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rriage of Two Cultures 
Malacca & Melaka
두 개의 이름을 가진 도시, 말라카

한 도시의 이름을 두 개로 쓰기가 이처럼 힘들 줄 누가 알았으랴! 영어로 표기한다면 말라카Malacca.
말레이어로 표기한다면 믈라카Melaka. 두 개의 이름으로 불러지는 이곳은 배낭 여행객들이 최고로 선호하는
여행지인데, 무엇이 그들의 발걸음을 유혹하는지 한 번 빠져 보았다.
글과 사진 최일권 기자 취재협조 말레이시아 관광진흥청 02-779-4422 www.mtpb.co.kr 말레이시아 항공 02-753-6241 www.malaysiaairlines.com

고속도로에 진입 하자마자 이미 정체된 도로에 들어섰다는 것을 알았을 때, 어떻게 해야 할지 난감할 때가 있었을 것이다. 쉽게 술술 풀려갈 줄 알았던 것이 뜻하지 않게 복병을 만난 것처럼 말이다. 무슨 뜻으로 왜 이 얘기를 하느냐고 물을 텐데. 세상에는 이름을 몇 개씩이나 가진 사람이나 지명과 물건 등을 수 없이 흔하게 만날 수가 있다. 흔히 개명한 친구의 이름을 부를 때는 어색하지만 대게 새 이름으로 불려 주려고 애를 쓴다. 하지만 한 나라의 도시 지명이 두 개인 경우 국민들의 보이지 않은 깊은 뜻을 담고 있을 때 어떻게 불러줘야 할지 매우 난감할 때가 있다. 말레이시아에서 외세의 아픈 역사가 깊이 새겨져 있는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도시 말라카가 바로 그렇다. 처음에는 현지 주민들의 정서를 고려해 믈라카Melaka로 부르겠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말라카Malacca는 그들의 새 이름처럼 사용되고 있었다. 변명에 가까운 답변 같지만, 말레이시아의 주도를 ‘말라카(믈라카)’라고 병행 표기한 이유다. 말라카(믈라카)를 이해하는 두 개의 단어. 독자 여러분의 선택은?

유네스코로 지정된 도시의 비밀
이름을 통해 짐작할 수 있듯, 말라카(믈라카)는 동서양의 문화가 혼재된 곳. 도시 전체가 2008년 유네스코에 등재되었을 만큼 풍부한 문화유산을 보유하여 세계 배낭 여행객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고 있다. 실제 방문한 사람들은 세계의 인종이 조화롭게 생활하는 풍경에 놀라곤 한단다. 도시 곳곳의 회교 교당, 사원, 교회가 제각각의 모습으로 공존하는 모습은 참으로 흥미롭게 비쳐졌다.
오늘날과 같이 다민족이 조화를 이룰 수 있었던 비결은 과거를 풍미했던 해상 실크로드의 동방 거점 역할. 인도양과 남중국해 사이라는 지리적 위치 덕분이다. 뱃사람과 상인들의 문화교차점으로써 동남아에서 가장 화려하게 번성했던 무역 도시였기 때문이란다. 비록 현재는 수심이 낮아지며 항구의 기능을 상실하였지만 말이다. 또한 풍부한 천연 자원에도 그 비밀이 숨어 있었다. 고무와 주석은 현재까지도 풍부한 대표적 자원. 약육강식의 법칙을 거스르지 못한 채 두 보물은 제 주인을 찾지 못했고, 이를 탐한 서구 열강들의 지배로 이어졌다. 2차 세계대전이 끝나기 직전까지 포르투갈을 시초로 네덜란드, 영국에 의해 식민지 지배를 받으며 결국 다인종 국가로 변화한 것이다. 덕분에 국어인 말레이어 외 영어, 중국어 등이 통용되며, 이슬람 국교 외 모든 종교의 자유가 허락 되고 있어 다른 곳에서 느낄 수 있는 종교적, 문화적, 인종적 갈등은 발견할 수 없었다.

아픈 역사를 극복한 국민의식
현대 고층 빌딩처럼 화려하진 않다. 하지만 골목길 어귀를 지날 즈음이면 어김없이 나타나는 옛 건축물의 체취는 여행객들의 발걸음을 붙잡기에 충분했다. 과거 식민지시대 흔적들 역시 역사의 일부분이라 여기며 소중하게 보존해 왔기에 가능한 일이다. 그 가치는 현지 학생들조차 줄을 서며 유적지를 관람할 정도. 말 그대로 살아있는 역사교육의 현장이었다. 그 중 포르투갈의 요새, 아파모사A'Famosa는 관람객들에게 가장 사랑받는 포토 존. 비록 18세기 영국에 의해 폭파되고 지금은 출입구의 형상만 남아있지만, 그들은 줄을 서서 사진을 찍어야할 수고도 마다하지 않았다.
말라카(믈라카) 주민들에게 가장 혹독한 착취를 강행한 국가는 네덜란드. 그 당시 지어진 가옥구조의 모습은 아픈 기억을 되새기게 만든다. 작은 퍼즐 조각처럼 집을 최대한 작게 지었는데, 그 이유는 잔인할 정도로 가혹했던 세금부과 탓. 오늘날 이 가옥들은 홈스테이로 활용되며 관광객을 위한 휴식처로 변하였다. 또한 영국의 지배 흔적이 묻어나는 짙은 색 건물도 눈에 띄었다. 순백의 벽색을 진한 황토색으로 바꾸었는데, 강한 비로 튀긴 진흙물이 벽색을 망치니 구질구질해 보였던지 과연 신사(?)의 나라답게 영국다운 발상을 한 것이다. 비록 우리와 같은 민족은 아니지만 험난했던 역사의 아픔을 상상하니 동포의 아픔처럼 느껴지는 건 누구나 마찬가지일 것이다. 하지만 주민들의 키워드는 용서. 단어의 뜻대로, 과거의 아픔에 대해 그 누구도 원망하지 않는다니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과거에 집착하지 않는 미래지향적 의식이야 말로 국가의 미래를 밝게 만드는 원동력이라 믿기 때문이다.

