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eylon Tea Comes from Light Green Waves

연둣빛 파도는 붉은 차가 되어

실론Ceylon. 영국식민지 시절, 인도양의 작은 섬이 불린 이름이다. 고로 홍차를 빼고는 이 나라를 논할 수 없을 만큼 온 나라가 붉은 홍차 빛깔로 깊이, 진하게 물들어있다.

글 이소윤 기자 사진 최은주 기자 취재협조 스리랑카 대사관 lka.mofa.go.kr

해발 1,900미터의 산릉선에 올라 사방을 둘러본다. 어느 쪽으로 돌려도 편협한 시야에 다 담을 수 없는 차밭이 광활하게 펼쳐져 있다. 1년 내내 10도에서 20도 안팎의 서늘한 기후를 보이는 이곳은 툭하면 비가 내리거나 물안개가 바지 자락을 길게 늘어뜨려 온 산을 뒤덮는다. 영국인들은 영국과 기후가 흡사한 이 땅에 차나무를 심었다. 그것도 아주 많이. 그렇게 이 땅은 스리랑카 내에서 최고의 차 생산지 우바Uva, 딤불라Dimbula와 함께 가장 유명한 홍차산지가 되었다. 누와라엘리야에 도착하던 날도 마찬가지였다. 회색빛깔 비구름들이 축축한 몸을 산자락에 눕힌 채 연둣빛 찻잎들을 적시고 있었다. 길거리에서는 두툼한 점퍼를 입은 사람들이 지나다니고, 버스 창문은 금방 서리라도 낄 것처럼 차갑다. 하지만 다음 날 하늘이 개자 드러난 부드러운 빛깔의 차밭 모습은 마치 바다와도 같았다. 찻잎은 손대면 터질 것 같은 섬세함을 지니고 있어서 자라난 지역에 따라 조금씩 다른 맛을 낸다. 그에 따라 홍차에도 종류를 몇 가지 나누는데 그 중 누와라엘리야의 것은 온화하면서 샴페인처럼 싱그러운 맛을 내는 하이 그로운High Grown에 속한다. 이런 분류는 차밭의 고도에 따라 달라지는데, 하이 그로운에서 미디엄 그로운Medium Grown, 로우 그로운Low Grown으로 내려갈수록 차밭의 해발고도가 낮아지고 홍차의 맛은 더 진해진다. 그러니 하이그로운의 누와라엘리야 홍차는 설탕이나 우유를 타기엔 맛이 많이 산뜻해서 정직한 홍차 향을 음미하는 것이 이곳을 방문할 홍차 애호가들을 위한 팁이겠다. 작은 섬에 퍼진 홍차 향은 이제 이 땅의 또 다른 상징이 되었다. 하지만 모든 것에는 시작이 있는 법. 스리랑카의 홍차가 이토록 발전하게 된 데는 영국식민지정부의 단순한 노력이 전부가 아니었다. 차 문화를 찾아보기 힘들던 먼 옛날, 스리랑카에 입국하던 제임스 테일러James Taylor라는 신사의 주머니 속에 든 차나무 씨앗이 이런 대단한 성공을 이뤄낼 줄 누가 알았겠는가.

