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ENIOR CAMPING

중년의 낭만으로 미국을 횡단하다

학창시절 첫 무전 캠핑여행 이후 40여 년 만이었다. 장기간 캠핑에 필요한 짐을 싸선 집밖에 나온 것이 말이다. 중년이 꽃필 무렵, 네 남녀는 첫 자유여행이라는 모험을 떠난다. 자유로운 하루하루 속에서 그들은 여전히 청춘이었다.

글 이소윤 기자 사진‧자료제공 ㈜페이퍼북 www.paperbook_.blog.me/

기자에겐 60대 부모님이 계신다. 그런데 재미있는 것은 작년 한해 여행잡지에서 일하는 본인보다 부모님이 더 자주 여행을 다니셨다는 사실이다. 이젠 대중매체에서도 중‧노년의 여행을 많이 이야기하면서 더 이상 자유로운 해외여행은 2‧30대만의 소유물이 아니게 되었다. 해외여행이 지금처럼 젊음의 키워드이기 이전에 대학시절을 거치고, 외환위기 중에도 가정을 지키기 위해 돈벌이와 일에 몰두해왔던 현재의 중년. 그들에게도 이제 여행은 누려 마땅한 보상이자 권리이다. 여행하는 중년은 늙어가는 조지 클루니처럼 그 자체만으로 멋지다. 이를 뼈저리게 느낀 것은 얼마 전 <미국 캠핑 여행기>라는 책을 읽은 후. 평소 가깝게 지내던 두 부부가 합심해 떠난 미국을 한 달간 동서 횡단하며 보고 느낀 것들이 담겨 있었다. 오로지 자신들의 힘으로만 쌓아올린 탑이었다. 이를 실현시킨 책의 저자 황만세, 오경림 부부와 금동화, 김은애 부부는 여전히 모일 때마다 미국에서의 시간들을 추억한다. ‘여행이 이토록 뿌듯한 것이구나’ 깨닫게 해준 보석 같은 순간들을 말이다.

자유여행? 누구나 할 수 있다

해외여행을 즐기는 방법은 매우 다양하지만 그중 여행을 위한 모든 일을 스스로 결정하고 준비해야하는 자유여행은 중년 여행자들에게 흔히 선택되는 여행법은 아니다. 중년 여행자의 장점들 중에 비교적 여유로운 여행경비가 포함되는 것을 감안하면, 경비절약에 초점이 많이 맞춰질 수 있는 자유여행은 때때로 ‘사서 고생’처럼 비춰지기 때문이다. 하지만 <미국 캠핑 여행기>의 저자들은 단 한번 만에 적은 경비로 떠난 자유여행에 매료되었다. 이들은 타고난 방랑자도, 여행 앞에 두려운 것 하나 없는 용맹한 모험가도 아닌 평범한 50대 중년이다. 대학동기인 금동화와 황만세, 그리고 그들의 아내 김은애와 오경림은 일상에 쫓겨 캠핑도 1년에 한번 겨우 가는 수준이었지만 항상 자연을 동경해왔다. 그렇게 60대 입문을 앞둔 어느 날, 세월에 묻혀 지나온 인생을 돌아보던 중 아직 지우지 못한 인생의 버킷리스트에 초조함을 느낀다. 그 속에서 오래 묵혀있던 미국 대륙횡단여행을 이뤄보리라 다짐한 이후로도 사실 꽤 오랜 시간이 걸렸다. 하지만 네 사람이 모든 걸 함께 한 덕분에 정말 뭔가를 저지르게 된 것이다. 먼저 미국에 한 달을 머무르는 장기간 여행의 실현을 위해 여행경비를 낮출 수 있는 방법이 필요했고, 그래서 선택한 것이 캠핑여행이다. 미국은 캠핑여행을 진행하기에 제격이었다. 오래 전부터 자리 잡은 캠핑문화덕분에 저렴하고 쾌적한 캠핑용품점과 캠핑장들이 많았다. 더불어 미국 전역에 퍼져있는 아름다운 국립‧주립공원 위주의 자연친화적인 여정을 세우면서, 자유로운 이동을 위해 차를 렌트하기로 한다. 물론 이 또한 탁월한 선택이었다.

