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abadee’ Luang Prabang
내려 놓기 위해 찾는 곳, ‘좋은 하루’ 루앙프라방

여행이란 그저 낯선 곳을 향한 오감의 분출이면 그만이라고 생각하기 쉽다. 그것만 충족됐다면 즐거운 여행이 됐다고 충분히 자위할만하다. 하지만 라오스의 루앙프라방을 다녀 온 뒤로는 적어도 분출이라는 단어를 쓰기가 멋쩍어졌다. 루앙프라방이란 곳에는 도저히 함부로 분출할 수 없는 무언가가 있었다. 조용히 스스로의 허울과 거죽을 내려놓을 수밖에 없는 곳이 바로 루앙프라방이다.
글과 사진 여병구 편집장 취재협조 베트남항공 02-757-8920 www.vietnamairlines.com

왜 메콩강은 흙탕물일까?
루앙프라방을 잘 알지 못해 생겨난 단순 무지한 질문이다. 그저 1년 내내 흙탕물이 흐르는 메콩강을 끼고 있는 가난한 나라로만 인식하고 있는 사람이 대부분일 것이다. 사실은 잘 알려지지 않았을 뿐 우리는 상당히 많은 부분을 오해하고 있다. 서울의 한강처럼 메콩강은 라오스의 젖줄이나 다름없다. 메콩강은 중국에서 시작해 티베트, 미얀마, 인도차이나반도를 거쳐 바다로 빠진다. 겉으로 보기에는 흙탕물로 보이지만 사실은 아주 맑은 물이다. 강수량이 많아서 진흙과 뻘이 떠내려 오는 횟수가 잦아서 그렇지 물을 떠서 보면 맑은 물임을 쉽게 알 수 있다. 메콩강의 총 길이는 400km로 민물상어, 잉어, 가물치, 새우, 민물메기, 빠가사리 등 240여 종의 어종들이 풍부하다. 강에서 그물을 쳐서 잡은 물고기 1kg당 한화로 1만원 돈을 받으니 라오스 사람들에게는 그야말로 소중한 삶의 터전인 셈이다. 메콩강은 운송수단이자 식량자원이자 식수원이니 한마디로 라오스의 심장이나 다름없는 곳이다. 길쭉한 모양의 전통 배를 타고 빠른 속도로 달리다 보면 강가를 주변으로 집을 얹은 커다란 배들을 쉽게 볼 수 있는데 남녀노소 할 것 없이 강가에서 수영을 하거나 고기를 잡고 배를 수리하는 모습에서 진정 삶의 터전임을 실감할 수 있었다.
라오스를 정확하게 이해하기 위해서는 다소 부끄럽고 안타까운 역사이지만 조금은 짚고 넘어가야 할 것 같다. 

베트남전 당시 호치민이 군수물자와 운수 경로로 삼았고, 폭탄이 가장 많이 투하된 탓에 최근에도 NGO에서 불발탄 제거 운동을 활발히 하고 있는 라오스. 예전에는 200여 소수 민족으로 이뤄졌지만 현재는 정부 주도로 48개 소수 민족으로 나눠져 있는데 크게 라오숭(봉족)과 라오룸(라오족)으로 보면 된다. 생활습성은 라오숭족 안에 라오몽족이 있으며 우리 한국과 비슷한 생활을 하며 얼굴 모습도 우리와 흡사하고 근면한 것도 비슷하다. 이 때문에 라오스에서 사업하는 한국인들이 종업원을 채용할 때 라오숭족을 선호한다고. 반면에 라오룸족은 제일 큰 종족으로 다소 게으르고 낭만적인 성향을 갖고 있기 때문에 외지인의 입장에서 보면 전체적으로 게으르다는 인상을 받는 듯 하다. 노동을 많이 필요로 하지 않는 환경의 탓으로 배가 부르면 쉬고, 아침에 물 길어다 놓았으니 오후에는 그저 쉬는 것뿐이다. 도무지 무얼 찾아서 할 수 있는 환경이 아님을 직접 체험하고 나니 자연스레 이해가 된다. 베트남전 이후, 주도권을 잡은 공산당이 정권유지를 위해 국민우민화 정책을 편 탓에 모든 책들이 불에 타고 교육대학도 5년간 폐쇄된 아픔을 갖고 있다. 또한 잦은 전쟁으로 인해 전쟁을 피해 도망을 가다 잡히면 사형에 처해지기 때문에 튀지 않고 순응하는 민족성을 갖게 됐고 현재도 라오스에서는 4명 이상 모여서 정치 얘기를 하려면 정부의 집회 허가를 받아야 한다.
자, 이제 딱딱한 이야기는 그만하고 여행하자. 여행.