‘홍차의 아버지’ 제임스 테일러

스리랑카에 커피재배가 한창이던 1869년, 큰 병충해가 돌아 커피생산에 치명적인 차질이 생겼다. 위기를 헤쳐 나갈 묘책으로 생각해낸 것이 커피를 대체할 나무를 새롭게 재배하는 것이었고, 그 때 스리랑카에 처음으로 홍차를 심는다는 과제를 안고 제임스 테일러가 방문했다. 그의 첫 임무는 2만평에 달하는 땅에 홍차 재배를 성공시키는 것이었다. 물론 그렇게 처음 스리랑카 땅속으로 뿌리를 내린 차나무들이 이 작은 섬 스리랑카를 지도 위에서 세계에서 위대한 차 생산지로 손에 꼽히게 만들어 줄 것이란 생각은 그 누구도 하지 못했다. 제임스 테일러는 이를 시작으로 스리랑카에서 홍차를 다양하고 풍성한 방향으로 재배하기 위해 실험을 멈추지 않는다. 잘 자란 차나무의 잎으로 맛있는 홍차 잎까지 생산할 공장을 세우는 것이 그의 최종 목표였다. 그래서 차나무의 품종을 개량하고 개량된 나무에서 자란 싱싱한 잎으로 훌륭한 차를 만들어낼 생산 공정을 일구기 위한 노력을 끊이지 않았다. 그가 스리랑카에 와서 이러한 업적들을 남기지 않았다면 스리랑카의 홍차가 세계로 뻗어나가는 지금과 같은 축복은 일어나지도 못했을 것이란 추측도 가끔 들려온다. 스스로 이 땅과 기후에 알맞은 차나무를 개량하고 홍차 공장을 세웠던 그는 캔디의 작은 공동묘지에서 영원한 안식 중이다. 하루에 세 번 이상 홍차로 달콤한 휴식을 맞는 스리랑카 사람들 중에는 그를 모르는 이들도 많다지만 별 볼일 없는 그 묘지에 여전히 많은 차 애호가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다고. 꽃보다 아름다운 연둣빛의 찻잎이 유혹적인 붉은 차가 되어 사람들을 위안하는 한 그 발걸음은 멈추지 않을 것이다.

차밭의 여인들

매일 아침 은은한 아침 햇살이 누와라엘리야의 차밭 언덕들을 비출 때면 마을은 바빠진다. 광활한 차밭의 주인들은 먼 언덕에서 언덕을 바라보며 연한 연두색이 피어오른 언덕을 찾아낸다. 상품 가치가 있는 건 갓 피어난 여린 잎들이지 다 자란 초록 잎이 아니기에. 이것이 모든 찻잎 채취가 직접 손으로만 이뤄져야하는 이유다. 풍성한 차나무 사이사이를 넘나들며 줄기 가장 끝에 나온 잎과 그 바로 전에 난 잎까지만 선별해서 따야하기에 이 작업은 영영 기계가 대체할 수 없다. 그렇게 농장 주인이 손끝으로 가리킨 지점으로 향하는 여인들은 하나같이 등 뒤에 커다란 포대자루를 업고 있다. 매일 아침 8시부터 5시까지 그녀들은 차밭에 나가 맨손으로 청순하게 올라온 연한 잎들로 자루를 채운다. 코발트블루 빛 하늘과 그 아래 비단 같이 펼쳐진 차밭, 초록빛 일색이던 밭 중간에 알록달록하게 서있는 차밭의 여인들까지가 누와라엘리야에서 반드시 목격해야 하는 최고의 풍경이다. 그렇게 오전 작업을 마치면 그녀들은 작업 중간정산을 위한 장소로 하나둘 모여든다. 이곳에서 부지런히 딴 잎들을 안고 자신의 자루 무게를 재기 위한 줄을 서는 것이다. 운이 좋게도 이 시간 한데 모인 그녀들을 만나볼 수 있었다. 자루에서 밝은 초록색의 찻잎들이 쏟아지는데 탄성을 지르지 않을 수가 없었다. 그녀들에겐 지극히 생활의 일부인데 그 모습에 이토록 열광한다는 것에 호기심어린 눈빛을 보내는 여인들. 그늘도 없는 차밭에서 반나절 잎을 따기 위해 모두들 머리 뒤편으로 하얀 천을 덮고 있다. 무게가 기록된 후의 잎들은 모두 한데 모여 홍차 공장으로 옮겨진다. 차밭의 여인들은 5시에 그날의 잎들을 공장으로 옮기기 전까지 20킬로그램의 잎을 따야한다. 하루 종일 팔과 손가락으로 잎을 쓸고 뜯은 대가로 받는 일당은 기껏해야 한화로 1만 원에서 1만 5천 원 정도. 하지만 그녀들은 부자다. 차 농장에서 제공해주는 집에 가족을 꾸리며 살기에 귀가하며 보는 장으로 일당을 모두 탕진해버려도 내일 다시 잎을 따면 그만이기 때문이다. 언제든 집 앞 마당에 나오거나 조금만 산보를 하면 세상에 둘도 없는 차밭의 초록빛 파도와 머리 바로 위로 펼쳐지는 눈부신 하늘을 두 눈에 가득 담을 수 있지 않은가. 재산을 모아야 한다는 욕심도 없다. 단지 현재에 만족하고 오늘 하루를 무사히 넘기는 것만으로도 바쁜 사람들이다.

