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olstoi Meets in Yasnaya Polyana
야스나야 빨랴나에서 톨스토이를 만나다

누구에게나 삶이 힘들고 어려울 때 위로를 받는 마음의 고향 같은 곳들이 있다. 그것은 고향의 뒷동산 일 수도 있고 어머니와 나란히 손잡고 하교하던 시골 집 앞 논두렁일 수도 있다. 내게는 이제 막 소개 하려고 하는 톨스토이의 야스나야 빨랴나 고향집 장원과 모스크바 집 정원이 그것들 중의 하나다.
글과 사진 권석하 편집위원 에디팅 여병구 편집장

빛나는 숲 속의 빈 땅이 만든 대부호
톨스토이의 모스크바 집은 시내 한복판에 있으나 그 정원 벤치에 앉아 있으면 속세를 떠난 것 같다. 고즈넉하다라는 단어 이외에는 더 이상의 적당한 표현이 없다. 결코 크지 않으나 누군가가 애정을 가지고 아주 정성 들여 잘 가꾼 정원이다. 당시의 분위기를 가능하면 살리려고 노력을 했다고 하니 우리가 보는 것이 문호가 보던 것과 같으리라는 상상을 해 본다. 십 년을 보낸 모스크바 시절 여기에 가면 왠지 마음이 차분해지고 생각이 정리되어 참 많은 도움을 받았었다.
다른 하나는 그의 생가로 ‘빛나는 숲 속의 빈 땅’ 이라는 뜻의 ‘야스나야 빨랴나’라는 모스크바에서 약 200키로 떨어진 인구 만 명의 시골 마을에 있다. 그 곳에 이르는 모스크바에서의 길 좌우로는 러시아의 전형적인 모습의 풍경이 펼쳐진다. 눈이 닿는 산이라고는 하나도 보이지 않는 정말 문자 그대로 일망무제(一望無際)의 평원으로 밭이 끝도 없이 펼쳐져 있고 그 사이를 강이 편안하게 흘러 내리고 있다. 그 길을 그렇게 가다 보면 이미 마음은 한없이 차분해지고 대도시에서 그리 멀리 떨어진 것도 아닌데 벌써 생각은 세상을 떠나 있는 듯 하다. 야스나야 빨랴나의 톨스토이 본가는 그가 태어나고 죽을 때까지 산 곳이다. 거기서 그는 ‘부활’도 쓰고 34살에 16살짜리 어린 신부를 맞아 6남2녀들을 낳고 길렀다. 장원의 크기는 120만평이라고는 하지만 그 안에는 공작의 집이라기 에는 걸맞지 않게 아주 작은 하얀 2층짜리 나무 집과 그 앞에 소박한 정원이 있을 뿐이다. 나머지는 자연 그대로의 야산과 나무 숲 길이다. 그 숲 길을 걷다 보면 심산유곡에 들어 와 있는 듯 내가 어디 있는지 마저 잊어 버릴 정도이다. 그 집 옆으로는 톨스토이가 직접 농민들을 가르치기 위해 만든 학교도 있다. 장원 입구에는 하늘을 찌를 듯이 높은 백자작 나무가 길 양 옆으로 늘어서 있다. 수많은 세계 각국의 지성인들이 선지자를 찾아 오듯 이 길을 걸어 와서 대화를 나누고 갔다.

