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oking for RYUTYU Kingdom of Glory
류큐왕국의 영광을 찾아서

그저 바라만 보아도 아름다운 자연을 잠시 뒤로하고 오랜 역사에 다가가 손을 내밀었다. 오키나와는 일본에 속한 하나의 현이지만,
불과 150년 전만 해도 독자적인 역사와 문화를 간직한 나라였다. 그 왕국의 이름은 류큐. 지금까지도 오키나와 사람들의
삶을 지배하는 역사의 이름을 기억하라.
글 김수현 기자 사진 최은주 기자 취재협조 오키나와관광컨벤션뷰로 www.visitokinawa.jp

류큐사람, 류큐문화, 류큐음식, 류큐민요. 오키나와 어느 곳을 가나 빠지지 않는 류큐라는 것, 전통을 뜻하는 단어라 하기에는 너무 광범위하다. 무엇에 빗대면 좀 더 친숙하게 느껴질까 싶어 이런저런 개념을 찾아보지만 딱히 떠오르는 게 없었다. 그래서 떠났다. 이곳 사람들의 삶에 지대한 영향을 끼치는 류큐란 어디에서부터 시작된 것이며 어떤 과정을 거쳐 하나의 왕국으로 거듭나게 되었는지를 알기 위해서. 역사적 장소를 따라 갔지만 단순히 신비로운 장소와 건축물에 국한된 이야기가 아니다. 이 섬의 삶에 대한 이야기다.

찬란한 역사의 시작 세이화우타키
“여기 올 때마다 에너지를 얻는 것 같아요. 그렇지 않나요?” 입구부터 꽤나 가파른 돌계단에 숨을 헉헉대고 있을 즈음 동행하던 운전기사 간나 상이 말을 건넸다. 단번에 우치난츄, 즉 류큐민족임을 알 수 있을 법한 그의 얼굴에는 세이화우타키斎場御嶽에 도착한 순간부터 웃음이 떠나질 않는다. 그에게 이곳은 그들의 선조가 살았던 이 땅의 신성함을 직접 느낄 수 있는 공간. 그래서인지 기자의 아버지뻘은 돼 보였지만 좀처럼 지친 기색이 없다. 우타키란 천신이 내려와 머무른 장소를 뜻하는데 그중에서도 오키나와 본섬 남부에 위치한 세이화우타키는 아마미키요 신이 만들었다고 전해지는 7개의 우타키 중에서도 가장 오래된 성지다. 아마미키요는 천계에서 난조시의 쿠다카지마로 내려와 농업을 전파한 신으로 류큐민족의 시조로 알려져 있다.

수풀이 우거진 길을 따라 걷다 보면 다섯 개의 성소를 지나 거대한 삼각형 모양의 석회암 바위 앞에 도착한다. 참 이상하게도 바위의 틈 사이로만 세찬 바람이 불어오는 탓에 안쪽으로 발을 디디기가 여간 쉽지 않다. 좁은 통로를 지나 삼각바위 안의 작은 공간에서는 조금은 멀지만 신들의 섬 쿠다카지마가 보인다. 오키나와인에게 신성시 여겨지는 세이화우타키답게 이곳을 방문하는 사람들은 섬을 배경으로 기념촬영을 하기보다는 합장 자세를 취하고 진지하게 기도를 올린다. 류큐왕국 시절에는 일반인의 출입이 불가능했고 대신 왕이 국가적인 제사를 지냈다고 한다. 그들도 역시 마찬가지로 류큐를 창조한 아마미키요 신의 섬인 쿠다카지마를 봤고, 신들을 향해 복을 빌었다.
예로부터 사람들은 피라미드를 비롯해 삼각형이라는 것은 그 자체로 매우 신비하고 경이로운 형태라고 말해왔다. 이곳의 삼각바위는 우연으로 생성됐다고 하기에는 믿기 어려울 만큼 정확한 이등변 삼각형을 이루고 있다. 게다가 이 삼각형을 통과하면 신들이 있다고 믿는 섬이 보이고 그 위치가 해가 뜨는 동쪽과 일치하니 신성한 지역으로 여겨질 수밖에. 오키나와에 있는 많은 건축물이 류큐의 표면적인 것들, 이를테면 문화의 융성 등을 나타내는 것이었다면 세이화우타키는 류큐의 정신세계와 내면을 대표하는 공간이다.

삼진시대 북산의 대표 나키진 성터
쇼하시에 의해 류큐로 통일되기 전의 오키나와는 크게 세 지역으로 나뉜다. 북산, 중산 그리고 남산. 이 세 나라는 약 100여 년 동안 이 땅에서 공존했고 각기 다른 문화를 발전시켜 왔다. 나키진 성今帰仁城은 류큐 이전 삼산시대에서 북산을 대표하는 건축물 중 하나로 13세기 말경에 짓기 시작한 것으로 추정된다. 류큐왕국으로 편입된 후에도 각 지역의 성들은 계속 사용됐는데, 이전의 성과 성벽이 전쟁을 방어하기 위한 목적이었다면 통일 이후에는 지역을 관리하는 역할로 바뀌었다.

