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의 새로운 발견 - 뚜르드몽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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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 07월호] 대륙분류 : [유럽] 국가분류 : [아일랜드] 도시분류 : [더블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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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UTFIELD] 호들갑 떨지 말고 더블린을 구경하라

Keep Calm, Carry on Sightseeing Dublin

호들갑 떨지 말고 더블린을 구경하라

깊이 없는 고정관념이거나 선입견이겠지만, 어떤 나라를 떠 올리면 금방 떠오르는 느낌이 있다. 예를 들면 프랑스 하면 예술과 멋의 나라 그러나 어딘가 향락적인 냄새가 나는 느낌, 독일 하면 딱딱하고 융통성 없이 효율적이기만 한 나라 그러면서도 뭔가 깊이가 있는 철학적인 듯한 분위기의 나라, 이탈리아 하면 괜히 즐겁고 행복하지만 어쩐지 무질서한 듯한 느낌의 나라. 대충 그런 것이 일반적인 고정관념이다. 유럽에서 30년을 넘게 살면서 수도 없이 위에서 예로 든 세 나라를 다녀 왔지만 아직도 그 일반적인 선입견을 벗어 나지 못한다. 갈 때마다 예외 없이 그런 인상을 받고 돌아 오는 것을 보면 결코 일반적인 인상이 틀린 것 같지는 않다. 그러면 아일랜드는 어떤가?

글과 사진 권석하 편집위원

우리의 한(恨)과 닮은 아일랜드

아일랜드 하면 슬프다는 느낌이 먼저 다가온다. 아일랜드 문화 속에는 어딘지 모르게 눈물이 스며 들어 있는 듯 하다. 역사적인 비애 때문인지 이들의 문화에는 우리 것과 같은 한(恨)의 정서가 분명 숨어 있다. 노래로 보면 우리에게 가장 잘 알려진 아일랜드 노래 ‘데니 보이(Danny Boy)’가 바로 대표적인 예이다. 이 노래에는 사랑하는 아들을 전쟁터에 보내야 하는 어머니의 한이 진하게 숨어 있다. ‘너는 가야하고 나는 기다려야만 한다. 모든 꽃이 질 때 너는 돌아 올 것이고 그 때는 나는 이미 싸늘하게 죽어 있을 것이다. 너는 돌아와 내 무덤 가에 무릎 꿇고 그때서야 내 곁에 있겠다고 말하겠지’라고 어머니의 애통한 심정을 노래하고 있다. 이 애절한 가사를 ‘아! 목동아!’라고 촌스럽기 그지 없게 번안해 원곡 가사의 본 뜻을 바꿔버렸다. 그래도 한국인은 곡조만으로도 이미 노래의 진가를 알아 국민 애창곡 중의 하나로 만들 정도로 한국과 아일랜드 두 국민은 정서적으로 통한다. 그래서 인지 우리 한국인을 ‘동양의 아일랜드인’이라고 사람들은 부른다.

한국인과 아일랜드 인의 닮은 꼴 찾기는 그렇게 골머리를 썩힐 필요 조차 없다. 우리가 세계에서 아직까지도 유일하게 분열되어 있는 민족이라고 알고 있지만 사실 아일랜드도 남북으로 아직 분열되어 있고 우리처럼 가까운 장래에 합쳐질 전망이 별로 없다. 이 남북 분단은 바로 숙명의 적, 이웃의 침략으로 인한 식민지를 거친 이유 때문이란 점도 두 나라가 같다. 가부장적이며, 가족 그것도 대가족 중심적이고, 특히 노인공경의 전통도 비슷하다. 음악을 비롯한 문화에 나타나는 정서도 멜랑꼴리(?)하고 운명적이며 감성적이고 비극적이다. 수도 없는 외침을 그렇게 당했으면서도 우리처럼 외국인에 대한 과잉 친절은 어쩔 수 없는 천성이다. 10년 전 출장 가서 겪은 아일랜드 인의 친절은 잊을 수가 없다. 혼자서 일본 식당에서 우동국물로 거의 열흘이 넘는 양식에 지친 입맛을 달래고 있는데 옆 식탁의 아일랜드 젊은 연인들이 말을 건네는 것이 아닌가. 외국인 같은데 혼자서 밥을 먹는 것이 안타까워 보여서 말을 걸었단다. 결국 2차 3차로 이어져 이국에서의 저녁을 같이 잘 보낸 기억이 있다. 마지막에는 자신들이 아일랜드인이고 여기가 아일랜드이니 기어코 술값을 내겠다고 하도 우기는 통에 도저히 이길 수 없어 결국 생면부지의 연배도 어린 커플들에게서 신세를 진 적이 있다. 펍에서도 각자가 자기 마실 것을 사서 먹는 영국은 물론이고 유럽 어디서고 겪어 보지 못한 친절이었다.