한없이 여성적인 아내 소피아의 헌신
집 안으로 들어가기 위해서는 덧신을 신어야 한다. 집 안의 가구나 집기는 당시의 것들을 그대로 보존 전시하고 있고 정말 감탄이 나올 정도로 소소한 것까지 잘 보관되어 있다. 장서 2만2천 권을 비롯해 집필을 하던 책상과 펜 그리고 각종 소도구들은 물론 입고 정원일이나 농사를 짓던 흰색의 농민복도 보관 되어있다. 금방이라도 톨스토이가 나타나 그 옷을 입고 유리 장 안에 진열된 장화를 신고 정원으로 나갈 것 같은 기분이다. 부부침실의 침대에는 하얀 이불보가 깨끗하게 씌워져 있고 찻물을 끓이던 사모바르에서는 금방이라도 물이 끓는 소리가 날 것만 같다. 톨스토이가 만년에 타던 휠체어, 자전거, 돋보기 안경, 아버지가 사왔다는 영국제 괘종시계들은 물론이고 심지어는 아령과 장화를 벗을 때 발 뒤꿈치에 대고 벗는 나무대 까지도 모아 놓았다. 특히 거실의 책상은 서거 당시의 위치이고 심지어 책상 위 소도구 위치도 그 때 그대로 라고 하니 흡사 주인이 외출하고 없는 집을 살금살금 다니는 듯한 기분이 들 정도이다. 오랜 세월을 두고 전문가들이 꼼꼼하게 육필원고를 비롯해 문호에게 온 유명인사들의 편지, 신문 기사 스크랩, 각종자료 등을 잘 보관하고 분류해 놓아 톨스토이를 연구하는 사람들에게 큰 도움이 되고 있다. 복도에 있는 책장에는 문호의 3대 걸작인 ‘안나 카레리나’, ‘부활’, ‘전쟁과 평화’ 같은 소설의 번역본을 많이 모아 놓았다. 문호의 부인 소피아는 격정적이고 불 같은 성격의 대문호와는 달리 지적이고 차분해 8남매의 어머니 역할을 잘한 전형적인 가정주부였다. 특히 악필이던 톨스토이의 원고를 모두 정서 한 것도 바로 그녀였다. 말년에는 농노들에게 토지를 나눠주고 세상을 구해야 한다는 등의 원대한 꿈을 갖기도 해서 속을 상하게 했지만 결혼 후 불과 2개월도 지나지 않아 쓴 부인의 일기에는 ‘민중들과 그 사람, 내게는 역겹기만 하다. 내가 정말 이 집안의 안주인인지 아니면 그이가 그렇게 열렬하게 사랑하는 민중이 안주인인지 모르겠다’고 천상 여자처럼 푸념을 늘어 놓았다. 그나마 톨스토이가 다른 러시아의 문호들과는 달리 부인과 이혼을 하지 않고 소피아와 해로를 한 것을 보면 그래도 이런 여성다움이 좋은 효과를 낸 것 임은 의심의 여지가 없는 듯 하다. 소피아와 비슷한 경우가 도스토예프스키가 두 번째 부인으로 맞이한 안나 였다. 원래 속기사였던 안나는 노름 빛에 쫓겨 스위스까지 도망 다닌 문호를 끝까지 보호했다. 이와는 달리 푸쉬킨은 러시아가 떠들썩한 미인 부인 나탈리아의 낭비벽과 염문 때문에 속을 끓이다가 결국 그 부인 때문에 결투로 죽게 된다. 물론 자신의 애정행각도 부인 것의 몇 배는 심했지만 말이다.

집 앞에 걸린 ‘빈자의 종’은 계속 울리는 듯
톨스토이에 대해 후세는 그는 당대의 양심이었으며 시대를 앞선 반전 사상과 무저항주의를 주창하는 선지자였다는 거의 성자에 가까운 평을 한다. 그러나 소설 ‘부활’에서 카추샤를 농락하는 타락한 네플류도프는 사실 젊을 때의 자신을 묘사한 것이다. 젊은 시절 농노의 딸과 숙모 집의 하녀와 관계 하는 등 노는데 열중하여 진급시험에 낙방하고 전공을 바꾸는데도 불구하고 못 따라가 급기야는 자퇴를 하고 고향으로 돌아 가야 하는 정도였다. 낙향생활 마저 적응을 못해 다시 모스크바로 가서 주색잡기에 빠져 세월을 보낸 것이 나중에 대문호 이자 성자가 된 젊은 톨스토이였다. 그의 저서들이나 만년의 회심은 이러한 젊은 날의 방탕을 밑바탕으로 한 탓에 보다 진정성을 갖고 독자들에게 다가온다. 당시로는 상당히 늦은 노총각으로 결혼을 한 후 얼마 안 있어 현대 소설의 최고봉이라고 인정을 받는 ‘전쟁’과 평화 집필을 시작한다. 나폴레옹 전쟁을 배경으로 하면서 6만장의 원고로 이루어 지고 559명의 인물이 등장하는 것으로 유명하다. 여기서도 지적이고 냉소적인 안드레이와 심약하나 친절하면서 비사교적인 피에르가 톨스토이의 자전적 인물로 등장한다. 비록 끝을 못 맺긴 했지만 대학의 전공은 철학부 동양어학과에서 아랍 터키어를 공부한다. 당시 지식인의 필수인 고대 희랍어를 비롯해 독어, 스페인어 등 13개 국어를 사전 없이 해독할 정도였다. 끊임없이 그를 만나러 오는 사람들도 다 만나주고 세계독자들로부터 온 5만 통의 편지 중 1만 통은 직접 회답을 했다고 하니 그 많은 저작을 언제 다 썼는지 정말 모를 지경이다. 82세로 죽기 바로 직전 까지도 집필에 열중 했다. 사실 당시로서는 그의 소설이나 글은 시대를 거스르는 것이어서 상당한 반향을 일으켰다. 귀족들이 너무 많은 것을 가져 민중들은 굶주린다는 비판을 해서 그의 저서들이 판금이 되고 러시아 정교회 내의 두호보르 종파를 두둔하고 교회가 민중들을 위해 아무 것도 하지 않는다고 공개적으로 비난해 결국 파문을 당할 정도로 그의 관심활동 영역은 미치지 않는 곳이 없었다. 그래서 그의 사후 얼마 되지 않아 터진 10월 혁명 이후에도 그는 사상적으로도 러시아의 대문호로 비판 받지 않았다. 당시 심한 기근이 들어 굶주리는 농민들이 자신의 집을 찾아와 나무에 매달린 ‘빈자의 종’을 치면 나가서 식량을 직접 나눠줘 종소리 끊이질 않았다고 한다. 지금도 그 빈자의 종은 집 앞 큰 나무에 매달려 있다.   
나이가 들어 갈수록 자신이 귀족 출신이라는 태생적인 업보를 벗어나기 위함이었는지 모르나 박애주의에 빠져 들기 시작하면서 그 전의 자신의 저작을 종교적으로 보아 비도덕적이고 본능적이라 비판하기 시작한다. 그러다가 결국은 ‘전 인류와의 사랑의 길’을 작업복 차림에 망토를 걸치고 펜과 종이 몇 장 들고 떠난다.

