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reaming Of Tomorrow, Vientiane

내일을 꿈꾸는 달의 도시, 비엔티안

라오스라는 나라를 이야기할 때 흔히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된 도시 루앙프라방을 먼저 떠올리게 된다. 대다수의 라오스 관광객들은 비엔티안을 그저 루앙프라방, 방비엥, 팍세 등 다른 도시를 가기 위한 경유지로서 어쩔 수 없이 들러야 하는 곳으로 치부하기도 한다. 반나절이면 충분히 돌아봤다고 생각이 드는 도시, 순수함을 자랑하는 나라에서 이질적인 모습을 가진 도시라 여겨지는 비엔티안. 하지만 이것은 비엔티안을 모르고 하는 이야기다.

글과 사진 김수현 기자 취재협조 라오스항공 www.laoairlines.co.kr

세계 최빈국 중 한 곳으로 각박하고 빈곤한 삶을 살고 있을 것이라는 선입견은 매캐한 먼지를 가르고 빠른 속도로 지나가는 자동차, 오토바이 행렬과 해맑은 사람들의 미소로 모조리 깨졌다. 다른 국가와 같은 수도의 분주함과 화려함을 기대하면 한적하고 조용한 도시에 놀라게 될 테다. 그러나 조금 더 가까이에서 비엔티안을 들여다보면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는 찬란한 역사와 문화, 활기찬 아이들의 미소가 어느 도시보다 매력적으로 다가온다.

달도 잠시 멈추어 가는 곳

인천에서 직항으로 다섯 시간 반, 왓타이 공항에 착륙하기 전 하늘에서 내려다보니 울창한 숲 사이로 띄엄띄엄 자리 잡은 낮은 집들로 가득한 비엔티안 시내가 보인다. 산악지대가 전체 국토의 70퍼센트를 차지하며 동남아시아 국가 중 유일하게 바다와 접해있지 않은 내륙국가로, 과거 많은 나라들에 의해 무수한 침략을 받으면서도 꿋꿋하게 독립국으로 남았던 라오스. 그 중 비엔티안은 란쌍LaneXang왕국의 세타티랏Setthathirath왕에 의해 1563년 수도로 지정된 이래 지금까지 정치, 경제, 문화의 중심지로 굳건히 자리를 지키고 있는 라오스 제1의 도시이다. 건국 이래 천 년이 넘는 기간 시암, 크메르인, 버마인 등 다양한 민족에 의해 침략과 약탈을 당하는 수모를 겪었으며, 특히 1827년 태국에게 도시 전체가 공격을 당하며 상당수의 문화유산이 불타 없어졌다. 이후 프랑스 식민지, 일본 점령기, 인도차이나반도 비밀전쟁, 공산화 과정을 거쳐 지금의 라오스, 비엔티안으로 거듭났다. 화재로 소실되었던 많은 불교문화유산은 프랑스 통치 시기 복원 사업과 함께 주민의 노력으로 비교적 잘 유지되어 과거 찬란했던 라오스와 비엔티안의 역사의 발자취를 따라가 볼 수 있다.

‘도시’라는 뜻의 ‘Vieng’과 ‘달’의 뜻을 가지고 있는 ‘Tiane’이 만나 ‘달이 걸린 땅’을 의미하는 비엔티안은 메콩강변을 지나가던 달이 도시의 매력에 취해 잠시 멈추었을 만큼 아름다움을 자랑하는 도시다. 빠른 산업화에도 불구하고 주민과 정부에 의해 보전되고 있는 빼어난 자연경관과 잔잔하게 흐르는 메콩강을 보고 있자니 그제야 비엔티안이라는 도시 이름이 비로소 가슴에 새겨지더라.

신의 곁에서 살다

비엔티안 시내에서 1시간가량을 달려 도착한 씨엥쿠앙Xieng Kuane. 부다파크Buddha Park라 불리는 이곳은 뜨거운 태양 아래 울창한 나무들과 시멘트 조각상들로 공원 전체가 후끈한 공기로 가득 차있었다. 눈을 휘둥그렇게 만드는 신기한 광경 앞에서도 엄숙한 분위기를 자아내는 이 공간은 1958년 루앙 푸Luang Pu와 그의 추종자들이 평생에 걸쳐 이루어 놓은 곳으로 비숙련공들에 의해 만들어졌다고 할 수 없을 만큼 완벽한 200여 개의 조각들이 전시되어 있다. 부처상들 외에도 시바, 비쉬누와 같은 힌두의 신들 또한 각기 다른 모습으로 형상화되어 경건함과 신비로움마저 자아낸다.

