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ve Letters from Prague
프라하에게 받은 세 통의 편지
여행 중 집으로 부친 엽서. 주저리주저리 써내려간 흥분된 글씨는 엉망이지만, 여행지에서의 시간과 추억은 타국의 우체국 소인과 함께 꽝-하고 마음에 새겨진다. 내가 고르고, 계산하고, 써서 보낸 엽서인데도 늘 그 도시에게서 받은 연애편지인 냥 감미로운 건 왜인지. 눈부시게 아름다웠던 주홍빛 프라하를 기록한 원고도 프라하가 부친 편지로 날아들었다.
글과 사진 함희선 기자 취재협조 체코관광청 한국사무소 www.czechtourism.com

From. 프라하의 슈퍼스타
600살의 나이에도 군살 없이 매끈한 몸매. 520미터로 쭉 뻗은 각선미. 세상에서 나를 모르는 이는 없지. 프라하에서 나를 한 번도 만나지 않고 떠나는 일은 절대 있을 수 없는 일이야. 오히려 나만 한 번 바라보고 아쉬움에 울면서 떠나는 경우는 허다하지. 글쎄, 오로지 나만을 위해 국경을 넘어온 거라나. 그래! 내가 바로 프라하의 슈퍼스타 까를교Karlův most야. 프라하를 가로질러 흐르는 블타바Vltava 강에 놓인 다리. 1357년 카를 4세가 건축가 페터 파를러를 시켜서 건설을 시작했고, 1400년에 비로소 완공되었어. 1342년 홍수에 떠내려 가버린 나의 선배 유디트Judith 다리를 대체하기 위해서였는데, 나 역시 한때 홍수피해를 입는 아픔을 겪지도 했지. 그러나 지금까지 오랫동안 수많은 마차들과 프라하 사람들이 안전하게 강을 건널 수 있도록 도와왔어. 내 역할은 거기에 그치지 않았어. 블타바 강은 거대한 물음표 형태로 만곡을 이루며 도시의 중심부를 관통하거든, 그래서 나는 아득히 먼 옛날부터 강을 사이에 두고 있는 양쪽 땅의 연결고리가 되어 도시가 확장될 수 있도록 기둥 역할을 아주 톡톡히 했더랬지. 프라하가 지금 이렇게 거대하게 팽창할 수 있던 건 누구 덕? 바로 나, 까를교 덕분이야.
프라하를 만난 소감을 말해봐. 정말 눈부시게 아름답지? 파리, 런던, 암스테르담에 견주어도 아주 매혹적이라니까. 1989년 체코가 ‘벨벳 혁명’을 통해 공산 치하에서 해방되면서 한적했던 동유럽의 옛 수도는 밀려드는 관광객으로 아주 시끌벅적해졌어. 다들 프라하의 매력에 퐁당 빠져버렸나봐. 난 단 한 차례도 프라하를 떠난 적이 없는데 온 세상 사람들을 벌써 다 만나봤다니깐. 주로 여행자들은 나를 밟으며 사랑을 표현하지만, 때론 스토커가 되기도 해. 건너편 다리에서, 백조가 노니는 강가에서, 호텔 창문 밖으로, 공원의 벤치에 앉아서, 연인의 품에 안겨서도, 유리잔 안에 비춰 보며 나를 끊임없이 훔쳐봐. 일단 한 번, 나를 만나면 반하다 못해 스토커가 되는 거지. 언제, 어디서, 어떻게 보아도 자꾸만 예쁜 팔방미인이니까.
미모가 빼어나서 이기도 하지만, 까를교가 특별하게 느껴지는 건 아마 30인 성인상의 공이 아닐까 생각해. 여행자들은 여기서 혼수상태에 가까운 포토타임에 빠져들어. 정말 아름답거든. 프라하에 다시 오고 싶어? 그렇다면 17번과 19번 석상 사이의 성 요한 네포무크St. John of Nepomuk를 찾아봐. 1638년 내가 처음 갖게 된 조각상이야. 그 이후로 30년 동안 카톨릭 종파가 앞 다투어 석상을 건립했지. 그런데, 비밀 하나를 알려줄까. 쉿! 그중에 몇몇은 복제품이라는 거야. 사암으로 만들어진 석상은 마모가 쉽게 되어서 안전한 곳에 잘 보관해야하거든. 자, 그중에서도 체코인들의 수호성 네포무크를 주목해. 1393년 바츨라프 4세는 왕비의 고해성사를 발설하라는 요구를 묵살한 그를 묶어서 블타바 강에 휙 던져버렸데. 그의 시신이 둥둥 떠갈 때 함께 해준 건 오로지 별빛뿐이었고. 근데 그를 죽인 진짜 목적이 교회와 왕실끼리의 갈등 때문이었다나. 아무튼 지금은 로마의 트레비분수에 동전을 던지면 다시 로마를 찾게 된다는 이야기처럼, 네포무크의 청동판을 문지르면 언젠가 다시 프라하로 돌아올 수 있다는 전설이 전해지고 있어. 이미 온 세상사람 소원 다 들어준 듯, 반질반질 그 부분만 금색으로 반짝 거리고 있으니 쉽게 찾을 수 있을 거야. 프라하의 슈퍼스타, 집에 돌아가서도 나를 잊지 못할 거 같다면 이 청동상을 진심으로 쓰다듬어주길. 우리가 다시 만날 수 있게 말이야.

