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omething Unexpected At Every Turn
예측불가 쿠알라룸푸르

어떤 말을 덧붙여야 쿠알라룸푸르를 제대로 표현할 수 있을까. 다양한 인종이 모여 사는 작은 세계와도 같은 말레이시아의 수도는 과거와 현재, 그리고 여러 나라에서 이주해온 이들의 문화가 공존한다. 얼핏 보면 뒤죽박죽인 것 같지만 그 안에서의 묘한 질서와 조화가 유지되는 흥미로운 도시. 몇 개의 단어로는 표현이 불가능한 쿠알라룸푸르는 언제나 예측불가다.  

글 함희선 기자 사진 김지은 기자 취재협조 에어아시아, 버자야 호텔&리조트

쿠알라룸푸르는 쿠알라룸푸르다
TV 프로그램에 나라의 수도 맞추기 하는 장면이 종종 등장한다. 말레이시아의 수도 쿠알라룸푸르Kuala Lumpur는 그 게임의 단골문제다. 다른 동남아시아에 비해 익숙하지 않은 도시이면서 발음하기도 어렵기 때문일 것이다. 기자역시 처음에는 고작 여섯 음절을 입 밖으로 내뱉는 게 어찌나 버거운지 입술을 퍼드덕거리며 몇 번을 연습했는지 모른다. 정작 발음을 마스터하고 떠난 그곳에서는 아무도 쿠알라룸푸르를 쿠알라룸푸르라고 부르지 않았지만 말이다. 대신 그들 사이에서는 KL이라는 애칭이 통용되고 있었다. 직접 만난 쿠알라룸푸르는 친해지기 어려웠던 그 이름만큼이나 복잡했고, 기자가 표현할 수 있는 범위 밖의 진한 아우라를 뿜어냈다. 한나라 혹은 도시에 가면 하나의 이미지가 늘 뚜렷하게 남는 법인데, 다시 쿠알라룸푸르를 회상하는 지금도 여전히 아리송하다. 도시의 주인들의 출신이 제각각인데다가 하늘 높이 솟은 유리빌딩숲, 하루 다섯 번씩 울려 퍼지는 이슬람교도의 기도소리, 인도와 중국의 뒷골목을 그대로 옮겨다 놓은 거리, 그리고 전쟁과 식민지 시대가 남긴 역사적 건축물까지. 오래도록 여러 번 우려낸 사골국물처럼 진득한 역사가 서린 장소 곁에서 잠시 눈을 돌리면 이내 싱가포르 못지않은 모던한 건축물들이 하늘을 가렸다. 세상을 모아 차곡차곡 쌓아둔 것 마냥 마구 뒤섞인 풍경이지만, 그 속에 은근한 질서와 조화가 흥미로운 쿠알라룸푸르. 도시와 오붓한 시간을 보내며 ‘여기가 진짜 말레이시아 맞는 건가?’라는 질문을 스스로에게 던지다가 문득 지난 출장에서 만난 말레이시아 출신의 기자와의 대화가 떠올랐다.

“나 조금 있으면 말레이시아에 취재하러가.”
“그래? 말레이시아 어디에 갈 건데?”
“쿠알라룸푸르.”
“하하. 그럼 넌 말레이시아에 가는 게 아냐, 쿠알라룸푸르에 가는 거지!”

같은 것이 존재하지 않는 도시
쿠알라룸푸르에 머무는 일주일동안 특별히 몸을 쓴 것도 아닌데 자꾸 지치는 기분이 들었다. 발걸음을 내딛는 곳마다 보고, 듣고, 먹고, 느끼는 모든 것이 늘 새롭고 대조적인 탓에 몸과 마음이 반응하는 리액션이 어느 여행에서보다 남달랐기 때문이다. 매일 아침, 어떤 것이든 받아들이겠다는 열린 마음을 갖고 온 신경을 곤두세운 채 거리로 나서야했다. 쿠알라룸푸르는 다양한 문화가 공존하는 도시다. 주민등록증을 꺼내어 보지 않는 이상, 누가 현지인이고 누가 여행자인지 절대 알 수 없을 만큼 다양한 인종이 함께 모여 산다. 가장 큰 부분을 차지하는 인종은 말레이, 인디안, 차이니즈. 아마 이렇게 많은 인종이 조화롭게 살고 있는 곳은 드물 거다.

싱가포르 역시 비슷한 느낌을 받았었지만, 이 도시는 그보다 훨씬 대단하다. 한번은 인도거리에서 인도사람에게 길을 물었는데 “I am stranger here."라는 대답이 돌아왔다. 기자의 눈엔 모두가 다 인도사람이었는데, 점쟁이도 아니고 그가 여행자인지 아닌지 어떻게 알아낼 수 있겠는가. 기자도 그 여행자도 민망함에 서로 멋쩍은 웃음만 한참을 짓고 말았다. 쿠알라룸푸르 다문화의 오랜 역사는 1850년대로 거슬러 올라간다. 주석 채광업자가 교역소를 세운 후 인도, 중동, 중국 등지의 노동자들과 무역상들이 이 도시를 드나들던 그때부터. 쿠알라룸푸르는 사람뿐 아니라 종교, 음식, 관습, 문화 등 많은 것들을 받아들였다. 그리고 그들은 저마다의 전통은 지켜가며 각기 다른 문화는 철저하게 존중하고, 특히 배타적일 법도 한 종교에 있어서조차 서로의 믿음을 기꺼이 사랑한다. 예를 들어, 설날이면 이슬람교도들이 중국의 붉은 봉투 페킷에 돈을 담아 주고받고, 말레이 결혼식에서 힌두식의 의상을 입기도 하는 것처럼. 
쿠알라룸푸르의 사람들은 허락 없이 누른 셔터에도 찡그리는 법 없이 웃어주었고, 서로가 서로의 언어를 이해하지 못하는 것은 당연하다 여기며, 말이 안통하면 길을 가르쳐주는 대신 그 길을 함께 걸어가 주었다. 다른 문화에 익숙한 쿠알라룸푸르 사람들은 이 이방인에게 주저 없이 친절을 베풀었다. 사실 그들에게 이방인이라는 것은 애초부터 존재하지 않았던 것 같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