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anta Claus in Rovaniemi, Just Like a Fairy Tale

로바니에미의 동화 같은 시간 속으로

북극권의 한계선에 위치한 도시 로바니에미. 라플란드 중심으로서의 이성적인 역할을 하면서도, 알면 알수록 마치 꿈속을 걷는 것처럼 환상의 세계의 보여준다. 거인처럼 큰 산타의 손바닥 위에 내 손을 겹쳐 올리는 순간부터 나는 동화 같은 시간 속으로 서서히 빠져들었다. 내가 이미 어른이라는 것을 까맣게 잊어버린 채.
글 함희선 기자 사진 홍기화 기자 취재협조 핀에어 www.finnair.co.kr, 로바니에미관광청 www.visitrovaniemi.fi

산타클로스를 향한 환상을 채우다
어렴풋이 기억하건데, 초등학교 2학년 때까지 산타의 존재를 믿었다. 배가 이용식만큼이나 불뚝 나온 아빠가 늦은 밤 몰래 머리맡에 선물을 두고 갈 때, 그 몸매가 산타의 이미지와 묘하게 겹쳤기 때문이다. 안경 쓴 모습까지 누워서 올려다보면 딱 산타할아버지의 형상이었다. 물론 이건 선물로 받은 화구세트에 붙어있는 ‘00백화점 32,000원’이라는 가격표가 그 환상을 한순간에 깨어버리기 바로 직전까지의 이야기다. 핀란드 북부의 매력에 빠져 라플란드에 간 건 사실이지만, 로바니에미를 찾아간 건 내 어린 시절 산타에 대한 환상을 되찾기 위해서이기도 했다. 비록 아빠의 똥배에 속았지만, 그래도 어딘가에 진짜 산타가 존재하고 있다는 믿음이 가슴 한 켠에 여전히 남아있어서.

라플란드의 주도 로바니에미Rovaniemi. 시내에서 차를 타고 북쪽으로 8킬로미터를 달리자 산타마을이 금세 나타났다. 높은 산을 굽이굽이 넘거나 순록 썰매를 타고 어렵게 찾아가는 꽁꽁 숨은 산골짜기는 아닐지라도, 북극권의 한계선Arctic Circle에 걸쳐있는 산타마을은 왠지 비현실적이었다. 선 하나를 넘으면 북극과 북극이 아닌 것으로 나뉘는, 현실과 비현실의 경계에 걸쳐있는 땅. 괜스레 신비로웠다. 산타클로스의 집무실에는 1년 365일 하루도 빼놓지 않고 일하는 산타가 있다. 새하얗고 예쁜 얼굴에 빨간 모자를 쓴 엘프들의 안내를 받으며 그의 집무실로 향했다. 산타를 찾아온 이들이 신나는 얼굴로 줄서있었다. 나처럼 산타마을을 찾아오는 전 세계 사람들은 매년 40만 명에 달한다.

드디어 나는 거인처럼 큰 산타 앞에 얼음처럼 섰다. 얼굴을 올려다보는데, 고개가 아파왔다. 6살 때 유치원에서 산타분장을 한 아르바이트생을 처음 마주했을 때와 똑같이. 2미터는 족히 넘어 보이는 키에 내 머리를 평생 길러서 파마를 한다 해도 절대 가질 수 없는 완벽한 곱슬의 하얀 수염은 무릎까지 닿았다. 그리고 그가 건넨 손에 내 손을 겹쳐 올리는 순간, 마치 동화 속으로 빨려 들어가는 듯했다. 내 손이 그의 손바닥을 반도 채우지 못할 만큼 그가 거대해서일까, 순식간에 내가 호빗족이 된 기분이 들어서일까. 머리가 멍해진 그때 산타는 내게 능숙하게 물었다. “어디서 왔어요? 음, 한국이라고? 서울? 부산? 아님 인천인가요?” 어찌 한국에 대해서 그리 잘 아냐고 묻자 작년에도, 그 전해에도, 또 그 전전 해에도 찾아갔는데 왜 모르겠냐고 한다. 몇 살이냐고 하니 너무 오래 살아 까먹었다는 유머도 보탰다. “300살까지는 샜는데, 그 이후로는 새어보지 않아서 모르겠네요. 한 500살은 넘은 거 같은데. 하하.” 슬프게도 이제 나는 때가 너무 탔는지 소원을 비는 대신, 언제까지 산타 일을 할 거냐 이 수염은 진짜냐 등 순수하지 못한 질문을 던져댔다. 그러자 그는 ‘I do Santa가 아니라 I am Santa다.’ 혹은 ‘지금 네 눈에 보이는 것은 모두 진짜이니 믿어라.’라면서 안경너머에 있는 진실한 눈을 내 눈과 맞추었다. 그때 잠시 밝은 빛이 반짝하더니 난 순간적으로 그에게 빠져들었다. 그래, 그는 진짜 산타다!

로바니에미에 있는 산타마을에 가면 누구나 산타를 만날 수 있다. 산타를 만나는 것은 무료이지만, 그와 함께 찍은 사진은 25유로를 주고 사야만 한다는 사실에 상업적이라며 분노하는 이들도 더러 있다. 그런데, 이건 받아들이는 정도에 따른 것 같다. 사실 나는 산타마을이 디즈니랜드처럼 아주 뻔한 테마파크일 거라고 예상했었다. 그러나 화려하게 번쩍대는 억지스러운 연출은 하나도 없었다. 눈 속에 파묻힌 산타의 집무실은 참 수수하기까지 했다. 착한사람 눈에만 보이는 산타는 아니지만, 적어도 그냥 순수했던 우리의 마음을 헤치지 않을 정도의 믿음이면 충분한 것 같다. 산타에 대한 믿음이 아니라, 나의 마음에 대한 믿음. 우리가 로바니에미까지 찾아간다는 건 그런 환상이 아직 남아있어서이니까. 아주 잠깐이지만, 나는 운 좋게도 산타를 통해 산타를 믿던 어린 시절의 나를 만나는 행운을 얻었다.

