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ep Charm of Tradition and Change Compelling, Central Vietnam
전통과 변화의 진한 매력이 돋보이는, 중부 베트남

고요한 정적을 깨는 웅성거림에 머리보다 눈이 먼저 반응했다. 시계를 보니 새벽 4시 언저리. 아직은 어둑한 주위로 분주하게 움직이는 사람들. 태양보다 먼저 새벽을 깨우는 부지런한 이들이 사는 나라. 변화와 여전함의 사이에서 끊임없이 매력을 발산하는, 그렇다 이곳은 베트남이다.
글과 사진 임성훈 기자 취재협조 베트남 항공 www.vietnamairlines.co.kr 02-757-8920

오랜만에 들려 본 베트남은 여전했다. 중부지역의 보석과도 같은 두 도시 다낭Da Nang과 호이안Hoi An 또한 마찬가지였다. 물론 ‘예전에 비해’ 외형적으로 적지 않은 부분이 바뀌어 있었고, 앞으로도 ‘상당한 변신’을 진행할 모양새였다. 하지만 그곳들이 지닌 ‘가볍지 않은’ 매력은 소중한 첫사랑의 기억처럼 오롯이 남아 반짝거리고 있었다. 어쨌든 지나간 시간과 지금의 시간이 만나면 어김없이 지는 쪽은 ‘지금’ 쪽이다.

다낭Dang Nang
베트남의 대표적 휴양지로 변신 중
80만의 인구를 가진 다낭은 베트남 중부지역의 최대 상업 도시로 100년이 채 안 되는 역사를 가지고 있다. 이와 같은 젊음은 다낭을 베트남 대도시들이 직면하고 있는 대부분의 공통점, 즉 무질서하고 소란스러우며 혼잡한 모습과는 분명한 거리를 두게 만들었다. “베트남 인들이 가장 살고 싶어하는 도시 1위가 다낭입니다”라는 동행한 가이드의 말처럼 창 밖으로 보이는 풍경은 그의 말을 확실하게 뒷받침 했다. 계획적으로 정비된 도로는 넓고 반듯하다. 사람들의 얼굴에는 짜증보다는 미소가 흐른다. 부족하고 여유 없는 곳에서는 결코 만날 수 없는, 풍족하고 너그러운 모습들의 연속이었다.  하지만 ‘살기 좋은’ 다낭이 ‘좋은 여행지로써의’ 다낭과 같은 표현일 수는 없다. 불과 얼마 전까지만 해도 다낭은 ‘상대적으로’ 별 볼일 없는 여행지였다. 한적한 해변과 대리석으로 유명한 오행산 정도가 전부일 정도로 빈약한 여행자원은 인접한 휴양도시 나짱이나 세계문화유산인 호이안이 지닌 콘텐트에 상대가 되지 않았던 탓이다. 그러던 다낭이 변하고 있다. 그 동안 지니고 있었던 ‘중부지역의 경제 중심지’라는 딱딱한 이미지에 휴양의 도시라는 낭만적인 색을 착착 덧입혀 가고 있다. 이름만으로도 고개가 끄덕여 지는 대형 리조트 들이 속속 들어 서고 있고 지역의 관문인 공항도 새롭게 단장했다. 다낭 시내에서 약 1시간 거리에 위치하고 있는 ‘바나힐스Bana Hills’ 역시 그러한 테두리 안에서 계속적으로 변신중인 투어 스팟이다. 