루앙프라방이 좋은 이유?
당연히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된 곳이기 때문이다. 공항에 내려 숙소인 5성급 빌라 말리로 이동하면서 보니 도시 전체에 3층 건물이라고는 딱 4개뿐이지 않은가? 이 또한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되기 전에 지어졌다니 놀라울 따름이다. 사방 어디를 둘러봐도 손대지 않은 빼어난 자연경관에다 소박한 삶의 모습을 간직하고 있어 숨가쁜 문명에 찌든 사람들에게 산소호흡기와 같은 청정 에너지를 공급하기에 충분하겠다. 시내 전체에 33개의 사원이 있는 그야말로 불교유적지인 해발 900m의 고산도시 루앙프라방. 그래서 아무리 많은 비가 내려 메콩강이 범람해도 이곳만은 안전하단다. 원래 루앙프라방은 왕족마을이었는데 베트남전 당시 모두 피난을 떠났다가 최근 몇 년 사이에 다시 돌아와 호텔 및 카페 사업에 진출하는 등 관광사업에 적극적으로 투자하고 있다고 한다. 라오스 제 1위의 관광도시인 루앙프라방으로 연간 40만 명의 관광객들이 찾는데 육로로 연결된 태국, 중국, 베트남인 들이 가장 많고 영국, 프랑스, 미국, 일본, 호주, 캐나다, 독일인들이 그 뒤를 잇고 있다고. 이 때문인지 600달러였던 국민소득이 최근에 1,000달러로 크게 상승했다니 루앙프라방의 매력이 상당함을 엿볼 수 있겠다. 라오스에 도착한 후의 첫 느낌은 바로 ‘무간섭’이다. 

어떤 간섭도 받지 않을 소중한 권리를 공항에 내리면서 얻는 동시에 느림의 미학이라는 강의를 무의식 중에 수강하게 되는 곳이 바로 루앙프라방이다. 자꾸 무언가를 봐야 하고 놓치면 안 된다는 조급함에 익숙해져 있던 관광객들을 매혹하게 하는 무언가를 찾기까지는 그리 많은 시간이 걸리지 않는다. 다른 여행지와는 다르게 사전 공부를 하지 않아도 되는 곳이기도 하며 곧 말수가 적어지며, 부드럽고 진지하며 기쁨이 넘치는 표정을 갖게 되는 곳이 바로 루앙프라방이다. 세상에서 가장 느긋한 사람들과의 만남을 통해 잠시나마 자신을 돌아보게 되며 휴식의 참 맛을 느끼게 되니 무릉도원이 바로 이곳이겠다. 루앙프라방에서는 반드시 아침 재래시장과 야시장을 봐야 한다. 또한 새벽 5시쯤 시작되는 스님들의 탁발공양 행렬도 놓치지 말아야 한다. 어스름한 새벽, 공양을 위해 길게 늘어서 앉아있는 주민들 틈에 외국인 관광객도 꽤 있다. 그들의 적극적인 문화적 체험은 다소 극성스럽다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부러운 것만은 사실이다. 오렌지 색의 승복을 입고 나타나는 스님들에게 집에서 가져온 음식과 과일을 건네주는 나눔은 참으로 경건하다. 새벽의 고요한 적막을 가르며 나눔의 미덕을 실천하는 사람들의 얼굴은 그저 부처를 닮았다. 탁발공양이 끝난 후 재래시장으로 이동했다. 그 이른 아침임에도 시장에는 발 디딜 틈 없이 장을 보러 온 사람들로 북적거렸다. 규모가 작을 줄로만 알았는데 가까이서 보니 각종 육류와 조류, 야채, 과일, 민물고기가 그야말로 풍성하다는 표현으로도 부족할 정도. 이렇게 다양하고 풍성한 식재료를 구입해 집으로 돌아가 아침 식사를 즐길 사람들을 생각하니 나 또한 절로 흥겨워진다. 이것이 바로 재래시장의 참 맛이겠다.