라오스 출입국 카드 뒷면에 인쇄되어 있어 눈길을 끌었던 금빛 성지 탓 루앙That Luang은 수도를 비엔티안으로 천도한 세타티랏 왕에 의해 세워진 라오스의 상징이자 부처님의 가슴뼈를 모셔두고 있는 절대적 장소이다. 45미터 높이의 황금빛으로 물든 탑은 맑은 날 가까이에서 봐도 태양보다 빛나는 아름다움에 쉽게 발걸음이 떨어지지 않는다. 이 외에도 비엔티안 도심 속을 걷다 보면 금빛 장식이 가득한 사원과 함께 도심 속을 맨발로 걸어 다니는 승려들을 쉽게 만나볼 수 있다. 라오스를 이야기하며 빠지지 않는 불교는 국가 종교로서, 라오인들의 전반적인 삶에 강한 영향을 끼친다. 대표적으로 라오스의 남자들은 평생의 한번 적게는 1개월에서 많게는 3년까지 사원에서 생활하며 가르침을 받아야 한다. 라오인이 가난하게 사는 것을 운명으로 받아들이는 것 또한 불교의 영향이 큰데, 현세에 한 선행이 후세에 복을 불러온다 생각하여 필요한 것 이외에는 어려운 사람을 위해 기꺼이 나누니 소유의 개념이 상대적으로 덜할 수밖에. 그러나 평생을 신과 함께 살며 그 속에서 행복을 찾는 그들의 신성한 마음은 어느 곳보다 풍요롭고 행복한 라오스를 만드는 원동력이다.

더위를 피해 고개를 내민 그들의 삶

비엔티안의 낮은 모두가 태양을 피해 나름의 방식으로 시간을 보낸다. 낡은 파라솔 아래 테이블에 맥주를 놓고 지나가는 차들을 하염없이 바라보기도 하고, 해먹에 누워 낮잠을 청하기도 하며, 대문을 활짝 열어놓고 바람을 쐬며 텔레비전을 시청하기도 한다. 모두가 잠시 정지된 시간에도 활기찬 곳이 있다면 현대식 건물이 지어진 딸랏싸오Talat Sao부근이다. 딸랏싸오 몰Talat Sao Mall에서 오래간만에 느껴보는 시원한 에어컨 바람을 쐬며 구경한 건물의 전반적인 모습은 90년대 후반 성행했던 명동의 유명 쇼핑타운을 생각나게 한다. 사람들이 북적이는 곳으로 발걸음을 옮겨보니 나와 비슷한 또래의 여성들이 ‘Sale’이라 붙은 옷들을 뒤적거리고 있다. 전 세계 어딜 가나 여자들 심리는 똑같은 법, 동질감을 느끼며 함께 옷걸이를 하나씩 넘겨본다. 딸랏싸오 몰에서 나가 왼편으로는 남대문 시장과 비슷한 느낌의 재래시장을 만나볼 수 있다. 낮에 방문한 시장은 판매에 치중하기보다는 가게 주인들의 수다의 장이 되어 있었고, 그 와중에도 손익 계산이 빠른 주인들은 재빨리 자리로 이동하여 이방인의 발걸음을 유심히 지켜본다. 그러나 경계의 눈빛은 하나도 없다. 오히려 쳐다보고 먼저 웃으면 수줍어 고개를 돌리는 소녀의 감성을 지닌 아주머니들에게 온정이 전해져 온다.