마지막 평화의 안식처 ‘레브 톨스토이 역’
‘나는 사치스러운 삶을 살 수 없기 때문에 내 나이의 늙은이들이 했던 방식으로 행하는 것뿐이오. 즉 삶의 마지막 날들을 고독과 평화 속에서 보내기 위해 세속의 삶을 떠나는 것이오.’라는 것이 그의 출가의 뜻이었다. 사흘 뒤 아스타포브 기차역 역장실에서 폐렴으로 몸 져 누운 지 일주일, 집 떠난 지 열흘 만에 숨을 거둔다. 당시 역 앞에는 기자들이 장사진을 이뤘고 지나는 기차 마저 경적을 죽였다 한다. 혼수 상태 속에서 톨스토이는 ‘마샤’라고 두 번 크게 불렀다고 하는데 일찍 죽은 딸 마리아를 부른 것인지 젊은 시절 자신이 농락한 뒤 속죄를 못한 고모집 하녀 이름 마샤를 뜻함이었는지는 아무도 모른다.
대문호 서거 100주년이 되던 2010년 11월20일 지금은 레브 톨스토이 역 이라 불리는 이 역에서 성대한 추모행사가 열렸다. 톨스토이가 타고 여행하던 것과 같은 형태의 증기 기관차가 톨스토이 사진을 앞에 걸고 운행되었다. 그가 숨진 역장실과 역사는 박물관으로 개조되었고 지금도 많은 사람들이 모스크바에서 차로 5시간 걸리는 그 곳까지 성지순례를 하듯이 찾아 온다고 한다. 
러시아인은 무덤을 우리처럼 양지 바른 곳이 아닌 숲 속 나무 사이 그늘에 안치한다. 특히 몸통이 늘씬하고 하얗다 하여 내가 러시아 여인이라 하는 백자작 나무 숲이 바로 러시아인들이 좋아하는 무덤의 장소이다. 톨스토이의 무덤도 문호의 하얀 저택에서 얼마 떨어져 있지 않은 옛 숲이라는 뜻의 ‘스타리 자카스’ 언덕 자작나무 숲 속에 있다. 어른 키로 몇 길이나 됨직한 나무 오솔길을 따라 조금 가다 보면 충격처럼 무덤이 나타난다. 충격이란 말을 쓰는 이유는 문호의 무덤이 의외이기 때문이다. 물론 톨스토이는 유언으로 자신의 무덤을 만들지 말라고 했다. 그러나 유족들이 무덤을 만들긴 했으나 최대한 그의 유지를 존중해서 아무런 장식도 묘비도 없다. 그냥 관 모양의 땅이 위로 약간 올라온 것이 다다. 풀이 길어 봉두난발한 농군의 머리 같다. 보통 서양의 무덤은 평분인데도 불구하고 동양의 봉분만큼은 아니더라도 약간 올라 온 것이 그의 동양에 대한 관심이 반영된 것 같기도 해서 이채롭다. 위대한 문호임에도 초라하다 못해 처연하기 까지 했던 그 무덤을 처음 보았을 때의 경건했던 충격이 새롭다. 그의 ‘러시아 민화집’에 나오는 ‘사람에겐 얼마만큼의 땅이 필요한가’ 라는 얘기처럼 영지 120만평을 가졌든 그도 자신의 무덤을 위해서는 겨우 2평의 땅이 필요했을 뿐이다. 모든 것을 다 주고 가겠다는 그의 유언을 가족들이 못 받아 들일 때 그가 느꼈던 절망감은 어떠했을까 하는 생각을 그의 무덤을 보고 다시 해 보았다.