아일랜드 고통의 역사
아이리쉬들이 음주가무에 능하다는 표현은 너무 진부하다. 술만으로도 이름이 자자하다. 마셨다 하면 거의 폭음수준이어서 우린 한국인과도 한번 겨뤄볼 만하다. 영국에 처음 왔을 때의 아일랜드인 이웃 가족이 생각난다. 그 남편의 주말은 술로 시작해서 술로 끝났다. 금요일 퇴근하면 펍으로 출근하고 토요일 거의 하루 종일, 일요일 저녁까지 펍에서 살았다. 물론 끊고 맺는 것은 확실해서 주중에는 술을 입에도 안대지만 주말은 거의 맥주에 절어서 살다시피 했다. 한 예에 불과하지만 어쨌든 이렇게 아일랜드 인의 음주는 유명하다. 이 남편은 평소에도 영국인 남편들과는 달리 가사를 전혀 거들지 않는 가부장제의 전형이었다.

아일랜드인들의 의식구조는 거의 1000년을 주로 영국이지만 이민족으로부터 침범을 당한 역사에서 벗어 날 수가 없다. 영국 식민지 지배를 800년 이상 받은, 침략적인 대국을 이웃으로 한 약소민족의 비애가 아일랜드의 모든 것에 배어 있다. 뿐만 아니라 자연마저 혹독해 슬픔을 더욱 깊게 했다. 당시 인구 1/8인 25만 명이 죽은 대혹한(Great Frost: 1740-1741)과 그 보다 더 큰 비극 19세기 중반의 대기근(Great Famine: 1845-1852)으로 인해 겪은 아일랜드 평민들의 고통은 정말 눈물 없이는 들을 수 없다. 특히 대기근 때는 100만 명이 죽고 100만 명이 캐나다와 미국 등으로 이민을 갔다. 당시 인구 850만 명은 이로 인해 계속 줄어 들어 이후 한 번도 그 수준에 달하지 못했다. 지금은 아일랜드 공화국에 460만 명, 아직도 영국령으로 남아 있는 북 아일랜드에 180만 명이 살고 있을 뿐이다. 아일랜드는 이스라엘, 아르메니아처럼 세계적으로 본국에 사는 인구가 외국 교포들 숫자보다 적은 나라들 중 하나다. 미국에서 영국계 국민 다음이 아일랜드 계통이라는 사실도 잘 알려진 바 없다. 이렇게 본국에서 먹고 살기 힘들어 세계를 떠돌아 다닐 수 밖에 없으면서도 아일랜드 인은 자신들의 정체성을 유태인 만큼 잘 유지하고 살고 있다. 또 식민지로 영국의 지배를 그렇게 오래 겪어 자신의 말을 거의 빼앗겼음에도 불구하고 영국인에 완전히 흡수 당하지 않고 문화를 지키고 살아 온 점도 대단하다.