케이블카와 함께 만끽하는 절경, 바나힐스Bana Hills
살이 따가울 정도로 뜨거운 베트남의 정오. 다낭의 명소로 새롭게 부각되고 있는 바나힐스를 찾았다.
프랑스 식민지 시절, 베트남의 뜨거운 열기를 견디다 못한 프랑스인들은 평지보다 선선한 고산지대를 그들의 휴양지로 택했다. 다낭에서는 ‘바나산’이 그러한 역할을 담당했는데 바나힐스는 바로 이곳의 정상에 자리잡은 리조트이다. 과연 해발 1500m의 산 정상에서 맞이한 공기는 다낭 시내의 후텁지근한 그것과는 질적으로 달랐다. 사방으로 탁 트인 전망 또한 시원함을 더했다. 하지만 그런 환경에 좋아진 기분도 잠시. 눈앞에 펼쳐진 중세 프랑스풍의 거리와 고성의 위용에 압도되었다. 2년 전 찾았을 때만 해도 사방이 한창 공사 중 이었던 바나힐스가 일정 부분 제 모습을 드러낸 것이다 (물론 여전히 곳곳에서 공사는 진행 중이다). 조감도만으로 규모를 어림짐작한 당시, 꽤나 클 것으로 예상은 했지만 실제의 모습은 그 이상이었다. 걸음을 옮겨 둘러본 내부는 숙박시설, 음식점과 기념품 점, 실내 놀이공원 같은 편의 시설들을 두루 갖추고 있어 리조트 본연의 목적에 충실했다. 특히 3층 규모로 꾸며진 실내 놀이공원은 자이로드롭이나 범퍼카 같이 우리에게도 익숙한 놀이기구를 설치 해 아이를 동반한 여행자들이 여유로운 한때를 보내기에 안성맞춤이다. 사실 바나힐스를 얘기할 때 빼 놓을 수 없는 것이 한가지 있는데 그것은 바로 케이블카의 존재. 기네스 북에도 등재되어 있는 명물로 5Km에 달하는 거리를 오가며 사람들을 실어 나른다. 조바심이 날만큼 긴 시간을 허공에 매달린 채 가는 기분이 썩 유쾌한 일은 아니지만, 울창한 정글과 폭포들을 발 밑에 두고 산등성이를 넘나들 때의 스릴은 말로 표현하기 힘들다. 그야말로 전신이 짜릿짜릿하다. 또한 파노라마처럼 펼쳐진 절경은 잠시 찾아 온 오싹함에 대한 보상으로 충분하기도 했다.

힐링을 원한다면? 다낭의 해변
그저 아무것도 하지 않고 빈둥거릴 자유가 필요하다면 한낮의 다낭 해변을 찾는 것이 마땅하다.
눈이 시리도록 푸른 바다, 두툼하고 덩치 큰 구름, 그리고 무성한 열대야자수들만이 동반자가 되는 주변은 한가롭다. 단조로운 재즈 선율에 맞춰 흐느적거리듯 시간은 그렇게 느리게만 흘러간다. 처음부터 급하고 복잡한 것들과는 담을 쌓은 듯. 크림색 비치 침대에 몸을 맡긴 채, 맥주를 홀짝거리며 상상해보는 달콤한 꿈들은 모조리 현실이 되어 나타날 것만 같다. 때때로 이와 같은 여유로운 휴식이 낯설다 못해 두려워지기까지 한다. 어쨌든 그랬다. 다낭 해변의 한낮은 이처럼 실제와 커다란 괴리를 두고 지루함과 느긋함의 경계를 달린다. 하지만 강렬했던 해가 서서히 힘을 잃어 가는 무렵이 되면, 다소곳하기만 했던 백사장은 순식간에 역동적이 된다. 한낮의 더위를 피해 숨죽이던 로컬들이 물놀이를 즐기기 위해 쏟아져 나오기 때문. 외국인 여행자들에게 잠시 자리를 내 주었던 다낭 해변은 제 주인을 만나 더욱 신이 난 듯 ‘과하게’ 활기를 띤다. 하긴 예전에는 이런 모습만 있었을 테다. 같은 중부에 위치한 해변 휴양지 나짱의 존재감으로 인해 늘 외지인들의 외면을 받는 신세였으니까.
휴양에 최적화된 리조트들이 속속 들어서며 이제는 현지인과 이방인들이 공존하는 다낭의 해변이 되었다. 그리고 휴식을 향한 최종 목적지로써 도약하기 시작했다. 예전의 모습이 순수함만을 지향했다면, 지금은 ‘휴식의 질’이라는 덕목까지 추가되었다. 특히 풀 빌라 타입의 안락한 객실과 러블리한 수영장이 자랑인 ‘퓨전 마이아Fusion Maia’와 웅장한 외관과 화려한 인테리어의 조화가 인상적인 ‘인터 콘티넨탈 리조트Intercontinental Resort’의 수준 높은 서비스는 그러한 예의 좋은 본보기가 되겠다. 어쨌든 그러한 개발은 현재 진행형이고 보통의 속도보다 몇 배는 더 빠르게 이어질 것 같다. 그러한 변화에도 해변 휴양지 특유의 얄팍한 상술과 손때는 아직 보이지 않아 다행이다. 앞으로도 지속되길 바래본다. 진정한 명품 휴양지, 다낭이 되기 위해서는 말이다.   
 