해가 뉘엿뉘엿 저무니 더위가 좀 가시는 듯하다. 아직도 대지의 열기가 남아있지만, 낮에 살갗으로 느껴진 뜨거운 빛은 사그라졌다. 유유자적 흐르는 메콩강변을 산책하는데, 낮에는 도무지 길거리에서 쉽게 찾아볼 수 없던 사람들이 어디선가 우르르 쏟아져 나온다. 한껏 멋을 부린 청소년들부터 아기를 데리고 산책을 나온 신혼부부 가족, 푸른 눈을 가진 외국인들까지 모두가 이곳에서 밤공기를 즐긴다. 금세 해가 지고 메콩강 주변이 빨간색 지붕 아래 줄지어 늘어놓은 물건들로 꽉 채워진다. 복잡한 거리와 수많은 인파에도 가방 걱정이 되지 않는다. 다른 지역을 여행할 때면 언제나 가방을 앞으로 돌려 주변을 경계하며 제대로 둘러보지도 못했는데, 치안이 안전한 비엔티안에서는 신경도 쓰지 않은 채 종횡무진 이곳저곳을 누빈다. 아기자기한 소품, 부처의 인자한 표정을 담은 수채화 그림과 흥정을 하며 조심스럽게 계산기를 내미는 사람들의 작은 손까지. 소박하지만 그 속에서 여유를 잃지 않는 라오인들과 소통하며 진정한 그들의 삶에 한 발짝 다가선 느낌이 든다.

소박한 맛에 취하다

비엔티안의 맛에 대해 이야기하자면 호불호가 확실하게 갈린다. 미리 말해두지만 자극적인 음식을 좋아하는 이들에게 이곳은 한마디로 천국. 진정한 라오스식 음식을 맛보고자 방문한 씨홈 먹자골목 거리의 음식점은 이른 저녁 시간이었음에도 많은 인파로 비엔티안의 핫 플레이스임을 입증한다. 더위를 식히기 위해 비어라오Beer Lao한 잔으로 위장으로 들어올 라오스 음식을 맞이할 준비를 했다. 차례차례 나오는 음식의 비주얼을 찬찬히 보자니 전반적으로 빨간 색감이 먼저 눈에 들어온다. 웬만큼 입에 맞지 않는 음식이면 젓가락 한번 대지 않는지라, 선뜻 시도하기가 어려워 낯선 음식을 보곤 무작정 코부터 들이댄다. 동남아시아 음식이 맞지 않다고 말하는 사람들의 대부분이 고수풀의 향을 꺼리기 때문인데, 식성에 따라 다르지만 적절히 들어간 고수는 입맛을 돋우는데 제격이다. 의심을 잔뜩 품은 채 냄새만 맡다가, 잠시 후 젓가락을 놓지 않고 3일을 굶은 사람처럼 폭풍 흡입을 하는 모습을 본 일행들이 일제히 화들짝 놀란다.

비엔티안에서 맛본 요리 중 가장 중독성을 가졌으나, 상당히 자극적인 향을 풍기는 탐막홍은 태국의 쏭탐과 같은 요리로 파란 파파야를 채 썰어 젓갈, 레몬, 고추, 마늘 등을 넣어 음식이 낼 수 있는 모든 맛을 가지고 있다. 한국의 음식에 빗대자면 김치와 같은 것으로서 현지인의 식탁에서 절대 빠지지 않는 메뉴이기도 하다. 다소 짠 젓갈 향으로 느껴지는 첫 맛과 함께 단맛과 매운맛에 중독돼 다른 음식과 곁들여 먹느라 배가 볼록하게 나온 지도 잊게 되더라. 다채로운 라오스 음식으로 인해 한국에 돌아와 체중계 위에서 고함을 질렀다. 배불리 먹었던 비엔티안의 음식들과 함께 기계가 고장 난 것이 아닌지 의심하다가도 이내 수긍할 수밖에 없던 이유는 매일같이 입에 달고 다녔던 생과일주스와 비어라오 때문. 라오스에 방문하면 반드시 마셔봐야 할 생과일주스는 달콤한 감동을 선사하며, 뜨겁게 내리쬐는 태양 아래 마시는 시원한 비어라오는 여행의 즐거움을 더욱 배가시킨다. 유제품이나 해산물은 주변 국가로부터 대부분을 수입하지만 청정한 자연에서 얻을 수 있는 신선한 식재료로 색다른 음식을 맛볼 수 있다는 점과 시골 인심으로 만들어내는 푸짐한 밥상은 비엔티안에서 발견할 수 있는 또 하나의 매력이다.