종교가 주는 아일랜드의 정체성

최근 사라졌던 아일랜드어를 되살리기 위해 각고의 노력을 기울이고 있으나 쉽지 않은 듯하다. 길거리 교통 표지 판에는 웨일즈 처럼 아일랜드 말이 먼저 나온다. 만일 한국이 일본의 식민지를 800년 까지는 아니라 하더라도 단 100년이라도 받았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하는 상상도 해 보았다. 과연 이들만큼 독립된 정체성을 유지하고 있을까? 아일랜드인이 이렇게 정체성을 유지하는 가장 큰 힘은 종교이다. 아일랜드인의 거의 90%가 가톨릭신자들이다. 독실한 신심이 오랜 영국의 지배에도 불구하고 국가 정체성을 지켜내는 원동력이 된 것이다. 만일 아일랜드가 영국과 같이 성공회였다면 영국에 완전히 흡수되어 사라졌을 수도 있었다는 지적은 설득력이 있다. 아일랜드가 가톨릭 국가라는 점은 더블린 시내 중심에는 일요일도 주차비를 내야 하는데 오후 2시까지는 안 내도 된다는 데서 실감할 수 있다. 이는 2시까지 시내 복판에 즐비한 성당을 다녀 오라는 배려이다. 성당 뜰 성모상 앞에 신자들이 모여 묵주 기도를 하는 모습이나 길거리에서 건너 편 건물을 향해 열심히 기도를 하는 광경 등은 이제 다른 유럽 도시에서는 정말 찾아 보기 힘든 풍경이다. 정말 아일랜드가 독실한 가톨릭 국가라는 말이 실감났다. 한국 가톨릭은 사실 아일랜드 가톨릭 신세를 많이 졌다. 가톨릭 한국 전파 초기에 아일랜드 콜롬반 수도회 외방선교단이 한국에 수도사와 신부들을 파견해 사목을 했기 때문이다. 한국에서 은퇴한 아일랜드 신부들이 유창한 한국 말로 한국을 그리워하는 모습을 여러 번 봤다. 그러나 이제 아일랜드에서도 가톨릭의 쇠퇴는 이미 대세인 듯하다. 시내 한복판의 아름다운 19세기 석조 성당이 관광 안내소로 바뀌었고 일요일에도 큰 가게들은 거의 문을 열어서 영업을 하고 있었다. 그 전까지 어떤 이유로든 법적으로 이혼이 불허되었으나 결국 1997년 국민투표로 가능하게 되었다. 아직은 까다로운 절차를 거쳐야 하지만 일단 이혼을 어떤 이유로도 인정하지 않는 가톨릭 교회법에서 보면 붕괴는 일단 시작된 셈이다.

‘호들갑 떨지 말고 술이나 계속 마셔’

더블린에는 특이한 것들이 몇 개 있다. 지하철이 없는 것이 그 중 하나다. 물론 도시 자체도 그렇게 크지 않고 교통량이 많지 않아서라고도 할 수 있다. 그래서인지 유럽 도시치고는 유난히 택시가 많다. 택시비도 다른 물가에 비해 그렇게 비싸지 않다. 다음이 더블린 시내에는 정말 쓰레기 통이 많은 점이다. 테러 때문이기도 하고 인건비 압박이 원인 이기도 해서 런던에서 쓰레기 통 찾기란 정말 하늘의 별따기이다. 그런데 더블린에는 거의 10 미터마다 하나씩 있는 쓰레기 통 때문인지 휴지가 거의 눈에 뜨이지 않았다. 상당히 인상적이었다. 더블린 시내에서 아일랜드 특유의 브랜드나 가게들을 정말 찾기가 힘들었다. 거의가 영국 상표의 것들이었다. 대신 영국에는 어느 도시나 많이 보이는 골동품 가게가 거의 보이지 않는 점도 같은 문화권인데 특이했다. 세계 어디를 가도 시내에 대형 관광기념 상품 가게가 더블린 만큼 많은 도시도 정말 찾기 어렵다. 곳곳에 대형 기념품 가게가 하나 둘이 아니고 여러 개가 같이 있었다. 노숙자가 없는 대신에 걸인과 거리의 악사는 정말 많았다. 길거리 모퉁이마다 악기를 연주하거나 특이한 동작으로 공연하고 있었다. 술집도 정말 많기는 많았다. 아마 그냥 상품 가게 보다 술집이 더 많은 듯 했다. 아일랜드인들이 술을 많이 마시는 풍자의 하나로 티셔츠에 새겨진 문구 하나가 기념품 가게에서 눈에 뜨였다. 영국에서 2차 대전 중에 국민들을 대상으로 제작한 포스터에 나와 유명해져 상품에 많이 사용되는 구호가 있다. ‘호들갑 떨지 말고 하던 일이나 계속해Keep Calm, Carry On’ 이라는 문구가 그것인데 아일랜드에서는 ‘호들갑 떨지 말고 술이나 계속 마셔Keep Calm, Carry On Drink’라고 비틀어 사용하고 있었다. 웃어야 할지 울어야 할지.

더블린은 친절한가?