1416년 책략에 의해 함락되기 전까지 북부의 난공불락의 성답게 나키진 성벽은 튼튼함을 자랑한다. 벽을 쌓는 방법에는 여러 가지가 있는데 이곳에 쓰인 기법은 자연석을 그대로 쌓는 노즈라즈미. 정제되지 않은 돌을 이용했지만 어디 하나 불안한 곳 없이 견고해 사방에서 들어오는 적들을 훌륭하게 막아냈다. 회색빛의 석회암과 녹음이 조화를 이루었지만 뭔가 아쉬운 느낌이 자꾸만 들었다. 그러나 성의 정문인 헤이로문을 지나는 순간 활짝 핀 벚꽃이 어우러지며 딱딱하게 느껴졌던 성터는 단 몇 초 만에 아름다운 산책로로 변했다. 성벽을 구경하고 삼산시대의 역사를 만나는 공간이기도 하지만 역사와 상관없이 오키나와의 벚꽃 명소로도 유명하다고 한다. 주변을 둘러보며 돌계단을 천천히 올라가다 보면 꽤 높은 곳까지 왔음을 알 수 있을 테다. 계단이 끝나는 곳에서 가까이에 내려다보이는 것은 전시에 대비해 말을 키우고 병마를 훈련시키던 우시미. 가장 높은 성벽이 쌓여 있는 만큼 가끔 근처로 사람이라도 지나갈 때면 그 거대한 높이를 새삼 실감하게 된다. 
깊이 들어갈수록 조금 더 높은 곳에서 성터를 내려다볼 수 있는데 북부의 아름다운 풍경을 보고 싶다면 성터와 바다가 함께 보이는 포인트를 찾아 이리저리 이동해보는 것도 좋겠다.

무너져가는 성벽과 몇 개의 돌들만이 덩그러니 있을 거란 생각은 완벽하게 빗나갔다. 1609년 사츠마 군의 공격에 불타 폐성되고 말았지만 지금껏 굳건히 제자리를 지키고 있는 석벽과 잘 보존되고 있는 터 덕분에 억지로 상상력을 짜내지 않아도 그 시절 성의 모습을 대략적으로 상상할 수 있다. 삼산시대는 중산의 쇼하시의 통일로 막을 내렸지만 오랜 시간이 지난 지금의 오키나와에서도 그 흔적을 쉽게 찾아볼 수 있음은 다른 문화에 대한 배척이 아닌 수용을 택한 류큐왕국의 지혜다.

류큐왕국의 시작과 끝 슈리성
1406년 중산의 쇼하시에 의해 통일된 류큐왕국은 약 470년간 이어졌고 모든 정치, 문화 중심은 수도 나하에 위치한 슈리성首里城에서 이루어졌다. 성의 창건은 14세기 무렵이라고 알려져 있지만 정확한 건축시기는 알 수 없다. 류큐왕조가 완벽하게 설립된 것이 1429년인데 이미 그 전에 성이 있었기 때문. 그러나 1879년 메이지 정부에 의해 류큐왕국이 멸망하기 전까지 약 500년에 걸쳐 정치, 문화뿐만 아니라 외교의 중심지로까지 그 역할을 충분히 해냈다는 것만은 분명한 사실이다.

슈리성 공원 입구는 이른 아침에도 이미 수학여행을 온 학생들과 패키지 투어를 온 할머니, 할아버지들로 붐비고 있었다. 너나 할 것 없이 카메라를 목에 건 이들이 가장 먼저 기념사진을 찍는 곳은 슈레이문의 앞. 슈리성 안의 어떤 문보다 정교하고 아름다워 관광객들의 발걸음을 입구에서부터 멈추게 한다. 문을 통과해 길을 따라 쭉 올라가다 보니 다른 지역의 것보다 훨씬 낮은 성벽이 눈에 들어온다. 일본 본토의 성들은 높은 벽이 바깥으로 휜 구조인데 닌자들이 성벽을 타고 올라오다가 바깥으로 휘는 벽을 따라 떨어지게 한 것. 그런데 이곳 슈리성의 벽, 휘기는커녕 낮기까지 하다. 적이 침입한다면 순식간에 성이 함락될 것 같지만 사실 류큐는 다른 주변국과 좋은 관계를 유지하고 있던 까닭에 높은 성벽이 필요하지 않았다. 또한 본토의 성들은 외부의 침략으로부터 고립되기 위해 연못 주변에 지어졌지만 이 역시 류큐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방식이다.
성벽을 지나 호신문을 통과하니 가운데 광장을 중심으로 중앙의 정전과 좌측의 북전이 모두 붉게 물들어 있다. 류큐왕국 시대에는 일본의 문화보다 오히려 중국 남방의 것들이 더 많이 들어왔는데 정전도 그의 영향을 받았다. 전체적으로는 자금성의 건축 양식을 기본으로 건축했으며 일본과 오키나와 방식도 약간씩 가미됐다. 가까이 가보면 기둥과 지붕 또한 일본 건축물에서 볼 수 있는 잉어가 아니라 중국의 것과 동일한 용이 새겨있다. 빨갛게 옻칠이 되어있는 정전, 북전과 달리 남전은 일본의 건축양식을 따랐는데, 일본 본토의 사츠마 번이 오키나와를 점령한 이후에 만들어진 건축물임을 짐작할 수 있다. 남전 내부를 지나 정전을 이르자마자 눈길을 사로잡는 것은 붉은색과 황금색의 화려한 조화. 특히나 옥좌가 있는 곳은 번쩍번쩍 금빛이 나며 번영했던 류큐왕국의 위용을 보여주기에 충분하다. 북전은 과거 외국 사신들을 영접하던 곳이었지만 현재는 관광객들이 슈리성에 대해 더 자세히 들여다보도록 전시 및 영상코너가 있다. 시대는 다르지만 오키나와에 관심이 있는 사람을 만나는 장소라는 점에서는 여전히 같다고 해도 좋지 않을까. 북전을 마지막으로 돌아가는 길에 위치한 우에키문 옆 석회암 담벼락에는 지나온 세월이 회색빛으로 남아있어 성곽을 떠나는 순간까지도 류큐왕국의 시작과 끝을 함께한 슈리성의 발자취를 느낄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