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미술의 허브를 꿈꾸는 아트 스테이지 싱가포르

아트 스테이지 싱가포르의 페어 디렉터 로렌조 씨는 동남아시아가 21세기의 세계 미술의 허브가 될 거라고 예측한다.
그리고 그 중심에 선 싱가포르가 아시아 태평양 지역에서 활동하는 작가들의 플랫폼이자 창구가 될 것이라고.
싱가포르로 떠난 아트 여행에서 조금은 생소하지만 흥미로운, 로렌조 씨가 말한 그 미래를 살짝 경험했다.
글과 사진 함희선 기자 취재협조 싱가포르관광청 www,yoursingapore.com, 스쿠트항공 www.flyscoot.com

예술적 감각이 남다르지도, 미술에 대한 조예가 깊지도 않지만, 세계 어디든 여행을 갈 때면 미술관에 꼭 들르는 편이다. 가난한 배낭여행자 시절에도 파리의 루브르 박물관이나 피렌체의 우피치 미술관에 가려고 하루를 꼬박 굶고서 입장료를 모으고, 하룻밤 호스텔 값을 웃도는 거금을 2시간의 가이드 투어에 쏟아붓곤 했다. 단순히 위대한 예술작품을 감상하겠다는 의도는 아니었더랬다. 난 ‘예쁘다, 혹은 예쁘지 않다.’로 나뉘는 꽤 허접한 취향을 갖고 있어서 고상한 작품 감상은 아예 불가능한 사람이다. 다만, 그곳에 존재했던 과거의 시간들을 가두어놓은 캔버스 앞에 서있으면 라디오를 틀어놓은 듯 세상의 이야기가 귓가에 맴도는 거 같아 마냥 좋을 뿐이다. 수 십 년 전, 혹은 수 백 년 전의 작가와 마주하는 듯한 그 묘한 기분이 느껴져서 좋단 말이다. 미술관을 하루 종일 탐미하고 나면 그 도시뿐 아니라 다른 나라, 다른 세기를 넘나드는 여행을 한 것 같은 뿌듯함도 밀려오고.
컨템포러리 아트. 예술 감상이 현대미술로 옮겨지면 얘기는 살짝 달라진다. 단번에는 절대 작품을 파악할 수 없는, 설명을 듣고서도 이해할 수 없는, 아무리 뚫어져라 쳐다봐도 감동이 오지 않는 경우가 허다하다. 아시아 태평양 지역에서 ‘문화예술의 허브’로 뜨고 있는 싱가포르로 ‘아트 여행’을 떠나면서도 신나기보다는 움찔했던 건 그 주제가 ‘컨템포러리 아트’여서다. 게다가 예술과 연결 지어 생각해본 적이 단 한 번도 없었던 싱가포르다. 그동안 몇 번이나 싱가포르에 가봤으면서도 센토사 섬에서 실컷 놀거나, 차이나타운, 리틀인디아, 아랍스트리트 등 다문화 지역을 산책하고, 또 양손 가득 쇼핑백을 움켜쥐는 여행만 했었지 예술을 테마로 여행하겠다고 생각해본 적은 없었다. 그런데 싱가포르의 아트 신이라니. 과연 어떤 모습일까. 조금은 생소하지만 흥미로운 경험이 될 싱가포르로 예전에 없던 아트여행을 떠났다.

세계 미술의 허브로 성장하다
“21세기에는 동남아시아가 세계 미술의 허브로 성장할 가능성이 커요. 그 중심에 자리한 싱가포르는 중립적인 위치에서 아시아 태평양 지역의 작가들을 세계에 알리는 플랫폼 겸 창구가 될 것입니다.” 올해로 4회째를 맞이한 싱가포르의 아트 페어 <아트 스테이지Art Stage>의 창립자이자 페어 디렉터인 로렌조 루돌프Lorenzo Rudolf씨는 싱가포르를 미래의 주인공으로 내다본다고 했다. 스위스 출신으로 세계 최대 규모의 아트 페어인 <아트 바젤Art Basel>을 10년 동안이나 이끌어왔던 노련한 전문가가 멀리 아시아까지 날아와 싱가포르를 선택한 데에는 특별한 이유가 있을 테다. 그 이유 중, 첫째는 예술 분야에 대한 정부의
비상한 관심이다. 싱가포르는 앞으로의 성장 동력을 문화 예술로 보고 정부 차원에서 아낌없는 지원을 보내고 있다. 예술 전략 보고기구Arts and Culture Strategic Review까지 만들었으며, 2025년까지 싱가포르를 르네상스 당시의 피렌체나 파리, 뉴욕, 런던 같은 도시로 만들겠다는 야심찬 목표도 세워놓았다.
전문가들의 말을 빌리면, 실제로 아시아 미술시장은 급속하게 발전하는 중이다. 빠르게 글로벌화되고 있으며 영향력도 커지고 있고. 아시아 컬렉터들의 구매력이 커졌으니 자연스레 미술계에 끼치는 영향력도 커진 거다. 세계 미술 애호가들의 이목이 집중되면서 작가들의 위상과 작품의 가치도 뛰어올랐음은 물론이다. 중국을 예로 들자면 국제 미술 시장에서의 점유율이 2008년 7퍼센트에서 4년 만에 30퍼센트 수준으로 급증했다. 일찌감치 아시아 미술 시장의 미래를 내다보았던 아트 바젤이 홍콩의 아트 페어가 크게 성장할 조짐을 보이자 이를 냉큼 인수하여 <아트 바젤 홍콩Art Basel Hongkong>으로 시작한 것만 보더라도 밝은 미래가 점쳐지는 게 틀림없는 듯하다. 세계 미술품 애호가들의 눈이 점점 아시아로 향하고 있는 중이니 그 힘이 대단하게 불어나는 건 그야말로 시간문제다. 싱가포르는 그 관심을 제 쪽으로 끌어당기기 위해 지금 부단히 노력 중이다. 세계 미술의 허브가 되겠다는 포부를 품고서.

