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ver Story Switzerland

Walk, Walk, Walk. Switzerland
스위스의 길들아, 고맙다

쉬는 날이면 나무늘보마냥 늘어졌던 내가 스위스 길들을 걸었다.

처음에는 그냥 걸었고, 두 번째는 뛰어다녔으며 세 번째는 날아다녔다. 걸으면 걸을수록 힘이 솟아나는, 햇빛을 받으면 받을수록 에너지가 충전되는 자가 발전형 인간처럼 그렇게 하루 종일 걸었다. 첫 걸음마를 시작한 아가의 발걸음처럼 설레고, 기분 좋고, 뭉클했다. 두 다리로 땅을 내딛고 있는 자체만으로도 충분히 행복했던 순간들. 이전에는 알지 못한 ‘걷는 기쁨’을 알려준 스위스의 길들에게 고마움을 전하며 행복했던 길 위의 시간들을 전해본다.

글과 사진 함희선

취재협조 스위스 정부관광청 한국사무소 www.myswitzerland.co.kr

위안과 안식을 주는 평화의 길? 그런류의 이야기라면 콧방귀를 뀌곤 했던 내가 변했다. 걷는 것이라면 언제나 좋아하고, 스위스에서 걸었던 길들과 그곳에서 마주친 사람들을 떠올리면 웃음이 나니 말이다. 눈만 가득 쌓인 알프스를 상상하게 했던 스위스의 여름은 푸르고 싱그러웠다. 푸른 물감이 얼굴로 쏟아질 것만 같은 새파란 하늘, 피부에 스며드는 따스한 햇볕, 목덜미를 간질이며 부는 산뜻한 바람, 발을 떼면 다시 쪼르륵 올라오는 폭신폭신한 흙길. 자연의 포근함은 그 길을 걷는 모두에게 차별 없이 주어졌으니 참으로 행복했다. 얼마나 신이 나는지 걸어도 걸어도 지치지 않아서 혹시 내게 태양열전지판이나 자가발전기가 있는 것이 아닌가하는 엉뚱한 상상까지 했다면 그때의 기분을 조금 짐작할 수 있으려나.

스위스를 걸어요
스위스는 걷기 좋은 나라다. 크기는 남한의 절반밖에 되지 않는데 하이킹 코스는 지구 한 바퀴보다 긴 6만 킬로미터에 이른다. 스위스 땅 어디든 걷는 자를 위한 길이 수두룩하단 얘기다. 나라는 작고, 하이킹 코스는 많으니 취향에 따라 선택할 수 있는 폭이 매우 넓다. 보통 한 코스당 소요시간이 1~3시간이니까 짧게 걸어도 좋고, 원하는 만큼 이어서 걸어도 좋다. 적당한 거리를 두고 기차, 버스, 케이블카, 페리 등 대중교통이 있으니 길의 중간을 건너뛰면서 걸을 수 있는 것도 장점이다. 더불어 길은 걷기 쉽도록 잘 정비되어 있으며 하이킹 코스 곳곳에는 목적지와 이동시간이 쓰인 표지판이 있고, 전망이 좋은 곳에는 쉬어갈 수 있는 벤치가 놓여있으니 걷는 자들의 천국이라 할 수 있겠다. 게다가 2010년과 2011년은 스위스가 정한 ‘걷기여행의 해’다. 그동안 기차타고 차창 밖으로 눈에 보이는 풍경만 보는 ‘관람’ 여행을 했다면 이제는 직접 걷고 경험하는 ‘하이킹’ 여행을 할 차례다.