From. 도시의 오랜 동네
프라하의 도심은 강 하류에 집중되어 있어. 나는 블타바 강 남쪽에 밀집해있지. 까를교의 동쪽 끝에서부터 까를로바Karlova 거리를 따라 죽 걸어오면 프라하에서 가장 오래된 동네, 나를 만날 수 있을 거야. 고대의 성 중 세계 최대 규모로 기네스북에 오른 프라하 성Pražský Hrad 을 보고 싶다면 까를교를 건너기 전에 들리는 걸 잊지마. 까를교를 중심으로 나와 정반대에 있거든. 9세기 보르지보이 왕이 건설한 건데, 무계획적으로 확장된 거라 온갖 유형의 건축양식이 혼재되어있어 흥미로운 곳이지. 그런데, 혹시 당신 길치는 아니겠지? 프라하의 길들은 미로같이 복잡하게 얽혀있거든. 중세시대부터 주변마을이랑 교외지역을 하나씩 하나씩 삼키듯이 도시가 마구잡이로 형성되어서 이 도시 구조에는 체계란 눈을 씻고 찾아도 볼 수 없어. 그래도 내 안에서 길을 잃으면 작은 골목을 구경하는 재미가 쏠쏠하지만 말이야.
프라하에서 가장 오래된 나를 사람들은 스타레 메스토Staré Město라고 부르지. 구시청사, 시민회관, 틴 성모교회, 유대인미술관, 천문시계 등 40개의 건물을 내 품에 끼고 있어. 제 2차 세계대전의 포화 속에서도 꿋꿋하게 상처 없이 살아남은 거야. 천년의 걸친 유럽 건축사의 살아있는 교과서인, 나 자체가 프라하 중세시대 유적의 보고라고 할 수 있어. 카를 4세가 신성로마제국의 수도였던 프라하를 고딕양식의 건축물로 장식했던 시절이 나의 절정기였지. 규모와 아름다움만으로도 유럽에서도 손꼽힌다니까. 깃발을 손에 쥐고 마이크로 방송하며 몰려다니는 단체 관광객, 거리 공연가에 푹 빠진 아이들, 자기네 레스토랑과 기념품 숍으로 데려가기 위해 호객하는 장사꾼들, 거기에 잘빠진 몸매의 매력적인 훈남훈녀까지 리얼 런웨이 워킹을 하며 정신을 어지럽히는 통에 가끔 머리가 지끈대기도 하지. 그 혼돈 가운데 눈에 띄는 걸 하나 찾아봐. 광활한 광장 중앙에 위풍당당하게 존재를 드러내는 얀 후스Jan Hus 조각상. 그의 종교개혁운동은 마틴루터보다도 1세기나 앞섰어. 유럽에서 손꼽히는 기독교 개혁가 이기도 했고, 또 체코 서부 보헤미아Bohemia지방의 독일화 정책에도 저항했던 민족 운동가이기도 했어. 그런데, 안타깝게도 1414년 바로 이 광장에서 화형에 처하고 말았어. 지금 우리가 보는 광장의 조각상은 그의 사망 500주년을 기념하기 위해 세운 것이야.



우리 동네에서 가장 소름 돋는 순간이 언제인지 알아? 한 번이 아니야. 매시 정각마다거든. 수 백 명의 사람들이 시계탑 앞에 모여들어서 동시에 한곳만 뚫어지게 쳐다보는 진풍경이 벌어져. 그 눈빛이 얼마나 강렬한지 벽돌을 뚫어버릴 기세라니까. 그들이 여기에 모여드는 건 오로지 오를로이Orloj 천문시계를 보기 위해서. 1410년 카다네의 미쿨라시라는 시계의 명인이 제작한 것으로 정각이 되면 죽음을 상징하는 인물상이 벨을 울리고, 모래시계를 뒤집으며 12사도가 시계 위 창문에서 나와 행렬을 하거든. 자자, 거두절미하고 내 진가는 시계탑 꼭대기에서 확인하는 게 어때? 다리가 후덜덜 떨리는 70미터 높이에서 내 속살을 들여다보는 거지. 빛바랜 파스텔 톤의 주홍지붕으로 모자를 맞춰 쓴 나의 오래된 매력에 황홀해서 어쩔 줄을 모를 걸. 살갗을 스치는 프라하 바람에 지상으로 내려오는 일까지 까먹게 될지도 모른다고.