산타에게 편지를 쓰세요
산타가 11월말에 공식적인 크리스마스 시즌을 선포한 뒤가 진짜 하이라이트이지만, 봄이건 여름이건 산타마을에서는 1년 내내 변함없는 크리스마스를 경험할 수 있다. 난 집무실에서 산타를 만난 뒤에 그 여운이 한참동안이나 지속되어 마음을 둘 곳이 없었다. 정중하고 따뜻했던 산타의 목소리가 귓가에 여전히 맴돌았다. 라플란드 사람들이 직접 손으로 만든 공예품이 가득한 선물가게를 둘러보고, 루돌프를 연상시키는 아름다운 뿔을 가진 순록들이 눈 속에서 썰매를 끄는 모습을 구경하면서도 그랬다. 크리스마스 시즌이 한참 지나 사람들이 많지 않아서인지 또 산타마을이 새하얀 눈에 모습을 희미하게 감춰서인지 진짜 동화 속을 헤매고 있는 듯한 느낌이 한참이나 계속되었다.

산타마을이 생긴 건 그리 오래된 일이 아니다. 1950년, 미국의 32대 대통령의 부인 엘리너 루즈벨트가 방문한 것이 그 시작으로 작은 오두막을 지어 그녀를 맞이했는데, 기념으로 그 오두막을 남겨두면서 산타의 집무실과 우체국, 기념품 가게 등이 차례로 생겨났다. 물론 핀란드의 아이들은 이 산타마을이 생기기 아주 오래전부터 산타의 존재를 믿어왔다. 산타 할아버지를 제 나라에 두고 있으니 아마도 그 믿음이 우리 아이들보다 더 클지도 모르겠다. 그들은 산타가 코르바툰트리Korvatunturi에 산다고 믿는다. 마을의 이름을 해석하자면 ‘이어 마운틴’인데, 산의 형태가 귀처럼 생겼기 때문이다. 그래서 아이들의 소원을 잘 들을 수 있다고 믿어지는 거다. 그 때문에 핀란드에는 오래전부터 라플란드에 있는 산타클로스에게 소원을 적은 편지를 보내는 풍습이 있었다고 한다. 물론 그때는 허공에 대고 보내는 편지에 불과했다. 그러나 라플란드의 한 숲에서 임업에 종사하던 어느 노동자가 편지에 답장을 쓰면서 이야기는 달라졌다. 산타클로스 중앙우체국이 탄생한 것이다.

산타마을에 있는 산타클로스 중앙우체국에는 매년 어마어마한 양의 편지가 배달된다. 지금까지 198개국 1천 6백만 통의 편지가 이곳으로 날아들었다. 그저 ‘산타클로스에게’라는 문장만 있어도 여기가 바로 그 최종 목적지다. 그 숫자보다 내가 궁금한 건 이거였다. 도대체 아이들은 편지에 어떤 내용을 쓰는가. 단순히 크리스마스에 받고 싶은 선물을 쓰는 어린이들도 있지만, 보통은 일기를 쓰거나 산타클로스나 루돌프에 대한 궁금한 점들을 물어본단다. 그림을 그리거나 쿠키나 사탕 등의 선물도 보내온다. 엉뚱한 아이들은 루돌프에게 먹이라며 당근까지 보낸 적도 있단다. 산타에게 온 편지를 읽고 분류하는 일은 엘프들이 돕는다. 그다음 매년 배달되는 60만개의 편지 중에 약 4만 통 정도에게 답장을 보내는 것도 역시 그들의 몫이다. 영어, 이탈리아어, 핀란드어, 불어, 독어, 일본어, 스웨덴어, 한국어 등 12개 국어로 쓰인 산타의 특별 답장, 어떤 편지가 답장을 받을 확률이 높을까. 요령은 의외로 간단하다. 답장을 받을 수 있는 정확한 주소를 적으면 끝! 물론 7유로를 내고 특별한 엽서를 사면 확률은 100퍼센트로 올라간다. 그러나 7유로를 내고 뻔하게 받아보는 답장대신, 자신의 행운을 시험해 보는 게 훨씬 재밌을 거 같다.

엽서를 1년 내 보관해두었다가 크리스마스에 짠하고 보내주는 낭만적인 서비스를 경험해보기로 했다. 산타의 특별한 소인이 찍힌 나의 엽서를 받게 될 행운은 가족과 주소를 외우고 있는 몇몇 친구들로 정해졌다. 오랜만에 손으로 쓰는 편지에 조금 있으면 사라지게 될 나의 가장 순수한 마음을 꼭꼭 눌러 적었다. 그리고 우체통에 엽서를 넣고, 문밖으로 나섰다. 구슬플 정도로 고요한 핀란드식 캐럴이 눈바람에 휘날렸다. 혹시나 지금의 이 마음도 덩달아 날아갈까 옷자락을 손으로 꽉 쥐여 맸다. 조금 더 오랫동안 내안에 붙잡아두고 싶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