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alk like the wind in Vienna
비엔나를 바람처럼 거닐다

짧고도 긴박했던 프랑크푸르트에서의 환승 덕택에 짐은 그대로 둔 채 달랑 맨 몸으로 처음 대면한 비엔나. 새 신발을 잃어버린 아이처럼 공항에서 잠시 두려움이 엄습했지만, 시내로 들어오면서 섬세하면서도 정중동靜中動의 묘한 매력이 수맥처럼 흐르고 있는 비엔나 시내가 한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모차르트와 반역자(?) 아돌프 로스, 훈데르트 바써 그리고 멜크 수도원 등 한 편의 영화처럼 펼쳐진 비엔나를 바람처럼 거닐었다.
글 여병구 편집장 사진 강건호 취재협조 오스트리아 대사관 www.advantageaustria.org/kr, 핀에어, 호텔패스

비엔나를 만나다
숙소인 레지나 호텔Regina Hotel에 여장을 풀고 잠시 돌아보니 가히 100년의 역사 속으로 타임슬립 한 듯한 인테리어가 인상적이다. 솔직히 잘츠부르크와 인스부르크로 가기 위해 잠시 들를 생각이었던 비엔나였다. 그래서 많은 준비보다는 있는 그대로를 느끼고 싶었다. 늦은 저녁도 해결하고 산책도 할 겸 호텔 로비를 나서니 가녀린 가로등에 비친 포티브성당의 실루엣이 눈에 띈다. 키 재기라도 하려는 듯 두 개의 첨탑이 하늘을 향해 서로 올라가는 것처럼 생동감 있게 보인다. 애초에 눈부시도록 하얀 대리석이었겠지만 오랜 역사를 거쳐오면서 불에 그을린 듯이 다소 검게 변한 외벽이 외려 웅장하게 느껴진다. 1853년 2월에 프란츠 요셉 황제 암살 미수사건이 벌어진 후 동생인 페르디난드 대공이 하나님께 감사의 뜻으로 봉헌하였다 하여 포티브Votiv(봉헌) 성당이라 불린다고 한다. 슈테판 대성당과 함께 비엔나의 가장 위대한 걸작이라 불린다. 토요일 저녁의 시내 중심가에 젊은 친구들이 많았음에도 고성이나 눈살을 찌푸릴 만한 행위는커녕 조용한 것이 무척 이채로웠다. 근사하게 노천카페에서 식사를 하고 싶었지만 놀라운(?) 가격에 쉬크한척 패스트푸드를 먹으며 산책한다. 포티브성당 앞에 있는 공원 벤치에 앉아 커피를 마시니 마침내 진짜 오스트리아에 온 듯한 느낌이다.

시 면적의 반이 공원
어김없이 시차 때문에 잠을 자는 둥 마는 둥 거의 밤을 새다시피 새벽에 눈이 떠진다. 사람 키보다 더 큰 창문으로 여명이 슬그머니 아는 체를 한다. 치즈와 햄 그리고 빵의 다채로운 향연이 펼쳐진 조식 뷔페를 즐기고, 대형 창문으로 쏟아지는 따사로운 햇살을 즐기며 커피를 마시는 것이 어색하지 않은 것을 보니 어느 새 비엔나 사람이 된 듯 하다. 식사를 다 마칠 때쯤 마침내 호텔 로비에 도착한 우리의 짐을 발견한 순간 눈물이 글썽거렸다. 행복한 비엔나의 여정이 시작될 듯 하다. 비엔나의 반이 공원이라고 하더니만 정말 사방이 공원이다. 한가로이 산책을 즐기거나 조깅을 하는 사람들을 구경하다 보니 어느 새 호프부르크 왕궁 앞이다. 60만 명의 터키 군대가 고작 7만 명의 오스트리아 군대에게 대패한 곳으로 진두 지휘했던 유진올겐장군의 동상이 있다. 또한 1935년 린츠 출신의 히틀러가 수십만 대군의 독일군 앞에서 피를 토하며 연설하던 그 역사적인 현장이어서 그런지 쩌렁쩌렁한 히틀러의 육성이 들리는 듯 하다. 궁전 중심부에 공사현장처럼 파헤쳐진 곳이 보이는데 이는 3천년 전 로마군의 집터로 지하철 공사를 발견되는 바람에 공사는 중단되고 현장은 그대로 유적으로 보존되고 있다.