아일랜드의 친절은 더블린을 론리플래닛 여행잡지에서 세계에서 가장 친절한 도시로 뽑히게 만들었다. 그 예를 위에서 들었지만 간단하게 하나 더 들어 보자. 길거리를 걸어 다니다가 목이 말라 마실 것을 하나 살려고 주머니를 뒤지니 센트 동전 몇 개가 모자랐다. 점원 청년은 그냥 됐다면서 가라고 했다. 아주 작은 금액이지만 영국에서는 절대 볼 수 없는 일이다. 그러나 유명한 아일랜드인의 친절의 신화를 배반한 사건이 마지막 날 두 군데서 일어 났다. 관광을 위해 트리니티 칼리지에 주차 하려고 동전을 찾으니 모자랐다. 그 때부터 거의 30분 동안 동전 바꾸기 전쟁이 벌어졌다. 이 곳 저 곳 상점들은 자신들도 동전이 충분하게 없다고 거절했고 근처에서 제일 큰 은행인 아일랜드 은행Bank of Ireland은 자기 은행에 구좌를 안 가지고 있으면 동전을 못 바꿔 준다고 했다. 기가 막힐 노릇이었다. 세상에 중앙은행이 동전을 안 바꿔 주냐고 항의를 하니 규정이 그렇고 이름과는 달리 자신들은 중앙은행이 아니라는 데는 별 수가 없었다. 우여곡절 끝에 30분 걸려 동전을 바꿔 뛰어 가니 다행히도 주차위반 딱지는 붙어 있지 않았다. 그 30분 동안에 아일랜드의 친절에 대한 신념이 단박에 무너져 버렸다. 거기다가 공항에서 일어 난 사건은 아일랜드 인은 무조건 친절하지 않다는 정말 당연한 진리를 일깨워 주었다. 더블린 공항 에어링구스 고객서비스 창구에서 일어 난 일이다. 에어링구스가 이지제트처럼 별송 하는 짐에 요금을 따로 매기는 것은 정규항공사 치고는 항공권을 싸게 파니 그렇다고 치자. 최소한 이지제트는 부피만 자신들이 요구하는 크기만 충족 시키면 무게는 정말 묻지도 따지지 않는다. 그런데 에어링구스는 무게마저 따지는가 보다. 에어링구스를 처음 타봐서 혹시 일정 무게는 별도 요금 없이 별송이 가능하냐고 고객서비스 창구의 중년여인에게 물었다. 아니라고 하면서 나의 기내 가방 크기가 규정보다 크고 무게도 무거워 보인다며 재려고 덤벼 드는 것이 아닌가. 내가 들고 다니는 기내용 백은 규정에 딱 맞는 모범사이즈인데 말이다. 하필이면 뭔가 기분이 나쁜 상태의 그녀 앞에 내가 운이 나쁜 건지는 모르겠지만 처음부터 전혀 친절이라는 말은 모르는 듯 했다. 지금도 더블린 공항 에어링구스 고객서비스 데스크 담당자 생각만 하면 기분이 나빠진다. 아일랜드 국적기인 에어링구스는 저가 항공이 아니면서 저가항공보다 고객서비스가 고약하다는 인식이 내게 박혀 버렸다. 하나를 보고 전체를 판단하는 일은 옳은 일은 아니지만 당분간 이런 악감정은 오래 가고 주위 사람들에게 까지 영향을 끼칠 것 같다.

