만드는 공방, 고운 비단으로 만든 아오자이를 파는 베트남 전통 의상실, 대나무와 코코넛으로 만든 각종 생활용품가게, 값싼 슬리퍼부터 고풍스러운 가죽신을 파는 신발가게, 평화로운 베트남을 그린 로컬화가들의 작품을 볼 수 있는 화랑, 그리고 기념품이 될 만한 소소한 물건들을 파는 잡화점까지. 살아 있는 박물관이라는 애칭에 걸맞게 건물에 자리한 가게들을 둘러보는 것만으로도 그 재미가 아주 쏠쏠하다. 이제는 무역풍을 타고 온 상인들이 아닌 세계 각지에서 날아온 여행자들이 주 고객이지만, 물건값을 두고 흥정하는 모습은 즐거운 구경거리다.
호이안에서 어느 하나 중요하지 않은 것이 없지만, 대표적인 볼거리는 짠 푸 거리를 중심으로 몰려 있다. 호이안 역사문화박물관(Bao Tang Lich Su Van Hoa Hoi An)은 과거 무역도시로 발달한 호이안의 과거 사진과 각종 유물을 전시하고 있으며, 바로 그 옆에 있는 관운장 사당(Chua Ong)은 관우를 신으로 모시는 제단이 있는 곳으로 유비에 목숨을 걸다 죽은 관우만큼이나 충직한 신하를 얻기를 바랐던 옛 베트남 왕조의 생각을 엿볼 수 있다. 중국식으로 화려하게 건설된 복건회관(Chua Phuc Kien)은 과거 중국 복건성 지방에서 온 중국인들이 모이던 마을회관으로 현재는 제사를 위해 사용된다. 천장을 빼곡히 채운 붉은색 원뿔모양의 향 때문에 회관 내부는 온통 매캐한 향냄새와 연기로 가득하다. 향은 3개월 동안 타는데, 그 기간 동안 소원이 이루진다고 하여 소원을 적은 향을 매달고 기도를 하는 베트남 사람들을 심심찮게 볼 수 있다.
또한, 호이안이 워낙 오래된 곳이니만큼 역사가 깊은 집들은 보존, 관리되어 여행객에게 공개된다. 그중 가장 오래된 가옥은 500년 전에 지어진 떤끼고옥(Nha co Tan Ky). 여전히 6대째 주인이 살고 있어 식사를 준비하는 모습이나 책을 읽고 차를 마시는 등의 생활을 그대로 볼 수 있다. 옛 거리의 서쪽 끝자락에는 일본식으로 지어진 목조지붕 다리인 내원교(Cau Lai Vien)가 있다. 과거 사이가 좋지 않았던 일본인들과 중국인들이 화해의 의미로 건설한 다리로 베트남 화폐의 2만 동짜리에서 볼 수 있을 만큼 유명하다. 지금도 다리를 중심으로 왼쪽에는 일본인 거주지, 오른쪽에는 중국인 거주지가 있어 확연하게 다른 분위기를 느낄 수 있다.

어슬렁어슬렁 거려보는 자유로움
호이안 구시가지의 모든 거리는 차량이 통제되고, 두 발 달린 것들의 통행만 허용된다. 사람, 자전거, 오토바이, 그리고 씨클로. 게다가 오토바이는 베트남 다른 지역에 비하면 없는 것과 마찬가지일 만큼 그 수가 적다. 결국, 호이안은 온전히 사람과 자전거의 차지라는 얘기. 아마 사람들의 발걸음이 느려지는 것도 이런 이유일 것이다. 마치 그동안 우리는 자유의지가 아닌 옆에서 달리는 차의 속도에 맞춰 걸었던 것 마냥 말이다. 덕분에 호이안에서는 느린 것이 미덕이다. 별다른 목적도 없이 어슬렁어슬렁, 두리번두리번, 뭉그적뭉그적 대는 것이 가장 잘 어울린다고나 할까. 사실 호이안은 규모가 그리 크지 않아 스윽 둘러보면 2~3시간이면 충분하다. 하지만, 이 아름다운 고도시는 머무는 시간이 길수록 그 빛을 발하기 때문에 하루고 이틀이고 시간을 두고 음미하는 것이 좋다. 길가에 앉아 지나가는 사람을 하염없이 구경도 해보고, 이름 모를 과일들로 만든 음료수도 사서 마셔보고, 리어카에서 파는 만두로 허기도 달래보고, 재래시장에 들러 왁자지껄 사람 사는 풍경도 구경하고. 호이안과 함께 시간을 보낼 수 있는 방법은 끝이 없다.