싱가포르 정부의 비상한 관심
서울시와 비슷한 면적에 1인당 국내총생산이 5만 달러가 넘는 싱가포르. 우리 한국이 2만 3천 달러로 세계 34위를 차지하는 반면, 싱가포르는 11위다. 금융 중심지로서의 경제 우등생 싱가포르가 문화예술에 손을 대기 시작했다. 작은 규모의 도시 국가로, 그동안 대형 박물관이나 미술관 이외에는 괜찮은 미술 전시를 볼 수 있는 곳을 찾아보기 어려웠던 싱가포르에 세계 최고 수준의 갤러리들이 새롭게 문을 여는 중이다.

예전에 없던 싱가포르로의 ‘아트 여행’이 가능해진 건 바로 그런 이유다. 그중 대표적인 공간이 바로 길만 버락Gillman Barracks 예술지구다. 정부의 주도 아래 펼쳐진 첫 번째 프로젝트. 싱가포르가 영국의 식민지였던 시절, 영국 군대의 주둔지로 조성된 길만 버락에 아시아에서 활발하게 활동하는 갤러리들을 유치한 것으로 넓은 부지 곳곳에 흩어져 있는 14개의 막사 건물마다 여러 갤러리와 카페들이 들어서 평화로운 분위기 속에 미술 감상하기 좋은 공간이다. 해외 화랑이 주류를 이루고 있어 색깔이 다른 전시를 감상하는 재미도 쏠쏠한 데다가 현대미술의 폭넓은 흐름도 짚어볼 수 있다. 버려진 병영이 울창한 나무가 우거진 공원 안의 갤러리 숲이 되고, 국제 미술계의 새 아이콘으로 변신한 셈이다. 오픈한지 얼마 되지 않았으나 동남아시아의 프라이빗한 컬렉터들이 작품 구매를 위해 일부러 찾아오기도 하고, 또 미술에 특별한 조예가 없는 일반인들도 부담 없이 찾고 있어 싱가포르의 떠오르는 현대미술의 아트 중심가로 벌써부터 주목받고 있다.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두리안을 닮은 건축물로 유명한 에스플러네이드Esplanade, 싱가포르의 새로운 아이콘으로 떠오른 마리나 베이 샌즈Marina Bay Sands 등도 모두 다 문화 예술 분야를 국가 산업동력으로 키우려는 싱가포르 정부가 세운 계획의 일부다. 2025년까지 장기적인 프로젝트가 진행 중이고, 앞으로 여행의 테마는 점점 더 다양하고 풍요로워질 테니 여행자들은 싱가포르에서 들려오는 새로운 소식에 항상 귀 기울이길.

활발한 미술 교류의 장, 아트 스테이지
펄떡펄떡 이제 갓 뛰기 시작한 싱가포르의 미술 세계를 직접 경험하게 된 건 지난 1월 16일부터 19일까지 마리나 베이 샌즈Marina Bay Sands에서 열린 <아트 스테이지 싱가포르Art Stage Singapore>에서였다. 아트 스테이지는 동남아시아 및 아시아 태평양 지역에 특별한 초점을 맞춘 국제 아트 페어로 싱가포르 미술 시장에 활력을 불어넣기 위해 탄생했다. 이때만큼은 전 세계의 갤러리, 작가, 컬렉터, 큐레이터 그리고 미술 애호가들의 관심을 모두 이곳으로 끌어오는 아트 스테이지는 올해로 4회 째를 맞이했다. ‘우리는 아시아다.’의 모토를 가지고 아시아라는 정체성을 크게 강조하는 것처럼 페어에 참가하는 150여 개의 갤러리 중 80퍼센트가 아시아 태평양 지역을 활동 기반으로 하는 갤러리들이다. 보통의 아트 페어가 자국의 미술의 집중하곤 하는데, 싱가포르의 아트 스테이지는 그런 지역적 한계에서 벗어나 아시아 전역의 다양한 현대미술을 골고루 조망할 수 있다.
2014년의 아트 스테이지의 플랫폼은 싱가포르, 말레이시아, 인도네시아, 캄보디아, 라오스, 미얀마, 필리핀, 인도, 중국, 대만, 일본, 한국, 호주, 그리고 중앙아시아 등의 국가로 구성되었다. 친근하지는 않지만, 한편으로는 평소에 쉽게 접할 수 없는 아시아의 가장 핫한, 오늘날 예술의 최전선에 있는 작품과 작가를 만나볼 수 있는 대단한 기회가 아닐