잔잔한 메콩강에 나를 버리고 흘러가라
라오스 사람들의 생활터전인 메콩강. 그래서 많은 볼거리가 있다. 루앙프라방에서 전통 배를 타고 25km를 가다 보면 빡우동굴이 나온다. 45도 이상의 급경사의 하얀 계단이 멀리서부터 보인다. 대략 4천 개의 불상이 수세기의 시간을 견뎌내며 온 탓에 칠이 벗겨지고 훼손된 불상들이 많이 보인다. 빡우동굴은 부처상이 2,500개 있는 땀팅Tham Ting과 1,500개의 불상이 있는 탐 폼Tham Phoum으로 나눠져 있다. 1547년에 불교를 받아들이기 전까지는 무속신앙으로 제사를 지내던 곳이라 한다. 16세기 이후 새해를 앞두고 부처상을 만들어 제사를 지내던 곳으로 부처상을 씻은 물을 성스러이 여겨 많은 사람들에게 뿌려주는 의식을 하고는 한다. 베트남전 당시에는 피난처로도 활용이 됐다고 한다. 절박했던 당시의 안타까움이 경건함과 함께 얼마나 절실하게 기도를 했을 까 생각하니 절로 숙연해 진다. 그 다음 코스가 바로 민속촌과 같은 반상 하이Bansang Hai다. 반은 동네, 상하이는 도자기를 빗는다는 뜻으로 500년 전에 도자기를 빗었던 곳이라 하지만 가마가 안 보이는 것이 미스터리? 이곳을 천천히 돌아보길 추천한다. 진정 라오스 사람들의 잔잔한 미소를 제대로 볼 수 있다. 흔한 관광지의 호객행위도 없고 수줍은 듯 부끄러운 듯한 미소에 빠져들게 된다. ‘라오라오’라는 찹쌀로 만든 민속주도 만들어 내고 형형색색의 베틀로 짜낸 수공예 스카프도 2달러 내외로 살 수 있다. 어둠이 메콩강에 내려 앉기 시작하면서 저녁 식사를 위해 디너 크루즈선으로 갈아탔다. 나바 메콩Nava Mekong 디너 크루즈는 메콩강의 정취는 물론 소수민족의 애환을 라오스 전통 포크송 공연인 민속무용도 구경할 수 있어 반드시 경험해 보길 추천한다. 높낮이 없이 흥얼거리듯 물 흐르는 대로 사는 라오스 사람들의 모습을 보면 이내 곧 동화됨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그렇게 저녁은 깊어가고 메콩강도 깊은 잠에 빠져든다. 저녁 10시가 되면 모든 상가가 문을 닫고 자정 넘어서까지 영업하는 것은 불법인 루앙프라방이기에 떠들썩하게 먹고 마시는 것을 원하는 사람들에게는 지루할 지도 모른다. 잠시라도 몸에 붙어있는 끈적끈적한 문명의 딱지를 털어버리고 그저 라오맥주 한 잔에 느긋한 일상을 즐기며 물 흐르듯 살아가는 라오스 사람들과 함께 자연스레 동화돼 가는 것만으로도 루앙프라방의 매력을 한껏 느낄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