호이안에서 가장 궁금했던 것은 과연 사람들은 어디서 사느냐였다. 1층은 모두 가게니 2층에 사는 걸까, 아니면 호이안은 그저 관광객을 위한 것일 뿐 주민은 모두 신시가지에 사는 것일까? 궁금증은 아주 간단하게 풀렸다. 큰길 뒤의, 한두 사람이 겨우 지나갈 수 있는 정도의 좁은 골목으로 들어가자 오밀조밀 붙어 있는 주택들이 나타났다. 노랗게 빛바랜 아름다운 건물 외벽과 고풍스러운 나무 창문, 화분들이 엉켜 만든 울타리, 집 앞마다 세워져 있는 낡은 자전거들이 어우러진 풍경은 마치 베네치아의 뒷골목과 닮아있었다. 
담장 너머로 호이안 사람들의 진짜 사는 모습을 살짝 훔쳐보기도 하고, 좁은 길에서 마주친 사람들과 길을 서로 양보하기도 하고, 길을 잃고 헤매면서 진짜 호이안과 친해질 수 있었다. 특히, 기자가 호이안을 더 따뜻하게 기억하는 건 우연히 마주친 한 소년 때문. 자전거를 타고 가던 열아홉 소년은 다른 여행자들과 달리 주택가에서 헤매고 있는 이방인이 신기했던지 수줍게 다가와 수첩에 그림을 그리고, 짧은 영어 단어를 적으며 어느 나라에서 왔는지, 몇 살인지 물었다. 그리고 기자의 대답이 끝나자 자기가 궁금한 것은 모두 해결되었다는 듯 다시 자전거를 타고 사라졌다. 소년의 순박한 마음과 수줍었던 미소. 내게 그 소년이 좋은 기억이 되었듯이, 그 소년에게도 내가 좋은 기억이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해본다. 
호이안을 떠나면서 꿈이 하나 생겼다. 다시 이곳을 찾는다면, 그때는 핸드폰도 시계도 카메라도 모두 버리고, 가장 편안한 차림으로 온종일 호이안의 곳곳을 누비고, 길바닥에 앉아 사람구경도 하고, 뒷골목에 들어가 실컷 길을 잃고, 해가 뉘엿뉘엿 질 무렵이면 강가에 앉아 달달한 베트남 커피를 마시며 홍등이 쪼르륵 켜지는 모습을 지켜보는 것. 300년 동안 그랬던 것처럼 다시 찾는 그날에도 지금 이 모습 그대로이기를 꿈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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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든 샌드 리조트 & 스파 Golden Sand Resort & Spa
끄어다이(Cua Dai) 비치의 끝자락에 위치한 골든리조트 & 스파는 호이안 최고의 전망을 자랑하는 5성급 리조트다. 1만 2천 평에 이르는 드넓은 면적에 지어진 3층짜리 베트남 전통양식이 혼합된 초현대식 건물에는 212개의 객실이 있으며 수영장, 피트니스룸, 스파, 대연회장, 레스토랑, 카페테리아 등 각종 편의시설을 갖추고 있다. 그 무엇보다 매력적인 것은 리조트와 맞닿아 있는 400미터에 이르는 아름다운 해변. 유리 알갱이처럼 곱고 하얀 모래사장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낮에는 야자수 밑에서 해수욕을, 저녁에는 멋진 일몰과 야경을 즐길 수 있다. 또한, 리조트와 해변 사이에 자리한 150미터 길이의 수영장 역시 바다와 리조트를 함께 즐길 수 있는 최고의 장소다. 다낭국제공항과 40분 거리에 떨어져 있고, 호이안 구시가지와는 도보로 10분 거리에 있다.
주소 Thanh Nien Road, Cua Dai Beach, Hoi An City, Quang Nam
문의 +84- 510-3-927-550

나짱 Nha Trang
청량감 가득한 나짱에서의 하루
하늘에서 내려다본 나짱은 호이안과는 확연히 다른 모습이었다. 빽빽이 심어진 나무, 그 사이로 굽이굽이 이어지는 강들, 구불구불한 해안선으로 마치 큰 호수처럼 보이는 바다까지. 비행기의 시원한 에어컨 바람 덕분인지 모르겠지만, 마치 머리로 시원한 청량음료를 마시는 것처럼 싸한 느낌이 들었다. 이것이 나짱의 첫인상이었다.
