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eet Nature in Northernmost of Finland, Lapland

순록이 뛰노는 북극의 땅, 라플란드

북극권에 속하는 핀란드의 최북부 라플란드는 헬싱키와 극명하게 대비되는 전통의 땅이다. 눈 위에 새겨진 발자국도 이내 바람에사라지듯, 사람의 손길이 오래 머물지 않는 라플란드의 세상은 늘 순결하다. 자연과 진실한 관계를 맺으며 살아가는 사람들을 만나고 순록과 함께 뛰고 구르며, 새하얀 눈처럼 순결한 북극의 땅에서 마법 같은 시간을 보냈다.
글 함희선 기자 사진 홍기화 기자 취재협조 핀에어 www.finnair.co.kr, 로바니에미관광청 www.visitrovaniemi.fi

야생의 땅, 라플란드
헬싱키에서 비행기를 타고 라플란드Lapland로 향했다. 숨을 깊게 들이마시자 차가운 바람이 콧속으로 들어와 폐 속을 콕하고 찔렀다. 어느 것 하나 헬싱키와 닮은 구석이 없었다. 눈이 시리도록 새하얀 눈밭, 눈뭉치가 얼어붙은 빽빽한 전나무와 자작나무의 숲, 도시에서의 애완견처럼이나 눈에 자주 띄는 순록. 내가 평소에 보는 시야보다 훨씬 더 광대해진 풍광에 난 한참이나 멍하니 서서 육체와 정신을 새로운 땅에 적응시켜야 했다.

핀란드하면 국제적인 대도시 헬싱키만을 떠올리기 마련이지만, 핀란드를 제대로 알기 위해서는 북쪽의 땅, 라플란드에 대한 이해가 필요하다. 핀란드는 서쪽으로 스웨덴, 동쪽으로 러시아, 그리고 북쪽으로 노르웨이와 맞닿아 있는데, 이들의 최북단을 라플란드Lapland라고 지칭한다. 핀란드의 3분의 1이 바로 여기에 속하는 땅이다. 오랫동안 북극권의 황무지로 여겨져 1920년대에 와서야 이곳으로의 여행이 처음으로 시작되었으나 지금은 오히려 깨끗한 자연과 거친 야생의 매력으로 주목받고 있다. 라플란드의 주도 로바니에미Rovaniemi는 북위 66도에 이르는 북극권의 한계선Arctic Circle에 걸쳐있는 도시다. 케미요키Kemijoki와 오우나스요키Ounasjoki, 두 개의 강이 지나는 지리적 이점 때문에 임업이 성행했던 시기에 이 강을 통해 많은 사람들이 이 땅에 정착할 수 있었다. 지금은 라플란드 여행의 거점 역할을 하고 있다. 반대로 북쪽 사람들이 남쪽 도시로 향하는 길목이 되기도 하고.

라플란드의 겨울은 내게 마법 같은 시간을 보여주었다. 소리 없이 내리는 눈은 새하얗고 보드랍게 땅을 감싸 안았다. 태양이 잠시 땅을 비추는 순간이면, 반짝반짝 빛나는 눈에 금방이라도 눈이 멀 것만 같았다. 하지만 11월 중순부터 1월 중순까지 끝없이 이어지는 기나긴 밤 때문에 낮에도 푸른빛은 계속되었다. 늘 머릿속으로 계산하던 시간의 흐름을 여기서는 내 방식대로 할 수 없었다. 아무 변화 없이 똑같은 시각에 멈춰있는 것처럼 모든 게 고요하고 평화로웠다. 라플란드는 그렇게 내게 첫인사를 건넸다.


라플란드의 겨울은 레저의 천국
이 땅에 겨울이 찾아오면 레저 마니아들의 머릿속에는 ‘라플란드는 곧 천국’이라는 문장이 완성된다. 숲속에서 야생 베리와 버섯을 실컷 따고, 호숫가에서 캠핑을 즐길 수 있는 싱그러운 여름의 라플란드가 있는데도 라플란드하면 무조건적으로 겨울이 생각나는 이유다. 여행자들이 마음을 빼앗기는 건 스키와 스노우슈, 스노우모빌 그리고 순록 썰매와 허스키 사파리. 춥다고 실내에 웅크리고 있을 생각이라면 라플란드는 아예 찾아가지 않는 것이 좋겠다. 아무리 추워도 밖으로 나가야 라플란드의 진짜 모습을 알 수 있는 거니까. 게다가 발틱해에서 불어오는 따뜻한 바람 덕분에 생각보다 그렇게 춥지도 않다.