여행객을 유혹하는 엑티비티 3선
말라카(믈라카)로의 여행을 준비하면서 잔뜩 부푼 생각은 했었지만, 그렇다고 이국적인 풍경의 울퉁불퉁한 돌길을 따라 특유의 말발굽 소리를 들으며 마차를 타는 것도, 플레저보트를 타고 거친 해협을 가로지르는 것도, 패러글라이딩으로 말라카(믈라카) 언덕을 넘어보는 상상을 했던 것은 아니었다. 마치 고층빌딩 하나 없는 푸르른 말라카(믈라카)의 첫 인상은 어린 시절의 시골을 떠올리게 만들었다. 하지만 여기, 한없이 정적일 것만 같던 도시에 활력을 불어넣어 주는 액티비티가 관광객들을 유혹하고 있었다.
놀이동산의 자유로 드롭처럼 생긴 타밍사리타워는 말라카(믈라카)의 경치를 관람할 수 있는 회전전망대. 높이 80미터 상공에서 360도로 회전할 때면 놀이기구를 타는 착각을 불러일으킨다. 말라카(믈라카) 강과 해협의 풍광을 옛 건축물과 함께 한 눈에 둘러 볼 수 있어 여행의 필수코스로 손꼽힌다. 전망대에서 바라 본 말라카(믈라카) 강은 좁은 물길이 도심을 관통하고 있었다. 이 강물을 따라 리버크루즈를 타고 양옆으로 조성된 노천카페, 레스토랑이 있는 정취를 만끽하며 즐기는 것도 운치가 있다.
이쯤에서, 말라카의 명물, 트라이쇼Trishow에 대한 소개가 빠지면 섭섭하겠다. 트라이쇼란 바퀴가 3개 달린 투어용 인력자전거. 인테리어와 데코는 모두가 다른데 가지각색의 문양으로 화려하게 장식한 솜씨가 제법이다. 본인의 취향에 맞는 자전거 디자인을 찾는 재미 또한 쏠쏠할 것이다. 그래도 이것저것 문양을 따지기 보단 갑작스런 비를 대비해 지붕 달린 트라이쇼를 추천한다. 비록 스콜이 퍼붓기 시작한다면 소용없을 지라도. 운이 좋은 날 라디오가 설치되어 있는 트라이쇼를 만나면 K-POP ‘강남스타일’ 노래도 틀어준다. 라디오 볼륨을 높이고 시내를 달리자 말 춤사위를 선보이는 학생 무리가 동네 소독차를 따르듯 쫓아오는 모습에 배꼽을 부여잡게 만들기도 한다.

동서양이 만들어낸 두 개의 이름
말라카(믈라카)의 문화유산을 경험하는 것은 단순한 여행과 다르다. 시공간을 초월한, 고대 그리고 아시아 이상의 문화융합을 발견하는 것이다. 단순한 문제 제기였을지라도 도시의 명칭인 말라카Malacca와 믈라카Melaka의 표기를 고심한 것 또한 같은 맥락이었다. 그리고 말라카(믈라카)를 방문한다면 역사유적, 현지인, 식당, 상점 등으로부터 누구나 쉽게 그 해답을 찾을 수 있을 것이다. 언제 어디서나 보고 듣고 맛보고 즐기며 힌트를 얻을 수 있었기 때문이다.

독특한 맛의 향연
매일 다른 요리를 먹어도 모두 맛볼 수 없는 게 말레이시아 음식이란 얘기가 돌 정도로 말라카(믈라카)에서는 다양한 전통요리를 맛볼 수 있다. 포르투갈, 영국, 말레이, 중국, 인도 등에서 유래한 조리법이 뒤엉켜 요리유산을 완성했기 때문이다. 그 중 뇨냐푸드는 특히 인상적. 현지인들은 중국 본토보다 더욱 중국적인 음식일 것이라 설명하였는데 지금의 중국은 공산주의 체제를 채택해 그들이 가진 본래의 문화가 상당수 변형되거나 사라져 버린 탓이라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