장식은 범죄! 아돌프 로스의 반역?
궁전을 나오니 미하엘러광장 한 복판에 있는 건물이 눈에 들어온다. 당시 화려했던 주변 건축양식과는 판이하게 다른 오히려 현대적인 건축양식에 가까웠던 로스하우스가 바로 그것. 이 건물은 100년 전에 지어진 것으로 현대 건축의 아버지라고 불리는 아돌프 로스가 만든 집이다. 이 집이 지어질 당시 비엔나 시민들과 언론에서 일제히 혹평을 했고 심지어 경찰청에도 불려갔다고 한다. 그 이유는 당시 사람들은 상상도 못할 시대를 뛰어넘는 그만의 심플한 건축양식 때문이었다고 한다. 너무 단순했던 그의 건축양식은 비엔나만의 건축양식의 전통을 반역하는 의미로 받아들였기 때문에 창문 틀에 화분을 장식하는 것으로 타협했다고 하니 당시 여론의 반응에 고민했을 아돌프 로스의 모습이 연상되는 듯 하다. 하지만 ‘장식은 범죄’라는 그의 뚝심은 지속됐다. 로스하우스 바로 옆에 왕궁에 커피와 과자를 납품하던 데멜 카페Demel Caf?가 보인다. 왕궁을 구경하고 슈테판 대성당으로 가기 위해서는 바로 이곳을 거치지 않을 수 없으니 자연스레 노천 카페에 앉아 커피 한 잔을 마시는 것이 통과의례다. 슈테판 대성당으로 가는 길에는 16세기에 무려 10만 명의 목숨을 앗아간 흑사병의 희생자들을 위로하기 위해 1693년 레오폴트 1세가 세운 삼위일체 탑이 보이는데 프라하, 부다페스트에도 같은 탑이 있다 하니 흑사병이 유럽을 휩쓸었다는 말이 실감난다.

아, 비운의 모차르트여!
포티브성당과 함께 대표적인 걸작으로 추앙 받고 있는 슈테판대성당이 보인다. 1782년에 모차르트의 결혼식이, 1791년에 모차르트의 장례식이 치러진 곳으로 오스트리아 인들이 새해 첫 날을 맞이하는 곳이라고 하니 그들에게는 얼마나 뜻 깊은 곳일까? 이곳을 보기 위해 스위스, 유럽 등에서 비행기를 타고 와서 구경할 정도로 인기가 많다고 한다. 모차르트만 생각하면 비엔나 사람들은 분통이 터질 지경이다. 그가 사망할 당시 왜 그의 시신을 제대로 수습하지 않았는지 당시 사람들에 대한 원망이 적지 않단다. 슈테판대성당에 온 대부분의 사람들 마음 속에는 모차르트를 향한 안타까운 마음이 깊이 자리잡고 있는 듯 하다. 슈테판대성당 뒷 편에는 모차르트가 <휘가로의 결혼>, <돈주앙>을 작곡하기 위해 머물렀던 휘가로 하우스Higarohaus가 있다. 모차르트는 이곳에서 1784년부터 1787년까지 살았는데 16살의 베토벤을 만나게 되는 운명의 장소라고도 하니 당시 어린 베토벤을 바라보던 모차르트의 마음은 어땠을까? 이 거리를 중심으로 중고품 상점이 이어지는데 당시의 고풍스러운 물건들을 구경할 수 있다. 휘가로 하우스를 나와 아돌프 로스와 비슷한 운명이었던 훈데르트바써Hunderdwasser의 작품을 구경하기 위해 나섰다. 그는 2차대전 당시 슬라브계, 유태인 부부 사이에서 태어나 클림트의 아류라는 혹평을 당하며 철저히 미술계에서 왕따를 당했다. 비대칭을 추구하고 자연에는 직선이 없다는 정신으로 1985년에 시에서 제공한 공간을 활용해 훈데르트바써 하우스Hunderdwasser Haus라는 작품을 완성하게 된다. 작품이라고 하지만 실제로 57가구의 거주민들이 거주하고 있다. 평수도 각기 다 다르고 건물 옥상에는 화분과 나무들이 심어져 있다. 세입자라 하여도 창틀 컬러만 바꿀 수 있을 뿐 절대 손을 대서는 안 된다고. 집 안 인테리어가 무척 궁금하지만 거주민과 친분이 없는 한 불가능한 노릇이다. 전 세계 각지에서 온 수많은 관광객들이 진을 치고 있어 거주민들은 소음과 불편한 시선에 곤란할 것이라는 생각이지만 의외로 창문을 열고 포즈를 취해주는 사람도 있는 걸 보니 방음 장치 하나는 잘 돼 있거나 낙천적인 사람들일 듯.