자연이 주는 섬세한 터치

여인들의 손을 벗어난 찻잎들이 향하는 곳은 홍차 공장이다. 매일 해가 지기 전 작업이 끝나면 싱싱한 찻잎들은 이곳에 그대로 누워 천천히 다음 날 아침까지 건조된다. 차의 맛을 크게 좌우하는 건 이와 같은 건조기간과 함께 잎을 작게 부수는 작업이다. 홍차는 잎의 입자가 작으면 작을수록 더욱 맛과 향이 진하고 강해진다. 또한 부드럽게 잎을 분쇄하는 과정이 녹차와 홍차를 결정적으로 구분 짓는다. 녹차는 첫 건조시간을 거치고 나면 약간의 스티밍 과정을 거친 이후에 녹차 잎으로서 대부분 완성된다. 과정은 훨씬 간단해보이지만 실은 녹차가 홍차보다 과정도 까다로운 귀한 차라 할 수 있다. 산화나 발효를 거치지 않고 바로 찻잎이 되기 때문에 그만큼 잎의 신선도와 향이 차 맛에 직결되기 때문이다. 물론 좋은 녹차 못지않게 고급스러운 홍차도 존재한다. 이 잎들이란 어찌나 예민한지 공장에서 이뤄지는 작업을 아주 이른 아침에 받았는지 조금 이른 아침에 받았는지에 따라 차의 등급과 향이 달리진다. 미세한 변화만으로도 무궁무진한 종류의 홍차가 만들어질 수 있지만 누와라엘리야에서 무엇보다 중요한 사실은 이것이다. 제대로 된 차를 만들기 위한 모든 과정이 자연적으로 이뤄지는 것. 가장 자연스러운 과정만이 가장 좋은 맛의 홍차를 만들어낸다는 것을 이미 여러 시도를 통해 깨달았을 테다. 이런 모든 것이 당연하기만한 실론티이기에 여전히 세계에서 고유명사처럼 인정받는 것 아닐까.

맛있는 홍차를 위한 TEA TIPS

TIP 1. 한 잔의 완벽한 차를 우리기 위해 가장 먼저 필요한 것은 좋은 질의 물이다. 미네랄이 풍부하게 포함된 물일수록 좋다. 수돗물을 사용한다면 하루 전날 밤 물을 미리 받아 널찍한 팬에 붓고 부드러운 옷감을 위에 살짝 덮어놓으면, 밤 사이 염소는 줄어들고 물의 질은 더 높아질 것이다.

TIP 2. 일반적인 홍차를 가볍게 즐기고 싶다면 1티스푼이나 티백 하나가 들어간 채로 98도에서 3분간 우려진 후 먹는 것이 가장 좋고, 밀크티로 마시기 위해 진한 차가 필요하다면 같은 조건에서 5분간 우린다.

TIP 3. 좋은 차를 온전히 만끽하기 위해서는 되도록 설탕을 덜 넣은 상태로 마시는 것이 좋다. 차에 설탕을 넣으면 좋은 차의 맛과 마신 후 입에 남는 잔향마저 조금 다르게 느껴질 수 있다.

TIP 4. 평판이 좋은 브랜드의 홍차를 구입하는 것도 방법이다. 특히 스리랑카 현지에서 홍차 공장이나 차 생산지에 방문하게 된다면 왕실 전용 홍차로 인정받았다는 더 골든 플러쉬The Golden Flush나 가장 맑은 색을 띄는 최고급 홍차 실버 팁Silver Tips 또는 화이트 티White Tea 등을 반드시 구매해 마셔보자. 현지를 벗어나면 돈이 있어도 구할 수 없을 만큼 귀해지는 홍차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