스위스에도 올레길 탄생
스위스는 걷기여행을 맞아 올해 8월 제주올레의 10코스와 ‘스위스-올레 우정의 길’을 맺었다. 스위스의 올레길 1호는 레만호수 지역의 생사포랭에서 뤼트리로 이어지는 포도밭 사이로 이어지는 와인루트. 체르마트의 올레길 2호와 더불어 앞으로 스위스의 하이킹코스에서 올레길의 상징인 간세다리를 더 많이 볼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체르마트
해발 1,620미터, 체르마트Zermatt는 한라산보다 조금 낮은 곳에 자리한 산악마을이다. 마을을 둘러싼 산 위에 우뚝 솟은 4,478미터의 명봉 마테호른으로 아주 유명하다. 인구 6천명, 걸어서 20분이면 시내중심을 다 돌아볼 수 있는 이 작은 도시가 매력적인 건 마테호른 때문만이 아니다. 자연이 준 선물을 아끼고 지켜나가는 예쁜 마음에 있다.
‘돌돌돌-’ 체르마트에서 차가 굴러가는 소리다. ‘다그닥 다그닥-’ 마차도 있다. 휘발유 자동차가 다닐 수 없는 체르마트에는 어릴 때 가지고 놀던 가짜 장난감처럼 못나게 생긴 전기 자동차만 있다. 볼품도 없고, 속도는 자전거처럼 느린 자동차이지만 아무나 구입할 수 없는 귀한 몸이다. 도시를 통틀어 약 500대. 모든 차는 수공업으로 제작되므로 차 한 대 값이 1억을 훌쩍 넘는다. 절대적으로는 비싸지만, 환경을 위해 지불하는 값으로는 아주 저렴한 듯싶다. 그밖에도 체르마트에는 글래시어 파라다이스Glacier Paradise 케이블카 정거장에 태양열로만 가동되는 레스토랑이 있으며 케이블카는 수력발전으로만 가동된다. 또 물은 자제정화 시스템으로 재활용해서 쓰고 있다. 체르마트의 환경사랑이 정말 대단하지 않은가. 그들이 아끼는 아름다운 자연 속을 여행할 수 있는 건 그들에게 참 고마워해야 할 일이다. 

체르마트를 걷기로 하다
산악열차, 케이블카, 곤돌라가 잘 정비되어있어 체르마트 산 곳곳의 높은 전망대와 봉우리로 오르는 것은 어렵지 않다. 하지만, 창밖으로 보는 짧은 순간에 보는 풍경과 걸어서 볼 수 있는 수많은 풍경과 경험들은 걸어야만 이 알 수 있는 법. 한 달에 1~2번 뒷동산에 산책을 가는 게 전부이지만 용기 내어 걷기로 했다. 1년 내내 스키와 스노우보드를 탈 수 있는 체르마트지만 여름에는 걸을 수 있는 하이킹코스가 68개, 길이는 400킬로미터에 이른다. 68개의 하이킹코스 중 무엇을 고른담. 아마 혼자였다면 어느 길도 놓치고 싶지 않은 쓸데없는 욕심에 한국에서의 모든 것을 다 때려치우고 2달을 내리 걸었을 지도 모르지만, 다행히 체르마트에는 제주올레와 우정을 맺은 아름다운 길이 있어서 선택은 의외로 쉬웠다.
하이킹코스는 모두 마테호른과 주변 높은 언덕에 있는 전망대 고르너그라트Gornergrat, 로트론 파라다이스Rothron Paradise, 슈바찌 파라다이스Schwarzesee Paradis  등으로 이어진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모든 하이커가 그곳으로 향할 필요는 없는 법. 등산의 진정한 맛은 인내와 고통의 시간 뒤에 찾아오는 정상에서의 짜릿함이라지만 하이킹이라면 걷는 것을 즐기는, 즉 그 과정이 중요하다고 생각하기에 위에서 아래로 내려오는 조금 쉬운 길을 택했다. 같은 풍경을 즐기면서 몸이 덜 힘들면 훨씬 더 행복하다고 믿으니까. 또, 솔직하게는 걷기의 문외한, 저질체력이기도 하니까. 

5 Seenweg 5개 호수의 길
블라우헤르드Blauherd-슈텔리호수Stellisee-그린드예호수Grindjesee, 그뤼엔호수Gruensee, 무즈예호수Moosjisee, 라이호수Leisee-수네가 파라다이스Sunnegga Paradise