중년의 첫 자유여행, 사전준비는 체계적으로

이들의 자유여행은 오랜 기간 체계적으로 준비된 도전이었다. 무조건 저지르면 된다는 용감무쌍한 여행도 충분히 매력 있지만 중년 여행자들에겐 무리일 수 있다. 하지만 이 대신 인생의 경험을 통해 터득한 삶의 지혜와 현명함은 여행을 꼼꼼히 준비하는 단계에서 큰 무기가 되었다. 평생 꿈꿔온 여행인지라 여기저기 귀동냥을 하며 여행의 큰 바탕을 그리는 데는 꽤 오랜 공을 들였지만 본격적이고 구체적인 준비는 출발 4~5개월 전부터 시작했다. 물론 많은 조사를 도맡았던 황만세와 금동화는 청년 시절 미국에서 체류했던 경험이 있어 현지 사정에 비교적 밝은 편이었다. 만약 그렇지 않았다면 더욱 일찍부터 스케치에 들어갔을 것이다. 네 작가가 가장 추천하는 여행준비법은 활발한 인터넷 활용이다. 가장 먼저 한 것이 로드 아틀라스Road Atlas 지도책과 구글 맵을 이용한 지도 공부였다. 여행 기간과 일정에 맞는 여행루트를 짰다면 하루 이동 거리를 정하고, 매일 어디를 방문할 것인지 어디에서 숙박을 해결할 것인지 부터 정했다. 이렇게 여행의 큰 틀을 잡은 후 미국의 국립‧주립공원 홈페이지와 다양한 웹사이트, 여행 블로그, 가이드북, 여행서적 등을 통해 구체적인 정보들을 수집해나갔다. 이 여행에서 네 작가가 중요하게 생각한 또 다른 것은 효율적인 업무 분담이다. 여행의 준비 단계에서부터 각자 맡는 분야를 나눴기 때문에 주기적으로 이를 점검하는 모임을 가져 다 함께 중요한 결정을 이뤄야했다. 작가들은 이때부터 여행의 설렘이 시작되었다고 말한다. 이 여행에서 없어선 안 될 시간들이었으며 또 여행만큼이나 즐거운 추억이었다고 말이다. 모두 상의를 해서 결정된 사항이 있으면 인터넷으로 예약을 해나갔다. 이젠 정말 방안에서도 전 세계를 둘러볼 수 있는 시대다. 미국횡단을 함께 할 렌트카나 인기지역의 캠핑장, 사전예약이 필요한 숙소 등은 출발하기 전 인터넷으로 안전하게 예약을 마쳐놓았다. 일상에 묻어두었던 열정과 능력치를 한껏 끌어낸 시간들이다. 그렇게 모두 힘을 합쳐 완벽한 한 달을 계획한 후 미국 샌프란시스코행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미국의 대자연은 한계가 없다