기네스의 열풍

아일랜드는 사실 특산품이 별 것 없는 나라이다. 기념품 가게를 가도 선뜻 살만한 물건이 눈에 안 뜨인다. 겨우 아일랜드를 상징하는 초록색 네 잎 크로바를 이용한 상품들이 거의 전부다. 유일한 예외가 있다면 기네스 맥주. 흑맥주Stout의 일종인데 보통의 흑맥주 보다는 훨씬 더 진하고 커피 향이 난다. 따를 때 맥주 위에 덮이는 거품은 보통 크림 혹은 밀크라고 부르는데 정말 크림처럼 부드럽고 매끈하게 목을 넘어 간다. 기네스에 반하면 다른 맥주가 너무 싱겁게 느껴 질 정도로 중독성이 있다. 기네스가 건강에 좋다고 해서 한 때 수술 회복, 채혈자, 산모 심지어는 임산부에게까지 좋다고 한 적이 있을 정도였다. 기네스에 대한 호불호는 극명하게 갈린다. 좋아하는 사람은 안 마실 수 없을 정도로 빠져든다. 한 재벌 총수는 기네스에 반해서 정식으로 수입이 안될 때 서울로 출장 오는 지사 직원이 반드시 몇 병 사서 가지고 들어 가는 품목이었을 정도였다. 싫어하는 사람은 단 한 모금도 제대로 못 넘길 만큼 갈린다. 더블린 시내의 수많은 기념품 상회에 가도 기네스 상표가 붙은 티셔츠, 모자, 심지어는 기네스 팬티까지도 있다. 더블린을 가로 지르는 리베강 위 다리 기둥마저도 기네스 상표 모양을 쓸 정도. 일년에 8억5천만 리터가 세계적으로 판매된다니 코카콜라처럼 거의 패션 상표로 등장해도 손색이 없긴 하다. 어찌 되었건 기네스를 뺀 아일랜드는 생각 할 수 없을 정도이고 기네스를 마셔 보지 않고는 아일랜드를 다녀 왔다고 할 수는 없다. 더블린에서 마시는 기네스의 맛은 분명 런던에서 맛과는 달랐다는 점이다. 어떻게 설명 할 수 없는 묘한 차이가 분명 있었음을 자신 있게 얘기 할 수 있다. 이 말은 더블린에 가면 반드시 기네스를 마셔 보라는 뜻이다.

더블린에서 꼭 봐야 할 세가지

더블린에서 다른 것은 몰라도 이것만은 반드시 봐야 하는 세 개만 고르라면 트리니티 칼리지 도서관의 ‘롱 룸’과 아일랜드 국립미술관 그리고 메리온 스퀘아 귀퉁이의 오스카 와일드 조각상이다. 특히 오스카 와일드 조각상은 작가의 팬이 아니라도 반드시 찾아 보라고 강력히 추천한다.

먼저 더블린 트리니티 칼리지의 ‘롱 룸’은 대학교 도서관 서가가 보관된 큰 방이다. 1732년 20년 걸려서 지어진 건물인데 1850년 책을 더 보관하기 위해 천정을 더 올리는 바람에 지금의 웅장한 모습을 갖추었다. 직접 가 보지 않고 사진만으로는 그 압도적인 광경을 그려 낼 방법이 없다. 65미터 길이의 3층 건물 높이 천장 방에 20만 권의 가죽 장정 고서가 꽉 차있다고 상상해 보라. 그 장관을 어찌 한 장의 사진으로 느낄 수 있겠는가?