 

호이안Hoi An
시간의 향기를 품다
베트남 중부의 머스트 비짓 스팟인 호이안은 ‘묵직하지만 친근한’ 시간의 향기를 지니고 있는 도시이다. 책장을 넘기다 보면 술술 넘어 가지만 내용은 결코 가볍지 않은 고전명작에서나 느껴봄 직한 그런 향기 말이다.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되어 가치를 인정 받게 된 것도, 두터운 ‘마니아’층을 가지게 된 것도 따지고 보면 도도한 시간의 무게에서 오는 힘 일 테다.
호이안은 15세기에서 19세기 무렵까지 동남아시아의 중계무역 도시로 이름이 높았다. 때문에 수많은 외국 상인과 자본이 바다를 건너 호이안으로 유입되고, 그 가운데 일본과 중국에서 온 상인들은 거주지까지 형성해 정착을 하게 되었다. 이런 상황은 베트남과 중국, 그리고 일본의 양식이 혼재된 독특한  문화를 호이안에 형성하는 계기가 되었다. 그리고 호이안의 올드타운에는 지금까지도 이와 같은 모습
이 남아 있다.
   
씨클로를 타고 돌아 본, 올드타운
올드타운은 아담한 크기를 자랑한다. 그래서 이곳을 찾은 대부분의 여행자들은 산책하듯 천천히 걸어서 마을을 둘러 본다. 걷는 맛이 있는 호이안 이고 그 ‘맛’을 원체 사랑하는 기자 또한 이제까지 두 다리에 의지해서 걸어 다녔었다. 하지만 이번에는 씨클로를 선택했다. 세월의 흐름이 짙게 배인 옛 거리와 씨클로의 조합이 오히려 더욱 낭만적일 수 있겠다는 기대감을 가지고……
투본 강변을 출발한 씨클로가 ‘지잉’ 거리는 페달 소리를 첫 번째로 멈춘 곳은 일본교Japanese Bridge혹은 내원교라는 이름을 가진 붉은색 건축물 이었다. 1593년 호이안에서 살게 된 일본 상인들이 자신들의 거주지와 중국인들의 터전을 연결하기 위해 건설한 건축물이다. 그런데 건축 연도를 곰곰 되짚어 보니 당시 일본은 우리나라와 전쟁중인(임진왜란 1592~1598) 시기였다. 우리와는 단절의 역사를, 호이안에서는 연결의 역사가 이루어진 것 같아 마음이 편치 않았다.
씨클로가 두 번째로 세워준 곳은 노란색 외벽이 인상적인 ‘떤키고가Tanky Old House’. 약 200년 전 지어진 건물로 베트남, 중국, 일본의 3국 양식이 혼합된 호이안 스타일의 전형을 보여 준다.
현재 남아 있는 고가들 중 보존상태도 가장 양호해서 이를 보기 위한 사람들로 좁은 내부는 늘 북적거린다. 붉은 톤과 아름다운 장식들이 어우러진 ‘푸킨회관Phuc Kien Assembly Hall’은 중국 복건성에서 건너 온 화교들에 의해 건축되었다. 전형적인 중국 양식으로 올드타운에 세워진 화교들의 회관 중 가장 멋진 건물이라는 평가를 받는다. 제사를 지내거나 모임에 사용되었던 건물의 내부 역시 겉모습에 뒤지지 않을 만큼 화려했다. 하지만 그보다 더욱 인상적이었던 것은 자기 땅 아닌 곳에서 더욱 단결할 줄 아는 중국인들의 단합된 모습이었다. 

형형색색 빛의 향연, 호이안의 밤
드타운에 조용히 밤이 내려 앉자 옛 건물들은 하나 둘씩 불을 밝히고, 등(燈)으로 유명한 도시답게 형형색색의 등불이 거리와 골목을 수줍게 어루만졌다. 신, 구 시가지를 이어 주는 다리 역시 총천연색으로 자신을 드러냈다. 투본 강변으로 몰려 나온 수많은 사람들이 이처럼 빛으로 물들어 가는 호이안의 밤에 동참했다. 신시가지 한 켠에 펼쳐진 야시장을 시작으로 올드 타운의 후미진 골목까지 방향 감각을 상실한 채 한참을 걸었던 다리도 쉬게 할 겸, 맥주 한 병을 들고 투본 강변의 벤치에 앉았다.
은은한 조명이 더해진 올드 타운의 옛 건물들이 투본 강에 길게 반영을 드리운 모습이 보였다. 그것은 이미 이 세상의 풍경이 아니었고 현실은 정지했다. 대신에 오랜 세월 동안 호이안이 품고 있던 시간의 향기가 온 몸을 천천히 감싸왔다. 이보다 더 좋을 수 없는 베트남이 되는 순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