그런데 어쩌다 인생의 버킷리스트 안에 미국횡단여행이 들어가게 된 걸까. 알고 보니 넷 중 황만세는 미국의 캠핑장에 대한 경험을 먼저 갖고 있었다. 지금은 모두 가정을 꾸린 자녀들이 한두 살 꼬맹이이던 그의 청년시절, 미국에 잠시 체류하던 때의 일이다. 캠핑맵을 가이드 삼아 아이들과 캠핑장을 찾아다니던 그 때 이미 캠핑장 주변의 훌륭한 자연 조건과 편의시설, 친절한 안내정보에 감탄했었다. 당시엔 이렇다 할 캠핑장도 없었던 우리나라에 캠핑 열풍이 불게 됐을 만큼 긴 세월이 지난 후 다시 찾았지만 당시의 감동은 여전했다. 무엇보다 미국의 광활한 대자연은 매일을 감동적으로 만들었다. 마치 지구의 자연을 한 대륙에 모아놓은 것처럼 다채로운 자연경관을 품고 있는 미국은 여행 내내 이들을 자연에 대한 경외심으로 겸손해지게 했다. 미국 서부에서 청정 자연이 주는 기쁨을 맘껏 누릴 수 있던 요세미티Yosemite 국립공원과 인디언들이 정령이 사는 곳이라며 숭배하는 레이니어산Rainier Mt. 국립공원의 아름다움을 실감한 이후 캐나다로 잠시 넘어갔다. 바로 그 유명한 캐나다 로키산맥 때문이다. 로키산맥의 중심을 지키는 밴프Banff 국립공원에서 잠시 캐나다의 매력에 빠진 후 미국으로 돌아온 글래이셔Glacier 국립공원은 창밖으로 윈도우 XP 배경화면처럼 펼쳐지던 완벽한 풍경이 놀라웠다. 이 뒤로 미국 중부로 접어들면서 맞이한 광활한 화산지대 옐로우스톤Yellowstone. 옐로우스톤의 여전히 활발한 화산활동 덕분에 마치 살아있는 듯한 알록달록 유황천들을 감상하고, 이와는 정반대로 버려진 혹성 같은 기이한 자연미를 간직한 배드랜드Badland 국립공원를 지났다. 일일이 다 나열할 수 없는 일정 속 수많은 장소들이 모두 세계적인 명소이기에 그 우열을 가리기 힘들다. 더군다나 모든 이동을 렌트한 밴으로 했기 때문에 어느 곳 하나 놓치지 않고 창밖으로 경관을 감상할 수 있었다. 그런데 샌프란시스코에서 시작한 여행길을 막 캐나다로 이어가던 중 여태까지의 많은 자연유산들이 심어진 미국 땅의 스케일을 실감할 만한 해프닝이 생긴다. 잘 사용하고 있던 신용카드가 멋대로 정지된 것이다. 일부러 현금지참을 줄이기 위해 만들었던 카드이기 때문에 모두가 적잖이 당황했다. 나중에 알고 보니 네 사람이 단 기간에 지나치게 많은 거리를 이동한 나머지 카드회사 측에서 분실에 의한 카드사용으로 간주하고 이를 정지시켜버린 것이다. 이런 와중에도 눈앞에 선하던 설산과 차분한 호수의 경관덕분에 조급한 마음은 전혀 찾아볼 수 없었으니 다행이지만 말이다.

자연의 품에 안긴 밤은 여전히 꿈만 같다

하지만 무엇보다 눈으로 보고 감탄하던 그 자연 속에서 밤공기를 마시고 모닥불에 마시멜로 구워먹으며 지새웠던 밤의 시간이 기억에 가장 또렷하게 그려질 것이다. 특히 장정 다섯이 달라붙어도 나무 한그루를 두 팔로 감싸지 못하는 레드우드 거목들이 캠핑장을 둘러싸고 있던 밀 크리크Mill Creek 캠핑장에서의 밤은 영원히 기억 속에 남길 바라는 시간 중 하나다. 세상에서 가장 키가 큰 수종이라는 레드우드와 단풍나무, 오리나무가 울타리 노릇을 하는 덕에 마치 숲속에서 홀로 캠핑을 하고 있는 것 같은 아늑함을 즐기며 소박하게 치룬 생일파티까지 그 밤을 특별하게 만들었다. 또 일행 모두의 찬사를 받은 감동의 자연 속 캠핑장으로는 마지막 캠핑을 했던 샘슨Sampson 주립공원 캠핑장을 꼽았다. 이곳은 비교적 알려지지 않은 곳인데 이 캠핑장의 대저택처럼 넓은 잔디밭과 바로 앞으로 이어지는 거대한 세네카Seneca 호수가 절경이다. 그곳의 석양이 미국 여행의 마침표를 아름답게 찍어준 장본인이 되었다. 이외에도 일일이 나열하기 힘든 아름다운 밤들이 이 여행에는 가득하다. 밤과 함께 이른 아침 자연이 막 뱉어낸 공기와 함께 맡던 커피 향기까지 오롯이 기억에 남아있다. 그럴 수 있었던 것은 되도록 많은 밤을 국립‧주립공원 안에 위치한 캠핑장에서 보내기 위해 일정을 잡았기 때문이다. 이곳들은 KOA(사설캠핑장)에 비해 가격도 저렴할 뿐만 아니라 훨씬 자연친화적이었다.