하늘을 찌를 듯이 높이 솟은, 눈 쌓인 마테호른만 보자면 그곳에서의 하이킹은 눈 덮인 산에서의 험난한 여정 같지만, 현실은 완전 반대다. 발 아래로 펼쳐지는 까마득히 넓은 초록의 언덕을 따라서는 알프스의 이름 모를 작은 꽃들이 피어있고, 곳곳에는 빙하와 눈이 녹아 흐르는 시냇물이 졸졸졸 기분 좋은 멜로디를 만들고, 걷기 좋게 다져진 흙길은 경사가 심하지 않으니 어렵지도 않으며 노래가 절로 난다. 실제로 나는 산행 내내 ‘산골짜기 찾아서 욜롤 레히디요 레히디요 레히두리리-’를 무한반복해서 불렀다는. 가사를 미처 다 알지 못하는 것이 아쉬울 만큼이었다.
살짝 지칠 때쯤이면 ‘짠-’하고 나타나는 게 바로 엽서 속 단골 풍경 슈텔리호수Stellisee다. 마테호른과 하늘을 그대로 담아놓은 큼지막한 호수에는 송사리 같이 작은 물고기들이 바쁘게 헤엄치고, 하이커들은 호숫가에 앉아 집에서 싸온 빵과 과일로 가장 소박하고도 가장 럭셔리한 피크닉을 즐긴다. 하이킹 코스에는 4개의 호수가 이어지지만 그중에 가장 크고, 고요하고, 아름다운 곳이 바로 슈텔리호수라 사진을 찍는 사람들이 유난히 많기도 하다.
마테호른을 하늘에 두고 같은 길이 쭉-하고 끊임없이 이어지지만 하나도 지루하지 않다. 높이에 따라 시시각각 달라지는 풍경도 풍경이지만, 같은 길을 걷는 사람들과의 만남과 대화는 하이킹을 더욱 특별하게 한다. 다른 호수와 다르게 불투명의 에메랄드 색을 띄는 무즈예호수가 글래시어 밀크Glacier Milk 즉, 빙하에서 흘러나온 물이 부서진 암토를 만나 변서 그렇다는 것도 훗카이도 대학에서 지질학을 공부하는 일본 대학생을 만났기 때문이었고, 나이가 들어서 머리가 하얘지고 걷는 게 쉽지 않을 때에도 남편과 함께 이 길을 걸어야겠다고 결심하게 만든 것도 느릿느릿 너무나 아름다운 하이킹을 하는 노부부를 만났기 때문이다. 눈이라도 마주치면 한결같은 미소와 따뜻한 인사를 건네는 사람들. 같은 길을 걷고 있다는 것만으로 서로에게 마음을 열고, 자신을 드러내게 만드는 것은 길이 가진 진짜 위대한 힘이다.
소요시간 3시간 남짓이라던 하이킹코스는 하고 싶은 것을 마음껏 해댄 탓에 5시간이 훌쩍 넘게 걸렸다. 발레Valais주의 오리지널 정착지이자 아기자기한 산악마을 핀델른Findelen을 따라 난 길을 마지막으로 걷는 것을 멈추었다. 그날 밤은 태어나서 처음 진정한 ‘걸음’을 걸었다는 뿌듯함과 하루 종일 듬뿍 받은 태양열에 따뜻해진 몸으로 그 어느 때보다 깊은 단잠에 빠져들었다.

