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nvy and despair for shrine Assisi
앗시시 성지순례기

가톨릭 성인들의 얘기를 들으면 정말 어떻게 저런 삶이 가능할까 하는 생각에 가슴이 먹먹해진다. 그건 감동과는 좀 다른 선망과 절망 같은 것이다. 선망은 저 성인에게는 어떤 계기나 은혜가 있어 저렇게 자신의 목숨도 내 놓을 수 있는 의심 없는 믿음을 가질 수 있는 하는가 부러움이다. 절망은 자신이 믿는 바를 위해 아무런 세속적인 욕망을 어떻게 저렇게 서슴없이 내던질 수 있는가 나 같은 인간은 죽어도 못한다는 자각과 함께 결국 나는 다른 종류의 인간이기 때문이라는 가당치 않은 시샘이다. 프란체스코 성인의 생가와 무덤이 있는 성지 앗시시Assisi를 다녀 오면서도 또 그런 감정을 느꼈다. 선망과 부러움과 절망과 시샘을 말이다.
글과 사진 권석하 편집위원

축복받은 땅, 앗시시
지금으로부터 800년도 더 넘은 때의 일이니 세월만으로 보면 전혀 마음에 와 닿지 않는다. 우리와는 다른 별세계에서 다른 생각을 하고 사신 분 같다. 그러나 이렇게 성지에 와서 그 분들이 남기고 간 유물을 보다가 보면 금방 돌아가신 듯해 짠하다. 그리고는 비로소 성인의 생애와 글과 말이 마음에 살갑게 와 닿는다. 결국 시청각의 도움을 받아야 그나마 좀 더 느낄 수 있는 겨우 이차원의 지각을 가지고 있다는 말이다. 대영박물관의 동양관 중국 코너 옆에 간다라Gandhara 문명 코너에 가 보면 이차원적인 지각의 예를 볼 수 있다. 원래 불교는 불상이 없었다. 그런데 알렉산더 대왕이 지금의 파키스탄 지역을 점령하고 보니 토착 종교로 불교라는 것이 있고 신자들이 부처를 믿는데 전혀 눈에 보이는 것이 없어 답답했던 모양이다. 그래서 자신이 데리고 다니던 그리스 석공들을 시켜 만들어 낸 것이 바로 간다라 불상이란다. 그리스인의 얼굴과 헤어 스타일을 한 석가의 모습인 것이다. 두 문명이 만났을 때 생겨나는 이종교배 결과물의 예를 들 때 많이 인용하는 문명이다. 한마디로 머리 속 만으로도 무엇이든 믿을 수 있던 사유(思惟)의 동양문화와 보고 만져야 믿을 수 있는 서양문화가 만나서 만들어 낸 혼혈인 셈이다. 대영박물관에 가서 볼 때마다 참 신기하다. 이차원의 지각을 가진 중생은 그래서 앗시시 마을 가장 중심 광장 앞의 분홍빛 대리석으로 지어진 성글라라 바실리카 성당 지하실 유물 함에 모셔진 프란체스코 성인이 보던 성경과 그분 허리에 매어졌던 띠를 보면서 비로소 감격했다. 말로만 듣던 프란체스코 성인의 실체가 드디어 손에 잡히는 듯 했다. 흡사 방금 외출에서 돌아 와 풀어 놓은 듯 한 성인의 허리띠는 정말 감동적이었다. 그 마주 보는 곳에 안치된 글라라 성녀의 유해도 마찬가지였다. 수녀 복을 입고 누어 두 손을 모아 기도하는 자세로 누어있는 글라라 성녀를 보면 유해 바깥을 밀랍으로 만들어 흡사 살아 있는 듯한 느낌을 받게 만들어 놓아 금방 일어날 듯하다. 평생을 프란체스코 성인을 흠모하고 가르침을 받아 그 믿음으로 ‘성글라라 수녀회’를 성인과 같이 창시해서 지금까지 활동을 잇게 하고 있다. 이렇게 이런 성인들의 모습을 한꺼번에 볼 수 있는 앗시시는 축복 받은 땅이다.

작은 시골마을이 유명해진 이유
앗시시는 로마에서 북동쪽으로 자동차로 2시간 거리의 움브리아 지방의 페루자 지역에 위치하고 있는 조그만 도시다. 인구 3만도 채 안 되는 시골 동네에 연간 5백5십만 명(2010년 통계)의 순례객이 다녀 간다. 어떻게 이 작은 마을에 하루 평균 1만 5천명이 다녀 간다는 말인가? 내가 다녀 온 11월 초는 그나마 한산한 시기라 앗시시 마을 수녀원에 묵을 수 있는 행운과 함께 성당 등을 입장할 때도 큰 문제가 없었다. 성탄, 부활절 혹은 두 분의 축일이 드는 날은 정말 인산인해 일 것이 분명하고 이 마을에 묶는다는 일은 정말 하늘의 별 따기 정도 일 듯 하다. 1997년 아주 심한 지진이 일어나 성인의 일대기가 담긴 프레스코화를 비롯해 중요한 유적이 파괴되어 전 세계 가톨릭 신자들의 마음을 아프게 했다. 모두들 복구 성금을 내기도 했고 그 덕분인지 2년도 채 안되어 모든 것이 늦기만 한 이탈리아답지 않게 거의 완벽한 복구를 끝냈다. 움브리아 평원을 내려다 보는 산기슭에 위치한 앗시시 마을은 멀리서 봐도 아름답다. 산기슭에 차분하게 늘어서 있는 붉은 기와와 분홍색 벽의 페루자 지방의 시골 주택들은 가만히 보고만 있어도 편안하고 아늑함을 느낀다. 우리 일행이 묵은 산마을 동네 골목길 깊이 위치한 수녀원은 정말 먼지 하나 없는 듯 했다. 음식을 날라 주는 앗시시 시골 아주머니 얼굴 표정에서는 한번도 웃음을 볼 수 없었음에도 불구하고 음식은 수도원의 음식에 대한 선입관을 깰 정도로 훌륭해 역시 이탈리아 음식! 하는 감탄을 나오게 했다.