로바니에미에서 만난 사람들을 가만히 보고 있자니 옷을 잘 차려입지도 않고, 좋은 차를 타지도 않으며, 큰 집에 살지도 않더라. 그래서 라플란드 사람들은 어디에 사치를 부리느냐고 물었더니 바로 스포츠용품에 투자한단다. 그렇다고 또 거창하게 굴지는 않는다. 집 앞의 언 호수에서 얼음낚시를 하고, 스키를 신고 공원을 걸으며 또 늦은 밤이면 산책을 하다가 우연히 오로라도 보곤 하는 것이다. 뭐 방법이야 소박하지만, 어째 듣다 보니 자랑인 것 같아서 질투가 나는 걸 참지 못했다.

스포츠는 신이 나기도 하지만, 손상되지 않은 라플란드의 자연을 몸으로 느끼는 최고의 방법이다. 이들에게 당연한 일상이지만, 뭔가 대단한 것을 기대하는 나는 허스키 사파리와 순록 썰매를 선택했다. 허스키 녀석들이 어서 빨리 달리고 싶다고 짖어대다가 브레이크를 떼는 순간 총알처럼 숲을 헤쳐달리는 통에 정신이 혼미해졌다. 손이 후덜덜하고 떨릴 정도로 온몸에 힘을 주고 달리다 2~3분쯤 지나서 제정신을 차리고 보니 숨 막히는 라플란드의 풍광 속을 내달리고 있는 나를 실감했다. 

얼음처럼 차가운 바람이 내 뺨을 때리고 머리를 헝클어 켰다. 날씬한 허스키들 몇 마리가 헐크보다 더한 힘으로 나를 자연으로 끌어들였다. 무서울 정도로 빽빽한 숲과 눈으로 뒤덮인 길고 추운 겨울 속으로. 건조한 눈은 대지 위에 벨벳 같은 카펫을 만들었더라. 그 느낌이 너무 보드라워 발은 땅에 붙이고 있는데도 몸은 하늘을 나는 것 같았다. 허스키 녀석들도 눈을 고기처럼이나 맛있게 씹어 먹으며 신이 난다며 아오-하고 자꾸만 하늘을 향해 울어댔다.

순록이 끄는 썰매에 올라탔을 때의 기분은 허스키의 그것과는 차원이 달랐다. 세상에는 순록, 썰매를 끄는 사미족 할아버지 그리고 나, 이렇게 단 셋만이 존재하는 것처럼 고요했다. 할아버지는 나와 눈이 마주쳐도 눈만 지그시 깜빡거릴 뿐이었다. 고요를 깨트리는 것은 오로지 순록 엉덩이에서 가끔씩 떨어지는 콩처럼 작은 배설물과 내가 훌쩍대는 콧물소리. 얼마나 세상이 조용한지 살살 흐르는 콧물마저 우렁차게 들려서 그냥 코밑으로 콧물을 질질 흘려보냈다. 그때 나는 침묵을 좋아하는 핀란드의 사람들과 교감했다. 조용하다고 알려진 핀란드 사람들, 이런 환경에서 살다보니 큰 소리를 낼 필요가 없는 거였다. 결국 침묵 속에서 가장 편안함을 느끼는 것이고. 종종 사람들이 “핀란드 사람들은 퉁명스럽고 무례해!”라고 느끼는 데에는 오해가 존재한다. 그들은 다만 조용할 뿐이다. 더 조용한 라플란드의 자연을 똑 닮아서.