나짱은 호찌민(Ho Chi Minh)에서 북동쪽으로 450킬로미터 떨어진 곳에 위치한 베트남 중부의 대표적인 관광지다. 5개의 빛깔을 가지고 있는 바다와 아름다운 해변으로 동양의 하와이 혹은 나폴리라 불리며, 프랑스 식민지 시절 서양인들의 휴양지로 개발된 만큼 지금도 베트남 현지인들뿐 아니라 많은 유럽인이 찾고 있다. 호텔, 여행사, 해양스포츠샵, 레스토랑 등이 몰려 있는 여행자 거리가 태국의 카오산로드와 비슷한 분위기를 띄는 것도 같은 이유다. 하지만, 태국의 관광지처럼 여행자가 많거나 여행 제반시설이 썩 훌륭하지는 않다. 편리한 여행에 익숙해진 사람이라면 조금 불편함을 느낄 정도. 한편으로, 이런 불편함은 나짱의 매력이다. 주는 거 없어도 마음이 가는 사람이 있는 것처럼, 부족함과 불편함은 오히려 사람냄새를 풍기기 때문이다. 더불어 인구 30만 명 남짓한 소도시답게 번잡스럽지 않아 여유로운 휴가를 보내기에 좋음은 물론이다.
나짱의 대표적인 볼거리는 짬파(Cham Pa)왕국의 유적지인 포나가르 탑(Thap Ponagar)이다. 8~14세기에 걸쳐 8개의 탑으로 건립되었지만 월족(베트남 북부에 거주했던 순수 베트남족)이 남하하고, 짬족의 문화를 말살하는 과정에서 파괴되어 현재 4개의 탑만 남아 있다. 앙코르와트의 탑과 닮았지만, 그 규모와 상태는 꽤 초라하다. 하지만, 접착제 역할을 하는 어떤 부산물 없이 벽돌만을 쌓아 올리고, 천 년이 넘게 부식 한번 없던 점에서 짬족의 찬란했던 건축술을 엿볼 수 있다. 포나가르는 팔이 10개인 짬족의 여신으로 붉은색 흙벽돌로 지어진 탑 안에는 여신에게 종족의 번영을 기원했던 제단이 남아 있다. 현재는 불교사원으로 이용되고 있는데, 시바신의 상징이자 인도에서 숭배되는 남근상 링가(Linga)와 석가모니가 함께 있는 모습이 매우 흥미롭다.
나짱의 또 다른, 베트남의 불교문화를 엿볼 수 있는 곳은 롱손사(Chua long son)다. 사원의 꼭대기에는 석가모니 좌불상이 마치 나짱의 평안을 내려다보는 것처럼 앉아 있는데, 슬프게도 그 좌불상으로 오르는 계단에는 천진난만한 어린아이부터 몸이 불편한 노인까지 구걸을 하는 사람들이 가득하다. 때문에 부처상을 향하는 발걸음은 불편하고 무겁기만 하다. 베트남 전쟁 당시 롱손사가 공산주의를 지지했었던 터라 팔각정에는 당시에 분신했던 사람들의 위패가 모셔져 있다. 별다른 볼거리가 없어 팔각정 지나치는데 베트남 할머니 한 분이 다가와 말을 걸었다. 팔각정에 있는 종 안에 들어가 앉으면 종을 쳐주겠다고 말이다. 겁은 났지만, 할머니의 고운 얼굴과 호기심 때문에 일단 앉았다. 무릎 아래를 제외하고 온몸이 종에 둘러싸였다. 두 손을 모으고 마음의 준비를 단단히 하고 있는데, 종이 크게 울렸다. 귀가 찢어질 것처럼 아플 거라는 예상과 달리 종 안에 울려 퍼지는 소리는 너무나도 고요했다. 소리는 귓바퀴 안을 돌고, 다시 머리로 들어가, 가슴으로 내려와 찌릿찌릿 울려 퍼졌다. 가슴 속에 들어있던 나쁜 기운이 튕겨나가는 기분. 처음으로 느끼는 좋은 기분에 소원도 빌었다. “나짱을 굽어보고 있는 부처님, 당신 아래에 있는 불쌍한 중생들을 거두어주세요” 그 후로 여러 번의 종이 울린 뒤 밖으로 나오자 나짱의 시내, 바다와 섬들이 눈에 들어왔다. 조금 전과 다르게 더 반짝반짝 아름다운 모습이었다.   