여행을 시작할 당시만 해도 캠핑 초짜나 마찬가지였던 두 부부는 여행 후반으로 갈수록 캠핑 고수가 되어갔다. 경험을 통해 터득한 캠핑장 잘 고르는 조건들을 몇 가지 전하고자 한다. 첫째는 해가 저물기 전에 캠핑장에 도착할 수 있는 거리에 위치해야 한다는 점이다. 캠핑의 묘미에는 직접 만들어먹는 저녁식사도 한몫하는 법. 노을이 지기 전에 도착해 빠르게 터를 잡고 주린 배를 채우며 즐기는 여유를 빼놓는다면 진정한 캠핑이라 할 수 없다. 또한 캠핑장 내에서도 좋은 자리를 잡기 위해선 바람을 피할 수 있는 곳인지, 프라이버시 보호가 잘 이뤄지는지, 편의시설과 거리가 가까운지 등을 따져보고 자리를 펴야 편안한 밤을 보낼 수 있다. 참고로 네 사람이 여행 중 찾은 국립‧주립공원 위주의 캠핑장들은 1박 요금이 모두 30달러 안팎이었다.

캠핑자유여행에 대처하는 우리들의 자세

캠핑은 그 자체로 복합적인 매력을 갖는다. 만약 우리 집 옥상에 올라가 캠핑을 한다 해도 여행을 하는 듯한 기분에 젖을 수 있다. 그 이유는 아마 캠핑만으로도 평소 해오던 생활의 대부분이 바뀌어버리기 때문일 것이다. 아주 당연하면서도 그만큼 중요한 부분이다. ‘그 동안의 밥과 국으로 차려진 아침식사에서 벗어나 새로운 생활을 시도해 볼 수 있다는 점도 여행에서만 가능한 매력적인 경험이다. 특히 생활습관이 틀에 박힌 우리 나이의 사람들에게 여행을 통한 작은 변화가 삶을 더 풍성하게 해주는 것 같다. 우리가 여행과 캠핑을 즐기는 이유이기도 하다.’ 잉글리쉬 머핀과 달디 단 스위트 콘으로 만족스러운 아침식사를 가졌던 어느 캠핑장에서의 아침에 대해 저자가 적은 표현이다. 초원과 숲속에서 생활하면서 포기할 수밖에 없는 편안함에 연연하지 않고 자연과 함께 라는 사실자체에 행복할 수 있는 마음가짐. 이것은 캠핑에 앞서 텐트보다도 중요한 준비물이다.

이와 함께 두 부부는 중년이 여러 가지 면에서 더 좋은 조건의 여행을 즐길 수 있다고 당당히 말했다. 여행준비를 위한 시간적 여유가 있고, 건강하며, 여행에 어느 정도의 돈을 투자할 의향만 있다면 중년에게는 쉽사리 얻을 수 없는 경험과 연륜, 차분함과 계획성이 있지 않은가. 또 여행에 불필요한 지출을 줄이고 싶었던 현명한 중년이라면 저비용이지만 자연과 가장 가까워질 수 있는 캠핑여행은 최고의 선택이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