From. 잠들지 않는 굿나잇
온몸으로 나를 받아들일 준비가 필요해. 가만히 앉아만 있는 다면 절대 알 수 없는 매력을 내가 꽁꽁 숨겨놓았거든. 내가 궁금하지? 난 헐크와도 같은 프라하의 밤. 당신의 기분에 따라 좌지우지될 감정이입의 대상이지. 처음부터 강한 매력으로 어필하려면, 독한 술 한 잔 마시고 시작하자. 에메랄드 색은 휴양지에서나 보는 건 줄 알았겠지만, 프라하의 까만 밤은 바닷물대신 압생트Absinth의 술 방울이 압도해. 19세기 파리의 화가, 소설가, 시인 등 가난한 예술가가 즐겨 마셨던 술이야. 약간의 환각작용을 일으키기 때문에 삶이 힘들고 감성에 목말랐던 그들의 사랑을 독차지했던 거지. 고흐가 좋아했던 술이래. 그가 자신의 귀를 자를 수 있던 것도 압생트가 창조해 낸 환각 때문이라나. 그의 그림에 초록색이 많은 것도 다 이 술에 홀딱 빠져서라고.
압생트가 불어로 ‘고난, 고통, 쓴 쑥’을 의미하는 것처럼 징그럽게 독해. 알코올 도수가 80도. 정도를 상상할 수 있겠어? 지금도 유럽 여러 나라에선 압생트 음주가 법으로 금지되어 있다니까. 물론 체코에선 자유롭게 마실 수 있지. 혹시 무서운 거야? 아까 말했잖아 난 헐크라고.



우선, 이 술을 눈으로 먼저 마셔봐. 색깔이 참 예쁘거든. 마시는 법도 독특해. 유리잔에 압생트를 조금 따른 후, 그 잔 위에 구멍이 뚫린 스푼을 놓고 각설탕을 올려. 이때 꼭! 설탕 위에 압생트 몇 방울 뿌리는 것도 잊지 말아줘. 설탕에 불을 붙여야하거든. 술에 서서히 단맛이 스며들도록 말이야. 그리고 꿀꺽-, 목구멍에선 알싸한 향과 뜨거운 화기만 느껴질 뿐 환각에 빠져들진 않아. 요즘 만드는 술에선 환각성분을 완벽하게 제거했으니까. 이 매력덩어리 압생트를 마시기에 좋은 곳을 하나 추천해줄게. 카페 슬라비아Café Slavia. 프라하의 오래된 카페 중에서도 가장 유명한 곳으로 체리나무와 오닉스를 사용한 인테리어가 우아하지. 20세기 초부터 유명 인사들의 아지트였어. 라이너 마리아 릴케와 프란츠 카프카, 그리고 하벨 전 대통령까지. 빅토르 올리비아의 작품 <압생트 마시는 사람Drinker of Absinth> 앞이 그야말로 압생트 마시기에는 최고 명당이야. 그림 속 테이블 위에 압생트 한 잔과 취한 신사 앞에 묘령의 초록여인이 흐리멍텅하게 서있잖아. 이 그림 앞에서라면 더 술맛 나겠다. 그치?
술의 힘을 빌리지 않아도 프라하의 밤은 언제나 황홀해. 낮에 갔던 까를교, 프라하성, 구시가지, 시계탑 모두 다시 찾아가봐. 태양 아래서 빛났던 그들의 모습과 내가 품고 있는 그들은 완전히 다르거든. 프라하의 야경에 열광하지 않는 이는 절대 없어. 이른 밤에도, 무르익은 밤에도, 저물어가는 밤에도 여행자들은 엎지른 물처럼 밖으로 흘러나오지. 그럼 어김없이 나는 당신을 기다리며 준비해 놓은 나이트라이프를 꺼내들 꺼야. 까를교 위의 흐릿한 가로등 아래서 연인과 키스하고, 노천카페에 앉아 밤하늘의 별을 새며 시원한 라거 맥주를 마시고, 핫한 음악이 쿵쾅대는 클럽에 가서 땀을 흘려도 좋아. 음울한 분위기의 담배연기 자욱한 재즈바도 가볼만한 곳이지. 



체코 재즈는 1930년대에 크게 유행했어. 그러다 1948년 공산당이 정권을 차지하면서 재즈 공연과 앨범 발매에 제재를 가해서 주춤했지만, 오늘날까지도 여전히 사랑받는 장르야. 클래식과 록과 팝에 살짝 밀리는 듯 하지만 말이야. 마지막으로 재즈클럽을 하나 소개할께. 우 말레호 글레나U Malého Glena의 석조 지하창고에선 매일 10시부터 밴드공연이 열려. 공간이 좁아서 10명이 겨우 어깨 맞대고 앉을 수 있지만, 색소폰 연주자의 찌그러진 입주름까지 볼 수 있는 생생함이 있어. 고막까지 전달해줄 것 같은 강렬한 울림까지 있다니까. 광각렌즈가 아니면 무대조차 한 컷에 못 담아. 그래서 좋아. 괜히 고상하고 점잖은 척 하는 것 말고 진짜 재즈를 즐길 수 있으니까. 헐크 같은 프라하의 밤에 어울리는 음악이잖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