나짱 사람들은 이렇게 산다
어느 나라든 현지인의 생활상을 가장 가까이에서 볼 수 있는 것은 재래시장이다. 나짱에는 구경만으로도 너무 재미있어 온종일 머물고 싶은 담 시장(Cho Dam)이 있다. 시장에 들어서자 땀 냄새, 음식 냄새, 생선냄새, 오토바이 매연냄새. 온갖 냄새와 뒤섞여 왁자지껄 정신없이 돌아가는 시장의 모습에 본능적으로 가방부터 단단하게 쥐여 맸다. 어디가 끝이고 시작인지 알 수 없을 만큼 긴 노점이 이어져 갈 방향도 쉽게 결정하지 못할 정도의 혼란한 상황. 결국, 시장 초입에 있는 노점에 앉아 쌀국수를 한 그릇 먹고 생각해보기로 했는데, 노점인지라 메뉴판이 있는 것도 아니고 말이 통하는 것도 아니라서 현지 사람들이 먹고 있는 것 중에 가장 괜찮은 것을 골라 손으로 가리켜 주문했다. 양파와 고기, 토마토 등을 넣고 끓인 육수에 야채, 간 돼지고기, 게로 만든 어묵을 고명으로 얹은 쌀국수. 조심스럽게 그 맛을 봤더니 양파로 맛을 내 시원하면서도 토마토가 들어가 시큼하면서 달달한 게 맛이 좋다. 우리나라 돈으로 천원 남짓한 가격으로 시장 구경을 시작하기 전에 든든한 배를 채우기엔 안성맞춤이다.
담 시장은 얼핏 보면 엉망진창인 것처럼 보이지만 의류와 잡화, 과일, 채소, 건어물, 수산물 등으로 나뉘어 있고, 잘 보면 간판도 있다. 구경하는 것만으로도 신이 나는 곳이지만 재래시장인 만큼 값싼 가격에 살 수 있는 쓸 만한 물건들이 꽤있다. 이곳에서만 맛볼 수 있는 열대과일이나 베트남 것이 최고라는 한치를 간식으로 사 먹어도 좋고, 여행할 때 사용할 슬리퍼나 수영복, 모자, 물안경 등을 구입하는 것도 좋다. 꼬랑꼬랑한 냄새에 이끌려 건어물 노점 쪽으로 들어가자 한치는 물론이거니와 말린 해마, 술 담그는 뱀, 장식품으로 쓰는 복어 등 신기한 것들이 천지에 널려 있다. 쌍둥이를 임신했다는 한 건어물집 여주인은 망고와 상어지느러미를 먹여주며 베트남 건어물 자랑을 늘어놓았다. 재래시장에서만 느낄 수 있는 푸근함과 정겨움에 말도 통하지 않는 그녀와 숨이 넘어가도록 웃고 떠들 수 있었다(결국 상어지느러미 한 봉지를 구입했다). 그런데 시장에서 누군가 자꾸 따라오는 느낌이 들었다. 알고 보니 사진클럽에서 활동하는 베트남의 의대생들. 베트남의 이국적인 풍경을 담느라 분주한 뚜르드몽드의 사진기자의 모습이 그들에 눈에는 더욱 이국적이었나 보다. 가이드를 자청한 그들을 뒤로하고, 빠듯한 여행 스케줄에 아쉽지만 그것을 마지막으로 담 시장을 떠났다.
여행하는 데 있어서 가장 큰 즐거움 중 하나는 먹는 것. 담 시장 근처에는 세계적인 여행서 론니 플래닛에 소개되어있을 정도로 유명한 숯불 고깃집 라깐(Lac-Canh)이 있다. “라깐에서 저녁을 먹지 않으면 나짱의 반밖에 보지 못한 것이다”라고 소개되어 있는데 그 말에 전적으로 동의한다. 닭고기, 새우, 랍스터 등 다양한 메뉴가 있지만 그중 가장 유명한 것은 소고기 숯불 구이. 정육면체로 잘라 여러 가지 향신료에 양념되어 나오는 소고기를 숯불에 구워 먹는 것인데, 비록 날씨는 덥고 매캐한 연기에 눈이 따갑지만 시원한 베트남 맥주와 함께 저녁을 즐기면 그 정도 불편함은 문제가 되지 않을 정도로 끝내준다. 한국 아버지들의 정서에 딱 맞는 곳이라고 하면 어떤 곳인지 이해가 될 것이다. 알맞게 익은 고기를 고춧가루와 소금, 라임즙을 섞은 소스에 찍어 먹는데, 입에 넣는 순간 숯 냄새가 코끝을 통해 퍼지고, 한입 씹으면 육즙이 뚝뚝 떨어진다. 양념은 매콤하면서도 달짝지근하고, 식감은 아주 거칠어 열심히 씹어야 겨우 삼킬 수 있다. 우리가 보통 생각하는 한우와는 정반대다. 깔끔한 것이 최고라고 여기는 자, 씹지 않아도 침에 살살 녹아 넘어가는 한우를 좋아하는 자에게는 비추천이지만, 포장마차 좋아하는 사람과 구수한 사람 사는 냄새를 원하는 사람에게 강력하게 추천하는 바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