프리패스~ 즐거운 비엔나!
비엔나의 교통편은 촘촘하게 구석구석 연결된 트램이나 지하철을 타면 편리하다. 정말 편리한 것은 티켓 한 장으로 지하철, 트램, 버스, S-bahn을 모두 이용할 수 있다. 승차권의 종류는 1회권, 회수권, 24시간 프래패스, 72시간 프리패스, 8일간 프리패스 등 시간과 날짜에 따른 다양한 정기권이 있으니 본인의 사정에 따라 구매하면 편리하다. 모든 승차권은 사용하기 전에 먼저 개찰기에 찍어야 사용이 가능하다. 어쩐지 사람들이 타고 내릴 때 너무도 당당하게 그냥 내리는데 이런 편리함이 숨어 있었다. 철저히 여행자 중심의 편의주의에 박수를 보낸다. 대중교통을 타는 즐거움을 한껏 느낄 수 있으니 비엔나를 여행하는 즐거움이 더욱 커진다. 벨베데레 궁전으로 가기 위해 트램 D번을 타고 Schloss Belvedere에서 하차했다. 조금만 걸으니 바로 웅장한 궁전이 한 눈에 들어온다. 이곳에는 바로 오스트리아를 대표하는 화가 구스타프 클림트의 키스가 전시돼 있다. 오죽하면 개인의 작품을 정부가 소유하고 있을까? 벨베데레 궁전은 오스트리아 바로크 건축의 거장 힐데브란트가 설계하였는데 비엔나의 권력자인 오이겐 폰 사보이 공이 여름 별궁으로 사용하던 곳이다. 오이겐 공 사후 합스부르크가에서 궁전을 사들여 미술품을 전시하는 곳으로 사용하면서 부터 상궁에는 19~20세기 회화관, 하궁은 오스트리아 미술관으로 사용되고 있다. 상궁과 하궁 사이에 너무나도 아름다운 프랑스 풍의 정원이 있어서 산책을 즐기거나 벤치에 앉아 독서를 즐기는 사람들을 많이 볼 수 있다. 벨베데레 궁전을 즐기기 위해서는 클림트의 작품세계에 대해 먼저 공부하고 가는 것이 현명할 듯 하다. 19유로의 비싼 입장료가 아깝지 않기 위해서는 말이다.

그의 묘는 정말 어디에?
음악책에서나 봤던 모차르트, 베토벤, 슈베르트를 모두 만날 수 있다는 말에 선뜻 비엔나 중앙묘지Zentralfriedhof로 이동했다. 중앙묘지로 들어서 32A 구역으로 가니 진짜 모차르트의 묘를 중심으로 베토벤과 슈베르트의 묘가 좌우로 위치하고 있다. 하지만 안타까운 것은 모차르트의 묘는 가묘라는 것이다. 도대체 그의 시신은 어디에 있는 것인 지 쓸쓸히 가짜 묘를 만들어 놓고 추모할 수밖에 없는 이 안타까운 현실이라니...... 그 주변을 돌아보면 요한스트라우스, 브람스 등 이름만 들어도 알 수 있는 수많은 음악가들의 묘도 있으니 천천히 둘러보는 것이 좋을 듯 하다. 공동묘지도 이렇게 관광자원이 될 수 있다는데 잔잔한 충격을 받는다. 고막이 터트릴 듯한 고요한 적막이 돌고 오로지 하늘을 오가는 비행기의 엔진 소리만이 들리는 중앙묘지에는 무려 35만 명의 영혼들이 잠들어 있다. 35만 명이라...... 경기도 광명시가 얼마 전 인구수 35만 명을 돌파했다는 소식을 들었는데 실로 대단한 규모가 아닐 수 없다. 특히 최대 120만 기까지 수용할 수 있다 하니 독일의 올스도르프 묘지 다음으로 유럽에서 두 번째로 큰 묘지이다. 워낙 유명한 정치인, 예술가 등이 잠들어 있다 보니 이곳에 안장되기를 희망하는 사람들이 무척 많다고. 중앙묘지의 중심에는 중앙묘지의 건축 당시 시장으로 재직했던 칼 뤼거를 기념하기 위해 세운 교회가 보인다. 교회 바로 앞에는 대리석으로 깔려 있는 무덤이 있는데 그곳에는 오스트리아의 대통령(1986년 당선)이자 제 4대 유엔사무총장이었던 쿠르트 발트하임Kurt Waldheim의 묘가 있다. 그는 독일이 오스트리아를 합병할 당시 독일군 장교로 근무한 전력이 있어 유태인 학살에 간접적인 관련이 있다는 의혹이 꼬리처럼 따라다녀 미국 등 많은 국가들로부터 초청받지 못했다고.