철저히 자연을 따르는 라플란드식 생활법
로바니에미 시내에서 눈길을 헤치고 한참을 달렸다. 가이드는 평소에는 잘 쓰지 않는 안경까지 꺼내어 쓰고 운전대에 가까이 매달렸다. 숲에서 불쑥 튀어나올지 모르는 순록과 엘크를 대비해서다. 도심에서 벗어난 지 겨우 몇 분인데, 하얀 숲과 희미한 회색빛의 도로만이 보이는 것의 전부가 되었다. 새삼 내가 라플란드의 땅에 있음이 느껴졌다. 그렇게 30분을 달려 도착한 곳은 라플란드에서 나고 자란 토박이 예술가 이레네 칸가스니에미Irene Kangasniemi씨의 공방. 무성한 숲과 들판으로 둘러싸인 그녀의 작업실은 아담한 통나무집과 마주보고 있었다.

“내 남편 아리 칸가스니에미Ari Kangasniemi는 독학한 세공 아티스트에요. 그는 어린 시절을 기술을 익히면서 보냈죠. 하지만 1960년대, 1970년대에는 이게 직업이 아니었어요. 라플란드 사람들 모두가 스스로 도구를 만들어서 조달했었거든요.” 라플란드에서는 보석, 모피, 가죽, 나무, 금속으로 만든 질 좋은 수제품을 쉽게 구할 수 있다. 이 땅에 사는 이들 모두가 오랫동안 이런 재료를 다루는 데에 익숙하고 또 숙련되었으니까. 아리씨가 순록의 뼈와 나무로 만드는 나이프는 북쪽의 힘든 환경에서 살기 위해 꼭 필요한 아이템이다. 불을 피울 때도 건물을 짓거나 사냥하고 낚시를 할 때도 유용해서 라플란드 사람이라면 모두가 용도에 따른 칼을 여러 개 갖고 있을 정도다. 나무를 통째로 파서 만든 쿡사Kuksa 역시 핀란드 사람이라면 커피용, 보드카용 등으로 여러 개씩 가지고 평생을 사용하는 컵이다.

아리의 부인 이레네씨가 특별한 것은 순록의 뿔로 작업하는 공예가들이 그리 많지 않아서다. 순록은 라플란드에서 늘 중요한 존재였는데, 지금도 라플란드에 사는 순록의 수는 같은 땅에 사는 사람의 수보다 무려 2배나 더 많다. 어디든지 갈 수 있는 이동수단이 되어 주고, 고기, 가죽, 우유, 뼈, 뿔 등 어느 하나도 버릴 것이 없는 순록. 이레네씨의 외가와 친가 모두는 전통적으로 순록을 치는 분들이었단다. 할아버지는 이빨로 순록을 거세시키는 것으로 라플란드에서 아주 유명한 분이셨고. 이레네는 평생을 친숙하게 함께 해온 순록의 뿔로 다양한 예술작품을 만든다. 하루에 2센티씩 자라고, 뼈처럼 튼튼한 뿔이 매년 떨어지는 순록의 뿔은 그녀에게 있어서 더없이 좋은 재료이자 라플란드를 영원토록 기억할 수 있는 매개체이다.

원시적인 자연이 때 묻지 않은 채로 남아있는 라플란드에서 사는 법은 단순하다. 자연이 움직이는 대로 그저 따라가는 것. 이레네씨는 슈퍼에 가는 일도 거의 없다. “숲과 호수가 내 냉장고에요. 겨울에 먹을 것이 없으면 여름에 많이 저장해두었다가 먹는 거에요. 봄과 여름이 오면 지천에 널린 것들을 먹는 거죠. 자연이 많이 주면 먹고, 아니면 아껴먹어요.” 예쁘게 꾸며놓은 그녀의 집안의 모든 것에 이유는 다 존재했다. 어느 하나 쓸모없는 꾸밈은 없었다. 크림색 벽과 나무색 벽장과 책장, 가죽으로 된 안락의자, 무거운 틀 안에 3중 유리로 되어 있는 창문, 하얀 굴뚝이 연결된 벽난로. 천장에는 순록의 뿔로 만든 거대한 샹들리에도 달려있었다. 북유럽 디자인의 진짜 모습을 라플란드의 어느 시골집에서 발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