프란체스코 성인의 탄생
프란체스코 성인이 창설한 프란체스코 수도회는 도미니코 수도회와 같이 유럽 가톨릭 수도회의 양대 산맥을 이룬다. 두 수도회 모두 청빈을 강조하지만 특히 도미니코 수도회는 설교와 기도를 주요 지침으로 하나 프란체스코 수도회는 실제 행동으로 행하고 대중들 속에서 같이 생활하며 그 속에서 그리스도의 참 모습을 따라 하려는 하는 점이 다르다. 간단하게 성인의 일생을 요약해 보는 것도 뜻이 있을 듯 하다. 프란체스코 성인은 의류를 거래하는 부유한 집안에서 태어났다. 원래 세례자 요한이라는 이름이었으나 아버지가 프랑스를 유난히 좋아해서 프란체스코라 불렀고 이 별명은 결국은 나중에 이름으로 되어 버렸다. 아버지는 가업을 이었으면 했으나 공부도 장사도 관심이 없이 정말 부잣집 이들답게 노는데 만 관심이 있는 젊은이였다. 그러다가 노는데도 지쳤는지 마음을 다잡아 먹고 출전을 했으나 포로로 잡혀 1년간을 감옥생활을 한다. 아버지의 보석금 지불로 풀려나지만 심약해져서 모든 것이 다 귀찮게 되고 병중에 자신의 삶을 돌아 보게 된다. 로마로 성지순례를 떠나 길에서 문둥병 환자를 만나게 되자 피했는데 갑자기 같은 하느님의 자식인데 이러면 안되지 않는 생각에 돌아 가서 가진 돈을 다 주고 다가가 그를 껴 앉았다. 이상하게도 무섭거나 불쾌하지 않고 마음의 평화를 처음으로 얻으며 기쁨이 솟아 남을 느꼈다. 고향으로 돌아 와 이제와는 다른 삶을 살기 시작한다. 오로지 신앙적인 일에만 관심이 있어 자신의 옷도 벗어 주고 심지어는 자신의 집 창고에서 물건을 가져다가 나누어 주기까지 한다. 아버지가 참다 못해 쇠사슬로 묵어 두었으나 끝까지 마음을 돌리지 않았다. 어머니는 아버지 모르게 쇠사슬을 짤라 아들을 풀어 준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어머니는 어디나 같고 언제나 아들에게 약하다.   만일 어머니가 아들을 풀어 주지 않았다면 기독교 역사상 예수 이후 가장 위대한 성인을 우리는 갖지 못했을 지도 모른다는 부질 없는 상상을 해 본다. 이때 아버지가 아들이 주어 버린 재산을 돌려 받으러 주교에게 가서 항의를 하자 성인은 ‘앞으로 내게는 하느님 아버지 그 분 밖에 아버지가 없다’라는 선언을 한다. 그리고 그 때부터 프란체스코 성인은 본격적으로 자신의 활동을 시작한다. 성인의 행동과 가르침을 따르는 많은 무리들이 생기자 로마 교황청으로 가서 이노센트 3세 교황에게 수도회의 창설을 허락해달라고 요청을 한다. 교황은 프란체스코 성인의 삶이 너무 극단적으로 청빈하여 교회의 위신을 떨어뜨린다는 세간의 평 때문에 승인하기를 주저 한다. 돼지들부터 먼저 포교를 하시라고 농담처럼 한 말을 성인이 정말 따르는 것을 보고 수도회의 승인을 결심한다. 그 이후 성인은 보통 죽은 다음에 일어 난 기적을 조사 확인한 뒤 성인으로 인정하는 시성 절차가 사후 2년도 채 안되어 이루어 질 정도로 많은 기적을 행한다. 특이한 점은 성인은 결코 신부나 수사로서 신학교나 수도회에 소속되어 교육을 받은 적도 없고 성직자로 서품을 받은 적도 없다. 지금 기준으로 따지면 도저히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어떻게 보면 면허도 없는 돌팔이 의사가 환자를 돌본 셈이다. 그런 성직활동을 용인한 당시 교계도 놀랍고 더더욱 수도회를 허가한 교황청도 보기 보다는 정말 열려 있었든 듯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