칼렌베르그에서 베토벤을 보다
비엔나를 가장 높은 곳에서 볼 수 있는 곳? 바로 칼렌베르그Kahlenberg로 가면 된다. 세계 어느 도시를 가던지 가장 높은 곳을 올라가 도시 전체를 보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다. 칼렌베르그는 우리나라의 북악스카이웨이로 생각하면 되겠다. 날씨만 좋으면 알프스 산도 볼 수 있고 시내 중심을 샅샅이 구경할 수도 있다. 비엔나를 가로지르는 도나우강이 보이지만 헝가리에서 더 예쁘게 보인단다. 베토벤이 요양하면서 영웅 3번을 작곡하면서 쉬던 곳이 바로 근처에 있다는데 정말 비엔나 곳곳에는 뛰어난 예술가들의 숨결이 그대로 스며들어 있어 잔잔한 감동을 주는 듯 하다. 시간을 잘 따져 야경을 보러 오는 것도 좋겠다. 칼렌베르그에서 1시간 정도 떨어진 곳에 있는 오토바그너 재래시장을 방문했다. 이곳은 현지인들이 자주 찾는 시장이어서 그런지 동양인은 드물고 북적거리지 않는 것이 좋았다. 정말 수많은 음식재료와 다양한 상품들을 팔고 있어 구경하는 것만으로도 충분한 곳이다. 특히 오스트리아의 건축가인 오토 와그너의 작품이 새겨진 건물들이 시장을 따라 도열해 있어 보는 재미도 톡톡하다. 이곳을 방문하려면 비엔나가 1구역에서 23구역으로 나뉘어져 있는데 이 중 슈테판성당은 1구역, 칼스 플라츠, 그 다음이 바로 재래시장으로 4구역에서 내리면 된다.

멜크MELK 수도원
잘츠부르크로 가는 도중에 마지막으로 방문한 곳이 바로 유럽 최대의 화려하고 멋진 바로크 건축물이 있는 멜크MELK 수도원이다. 이곳은 합스부르그왕가 이전의 왕가였던 바벤베르그 왕조(1076~1106년)의 수도로서 베네딕트파의 수도원으로 당시 매우 중요한 전략적 요충지여서 산꼭대기에 요새처럼 건축되었고 주변은 우리나라의 경주처럼 오밀조밀하게 마을을 이루고 있다. 도나우강과 멜크강이 합류하는 지점에 위치하고 있으며 바하우Wachau 계곡으로 가는 관문 역할을 하는 곳이기도 하다. 우리에게도 잘 알려진 움베르토 에코가 <장미의 이름>을 집필할 때 영감을 얻은 곳으로도 유명하며 멜크 수도원 출신들이 전세계의 수도원장으로 자리를 옮길 정도로 명망 또한 높은 곳이 바로 멜크 수도원. 영화 <장미의 이름>에서 나왔던 수도원의 도서관도 이곳의 도서관을 참고해서 제작했다고 하는데 실제로 10만권의 소장본이 있는 도서관에는 필사본이 3천 권이나 된단다. 총 11개의 방과 도서관, 성당이 공개되고 있고 세계에서 가장 작은 성경도 볼 수 있다. 멜크 시는 18세기의 모습을 그대로 보존하고 있어서 마을을 걷다 보면 타임슬립 한 듯 시간을 뛰어넘는 잔잔한 충격이 매우 흥미롭다. 하루 더 머물고 싶은 강렬한 충동이 밀려온다. 하지만 잘츠부르크에서의 약속 때문에 다음을 기약한다. 아우토반으로 나와 잘츠부르크를 향해 달리다 우측을 바라보니 멜크 수도원이 한 눈에 들어 온다. 전설이나 우화 속에서나 봤음직한 신비로운 기운이 푸른 하늘과 매력적인 산세와 어우러져 정신이 혼미할 지경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