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uddhism Through Architecture

불교를 따라 도착한 건축물

스리랑카가 100년도 넘도록 기독교 국가 영국에게 식민지지배를 받으며 많은 것이 변했지만 하나 변하지 않은 것이 있다. 그들의 종교 불교다. 모든 국민이 출생신고서에 종교를 반드시 적어야만 하는 믿음과 신앙의 나라 스리랑카. 이곳에서 불교를 따라 걷다 보니 다다른 건축물들이 있다. 자연과 인간이 함께 힘을 보탠 장소와 함께 현대적인 사원도 찾았다.

글 이소윤 기자 사진 최은주 기자 취재협조 스리랑카 대사관 lka.mofa.go.kr

광기로 시작된 경이로운 시기리야

5세기에 지어진 이 어마어마한 시기리야는 일명 ‘사자바위’를 뜻하는 싱할리어다. 이 바위가 사자바위인 이유는 간단하다. 이 바위를 발견하고 궁전으로 만들겠다 다짐했던 카샤파 왕은 정말 사자처럼 이 바위를 만들어놓았다. 물론 지금은 사자의 머리 부분과 많은 곳들이 훼손되어 시기리야 중턱의 사자 발 모형만을 선명하게 볼 수 있지만 과거에는 멀리서 보면 한 마리의 거대한 사자의 옆모습이 보이는 것 같았으리라 추측한다. 처음 어렴풋이 시기리야의 사진만 보았을 땐 이곳이 일종의 거대 자연 박물관 같은 곳인 줄 알았다. 하지만 직접 방문해 온갖 디테일한 이야기와 사실들을 전해 듣고 나니 시기리야는 세상에 둘도 없는 건축물이었다. 현대의 발전수준으로도 그 원리를 완벽히 해석해내지 못할 정도로 정교한 건축물 말이다. 천재적인 설계에다 1500년이 훌쩍 지난 지금까지도 매일 수백 명의 관광객을 수용하고 있는 견고함마저 갖췄다.

카샤파 왕은 라이벌 격이던 형이 자신이 아버지를 죽이고 차지한 왕좌를 다시 빼앗으러 오지 않을까 노심초사하며 함부로 오르지 못할 이 높은 바위 위에 궁전을 꾸몄다. 자기 스스로 얻어낸 왕좌를 뺏기고 싶지 않았던 불안감과 자신만의 왕국, 궁전을 더 완벽하게 꾸미고자 했던 그의 광기가 이런 경이로운 건축물을 남긴 것이다. 바위에 직접 오르기 전 지나치는 ‘물의 정원’은 여전히 비가 올 때마다 저절로 수로가 작동할 만큼 치밀한 설계로 만들어진 곳이다. 이곳을 지나 계단이 본격적으로 시작되는 ‘돌의 정원’. 올라가며 밟게 되는 계단들은 다른 벽돌과 같은 돌이 아니라 조금 더 미끈한 화강암으로 만들어져 색이나 촉감이 남다르다. 아주 좁은 계단 탓에 주변을 둘러보는 대신 발끝만 보고 올라오다가도 정말 두 눈을 번뜩 떠야할 때가 다가온다. 바로 시기리야의 하이라이트인 절벽에 그려진 프레스코화를 보는 때다. 궁전이 사라진 이후 승려들이 민망해서 지워버리기도 했을 정도로 육감적인 몸매의 그림들은 왕의 부인들일 수도, 까마득히 높은 바위 한가운데서 자유롭게 춤을 추는 여신들일 수도 있다. 점점 꼭대기로 올라갈수록 소름끼칠 만큼 웅장한 이 바위의 정상은 의외로 초라하다. 화려한 왕궁 터도 없이 큼직한 연못들만이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올 뿐이다. 이렇게 시기리야에 몸을 실은 한 시간 만에 수많은 생각과 감정이 오고갔다. 한번 올라보니 왜 이곳에 한번 온 이들이 이곳을 두 번, 네 번, 다섯 번 다시 찾는지 그 심정을 백번 이해하게 되더라.

화려하지만 서민적인 담불라 석굴사원

콜롬보에서 동쪽으로 148킬로미터 떨어진 곳, 시기리야와 퍽 가까운 곳에 담불라 석굴사원이 위치한다. 1991년에 유네스코 세계유산에 등재된 이 멋진 사원은 자연그대로의 석굴 속에 인간이 만든 불상들을 가득 채워놓은 화려한 사원이다. 기원전 1세기 경 발라감바후Valagambahu 왕이 전쟁을 피해 유배를 다니던 중 승려들이 왕을 이곳의 석굴 속으로 안내해 오랫동안 보호해주었다고 한다. 이후에 무사히 궁궐로 돌아간 왕이 그 은혜를 갚고자 숨었던 동굴에 큰 사원을 짓고 스님들께도 보답하면서 이 사원이 탄생했다.