느긋하게 걸어라

밤새 잠을 설쳤다. 호텔 창문이 깨질 것 같은 비바람에 몇 번이고 잠이 깨서 조심스럽게 커튼을 내다봤다가도 이내 무서운 마음에 문을 꽁꽁 닫은 채 작은 조명을 켜놓고서야 겨우 잠이 들 수 있었다. 아침, 언제 그랬냐는 듯이 쨍쨍하게 떠오르는 해를 보니 마냥 웃음이 난다. 지난밤 비가 내리는 꿈을 꾼 것 아니었나 의심하면서도 꿈이 아니었다는 것을 깨닫게 한 것은 밖에 내놓은 슬리퍼에 미처 마르지 못한 빗물 때문이었다. “뭐 오늘은 다행히 38도밖에 안됩니다.” 다행이라는 말이 전혀 와 닿지 않을 만큼의 더위를 자랑하는 라오스는 우기와 건기가 뚜렷하게 나뉘어 있는 아열대 기후에 속해있다. 습하고 더운 날씨를 자랑하는 라오스에서의 배달 문화는 절대로 상상할 수 없다. 느긋해도 너무 느긋한 라오인들에게 배달이란 ‘도착만 하면 되는 것‘. 인터넷 광고 속 ‘30분 이내에 피자를 가져다 드리지 않으면 돈을 받지 않겠습니다.’라는 홍보를 내건 프랜차이즈 피자집이 라오스에 체인점을 낸다면 사장으로서는 날도 더우니 한 번씩 쉬었다 가는 배달 사원들 때문에 골머리 깨나 썩을 테다. 빠릿빠릿하게 행동할 수 없게 만드는 무더운 날씨는 라오인 특유의 느긋함을 만들었지만, 사실상 관광객의 입장으로서는 도시 전체에 만연한 ‘느긋함’이 상당히 매력적으로 다가온다. 특히나 소유와 경쟁, 자기중심으로 가득 찬 패스트 문화에 지쳐버린 우리네들에게 라오인들이 보여주는 여유로움과 부처를 닮은 평온한 미소는 주위를 돌아보지 못한 채 목표만을 향해 달려가는 숨 가쁜 일상에 일침을 가하는 듯하다.

사랑에 빠지고 싶은 청정한 미소

사랑한다는 말을 남녀 간의 연인 관계에서만 쓰고 싶지는 않다. 짧은 일정이었지만 내가 라오인들에게 느낀 감정은 연인 사이의 그것과 비교하기에는 무리가 있으니까 말이다. 살면서 생판 모르는 남에게 이토록 애틋함을 느낄 순간이 다시 올 수 있을까. 이방인을 대하는 경계의 표정이 아닌 미소부터 지어주는 사람들을 보며 이곳을 힐링의 땅이라고 하는 이유를 새삼스럽게도 다시 한 번 깨닫게 된다. 한때 생태적 가치에 대한 높은 평가로 외국인의 투자와 여행객 숫자가 최정점을 이룬 라오스는 2008년 미국의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로 사회 전반적으로 경제적인 부분에서 과거에 비해 다소 위축된 모습을 보인다. 설상가상으로 외국인 관광객과 투자자 또한 줄어들어 2020년까지 전 세계 20대 최빈국 중 하나라는 낙인이 찍히기까지 했다. 그러나 소유라는 것에서 한 발짝 떨어져 있는 그들의 천진난만한 미소를 보며 애써 연민의 감정을 찾으려 하지 말라. 넘치지 않는 소탈한 삶은 그들에게 더할 나위 없는 행복이다. ‘괜찮아요. 모든 일이 다 잘 될 거예요.’ 보펜냥Bophenngan 정신에 깃든 삶은 라오스인 특유의 여유로움에서 나오는 풍족한 마음을 만들었고, 이방인을 향해 서슴없이 보여주는 환한 미소에는 자신들의 삶에 대한 만족과 행복을 담고 있으니까. 맑고 깨끗한 그들의 미소가 무분별한 산업화로 사라지지 않기를 바란다. 그리고 다음에 다시 방문하게 될 비엔티안에서 여전히 청정한 미소로 반겨줄 라오인들이 그대로 곁에 있어주기를, 비엔티안에서 느꼈던 사랑의 감정이 다시 살아날 수 있게 되기를 간절히 바라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