 Mattehorn Trail 마테호른 트레일

슈바찌 파라다이스Schwarzesee Paradise-슈타펠알프Stafelalp-츠무트Zumutt-체르마트Zermatt

마테호른 트레일은 4,478미터의 명봉 마테호른을 가장 가까이서 보면서 걸을 수 있는 코스다. 코스는 마테호른 봉우리 바로 아래에 있는, 등반을 위한 산장 훼른리 오두막Hornli hut으로 가는 관문인 슈바찌 파라다이스에서 시작한다. 지난 하이킹 코스보다 조금 높은 곳에 있어서, 또 마테호른이 바로 옆에 있다는 기분이 더해져 조금 쌀쌀한 기분이 든다. 슈바찌 파라다이스는 ‘눈의 성모 마리아’라는 뜻의 마리아 춤 슈네호수Maria zum Schnee 호수가 있다. 아주 작지만 뭔지 모를 묘한 기운이 느껴지는 호수에는 1637년에 지어진 아주 작은 성당이 있다. 긴 의자가 단 6개 놓인 작은 예배당의 눈을 꼭 감은 채 성모마리아에게 기도를 하는 등산가 그림 한 점이 가슴을 뭉클하게 한다. “저기 저 높은 마테호른을 무사히 오르게 해주소서.”라는 수많은 산악인들의 기도가 들리는 듯했다.      
마테호른을 왼쪽 옆구리에 계속 두고 걸으니 친근해진다. 기차역에서 내려 마테호른을 처음 봤을 때는 가슴에서 찌릿한 전율이 울리고 기분마저 말랑말랑해 졌었는데, 체르마트 시내에서건 하이킹을 할 때건 상관없이 고개를 들면 보이는 덕에 마테호른은 어느새 뒷동산이 되었다. 아니, 근데 진짜로 체르마트 시민들에게 마테호른은 뒷동산이지 않나.
성당이 있는 호수에서 출발해 슈타펠알프를 지나 츠무트로 향하는 길은 울창한 나무들이 가득해 호수의 길과는 색다른 분위기다. 왼쪽으로는 마테호른이 있고, 저 멀리에는 빙하로 뒤덮인 산들이 있는데, 내 손길 닿는 곳은 모두 꽃이고, 풀이고, 나무고 시내이니 그 느낌 또한 신선하다. 따뜻한 햇살과 목덜미를 감싸는 시원한 바람에 행복해진다. 오르막길이 거의 없는 내리막길이라 힘들지 않다. 가을이 시작되는 9월인지라 곳곳에는 단풍든 나무들이 눈에 띄었는데, 가을이 오면 이곳은 하얀색부터 노란색, 빨간색, 초록색, 하늘색까지 어우러진 총천연색의 풍경이 아름다울 것 같다. 종종 희귀한 꽃들과 산악동물들도 볼 수 있으니 그 또한 기분 좋은 경험이다. 산길을 따라 귀여운 양떼와 함께 걷는 일을 기대했지만 안타깝게도 단 한 마리의 양을 보는 데 성공했다. 얼굴이 검은 체르마트의 마스코트 울리Woli. 하이킹을 시작한지 하루 만에 걷는 데 도가 텄는지 식사시간을 제외하고 평균 소요시간인 2시간 40분과 거의 비슷한 수준으로 코스를 주파했다. 그리고 관성의 법칙처럼 계속 걸어 나가고 싶은 욕심이 가득 자라났다. 

 
스위스 추천루트 13

① 노스페이스 트레일Northface Trail
② 고지대 트레일High altitude trail
③ 스위스 빌헬름-텔Wilhelm-Tell 루트
④ 스위스 산악 철도 체험
⑤ 취리히 쇼핑과 함께 하는 걷기
⑥알프스 야생화로 뒤덮인 로맨틱한 걷기 여행의 정수, 리기(Rigi) 산
⑦체르마트 호숫길
⑧구름 저 높이…필라투스(Pilatus)
⑨포도밭 속으로 떠나는 걷기 여행, 레만호의 라보(Lavaux)
⑩문학 소녀의 서정이 솟아나는 헤세를 만나는 걷기 여행
⑪짜릿한 빙하 걷기 여행, 알레치(Aletsch) 방하 파노라마 루트
⑫하이디를 만나는 걷기 여행, 마이엔펠트(Maienfeld)

Infomation
General
언어  독일어, 프랑스어, 이탈리아어, 로망슈어. 지역에 따라 언어권이 나눠있다. 체르마트는 독일어권, 라보지역은 프랑스어권이다.
시차  한국보다 8시간 늦다. 서머타임(3월 마지막 일요일부터 10월 마지막 일요일)에는 7시간 늦다.
통화  스위스프랑CHF를 사용한다. 2010년 9월 현재 1프랑이 1,141원이다. 관광지에서는 유로화 사용이 가능하다.
전압 240V에 50HZ로 한국 전기기구 사용이 가능하지만, 핀 3개 플러그를 사용하므로 별도의 어댑터가 필요하다.
Airline
대한항공이 주3회 인천에서 취리히 공항까지 직항 운항한다. 스위스항공이나 다른 항공편을 이용하면 제3국을 경유해서 갈 수 있다. 비행시간은 약 12시간. 취리히 공항에서 스위스 열차 네트워크가 잘 연결되어 있어 도심 및 주변 도시로의 이동이 편리하다.
Transportation
스위스는 기차 없이 여행할 수 없다. 유일하기도 하면서 최상의 교통수단이기도 하다. 약 9천개의 기차가 네크워크로 연결되어 있고, 1분도 틀리지 않는 운행시간으로 편리한 여행을 가능하게 한다. 다른 유럽국가에 비해 속도는 느리지만, 탄소배출량이 가장 적은 친환경적인 교통수단이다. 선택한 일수동안 대중교통을 무료로 이용할 수 있고 박물관 무료입장 등 각종 혜택을 제공하는 7종류의 스위스패스를 이용하면 더욱 편리하다.
Accommodation
Julen
주소 Riedstrasse 2, CH-3920 Zermatt
문의 +41-27-966-76-00 www.jule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