동굴 속에 들어가 있는 사원이라는 소리에 과연 어떤 웅장함을 지녔을까 기대가 컸다. 사원의 입구에 다다르기 위해 한참 언덕길을 오르고 도착한 입구에서 신발을 벗고 뜨뜻미지근한 돌바닥을 지그시 밟는다. 5개의 주요 동굴이 있는 담불라 사원은 야성적인 석굴 밑으로 하얀색의 청초한 건물이 각각의 동굴 입구를 나누고 있다. 동굴에 들어가기 전 위로 불룩하게 나온 석굴을 응시해보면 본래 그 석굴 겉까지도 벽화가 가득 그려져 있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지금은 90퍼센트 이상이 손실되었지만 아주 미미하게 남아있는 벽화 조각들이 화려했던 과거를 희미하게 보여준다. 동굴로 들어가 그 황금사원의 정체를 조우하면 왜 이곳이 유네스코 문화재에 등재되었는지 이해할 수 있다. 엄숙을 넘어 무서울 만큼이나 완벽하게 조각된 불상들이 각양각색의 크기와 표정, 자세로 조명으로만 밝혀진 동굴 안에서 일제히 자신을 쳐다보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비스듬한 석굴의 천장을 깎거나 변형하지 않고 자연 그대로 활용해 전체를 설계했음이 눈에 보이면 하나부터 열까지 모든 것을 계산하고 지어졌을 이 석굴사원의 치밀함에 소름이 끼친다. 이토록 역사 깊은 장소를 무장해제라도 한 듯 맨발로 터벅터벅 걸어 다니는 사실에서부터 이 사원의 이국적인 분위기에 압도당할 것이다.

그런데 이 장소를 더욱 매력적으로 만드는 것은 이렇게나 화려하고 격 높은 사원에 박물관처럼 관람을 오는 것이 아니라 정말 기도를 드리러 오는 수많은 사람들에 있었다. 코코넛에 불을 붙여 기도를 한 후 액운을 날리기 위해 땅으로 내던지는 여인과 이때를 기다렸다가 깨진 코코넛 속을 발라먹는 원숭이, 너도나도 온가족과 아기들을 데리고 와 한참을 앉아서 이야기 나누던 사람들의 모습에서 종교가 담긴 한 건축물이 사람들에게 주는 평온함을 목격했다.

도심 속 유토피아 시마말라카 사원

스리랑카에 제프리 바와Jeoffrey Bawa라는 건축가가 있었다. 그는 스리랑카의 현대 건축에서 중요한 역할을 한 인물이다. 싱할라 건축의 전통을 따르면서도 유렵의 양식도 적절히 융합시켰던 그의 건축은 ‘열대지방의 모더니즘’이라는 호평을 받아왔다. 그런 그가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설계한 사원이 콜롬보에 있다. 역시나 평범하지 않다. 콜롬보의 베이라 호수 위에 둥둥 떠 있는 이 사원은 고요한 주변과 사원이 어우러져 콜롬보에서는 상상하기 힘들었던 단아함을 보여준다. 1976년부터 2년 동안 지어진 시마말라카 사원은 원래 출가한 승려들의 시작을 위한 의식을 치를 장소로 만들어졌는데, 이는 스리랑카에서 볼 수 있는 유일한 현대식 불교사원이다.

들어가기 위해 반드시 건너야 하는 다리를 지나면 신발을 벗는 곳 앞으로 널찍한 중앙사당이 있다. 중앙사당을 빙 두르는 수십 개의 불상들이 모두 제각각의 자세를 취하고 있다는 사실은 먼저 말해주지 않으면 발견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중앙사당 옆으로 난 작은 통로를 따라가면 큰 보리수나무와 불상, 스투파가 서있는 작은 보리수사원이 나온다. 스리랑카의 다른 사원들이 자주 그렇듯이 이곳 역시 불상 주변으로 모서리마다 힌두 신들의 사당이 함께 마련되어 있었다. 물과 불상, 물과 사원 등 전혀 함께 생각해보지 않았던 조합들이 한 사원 안에서 조화를 이루고 있는 모습을 바라보는 재미가 남다르다. 호수 너머 보이는 현대적인 빌딩과 독특한 양식의 사원이 만들어내던 풍경은 스리랑카에서 느껴본 적 없는 새로운 아름다움을 안겨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