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avo! West Aussie Life
참을 수 없이 부러운, 서호주 라이프

서호주를 아시나요. 우리는 호주하면 시드니와 멜버른이 있는 동부를 먼저 떠올리곤 하죠. ‘서호주는 호주가 아니다’라고 말하는 이도 있더군요. 그러나 고립되어 있는 동시에, 아직 많이 알려지지 않은 덕분으로 그 순수함이 지켜져 왔으니 지금부터 서호주를 감히 진짜 호주라고 칭해볼까요. 아시아에 떠있는 유럽에 알맞은 세련된 도시문명을 자랑하고, 거친 야생의 아웃백이 있으며 축복받는 코발트빛의 인도양이 있는 곳. 서호주 사람들의 삶에 향기로운 숨을 불어넣는 것들이죠. 만화처럼 "I am lucky to live here" 라는 말풍선을 머리에다 달아줘야 할 것 같은 서호주 사람들의 행복한 삶. 바로 그 이유입니다.

글 함희선 기자, 사진 강건호 취재협조 서호주 정부 관광청 www.westernaustralia.com

퍼스에서 남부로 향하는 도로 위를 달리다가 머릿속에 담아두었던 서호주의 모습을 마주했다. 모든 것을 내어주는 풍요로움보다는 조금은 쓸쓸하고 황량함에 가까운 초원과 그 위에서 한가롭게 풀을 뜯고 있는 양과 말. 가축을 가둬두기 위해서가 아니라 ‘여기가 네 집이야’라고 표시한 것에 불과한 울타리를 보고는 피식하고 웃음이 났다. 큰 도시에 살고 있으면서 가진 것은 별로 없는 나와 울타리에 갇혀 살기는 하지만 울타리 같지 않은 평온한 삶을 사는 그들이 비교돼서다. 서호주에 발을 디딘 순간부터, 나는 그 땅에서 만나게 되는 살아 있는 모든 것을 부러워하기 시작했다.

사실 우리는 서호주를 잘 모른다. 사람들은 호주하면 시드니나 멜버른, 골드코스트가 있는 동부를 먼저 떠올리곤 한다. 호주만큼 익숙한 나라도 없지만, 서호주의 주도 퍼스까지 한국에서 연결되는 직항편도 없다. 호주대륙의 3분의 1을 차지함에도 불구하고 어떤 곳보다도 덜 알려진 동시에 고립된 땅. 사람들의 사고방식과 문화, 심지어 그들이 쓰는 말에서조차 호주의 다른 곳과 차별되는 독특함이 드러난다. 여행자의 입장에서 봤을 때는 이점이 아주 매력적으로 다가왔다. 다른 이유가 아니라, 환경이 쾌적해 살기 좋았던 동부가 개발이 빨랐던 것뿐이며 오히려 서부는 늦게 알려졌기 때문에 때 묻지 않은 진짜 생생한 호주를 볼 수 있다는 사실 말이다.

서호주는 이렇게 시작했다. 시간은 4만 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지구에서 가장 오래된 땅 중 하나인 호주, 그 땅의 주인이었던 원주민 애보리진은 오랜 세월 호주대륙에서 삶을 영위해왔다. 그 다음은 우리가 알고 있는 것처럼 유럽인의 침략이다. 본격적으로 그들이 서호주에 정착하기 시작한 것은 1826년으로 호주의 다른 지역이 죄수 유배지에서 출발했다면 여기는 양상이 조금 다르다. 남부의 항구 알바니Albany가 군대의 전초기지로 개발될 때 첫 정착이 이루어졌으니까. 그다음은 1890년대, 서호주의 중부와 남부의 아웃백에서 금광이 발견되면서 금빛희망을 꿈꾸는 유럽인들이 대규모로 유입, 발달하게 된 것이다. 여전히 서호주는 지하자원이 풍부한 부자동네이기도 하다. 그리고 다시, 21세기의 서호주는 새로운 골드러쉬를 맞이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따뜻한 기후와 경제호황, 그리고 여유로운 생활방식에 매료된 사람들이 몰려들고 있으니.

내가 처음 서호주에 눈을 뜬 건 영화 <오스트레일리아>를 통해서였다. 1930-40년대의 2차 세계대전을 배경으로 하는, 오래전의 서호주를 그리긴 했지만 수천 마리의 소떼와 웅장한 규모의 평원, 광활한 대륙의 미개척지는 서호주의 낭만과 환상을 심어주기에 충분했다. 솔직히 고백하면 흙이 듬뿍 묻은 말장화를 신고, 카우보이모자를 쓰고서는 뽀얀 먼지를 날리며 소를 모는 구릿빛 피부의 소몰이 휴 잭맨이 큰 몫을 차지했다. 비록 그가 실제로는 시드니출신이라고 해도 거칠고 단단하지만 속은 부드럽고 따뜻한 서호주의 기상을 한껏 느낄 수 있었으니 말이다. 영화 속 휴 잭맨과 니콜 키드먼이 살던 파러웨이다운스에서처럼 서호주에서의 삶이 무조건 험난하고 거친 것은 아니다. 서호주 북부는 지금도 미개척지로 남아 있지만, 여기 사람들이 모두 아웃백에 살며 목가적인 생활을 하는 것은 아니니까. 서호주 총인구의 80퍼센트는 퍼스와 그 주변에서 편안한 도시문명을 누리며 살고 있다. 그러나 여전히도, 그들의 삶은 야생과 맞닿아 있다. 부드럽든 거칠든, 자연의 품으로 가는 길이 도시에서 그리 멀지 않기 때문이다. 또한, 무의식중에도 역시 대지는 함께 한다. 예의를 차리기보다는 꾸밈이 없고, 시끄럽고 교양이 없어 보이기는 하지만 순수하며, 노출을 즐기는 게 아니라 자연스러운 것일 뿐이고, 또 게으른 듯 행동하지만 바다에서 놀 때는 부지런한 그들의 습성은 바로 서호주의 광활한 대지가 불어넣은 자유로운 사고방식으로부터 나온 것이리라.

아시아에 떠있는 유럽이라는 호칭에 알맞은 세련된 도시문명을 퍼스와 프리맨틀에서 누리고, 인도양의 바다에서 황홀한 일탈을 즐기며 또 꿈에 그리던 자연 속에 몸을 던지면서 생각했다. 참으로 부러운 서호주의 삶이라고. 남부로 향하던 차창 밖으로 영화 속 스틸컷처럼 샤샤삭, 희미한 먼지 사이로 어렴풋이 실루엣을 드러낸 캥거루의 무리가 서호주에서 맞이하게 될 낭만의 시작을 알렸다. 두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