한국의 동양적인 정서에 깊은 관심을 갖다
러시아에서 톨스토이 연구의 최고 학자인 김려춘 선생이 쓴 책 ‘톨스토이와 동양’ 에서 저자는 톨스토이와 한국과의 연결을 찾기 위해 많은 노력을 했고 그에 관해 언급한 것이 있다. 러일 전쟁을 전후하여 톨스토이는 한반도 정세에 관심을 갖는다. 1906년 8월15일 그의 집을 방문한 손님들과 나눈 담화 기록에 의하면 손님 중 누군가가 일본인들이 한국 사람들을 대단히 박해한다고 말했다. 톨스토이는 중국학자가 쓴 책을 읽었는데 한국인은 동양적 의미로 볼 때 대단히 문명한 국민이라고 말했다고 한다. 동양어를 전공한 톨스토이는 동양에 대해 대단한 지식과 관심을 동시에 가지고 있었다. 그에게 있어 일본은 서양화의 우등생이었을 뿐 동양에는 고유한 문화가 있으니 탈아(脫亞)로 가지 말고 동양으로 돌아 가라고 가르쳤다. 그래서 ‘동양적인’ 한국은 그의 정신세계에 가까워서 그 문화를 많이 알고 싶어 했다. 또한 김려춘 선생은 톨스토이를 찾아 온 세계 각국의 인사 중에서 혹시 한국인이 끼여 있었는지를 찾아 보다가 한 사람을 발견하게 된다. 1910년 5월30일의 ‘야스나야 폴랴나’ 일기에 보면 ‘아침에 한국인이 방문했다’라고 적혀 있다. 유감스럽게도 이름이 적혀 있지 않아 필자는 각고의 노력을 기울이나 별무성과이다. 겨우 찾을 수 있었든 것이 ‘신생’이라는 잡지가 문호의 탄생 100주년을 맞아 특집을 싣는데 거기에 ‘EAS생’이라는 사람이 쓴 ‘두옹(杜翁)을 찾아서’ 라고 쓴 글을 찾아 혹시 그가 아닌가 유추 해 볼 뿐이다. 글의 내용으로 봐서는 독일에 사는 기독교 관련 인사 인 것 정도로 밖에 못 밝혀 내고 본명은 결국 못 찾고 만다. 또 톨스토이가 평생을 통해 받은 전세계로부터 받은 5만 통의 편지 중에 혹시 한국에서 온 것이 있는지 박물관에 문의 했으나 없다는 답을 들었다 한다. 더 이상의 조사는 후학들에게 남겨 진 숙제인 것 같다.

내가 톨스토이 집들의 정원을 좋아하는 이유는 정원 자체가 주는 평화로움과 아름다움에도 이유가 있지만 그의 소설만큼이나 드라마틱한 그의 삶 그리고 인생을 관조하는 그의 작품 때문이기도 하다. 마음이 어지럽고 힘들 때 그의 모스크바 집 정원 벤치에 앉아 그의 생애와 작품을 떠올리면서 평화를 찾았다. 특히 내가 가장 좋아하는 소설 중 하나라고 얘기하는 부활은 지금부터 무려 100여 년 전에 쓰여진 소설임에도 불구하고 읽을 때 마다 새롭고 깊은 위안을 받는다. 대문호의 고통이 가슴으로 느껴지고 네플류도프의 아픔이 내 것 같기도 한 것이 참 경이롭다. 대작은 분명 시공을 초월하는가 보다. 네플류도프는 소설의 마지막에서 ‘우리는 우리 인생의 주인이라든가. 생명이 우리의 쾌락을 위해 주어진 것이라는 불합리한 확신 속에서 살아 간다. 그런데 이것은 완전히 어리석은 짓이다. 우리가 이 세상에 보내진 존재라고 한다면 그것은 어떤 의지에 의한 것이며 또 그 어떤 목적이 있었음에 틀림없는 것이다’ 라고 한다.
우리가 지금 하찮은 인간으로서 아무리 힘든 삶을 살고 있어도, 어떤 의지에 의해 어떤 목적에 위해 보내진 것이라면 그래서 인생은 살만한 가치가 있는 것이 아닌가. 마침 이 글이 쓰는 날이 ‘부활’을 끝낸 날 1899년 12월 16일로부터 112년에서 며칠 빠지는 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