다음은 아일랜드 국립미술관이다. 결코 사이즈나 소장품으로는 파리의 루브르나 런던의 국립미술관을 당할 수는 없다. 그러나 이 미술관에는 어디서고 볼 수 없는 걸작 그림 몇 점이 있어서 방문을 고집 한다. 그 첫 번 작품으로는 프레드릭 윌리엄 버튼의 ‘터레트 계단의 이별’이라는 수채화이다. 공주의 경호기사가 공주와의 맺어지지 못할 사랑으로 왕의 노여움으로 사형을 당하러 가는 날 마지막 작별의 가슴 찢어지는 장면이 정말 기 막히게 묘사되어 있다. 유감스럽게도 수채화의 특성상 월, 수, 토요일 매일 한 시간 밖에 공개하지 않는다. 정말 어지간한 성의가 아니면 보지 못할 작품이다. 시간이 맞는다면 반드시 봐야 할 작품이다. 나머지는 두 점의 성모자상이다. 취미로 성모상을 모으는 나는 이 두 성모상처럼 장난스러운 예수를 못 봤다. 하나는 얼굴에 개구쟁이 웃음을 함빡 지으면서 어머니 품을 벗어나 창문처럼 묘사된 그림 액자를 넘어 곧 뛰어 내릴 자세의 그림이다. 성모는 그런 일을 하도 많이 겪어서인지 별로 놀라는 표정을 짓지도 않으면서 그 쪽으로 그냥 눈길만 줄 뿐이다. 나머지 하나는 아프칸 블루 색의 성의를 입은 성모에게 안겨 있는 맨몸의 예수의 왼손은 어머니의 윗옷 가슴 속으로 곧 들어 갈 기세이다. 어머니 품에 얌전히 안겨있는 보통의 예수의 모습이 아니다. 얼굴로 봐서 예수는 어머니의 젖을 아직도 그릴 나이이긴 하지만 그렇다고 존엄한 성모님의 가슴팍에 손을 집어 넣으려는 모습은 정말 귀엽다. 예수를 사람의 아들인 천진난만한 아기의 순수한 모습으로 잘 그려 놓았다.
마지막으로 아일랜드 작가 오스카 와일드의 조각상을 순례하고 나면 더블린 순례는 아쉽지만 마감해도 될 듯하다. 오스카 와일드는 서슬이 시퍼렇던 1895년에 드러내 놓고 동성애를 해서 감옥에 갈 정도로 당시로는 정말 특이한 인물이었지만 그의 조각상은 그 이상으로 작가를 잘 묘사하고 있다. 지금까지 누구도 따라 올 수 없을 만큼 도도한 풍자와 날카로운 야유가 작품에서 넘치던 작가 와일드의 삶의 자세를 잘 나타내고 있다. 자연석 받침 위에 오불관언의 냉소적인 자세로 아무렇게나 비스듬히 앉아 세상을 내려다 보는 조각상은 정말 특이하다라고 밖에 표현할 방법이 없다. 거기 세상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들은 나와 전혀 관련이 없다는 듯 혹은 세상이 나를 버렸으니 나도 너희들과 등을 지련다는 듯 한 이 조각상은 다른 어떤 사람의 것과 다르다. 각 부분을 각종 색깔의 돌로 조각하여 흡사 실물처럼 리얼하다. 그 앞에는 아주 아름다운 나신의 여인이 검은 석대 위에서 오스카 와일드로부터 몸을 돌려 외면하고 땅을 내려다 보고 있다. 남자 애인에게 남편을 뺏긴 아내 콘스탄신의 조각이다. 콘스틴신의 조각상 옆에는 남자 나신 흉상이 같은 받침대 위에 놓여져 있다. 남자 나신 흉상은 와일드의 남자 애인을 뜻한다고는 하나 확인된 바는 없다. 만일 그렇다면 그 배치가 정말 기가 막히다. 오스카 와일드는 두 남녀를 앞에 두고 자신이 자란 메리온 스퀘아 1번지 집을 바라 보고 있다. 와일드는 영국 감옥에서 2년간의 중노동을 치르고 파리로 건너가 15년 뒤 46세로 죽을 때까지 영국과 아일랜드에는 한발도 딛지 않았다. 지금도 페르 라세즈 공동묘지의 와일드의 무덤은 그를 추모하는 세계 여인들의 립스틱이 묻은 키스 마크로 얼룩져 있다. 2011년 묘지 당국이 립스틱 자국을 지우고 비석을 유리로 덮어 놓았으나 그 유리에 여전히 여인들은 키스하고 가고 있다.

작가의 조각상 앞의 콘스탄신의 조각상 받침대와 그 옆의 남자 나신 흉상 조각상 받침대에는 유명인사들이 선정한 와일드의 어구가 그들의 필체로 새겨져 있다. 그러나 오스카 와일드는 더블린의 그 바위 위에 앉아 오늘도 우리들에게 던진 냉소적인 자신의 어구들을 읽고 무슨 뜻인지 제대로 알지도 못하면서 고개를 끄덕이고 가는 중생들을 불쌍하게 내려 보고 있다.

‘나는 정신과 육신을 분리시켜 놓기 위해 술을 마신다’, ‘인생은 복잡하지 않다. 우리가 복잡할 뿐이다. 인생은 간단하고 간단한 것이 옳은 것이다’, ‘냉소가야 말로 모든 것과 무가치의 것의 가치를 아는 사람이다’, ‘오로지 재미없는 사람만이 아침 식탁에서 지혜가 반짝인다’, ‘사람들이 내 의견에 동의할 때마다 나는 내가 무엇인가 잘못했다는 걸 안다’, ‘나는 유혹 빼고는 무엇이든 이겨 낼 수 있다’, ‘우리가 모두 시궁창에 쳐 박혀 있을 때도 그 중 몇 명은 하늘의 별들을 보고 있다’, ‘거짓말, 아름다운 그러나 진실이 아닌 것이 진정한 예술의 목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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